23장 열등한자의 선택
2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천 명중에 하나, 만 명중의 둘 꼴로 택하겠고 그들은 홀로 서리라 - and they will stand as a single one.
우리는 영적인 여정에서 종종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 빅터 프랭클린의 말처럼 유대인 수용소에서 내일 어떻게 될지 미래에 대한 의문을 끝없이 자신들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이기도 하지만 삶의 원동력으로 서도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사주팔자를 배워 지금의 계명대 앞에서 철학관을 할 때도 나의 운명과 사람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처음에는 쉬웠으나 갈수록 어려운 것이란 것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슴속에 말 못할 고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고 숨기거나 거짓말을 합니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근 에야 저도 사주팔자적 사고를 버리고 보다 효과적인 인간 분류인 MBTI나 EQ, 아스퍼거 테스트등 보다 데이터 적인 분류법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쏘는 족족 빗나가던 예측은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인간의 사고는 과거 경쟁적이지 않았습니다.오히려 이웃과 경쟁하여 이기는 것이 공동체의 미덕을 해치는 일이라 보았습니다.물론 부유한 가정 형편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2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천 명중에 하나, 만 명중의 둘 꼴로 택하겠고
이 구절은 개인의 영적 성장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독과 독특함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 명 중에 하나, 만 명 중에 둘을 택한다는 것은 진정한 영적 깨달음이나 신의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홀로 서리라"는 부분은 이러한 개인이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영적인 여정이 대중적이거나 일반적인 경험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과정임을 나타냅니다.
아마 거의 모든 신학자나 철학자들이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잠깐 펜싱 선수로 활동한적 있습니다. 당시 모집을 체육선생님이 하셨는데 그 분은 태권도 부을 담당하던 감독 님이셨습니다.도대체 저희 같은 시골 중고등학교에 펜싱부가 왜 생겼는지 지금도 의문이긴 합니다.감독님은 취미로 할 수 도 있고 잘하면 선수도 될 수 있다면서 우리를 고무 시켰고 저도 지원하여 뽑혔습니다.마른 몸매와 큰 키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저는 엘리트 체육과는 거리가 멀었고 펜싱부는 취미반이 아니라 선수 반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만두었고 지금도 운동을 하지만 선수나 지도자로서 하지는 않습니다.그렇다면 도마복음의 이 말씀은 마치 엘리트주의를 옹호하는듯 보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자신의 삶속에서 실천하는 길은 주목받지 못하고 인정 받지 못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길입니다.그런 면에서 이 경구의 청자는 어쩌면 교회 지도자를 꿈꾸는 예비 사역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전문적인 선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1등만이 강조되고 2등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천에 하나 만에 둘이 아니라 몇 만분의 1의 확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1명이 절대 다수에게 영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저는 이 경구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합니다.그것은 이 구절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천명이면 천명 만명이면 만명 모두를 택하겠고,
오랫동안 신학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저 또한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이것저것 아는 것은 많아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것은 나만의 독자적인 종교 탐색과 연구가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유튜브 인터넷의 발달은 보다 넓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검색하게 해주었고 마침내 전문가의 영역에 있던 신학연구가 누구나 관심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되었습니다.
취미는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세속적이지도 먹고사는 현실이 아니라 인간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 구절은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천 명중에 하나, 만 명중의 둘 꼴로 택하겠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천 명 중에 하나, 만 명 중의 둘 꼴로 택하겠고 그들은 홀로 서리라"와 같은 구절은, 특정한 사람들만이 깨달음이나 영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반면, "내가 너희를 천명이며 천명, 만명이면 만명을 택하여 모두 홀로 서리라"라는 표현은, 깨달음이나 선택받음이 보다 보편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구절이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영적 진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임을 인식하는 양자역학적 사고에 가까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가 여러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중첩 상태'의 개념을 통해,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현실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설명합니다.
영적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이러한 관점은 단순히 검은색과 흰색, 옳고 그름과 같은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서, 모든 인간이 깨달음을 추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각 개인이 겪는 고유한 경험과 내면의 여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즉, 영적 여정은 개인적이고 독특하지만, 동시에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보편적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절과 해석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깊이 있는 영적 진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제공합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깨달음과 영적 성취를 추구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며, 이 과정에서 각자가 겪는 독특한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 같이 부족한 선교사도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검증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하나 신비한 것이 있다면 수천년 전의 이 문서가 오늘날에도 적용이 되며 해석의 방향성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주는 입체적인 문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이며 도마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초대입니다.
내가 너희를 천 명중에 하나, 만 명중의 둘 꼴로 택하겠고
천명 중에 한명이란 누구나 이해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쳤을 때 1등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이후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물론 36살에 처음 전문대학교를 갔기 때문에 직장에 매여서 그 흔한 MT 한번 간 적이 없습니다.물론 교우생활이나 교수님 과의 관계도 최악이었습니다.신학대학원 시절에는 돈 있는 여성들의 맛사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빈곤에 불만에 차 있었습니다.저의 동기인 친구는 나보다 나이도 5살이나 위였고 차분하신 성격이었기에 회식을 가면 신부님으로 오해 을 받았습니다.
만 명중의 둘 꼴로 택하겠고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관한 우리의 고민은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심오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란 인간의 성적, 사회적 지위, 심지어 신앙의 배경과도 무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배경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은 조건 없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며, 그분은 우리 각자를 독특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배경에서 왔든, 어떤 성적을 받았든, 혹은 어떤 업적을 달성했든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엘리트 뿐만 아니라 '열등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는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모세는 말을 더듬었고, 다윗은 양치는 소년이었으며,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역사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완전하게 나타나는 곳임을 선포했습니다(고린도후서 12:9).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과 한계를 넘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며, 우리의 부족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처음으로 우수사원상을 받았습니다.우리가 직장에서 인정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과 능력이 분명히 있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경험과 성장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격려하는 데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특별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열등감이나 실패는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당신의 삶을 통해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드러내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속에서 선택하십니다. 우리의 삶과 이야기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드러내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홀로 서리라
엘리트들은 기성의 교회나 사회 계층의 위쪽에서 선교한다면, 자신을 열등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회의 아랫쪽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의 양면을 가르키는 상반된 개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서는 뛰어난 자나 열등한 자나 그들의 삶속에서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뛰어난 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가난한자들에게 돌려야 하는 시험을 겪습니다. 열등한자들은 자신의 못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야 하는 시험을 겪습니다.그 방향은 달라도 살아낸다면 그들은 지혜를 갖게 됩니다.그들의 경험은 낮은데나 높은데 어디든 통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