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법원 1심 재판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자 이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측에서는 이를 두고 “그렇다면 군대 간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란 말이냐”는 비아냥거림으로 시작해서 안보 의식의 약화나 병역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판결의 부당성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극한적 남북 군사 대치상황에서 국방의무 실천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정한 지위에 있는 국민은 구체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집총근무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방이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의의 관점에서는 이를 의무의 배분문제로 평가해볼 수 있다. 정의는 평등을 기본덕목으로 삼기 때문에, 국방 의무의 배분도 그런 관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만약 예외가 있다면 차등을 정당화시킬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병역의무 배분(부담)의 대표적인 예외가 신체적 장애다. 또 스포츠 선수로서 일정한 기준에 오른 사람과 국위선양을 한 사람도 병역의무 배분의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이와 다른 방식으로 특정 분야의 산업이나 인재 육성을 위해 전공분야의 업종에 일정 기간 종사하도록 함으로써 병역의무를 대신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이 현재까지 존재하는 의무 분배의 예외 유형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위 유형 중 어느 하나에 포함시켜 의무 분배의 예외로 정당화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것은 신체적 결격 사유나 국위선양 내지는 사회적 기여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나아가 집총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공동체의 방위와 안보는 총칼로 달성된다는 입장에서 보면 국가라는 공동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그 개념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정의의 관점에서 의무 분배의 예외가 되게 하는 근거는 없을까.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양심’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양심이란 ‘보편적인 인간 내면의 소리’라 하여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성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양심의 보편성은 부정되고 있으며, 양심이란 ‘개인의 시비 판단과 행동의 원천이 되는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며 한 개인의 인격과 개체성의 핵심 원천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외부의 강제력에 의해서 양심이 억압되거나 양심에 반한 행위가 강제될 경우 개인은 인격과 개체성이 상실되어 존재 의미를 잃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집총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정의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개인의 존재 의미를 박탈하면서까지 의무의 배분을 강제하는 것이 정의의 이상(理想)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지는 병역의무에 갈음하는 의무를 부담시킨다면 평등의 이념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정의로운 의무의 분배는 달성될 수 있다. 더구나 오늘날 국방은 단순 군사력이 아니라 총체적인 국력에 달려 있기 때문에, 병역을 대체하는 다른 의무 역시 국방의 연속이 될 수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의 문제를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