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인 여러분과 간이식을 준비하시는 여러분의 조속한 치유와 건승을 기도드립니다.
저는 삼성서울병원에서 B형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말기와 간암의 전이(4cm, 1.8cm, 1.5cm)로 확진 받고,
1999년 11월 30일 아들의 간 우엽 70%를 이식받은 이 시복(李 始馥, 1937년생) 입니다.
1999년 11월 30일 수술 후 무균실과 본관 7층 이식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1999년 12월 23일 퇴원하였습니다.
1주일 간격으로 통원치료를 받던 중, 2000년 01월 14일 혈액검사결과 간 수치와 황달수치의 상승(거부반응)으로 재입원하여 중환자실과 이식병동을 오르내리며 간 조직검사 등 정밀검사를 받으며 치료를 받았습니다.
입원 치료를 받는 중에 과식과 운동부족으로 장(腸)유착이 발생하여 또 한 차례의 개복(장 유착 박리)수술을 받았으며, 2000년 02월27일 재입원한지 45일만에 퇴원하고 현재 만 5년을 지나며 건강한 모습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간이식 후, 2003년 10월부터 삼성서울병원 사회복지실에서 주관하는 "간이식 Mentoring Program(간이식전, 후의 치료경험 조언)"의 창설 멘토(Mentor)로 매주 금요일, 본관 7층 사회복지실 상담실에서 오후 1시-4까지 상담활동에 임하고 그 후 이식병동을 방문,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제가 겪은 수술전후의 애환과 사연입니다.
1983년 4월 초 동부이촌동 로얄맨션 상가 2층 소재, 김재규 내과의원에서 다섯 식구가 혈액검사를 받은 결과 저 혼자만 B형간염 바이러스 양성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후 간염치료제(레가론)과 종합 비타민(비타M)을 1년간 복용하면서 주기적으로 녹십자 진료실을 방문, 혈액을 체크하던 중, 83년12월12일 혈액검사결과 GOT 26, GPT 49U/l로 감소되었으며, 그 후 약간의 증감은 있었으나 건강상에는 16년 동안은 별로 이상 징후가 없었습니다.
1999년 06월 초 교회와, 지역 체육대회에서 축구경기를 마친 후에는 다리가 붓고, 발가락에 쥐가 나고, 설사가 반복되었습니다.
동네 정형외과를 방문, 진료를 받았으나 노화로 인한 퇴행성관절염 증상이며 물리치료가 최선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계속 물리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별로 없었으며 며칠 후 한방의원을 방문, 침(針)을 맞으며 한방물리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며칠 지나면서는 밤을 꼬박 지새울 정도로 설사가 심해지고 체중이 70kg에서 67kg 이하로 감소되었습니다.
1999년 11월 08일 출근길에 안식구와 같이 동부이촌동 소재 김재규 내과의원을 방문하여 소변을 검사하였으나 신장(콩팥)에도 이상 징후가 없고 혈당도 정상이라며 7일분의 소화제를 처방받았습니다.
잠시 후 원장님에게 다리의 부종 증상을 보였습니다.
고개를 갸웃하시며 초음파검사를 언제 받았느냐? 고 물으며, 속히 강남역 근처의 영동방사선의원으로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으라고 의뢰서를 발급하여 주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영동방사선의원을 방문, 초음파검사 실로 들어가 검사 촉을 대자마자, 언제부터 복수가 찼느냐? 고 물었습니다.
복수가 찼으면 이미 간의 상태가 악화된 것이 아닌가!? 초음파 검사를 끝내고 판독실로 들어갔습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간은 이미 곶감처럼 굳어져 있었고 간 왼쪽에 있는 약 3.5cm의 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CT 촬영을 한 후,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만약 종양이라면 악성인지 양성인지를 확인하여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만성 간염환자의 경우 간경화로 20%가 진행되며 그중에 5%정도가 간암으로 진행되고 약 80%는 자연 치유되는 것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건강할 때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 라는 교훈(잠언)을 그냥 어깨너머로 흘려버리고 살아온 것입니다.
초진한 김재규 내과의원에서는 생존율을 10%(?)로 진단하였었다고 퇴원 후에야 아내로부터 전해들었습니다.
말하고 듣기만 해도 섬뜩한 간경화와 간암이라는 진단에 방향감각을 잃고 앞이 캄캄하여졌습니다.
영동방사선의원에서 초음파와 C,T 필름을 복사한 후, 초진한 김재규 내과로 가지고 갔습니다.
자세히 판독한 후, 간암의 종양 위치가 치료하기 좋은 좌 엽 중앙이므로 걱정하지 말고,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으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습니다.
나오려는 순간" 이 시복 씨 교회 나가느냐?"라 고 물었습니다.
네! "장로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내과 원장님께서 교회 나가느냐? 라고 물은 의미는 이미 간경화 말기와 간암의 전이로 진단(생명이 위독하므로), 천주교회에 입교하고, " 영세" 받으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1937년 12월 16일, 황해도 은율군 이도면 고현리, 구월산 서북방 농촌마을에서 기독교 목사 가정의 3남 3녀 중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안식구와 함께 자동차를 운전하고 인천시 효성동 소재, 회사로 출근하여 거래처와의 대차관계 등 중요한 서류들을 챙기고 직원들에게 대충 진찰소견을 전한 후, 분당의 어머님 댁을 방문하여 이제까지의 병변과 진찰결과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아무말씀도 못하시고 " 나 죽기 전에 너 먼저 못 보낸다!" 라고 울먹이시며,
어머님께서 구약성경 말씀, "여호수아서 1장 9절 "을 봉독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를 봉독하신 후 기도드려 주셨습니다.
또 마음을 강하게 가져야 병을 이겨 낸다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안식구와 같이 집으로 돌아와서 친, 처가 형제들에게 병변의 자초지종을 전하고, 차후 대책을 의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동안 평화스럽고 조용하던 친, 처가 쪽 집안이 온통 초상집(?)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입원 전에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가정사와 회사의 거래처 대차관계 등, 사후 처리하여야 할 목록을 기록하였습니다.
(대학 노트 한권이나 되었으며 간이식 후, 회복되지 못했으면 유서(?)가 되었을 것 입니다).
1999년 11월 09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백 승운 교수님)에게 초진의원 소견서를 제시하고 혈액채취, 내시경검사, 초음파검사를 받고, 이뇨제와 몇 가지의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당, 저지방, 저 염 식사를 하며 1주일을 기다렸습니다.
1999년 11월 15일 아침, 혹시 오진일 수도 있겠지!?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소화기내과 재진결과는 초진의원 검사결과와 같았습니다.
곧바로 입원하여 CT와 MRI 등 각종 정밀검사 결과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말기와 간암의 전이로 종양이 4cm, 1.8cm, 1.5cm로 3곳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의료진에게 치료 방법을 문의하고 대책을 의논하였으나 간경화말기로 이식 외에는 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었기 때문에 장기이식센터에 이식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식을 신청한 대기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가족들은 다른 사람의 간을 매수하여 이식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뜬소문이고 헛소문이었던 것입니다.
일가친척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며 주야로 병실을 다녀갔습니다.
1944년 9월 1일 셋째 이모에게 이끌리어 초등학교에 입학하든 어린 시절과 지나온 영욕의 세월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교회의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수도 없이 묵상(반복)하고 "하나님 아버지 살려주십시오!!! " 라고 기도를 셀 수도 없이 드렸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과 형제들이 섬기는 여러 교회의 목사님과 교우들이 철야로 기도드려 주신다는 위로의 전화가 답지하였습니다.
이제까지 두렵고 초조하든 마음이 차분해지고 한없이 흐르던 눈물도 멈추어졌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체력을 키우고 버티어야 살아남는다! 라는 생각과 함께 밥과 과일(특히 단감, 귤, 사과)을 많이 먹었습니다.
병실의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저 멀리 고속화 도로의 차량 불빛이 수 없이 보이며 그 많은 불빛 가운데 여러 교회 지붕의 십자가 불빛 6개가 보였습니다
.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지나온 세월 동안 성결하게 살지 못한 허물과 죄와 그리고 마음속에 품었던 온갖 갈등과 원망들을 모두 용서하여 주시고 또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셀 수도 없이 기도드렸습니다."
수술하기 전, 소화기내과의 마지막 회진 시, 백 승운 교수님은 " 기도 많이 하십시오! " 라는 위로를 남기고 병실을 나갔습니다.(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메시지(?)처럼 참담하였습니다).
1999년 11월 20일 여동생(50세)과 아들(27세)이 입원하여 기증자 검사를 받고 두 사람 중 여동생의 간을 이식 받기로 하였습니다.
1999년 11월 25일 수술 전, 여동생과 저는 12시간 전에 장 청소를 위한 약을 먹고 관장을 한 후 소독약으로 몸을 씻고 11월 26일 오전 07시 30분 수술실로 내려갔습니다.
디지털 혈압계를 왼 팔에 묶고 개복(開腹)을 준비하던 중, 여동생의 수술을 집도하던 조재원 교수님이 제 곁으로 와서 옆방에서 개복한 여동생의 간에서 지방간이 50%나 발견되었다고 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태로는 도저히 수술을 강행할 수가 없으며 만일 수술을 강행하게 되면 두 사람의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여동생은 간 절개를 중단하고 담낭( 검사 시, 미세한 담석이 있었다고 진단) 제거수술을 받았으며 저는 병실로 복귀하였습니다.
기증자 검사 시, 이상 소견이 없었어도 수술 시에, 80명중 1명 내지 2명은 지방간이 발견된다는 부연설명이 있었습니다.
이때 보호자 대기실에서는 이 시복님! 보호자를 찾는다는 방송이 나왔으며 가족들은 들리는 소문대로 수술실에 들어간 후, 잠시 뒤에 보호자를 부르면 이미 간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 생존 가망이 없어 수술을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 하였었다고 전합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고 난후 1999년 11월 28일 다시 아들을(당시 27세) 입원시키고 11월 30일 오전 07시 30분 수술실로 이동하여 18시간 동안의 수술을 받고 아들은 일반 중환자실로 저는 무균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누군가 볼을 때렸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얼굴 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혼수상태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눈을 떴습니다.
유리로 밀폐된 무균중환자실에 누어있었습니다.
온 몸에 튜브가 주렁주렁... 코에 1개, 목에 1개, 복부 왼편에 1개 우편에 2개, 방광에 1개, 오른 팔목에 수액 팩, 알부민 병 등 10여개가 매달려 있고 몸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으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과 귀뿐이었습니다.
사방에서 중환자들의 신음소리, 알람 울림, 옆에는 먼저 수술한 3사람의 이식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몽롱한 중에 의사선생님이 입에서 산소마스크를 떼어주었습니다.
"아멘!" 하고 소리를 내어 보았습니다.
먼저 아들과 여동생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아들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고 먼저 수술한 여동생도 경과가 좋다고 전해 주었었습니다.
수술 후 가스(gas)가 나와야 음식물을 제공하는데 3일 후 가스가 연발되었고 미음과 음료수를(열처리 된 캔 음료) 조금씩 마시게 되었습니다.
신경과민과 불안감으로 인해 수면제 1알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 수술 후 흔히 발생된다는 간성혼수(사이코시스)가 일어났든 것입니다.
잠시 잠이 든 후 깨여나서 다시 수면제 1알을 더 청하여 먹은 후, 상체를 일으키면서 몸에 연결된 튜브와 주사바늘을 뽑으며 퇴원시키라며 소란을 피웠었다는 후문입니다.
손발을 묶고 안정제를 주사한 후, 잠이 들었었다고 전합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눈을 떴을 때 머리가 뻐근하고 머리에 밤알처럼 혹이 하나 생겨 있었고 왼쪽 손가락에 까맣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누워있는 왼쪽 밑으로 영안실로 가는 계단과 통로가 선명히 보이고 그 옆에 만화에서나 보이는 것 같은 시커먼 뿔이 달린 도깨비(검은 고양이 같은 물체)가 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7층 이식병동으로 올라가는 우측 통로 쪽에서 뇌사자의 가족들이 서성거리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영안실로 가서 영결식을 치르면 되는데, 왜 내가 올라갈 7층 통로를 막고 서성거리고 있느냐! 저리로 다 비키라고 소리치는 순간, 24시간 동안 계속되든 혼수상태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중환자실 옆의 무균 실 창 밖에 교회 목사님과 안식구의 기도드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균 실에서 7일 간을 치료받은 후 7층 이식병동으로 이동하여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병실 앞에 간을 제공한 아들이 환자복에 모자와 흰 마스크를 쓰고 링거 주사 줄을 매단 채 서 있었습니다.
아들이 나를 살렸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들의 건강에 이상이 없어야지! 아들이 오른 쪽 엄지손으로 "V"자를 들어 보였습니다.
이때의 감회는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7층 이식병동에서는 감염원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격리 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일 제공되는 3식은 저염, 저당, 저지방 식사이며 고도의 열처리를 한 후( 수저가 뜨거워서 만질 수가 없는 상태) 위생용 가운과 모자, 마스크, 장갑을 착용한 배식원이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이식병동에 제공되는 도서와 위문품은 철저한 공기 소독을 받아야만 허락이 되었습니다.
문병객은 약 10m 거리에서 손과 눈으로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여러 과정들을 겪으면서 여동생은 11일간, 아들은 20일간의 치료를 받고 퇴원하였습니다.
저의 무지와 질병에 관한 방심으로 3사람이 한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친, 처가 식구들이 물심양면으로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식환자 병동으로 옮긴 후, 치료 경과가 좋아 1999년 12월 24일 오전, 1개월분의 약을 처방 받고 퇴원하였습니다.
퇴원 시 결핵, 감기, 흙, 화분, 애완동물, 곰팡이 균, 자외선, 알레르기, 생선회 어패류, 술, 담배, 지하실 출입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의 출입을 철저히 삼가야 하고, 악수 후에는 반드시 흐르는 물에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고,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6개월 동안 착용하여야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당부를 받았습니다. 치료초기와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는 악수도 사양하도록 주의를 당부합니다.
또한 의료진은 아래 사항을 숙지하고 철저한 이행을 강력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외래진료, 주기적인 혈액검사 및 각종 검사
*기본 위생, 손 발 씻기, 샤워 등.
*감염 질환(감기, 홍역, 수두 등)을 앓고 있는 사람과의 접촉 삼가.
*기존의 심혈관 질환의 철저한 관리.
*애완동물(개, 고양이, 새 등), 흙, 화분, 등의 접촉 삼가(감염원 차단.)
*출생 후 생 백신 맞은 어린이 접촉 삼가.
*안정적인 혈압, 체중 관리.
*올바른 혈압약 복용, 고지혈증 조절(치료).
*식이요법, 운동요법 숙지.
*발열 후 체온측정(체온 38도C 이상) 발열 시 임의로 해열제 복용 삼가.
(해열제는 발열원인의 치료제가 아님).
*흡연, 금주(알콜성 간경화로 수술한 환자는 술을 입에 대지도 말 것).
[이제는 성경이 교훈하는 10계명(十戒命)과 병원에서 당부하는 수칙 10가지를 합하여 20계명(?)을 지키게 된 것 입니다.]
퇴원 시, 간호사들의 인사가 "다시는 들어오지 마세요!"였습니다.
나중에 거부반응이 발생하여 재입원 할 때에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매주 1회씩 통원치료를 받던 중, 2000년 01월 14일 거부반응이 발생하여 (혈액 검사 시 간수치 / GOT 204U/l, GPT 764U/l , r-GPT 257U/l, T/b 13,7mg/dl) 재입원 하였습니다.
재입원 즉시, 간 조직검사를 받은 후 그동안 경구 투여하던 면역억제제(PD)를 주사약으로 바꾸고 1주 동안을 치료하여도 각종 수치가 정상치로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황달수치가 15mg/dl로 상승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쪽 발등과 발가락이 고무풍선처럼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약의 부작용이었든(?) 것으로 짐작(?)됩니다.
두 번째의 간 조직 검사결과도 또 거부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중환자실로 이동하여 고단위 면역억제제인 O,KT3 주사 (마지막 치료법으로서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주사)를 5일 동안(1일 1회씩) 맞고 병실로 올라와 10회를 더 맞은 후, 거부반응이 치료 되었습니다.
또 부어오른 양쪽 발가락도 정상으로 회복 되었으며 각종 수치도 점차 회복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치료를 받고 있던 중인 2000년 02월 05일 저녁 식사 후에 구토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과식과 운동 부족으로 인하여 장이 움직이지 않고 유착 되었던 것입니다.
대, 소변 배설이 안 되고 가스가 나오지 않았으며 물만 마셔도 24시간 계속 토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15일 동안, 주사와 걷기운동으로 장을 움직이려고 애를 썼으나 장은 미동도 않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수액만을 주사 맞았습니다.
코를 통하여 튜브를 위에 집어넣고 위액을 매일 1000cc-2,000cc씩 빼냄으로 제 기본체중 70kg이 52kg이하로 내려갔습니다.
자주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몰골은 인체표본처럼 앙상하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동안 친숙해진 간호사들은 이 시복 님 해골만 남았어요! 라고 걱정할 정도로 앙상하게 뼈만 남았었습니다.
매일 아침 식전에 혈액검사와 X-ray 2장씩을 찍었으나 장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입원기간 동안 매일 식사 전에 채혈을 하였으므로 양쪽 팔에 주사바늘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주치의는 다시 개복 수술을 하여야 하며 그냥 놔두면 장이 썩고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이번 수술은 대수술이 아니고 5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병실로 복귀하게 된다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2000년 02월 21일 3층 수술실로 이동, 다시 개복한 결과 장유착상태가 생각보다 경미하여 50분 동안 장유착박리수술을 받고 병실로 돌아와 계속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며칠 후, 병실 앞에 붙어 있는 차트를 보았습니다.
모든 혈액검사수치가 정상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약 3개월 이상을 입원해 있어, 저염식사도 지겹고 또 치료비용도 엄청났습니다.
하루속히 퇴원하고 싶었습니다.
2000년 02월 29일 오전 회진 시에 퇴원 허락을 받고 재입원한지 45일 만에 정든(?) 병실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1차, 2차의 수술 흉터가 앞가슴 중앙에 가로 30cm, 세로20cm로 복부 중앙에 열십자<+>모양으로 길게 그려져 있습니다.
1차, 2차 수술을 합하여 3개월 5일(95일)만에 병원을 나서게 된 셈입니다.
[근래에 간이식을 받으신 분들이나 준비하시는 분들은 수술 후 움직일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시간 시간마다 쉬지 말고 걷기운동을 하셔야만 저와 같은 장유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음을 명심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퇴원 후 1개월 동안은 매주 1회씩, 1개월 후부터는 1개월에 1번씩. 1년이 지난 후부터는 평생 2개월에 1번씩 식전에 혈액검사와 외래진료를 받으며 혈액검사결과 수치의 증감에 따라서 면역억제제를 처방받고 B형간염 항체주사 (헤파빅10,000단위)를 맞고 있습니다.
간을 기증하려든 여동생 (상명여대 교직원)과 아들 (한국전력 대덕원자력연구원)은 현재 건강하게 직장에 근무하고 있으며 저도 조심하며 건강하게 생업(제조)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더 늦었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수술하기 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며 문병 왔던 친구들을 만나면,
"야! 정말 다시 살아났구나!
네 아들과 여동생이 살렸다!
네 와이프(wife)가 살렸다!
참으로 신기하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의술도 선진국 수준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의 은총이시고 또한 병상을 찾아주신 목사님과 성도님 여러분의 "기도의 응답이다!!!”라고 확신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시내 모병원에서는, 가족(아들)이 간을 기증하기로 약속하고도 막상 각서를 쓰라면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하는 것이 다반사고 수술실에 들어갔다가도 겁나고 두려워서 뛰쳐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도 전합니다.
저는 퇴원 후, 각종 의학적인 검사와 수술과 치료는 사람의 몫이고, 생명의 치유와 연장은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관하심을 확신합니다.
치료초기에는 열이나 혈압이 상승하고 몸의 컨디션이 조금만 다운되어도 염려하게 되고, 강박관념과 신경과민으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과 밤이 바뀔 때도 많았습니다.
또 약 먹는 시간을 잊을 때가 있으며, 간헐적으로 수술부위가 뻐근하고(당기고), 편두통과 근골격 계통에 자주 통증이 수반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증상들은 1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소멸되었습니다.
제가 적기에 수술 받을 수 있도록 확진해주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백 승운 교수님과 저희 세 사람의 수술을 집도하신 장기이식센터장 이석구 교수님과 이식외과장 조재원 교수님과 동역하신 의료진 여러분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주야로 대, 소변을 받아내며 가족처럼 돌보아 주신 수술실과 중환자실, 7층 이식병동, 2층 외래주사실의 간호사선생님, 수술전 후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신 사회사업실 송효석 실장님, 사회복지사님, 영양관리실 김성혜 영양사님과 관계자 여러분께도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와 오빠를 살리려고, 자기의 귀한 생명을 내 놓고 간을 제공하려든 여동생과 간을 기증한 아들에게 그 고마움을 말과 글로 다 표현하고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3사람의 병실을 오르내리며 병 수발을 한 안식구와 딸과 친, 처가 식구들에게도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가 없으며 남은 삶 동안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수술 당시에 아들과 결혼을 준비하든 며느리(수술 2년 후 결혼)와 그 부모님의 수술동의와 간호에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생전에 (2004년 03월 22일 소천받으심) 밤낮으로 무릎 꿇고 기도드리시든 어머님의 깊은 사랑과 위로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술전 후에 병상을 찾아주시고 기도드려주시고 위로해주신 방배동 남도교회 유병근 담임목사님, 대치동 새소망교회 송철웅 목사님, 어머님과 형제자매들이 섬기는 여러 교회 담임목사님, 부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교우여러분과 선후배님, 친구여러분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치동 새소망교회 송철웅 목사님께서는 조석으로 사모님과 함께 문안해주시고 아침마다 전화로 기도드려주심에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또한 정경자 사모님께서는 병실을 방문하실 때마다 자택에서 손수 마련한 음식(밥과 반찬)을 제공해주시고 옆 병상의 환자들까지도 손수 챙겨주시든 모습이 늘 기억되며 그 고마움을 평생 동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남은 삶 동안 경성하며 성결하게 살아가려고 굳게 다짐해봅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위로의 은총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충만하시고 늘 평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아 멘!!! 이 시복(李 始馥) 拜上
첫댓글 님에 글을 접하며 얼마전의 수술전 불안함과 수술후의 기쁨,감격이 교차하며기억이 되살아 나네요.우리 이렇게 어렵고 힘든 과정을 지나 회복한 건강 잘 지키며 살아요.....
가슴이 찡하여 옵니다. 재발없이 건강히 지내심이 주안에서 모든이를 통해 주신 은혜라 믿습니다 더욱 좋은건강유지 하십시요
찬미예수님 항상건강하시고 주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길....
오색 님의 글을 읽으며 힘들었던 그 때의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옛말하고 살고 있지요.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요. 늘 올리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 행복만 가득하세요^^
언제 뵈어도 밝고 건강해 보이시는 님께 지나간 고초를 듣고나니 절로 눈물이납니다. 저희들 같은 후배 이식인들의 영원한 힘이 되어 주실것을 당부 드리겠습니다.
눈물로 이글을 읽으며 님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이런 어려움 견뎌내시고 얻은 건강 언제까지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화이팅~!! 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이런 일들을 만나게 하셨겠죠 아름답게 쓰임 받으시길 ..저는 1월7일 전격성 간부전증으로 너무나 급한 상황에서 수술을 했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사랑입니다 건강하게 회복하세요
안녕하세요? 저 오늘 이촌역에서 '예정된 만남'속에 만난 미쓰손!! 진영입니다..글 너무 감동적으로 잘 읽었네요..^^
예정된 천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손진영 양의 천사 같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도우심이, 손진영 양의 가정과 학업에 항상 함께 하시길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늘 건강하세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글이네요 간이식7년차 희망입니다 건강하세요
먼저 두사랑회 카페를 리뉴얼해주신 둘리(안희동) 부회장님의 노고에 찬사와 감사드립니다. 2013년까지 여러 게시판에 게시되었든 "이식병상 투병기"가 연월일별로 정리(배치)되었습니다. 저는 1999년 11월 30일 SMC에서 아들의 간을 최초로 이식받고 현재 14년 7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의료진(의사, 간호사, 치료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및 스태프 여러분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지금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많은 기도와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신 목사님, 교우님, 선후배 여러분께도 다시금 깊은 감사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늘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동반자 이 시복(李 始馥)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