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유물 전시에 감사를 드리며
대구에서 세계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유물을 전시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대한민국역사문화운동본부, 19년 12/6~20년 1/28>. 저는 전시장 유물을 보면서 또 해설자로 봉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교회에서는 말로만 듣던 성경의 사물들을 실제 눈으로 보았고, 성경에서 몰랐던 부분을 새로 알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성경과 예수님을 더 가깝게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성경 유물로 성경을 다시 보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특히 재정과 장소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행사를 단행하여 주신 <대한민국역사문화운동본부>에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바쁘신 중에도 내 일처럼 솔선하는 해설자들의 봉사심에도 저로서는 감명이었습니다. 모두 수고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받쳐 성경 유물을 모으고, 연구로 열정을 쏟으신 김종식목사님과 정정숙사모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성경 유물을 보면서(유물 해설을 하면서)
전시장에서 지금 성경의 원조라고 할 토라의 실체(원문)를 처음 보았습니다. 모세오경 304,805 글자를 인쇄체 같이 정교한 육필로 기록한 그 정성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4,000개의 룰을 지켜가며 필사하는 토라 기록자, 그 필사본의 글자 한자 한자에 대해 수를 세며 점검하는 서기관, 토라에 왕관을 씌워서 왕으로 모시고, 토라가 회당에 등장하면 청중들은 일어서서 예의를 갖추며, 수명이 다 한 토라는 장례까지... 너무 지나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 보존하여 왔기에 진리의 말씀이 오늘날까지 보존, 전수되어 우리가 생명수 같은 성경을 접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그 열정과 노력에 감동을 받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의 물매가 유럽 사람들에게는 새총으로 바뀌어버린 모습에서 웃어넘길 수 없는 의미들, 곧 흔히 보는 성경 번역의 오류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길이의 척도는 우리의 한 자가 33.3cm인데 성경의 한 규빗은 44.4cm라는 것이 기억하기 쉬었습니다. 한 뼘이 22.2cm, 성소의 휘장 두께는 손바닥 가로 넓이와 같은 7cm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램프”가 등불인데 성경의 "열 처녀의 비유"는 램프(스)라고 하여 등불(파노스)이 아닌 횃불이며, 달란트는 재능도, 돈도 아닌 무게 단위였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열 처녀 비유(믿음)"와 "양과 염소의 비유(나눔, 결산)” 중간에서 성도들이 져야 할 삶의 짐(또는 선물)을 가리킵니다. 각자 자기 능력(재능)에 맞는 사명으로, 그 사명을 주신 분께 삶의 열매로 보답을 해야할 것들입니다.
40년간 광야 백성을 먹여살린 만나는 채소의 깟씨처럼 생기고 눈처럼 희며, 메추라기는 메추리보다 훨씬 크며, 꼬리가 없는 꿩과 동물로 까투리처럼 생긴 철새... 물고기를 보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은 큰 고기(익투스)가 아닌 작은 고기(욥사리온), 부자의 밀빵이 아니고 가난한 자의 보리떡(개떡), 어른이 아니라 성인식을 겨우 마쳤을 소년의 손에서 일어난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모세가 사명을 받은 곳에 있던 떨기나무는 교목이 아니고 관목이라는 뜻, 광야의 로뎀나무는 너무 작고 그늘이 없어서 바알 추종자들(이세벨과 아합왕)에게 쫒겨다니는 엘리야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앗으로 외국 관광객을 속이며 팔고 있는 야생담배가 아니고, 우리가 작은 것을 "콩알"이나 "좁쌀"이라고 하듯이 작은 것을 대변하는 예시물... 우슬초가 한국 우슬초와는 전혀 다른 에조브인데 잔털이 많고 한국의 약쑥처럼 단으로 묶어서 집집마다 걸어두는 약용식물.입니다(출 12:22).
감람나무가 올리브, 살구나무가 아몬드, 창포는 창포가 아닌 레몬그라스, 싯딤나무가 아카시아, 종려나무는 대추야자인데 젤리는 꿀과 같고... 건포도덩이를 보면서 전시장에서 못 본 무화과, 1년에 두번 맺는 과일인데 첫 열매는 맺지를 못하여 저주로 죽었지만, 두번 째 열매는 누가 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목이 마른 예수님 입에 포도주를 적셔 준 도구, 해면(海絨, 갯솜)은 식물인 줄 알았는데 바다에 사는 최하등 동물이며, 그 이름 "스퐁거(헬)는 영어로 물기를 품는 도구 "스폰지(sponge)"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나온 쥐엄열매 씨앗은 0.2g의 무게를 가진 "케럿"인데 뒷날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의 무게를 재는 단위가 되었습니다.
경제로 보는 유물들(종교는 야훼, 생활은 바알)
유대인들의 종교는 하나님을 따르는 야훼 신앙이지만, 생활은 이방경제인 바알 경제법을 따랐습니다.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삶의 주인은 바알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종교는 실패하고, 나라가 망했습니다. 저는 유물을 보면서 성경과 경제에 관련된 것들을 눈여겨 살폈습니다.
전시된 바알 우상과 아스다롯은 혼음부부로 풍요와 다산의 신, "부자되고 자식 잘되게 하는 신"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사시대와 왕조시대 전체가 바알이 활보를 하고 있습니다. 주상(오벨리리스크)은 태양신을 섬기는 나라의 우상인데 이들은 제왕적 계급조직을 선호하고, 약소국을 속국으로 보는 제국주의적 본성을 가집니다. 태양신 국가는 이집트(고대), 로마(중세), 일본(현대)이 시대를 대표합니다. 전시물에 나온 딱지처럼 작은 성경은 부적입니다. 우리도 삶에서 성경을 지니기만 하고, 성경이 말하는 복만 추구하며 살면 그 성경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로마·헬라화폐(렙돈과 데나리온)와 유대·두로화폐(세겔)의 전시물을 보면서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화를 내신 이유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청소가 바로 전시물에 나온 돈을 바꾸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청소의 대상이 성전에서 제물과 화폐를 교환하면서 시장독점을 이용하여 웃돈을 붙이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면서 그 환전대를 둘러 엎어 버렸습니다.
<세겔화> : 세겔화는 일반 세겔과 성전 세겔 두 종류가 있고, 성전 세겔은 순도가 94% 넘는 실물가치의 화폐이다. 순도만 중시하니 두로(tyre) 화폐, 곧 페니키아의 우상 멜가르트(앞면=헤라클레스나 바알, 뒷면=독수리)를 새긴 화폐까지 성전세로 받아드려 교환과정에서 성전을 더럽히며 웃돈을 붙혔다.
화폐는 실물이 아니기 때문에 금속처럼 순도를 따라 교환하게 되면 시장질서가 교란되고(역그레샴의 법칙) 부의 수평이전(부의 수탈)이 생깁니다. 곧 금속을 순도에 따라 가치를 교환하는 것은 금은방에서 해야 하는 행위입니다. 화폐는 가치물이 아니고 일정 가치를 숫자(가격)로 기록(보증)한 권리증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물질)와 가격(증서)의 성질 차이를 아직 경제학자들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자와 이득(매매차익)의 가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금하는 이자는 가난한 자에게 꾸어주는 구제성 양식이나 궁핍을 이용한 폭리성 고리채입니다. 최장 50년 장기 신용거래인 레위기 토지 거래법으로 보면 이자는 시장기능에서 자동으로 발생하게 됩니다(레 25:15,16). 예수님도 이자는 허용을 했습니다(눅 19:23). 그러나 중세 유럽교회나 스토아학파는 이자가 시간 흐름에 따른 생산물 가치(대가)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유럽교회는 이자를 부정한 것으로만 보고 이자를 금지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금지한 이자법을 피하면서(속여서) 이자보다 더 수익이 큰 환차익 금융기법을 개발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데 성전에서 배워 둔 화폐의 연금술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뒤에는 화폐를 대신하는 환어음이 되고, 다시 실물을 대신하는 주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여기서 빌려주고 빌리는 금융대차가 팔고 사는 채권거래로 바뀌어버리니 사람들은 대차와 매매, 실물과 금융을 식별하지 못합니다. 학자들도 금융은 이자와 매매차익을 잘 모르는데 일반인들이 실물과 금융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유대인이 창시한 선물(先物)은 도깨비 같은 금융상품으로 더욱 가관이지요. 1998년 이 나라의 IMF 위기는 처음 들어온 선물이 일으킨 혼란입니다.
이슬람들도 금융은 이자와 매매차익을 식별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코란은 이자를 금하고, 주식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자는 시간 흐름에서 발생하는 생산물 대가로 허구가 아니지만, 주식차익은 시간 흐름과는 별개인 허구가격이 많이 들어있음에도 이를 선하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생산 없는 매매차익(토지매매차익 전액, 환차익과 주식차익의 일부)의 추구 행위를 "강도의 소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렘 7:11, 마 21:13).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종교계와 학계는 이런 차이를 모르고 있습니다. 땅값은 100% 금융가격이지만, 우리 눈에는 실물가격처럼 보이고, 매매차익 역시 허구가격이지만 가치물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예수님이 지적한 강도의 소굴에 대한 실체를 과학적으로 규명도 못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는 없는 유물 1
<성전의 환전대> : 트라페자(마 21:12) = 은행 => 강도의 소굴(웃돈 발생지)
현재의 웃돈 거래장소 : 부동산시장 전체와 환과 주식의 투기장
(지금은 독점시장이 아니므로 거래자 모두를 강도로 보는 것은 아님)
예수님은 왕의 신분으로서 입성하여 취임 행사를 가지고(주일), 사두개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성전시장을 청소부터 하였습니다(월요일). 이튿날 청소된 성전에서 소나기처럼 쏟아부은 경제강론들을 통하여 바리새인들이 과부의 가산을 차지하고, 포도원을 강탈할 자들로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강하게 꾸짖습니다(화요일). 사태가 그러하니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명절 기간임에도 예수님을 고소하여 빌라도의 법정에 넘겨야 했습니다(금요일). 백성들을 미혹하고, 왕명을 사칭하며, 가이사에게 납세를 거부하는 국가 반란자라고 말입니다(눅 23:2).
그들은 성전에서 배우고 익힌 머니게임 금융기법으로 성전세 반세겔에 웃돈(화폐 교환차익)을 붙여 동족의 부를 취하였고, 그 후손들이 중세에는 유럽의 금융을 장악했으며, 지금은 미국의 월가를 주도하며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1929년 주식투기 광풍이 일으킨 세계 대공황, 20세기 후반 고정환율제의 붕괴, 2008년 세계 금융의 위기도 그들의 손에서 좌우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환전대를 전시물로 내어놓고 아직도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머니게임의 발원지를 한번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스데반 집사님처럼 돌에 맞아죽지 않고(종교형), 십자가형에 처해 졌습니다. 그 이유는 겉보기로 종교문제나 정치문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권이 걸린 경제문제이었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의 죄와 죽음을 해결하여 주셨으니 종교문제가 우선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전시장에 없는 유물 2
<유대인 토지문서> = 인봉한 문서와 개방된 문서(렘 32:11) => 책과 책들, 그리고 표(?)
레위인 제사장들은 레위기 토지 속량법을 숨기고 속량을 무효화시킨 바알의 지주제도(오므리의 율례와 아합집의 행위)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신앙이 부패하였고,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예수님이 노하셨던 웃돈 거래, 곧 돈 놓고 돈 먹기인 머니게임은 바알이 가르쳐 준 토지법에서 제일 먼저 생긴 제도입니다. 성경이 시한부와 무르기 조건으로 허용한 50년 땅값을, 성경이 금지한 무르기 불능의 영구가격으로 바꾸어 주면 허구적 매매차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세속경제는 사람이 풀지 못하는 시장 수수께끼의 함정으로 빠져들어 버립니다.
전시물을 통하여 유대인들은 메시아 예언장인 이사야 53장을 읽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사야 53장뿐 아니라 세상의 경제문제를 모두 해결하여 놓은 토지 경제법(레위기 25장)도 무시하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패망은 물론, 지금까지 세상은 이 문제 하나로 인하여 경제는 사람이 풀지 못하는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
강남 아파트 한 채가 돌아서면 억대의 웃돈이 발생하는 부동산시장의 수수께끼(妖物, 허구가격, 영구 헛수)는 이렇게 생긴 문제입니다. 허구가격은 정당한 가격이며, 적자 보상분으로 부당이득도 아니지만, 사회에서는 이 값에 해당하는 가치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허구가격> :
사회에서 가격은 있으나 그에 해당하는 소득 물질(재화나 서비스)은 영원히 없고, 숫자로만 존재함
소유제에서 땅값 매매차익(매매가-매입가)은 소유자의 적자분(매매가-전세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하지만, 그 값에 해당하는 소득물은 영구적 0이거나 ∞기간에서만 가치로 실현되기 때문에 허구가격임
(땅은 가치물을 생산은 하지만, 자신은 가치물로 바뀌는 성질이 없는 특수물질, 땅값차익≠GNP)
--이에 대한 설명은 이 곳의 다른 글들이나 필자의 책 [반값주택의 이론과 정책]을 참고--
박하와 근채의 뿌리까지 세어가며 십일조를 드린 유대인들이 왜 레위기 토지법만은 지키지 않았는지? 토지 무르기도 그들이 신주단지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성경이고 토라인데 왜 그것을 시궁창에 버리듯이 했는지? 아니면 어떻게든 그 토지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었는지? 이런 것을 이스라엘의 유물을 통하여 확인하고 싶습니다. 제게는 희년법을 접한 지 30년이 넘은 궁금증이기도 합니다.
전시장에 없는 유물 3
성경달력은 우리 음력과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전시장 유물에서 성경 절기와 우리 음력에 관련된 날짜와 문화도 발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저의 글 <2020년 음력설과 성경달력(성경음력)>을 참고하시 바랍니다.
유물과 역사(소설?)로 보는 한국과 이스라엘
유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많이 쓰여진 성경의 본산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세주 메시아가 처음 출현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쓰여진 성경과 출현한 메시아를 알기 위하여서는 그 나라의 유물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또 이를 위해 많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성경과 메시아를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단계가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 이 민족도 성경이 말하는 노아 할아버지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지키고 있고, 구약성경은 유대문화만을 다루고 있는게 아닙니다. 신약성경과 서양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아직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거의 1천만 동포가 메시아를 알고 있고, 구세주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유대가 성경의 기록과 초림의 역사에 쓰임을 받았다면, 그 후기의 역사는 성경을 바르게 적용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맡겨질 것이며, 우리가 유대인들을 다시 구원해야 할 사명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유물을 한국의 역사와 결부시켜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온갖 어려움에서도 전시를 추진해 온 <대한민국역사문화운동본부>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과 관련된 유물들을 대강 생각해 봅니다. 대강의 생각이므로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소설로 보는 유물 1호는 아라랏 눈 속에 뭍혀있는 노아의 방주이겠지요. 2호는 노아 할아버지가 첫 제사를 드린 아라랏 산정의 제단입니다. 저는 이게 한국형 고인돌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쓴 바 있습니다. 그 외에 방주에서 화분에 심어 “물구경화”로 이름 짖고 꺾꽂이 번식법으로 한반도까지 갖고 와서 수천년간 심고 가꾸면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무궁화(무구케)”, 아라랏에서 천산산맥을 넘어 스발(시베리아)까지 오면서 부른 최초의 찬송가 “알(아르)이랑” 등이 그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찾는 성경 유물은 더 있습니다. 나라를 열 때가 하늘이 열린 開天節이었고, 종교의 시작은 하늘신(至高神, 無形神, 三神 一體 唯一神)에게 올린 제천의식입니다(부여:迎鼓, 고려:東盟, 예맥:舞天). 檀君은 신화가 아니고 제정일치시대에 제사장 직위(壇君)입니다. 우리 민족은 5천년 이상의 삶을 통하여 하늘신을 "하나(느)님"이라고 모두가 인정을 해왔고, 애국가도 함께 불렀으며, 지금의 성경은 성호 “하나(느)님”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가위가 성경의 옛 절기 초막절과 한 날(7/15 = 8/15)이며, 성경적으로 종말은 물론 메사아의 초림과 재림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명절입니다. 이게 우리 민족에게는 앞으로 있을 획기적 사건이 되며, 하늘의 하나님이 내리시는 엄청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가 신라인이라는 학설에 따르면, 한가위 명절 노래 “會蘇曲”은 예수 탄생을 기리는 “耶蘇曲"일 수 있습니다. 물론 [회소곡 = 야소곡]이라는 소설(가설)은 가사를 찾지 못하면 실체가 덮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리고 민족의 사상적 뿌리인 天·地·人 중심의 三才論은 유대교가 가진 단일신(유일신 아닌)의 한계와 이원론에 치우친 서양신앙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문화적 도구입니다. 삼재론은 사조와 이념 등으로 쪼개진 성경 이해를 통전적으로 접근하고 종합하는 데에도 유익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민족이 가진 하늘·땅·사람의 삼재론 사상은 유대교와 서양종교가 버린 성경 토지법과 토지 무르기를 다시 세우는 사역에도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천국 포도원의 비유”에서 가르쳐 준 “건축자의 버린 돌이 천국의 머릿돌 경제”로 세상에 나타날 수도 있겠습니다. 천국 포도원 경제는 이론적으로 온전한 사유재산제(네것 내것 100% 보장)와 자유시장경제(세금 0)가 달성 가능한 나라이며, 먼저 될 자와 나중 될 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는 사회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유물 전시물을 보면서 우리 한국의 유물(역사나 문화)도 이제 성경과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번 유물 전시회를 통하여 저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은혜와 감동이 유물전시를 준비하신 분들, 해설로 봉사하신 분들, 그리고 전시장을 찾아 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레위기 25장 "토지 무르기"로 돌아갑니다. 토지 무르기는 종교와 세상이 모두 버린 것이지만, 성경에 있으며, 시장경제에서 해법의 유일책이라고 할 만큼 귀한 것입니다. 땅 무르기는 우리 말로 옛 땅(나라)을 되찾는 "다물"이고, 영어로는 구원의 필수 수단인 "Redemption(속량, 救贖)"입니다. 삶과 죽음을 모두 해결한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제가 연약한 사람이라 지치기도 하고, 외롭고 힘이 듭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래의 표는 전시된 유물 중 몇 개를 골라서 정리를 해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