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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6일(화)
기상이 좀 나아졌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래도 안전한 폰툰에
배를 묶고 나서 기상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오는 동안 바람이 도와주어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에 밤에 도착했더라면 하는 끔찍한 상상을 안 해볼 수가 없다.
위도가 낮아질수록 기상이 더 변덕스럽고 거칠어지고 있다.
낮에는 하늘이 맑아졌고 봄 날씨로 되 돌아왔다.
날씨가 나빠지고 있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름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 어른이 되기까지 여러 격정기를 거치지 않는가?
한국에서도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있고
일본에서는 ‘하루이찌방’라고 하여 때때로 폭풍이 불어닥친다고 했다.
‘봄을 이겨내고 여름으로 가자!’
나 자신을 타이르고 용기를 북돋운다.
아침에 산보삼아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잘 다듬어진 잔디밭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 박물관을
벗어나 경비가 지키고 있는 대문을 나갔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큰 게이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리오 그란데 요트클럽’이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아니 지척에 마리나를 두고 어젯밤에 그렇게 고생을 했단 말인가?’
마리나 안쪽으로 들어가 정박장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지역 요트인데 4-5척정도 외지에서 온 배들이 보였다.
아르헨티나요트가 3척 나란히 있었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리나 사무실에 들러서 이곳에 정박하고 싶다고 했다.
‘배의 수심이 얼마나 됩니까?’
‘1.8미터입니다.’
잠시 후 담당자가 오더니 마리나 내에 수심이 낮아
지금은 정박할만한 장소가 없다고 했다.
‘그럼 저기 있는 크레인을 좀 사용하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인트레피드는 출발할 때 선저도색을 한 후 한 번도 하지 않아
바닥에 많은 풀과 따개비들이 자라나고 있다.
‘배가 몇 톤입니까?’
‘11톤입니다.’
‘저 크레인은 8톤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크레인사용료도 저렴하고 정박료도 비싸지 않아 선저도색을 했으면 했는데 아쉬웠다.
11월17일
부근에 있는 공장에서 스텐이나 녹이 슬지 않는 아연류가
아닌 일반 철판으로 닻을 하나 주문했다.
얼마전 엥커 때문에 애를 먹어서 30킬로 그램짜리를 하나 만들기로 하였다.
금액은 원화로 치면 20만원 정도였다.
점심은 옆 마리나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먹었다.
그곳에서 어제께 도착했다는 프랑스 요트 ‘Myrtho’호 스키퍼 크리스티안을 만났다.
항안으로 들어오다 엔진이 멈추는 바람에 급히 엥커를 내리다
엥커 밧줄에 손을 다쳤다며 붕대를 감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뒤에 오는 견인선에게 무전으로 도움을 청했는데
브라질 해군이 먼저 달려와서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일로 벌금이 삼백만원 쯤 나올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티안의 배에 같이 가보았는데 35피트 알미늄 요트로
킬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있어서 수심이 낮은 지역에도 상관없다고 하였다.
오후에는 연료필터를 5개 구입하였다.
그리고 밀린 빨래를 해서 봄볕이 잘 드는 곳에 늘었다.
빨래를 할 때는 힘이 들었지만 빨래 줄에 가지런히 결과물을 보니 흐뭇했다.
11월18일
10시쯤부터 출발수속을 시작해서 오후1시경에 끝났다.
출입국관리소, 항만당국, 세관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약간의 부식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이 저녁에 배로 놀러오기로 해서 캔 맥주도 샀다.
저녁 8시경 주문한 닻을 가져 왔는데 잘못 제작되어 왔다.
머리 쪽이 무거워야 하는데 자루 쪽이 무거워서 닻이
먹히지 않고 뒤집어져 끌릴 가능성이 높았다.
마침 크리스티안이 와서 같이 의논한 끝에 내일 아침에
같이 닻을 들고 공장으로 가기고 하였다.
크리스티안은 해군중령 출신으로 3년간 브라질연안을 항해하고 있다며
1년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를 거쳐 프렌치 폴리네시아로 갈 예정이라고 하였다.
11월19일(금, 브라질 리오그란데를 떠나 아르헨티나 마델플라타로)
아침 8시에 크리스티안과 함께 엥커(30킬로)를 들고
공장으로 찾아가서 모양을 고치도록 하였다.
크리스티안이 포르투칼어를 할 줄 알아서 통역해주었다.
오전에는 공장에 남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정할 부분을 가르쳐주었다.
오후3시경 닻이 제대로 만들어져서 왔다.
닻을 뱃머리에 장착하고 나니 든든한 기분이 든다.
배를 서둘러 폰툰에서 떼어내었다. 벌써 오후 4시가 되었다.
수로를 따라 넓은 바다로 나오니 저녁 6시가 되었다.
남풍이 불어 세일링하기 좋지 않았다.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 달이 벌써 대기 중이다.
몇 일간은 밤에 달빛이 밝을 것이다.
11월20일
편안한 밤이 지나고 맑은 아침이 시작되었다.
동쪽에서 다가오는 너울파도는 그 높이가 4-5미터쯤 되는데
아주 긴 곡선을 그리며 다가왔다.
너울파도를 바라보면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것 같은데도
이내 다가와 배를 파도꼭대기에 올려 놓은 뒤 멀리 육지 쪽으로 사라졌다.
큰 너울파도 표면에는 봄바람이 일으킨 비늘 같은 작은 파도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높은 너울파도는 육지와 만나는 곳에서 부서질 것이다.
너울이 아주 높은 태평양 지역 어떤 곳에서는 그 파도를 이용해 서핑을 한다고들 한다.
마지막 남은 민어조기를 꺼내어 다듬어서 구웠다.
밥을 하고 된장국도 끓였다. 된장국에는 소고기 장조림 3토막을
잘게 썰어 넣고 리오그란데에서 구입한 배추의 잎을 2개 뜯어 썰어 넣었다.
생선은 맛이 최고였다.
자갈치시장에서 사 먹었던 고등어구이 정식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다.
된장국도 소고기육수가 우러나 맛이 깊었다.
콕핏에서 식사를 마치고 한참동안 너울의 움직임을
구경하고 있었다.(12년 전에 담배를 끊지 않았다면 이때쯤 담배를 한 대 피웠을 것이다.)
그런 다음 그릇들을 개수대에 넣어 설거지를 했다.
밥 한 술도 수고 없이 먹을 수 없고 먹고 나면 항상 흔적을 치워야 한다.
최고 상위의 포식자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불편하다.
19시경 브라질 해역을 벗어나 우루과이 쪽으로 넘어왔다.
육지와 27마일쯤 떨어져서 내려가고 있다.
수심이 20여 미터밖에 되지 않아 밤에 작은 어선들이
이곳까지 작업을 하러 나올 가능성이 있다.
11월21일(일)
지난밤은 예상과는 달리 어선들이 없었다.
오전에는 구름이 많았지만 오후에 들어서면서 맑게 개었다.
밤에는 달이 아주 밝아 육안으로도 1마일쯤 떨어진 배가 보일 정도였다.
순조로운 항해였다.
미역국을 푸짐하게 끓여 아침과 저녁을 먹었다.
마른 미역은 보관성이 좋아 장거리 항해에 딱 맞는 식품이다.
또 마른미역은 무게와 부피는 작지만 물에 불려놓으면 양이 많아져서 더욱 좋다.
쇠고기 장조림을 좀 썰어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조리가 끝난다.
11월22일(월)
마델플라타를 160일 남겨두고 날이 밝았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넓은 만의 중간지점을 통과중이다.
만의 안쪽 끝에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다.
오전에는 하늘이 잔뜩 짙뿌렸다.
마델플라타쪽에 비구름을 머문 저기압대가 대륙 깊숙한 곳으로 빠르게 이동해갔다.
그러자 동풍이 거칠게 일어났다.
배는 파도를 타느라 요동쳤지만 속도는 좋아졌다.
저녁 무렵부터는 하늘이 맑게 개었지만 바람은 여전했다.
19시경 이틀 만에 처음으로 상선 2척과 과 어선 1척을 레이더가 탐지했다.
지금부터는 상선을 보게 되는 일이 점점 드물어 질 것이다.
트롤링 낚시를 내려 민어조기 2마리를 낚아 올렸다.
순식간에 2마리가 올라와서 계속 좀 낚아보려고 했지만 그 이후로는 소식이 없었다.
낚아올린 고기를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고 낚시를 걷어올렸다.
저녁에는 2마리 중 작은 놈을 통째로 구워서 먹었다.
조미간장이 떨어져서 국간장에 마늘과 고춧가루, 깨소금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먹을 만 했다.
11월23일(화, 아르헨티나 마델플라타에 도착하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맑은 날씨다.
하늘에는 정말 한 점의 구름도 찾을 수 없다.
바람이 약해져서 새벽녘에 돛을 모두 내렸다.
주 돛은 올려놓으면 롤링은 좀 덜 하지만
돛이 펄럭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또 돛이 상한다.
장거리 항해를 위해서는 돛을 잘 관리해야 한다.
출발 때 홍콩에서 새로 구입한 주 돛이 벌써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한국까지 아직 만 이천마일이나 남았는데 돛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바람을 잘 받고 갈 때보다는 시원찮은 바람에 돛이 더 많이 상한다.
마델 플라타항이 13마일쯤 앞에 있을 때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다.
짧든 길든 항해 마지막 날은 언제나 마음이 들뜬다.
세계일주를 마치고 부산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한 번씩 해보곤 하는데
아마도 며칠간은 평소처럼 행동하기 힘들 것이다.
‘그날이 오긴 올까? 전역을 기다리는 군인의 마음 같다.’
11시경 마델 플라타 요트클럽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7일동안 무료이고 그 이후부터는 하루 14달러(U.S)라고 하였다.
마리나는 항 안쪽에 다시 방파제로 둘러싸여져 있어서
파도는 요트장안까지 들어오지 않을 것 같고 강풍에도 비교적 안전해 보였다.
폰툰을 향해 선수를 고정시키고 선미는 양쪽에 박혀있는 나무기둥에 묶었다.
나무로 만든 폰툰이지만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고 선수로 폰툰으로 내릴 수 있어 편리했다.
‘요트클럽 아르헨티나’ 사무실에 가서 계류신청을 하고
서류를 받아 입항절차를 밟기 위해 2킬로미터쯤 떨어진 부두로 갔다.
말이 잘 안통하고(영어로 소통 안 됨)지리도 잘 모르고 해서 약간의 어려움을 격었다.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다 한 곳도 처리하지 못했다.
배가 고파서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아도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림짐작으로 피쉬(fish)라고 되어있는 메뉴를 시키고 맥주도 한 병 시켰다.
배가 고파서 먼저 나온 맥주를 연거푸 두잔 마셨다.
그런데 20분쯤 있다가 나온 것은 오징어 튀김과 감자튀김이었다.
생선요리를 기대하고 시켰는데 술안주만 나온 샘이다.
그래도 빵이 나와서 그럭저럭 끼니를 해결했다.
아르헨티나 돈이 없어 카드로 계산하였는데 18달러였다.
‘아르헨티나 물가도 유럽과 비슷하구나!’
허기를 채우고 밖으로 나오니 한 낮의 나른 한 햇살을 받은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였다.
빈속에 마시기 시작했던 맥주때문인지 세상이 어질어질하다.
‘하기야, 이제 배에서 내린지 몇 시간도 체 되지 않았으니 땅이 흔들릴 만도 하지!’
배로 돌아와서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있으니 잠이 쏟아져 누웠다.
선잠이 들었을 무렵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찾아왔던 것이다. 여권에 입국 스템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부두로 가서 나머지 절차를 마쳤다.
이곳 마델플라타에서 처음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요트 3척을 만났다.
그중 한척은 60피트급 대형요트로 이곳에서 곧 바로 우슈아이야로 떠났다.
40피트급 요트 한척은 크루가 3명으로 조금씩 내려갈 것이라고 하였다.
또 한척의 요트는 미국국적의 요트로 프랑스인 남편과
호주인 아내가 같이 남아메리카 끝단을 거쳐 호주로 갈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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