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처럼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여기에서 딱 멈췄습니다. 기암절 벽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사이로 계곡이 흐르는 풍경을 보는 순간, 숨어 살기 좋겠다 싶었습니다.” ‘김삿갓면’이라는 독특한 지명 때문일까. 유숭일 씨(49)의 이야기를 들으니 삿갓에 지팡이 짚고 전국을 유랑하던 방랑 시인 김삿갓(본명 김 병연)이 유씨의 모습과 겹쳐지며 떠오른다. 15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아 무도 ?는 곳에‘ 콕 처박혀’ 도를 닦고 싶었던 유씨. 그런 그가 방랑 끝에 찾은 곳은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대야리의‘가재골’이었다(김삿갓면은 와석리에 김삿갓의 유적지가 있어 2009년‘하동면’에서 바뀐 이름이다) .
‘가히 살아남을 만한 곳’이라는 뜻의‘가재골可在洞’은 전쟁이 나도 알지 못할 정도로 외지고 경치 좋은 열 곳‘십승지지十勝之地’중 하나로, 조선시 대 예언서인‘정감록’에 기록된 곳이 가재골 부근이라고 한다.
영월의 남쪽 마대산(해발 1052m) 자락에 위지한 가재골은 지금은 들 어가는 길이 포장돼 접근성?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골짜기를 따라 10여 채의 집들만 띄엄띄엄 흩어져 있어 오지 같은 느낌은 아직도 그대로다.
또 유씨가 한눈에 반한 강원도 특유의 절벽인‘뼝대’가 우뚝 솟은 골짜기 의 절경도 세월에 변함없이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가히 살아남을 만한 곳’이라는 뜻의‘가재골可在洞’은 전쟁이 나도 알지 못할 정도로 외지고 경치 좋은 열 곳‘십승지지十勝之地’중 하나로, 조선시 대 예언서인‘정감록’에 기록된 곳이 가재골 부근이라고 한다.
영월의 남쪽 마대산(해발 1052m) 자락에 위지한 가재골은 지금은 들 어가는 길이 포장돼 접근성?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골짜기를 따라 10여 채의 집들만 띄엄띄엄 흩어져 있어 오지 같은 느낌은 아직도 그대로다.
또 유씨가 한눈에 반한 강원도 특유의 절벽인‘뼝대’가 우뚝 솟은 골짜기 의 절경도 세월에 변함없이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골에서 보낸 시간만큼 변했다. 처음 그가 이곳에 들어왔을 땐 묵정밭 에 쓰러져가는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지은 지 40~50년은 족히 된 빈집이었습니다. 벽은 허물어지고 천 장은 내려앉고, 밭에는 잡풀이 무성했지요. 그런데 집을 찬찬히 살펴 보니 고치면 쓸 만하겠다 싶더라고요. ” 삼십대 초반, 서울에서 다니던 광고회사를 월급날 호기롭게 그만 둔 유씨는 귀농을 꿈꾸던 친구와 함께 전국을 돌며 터를 보러 다녔다.
그러다 정선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친구는 귀농을 포기하고 돌아갔 고, 혼자 남은 그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이곳을 발견했다. 영월이 고 향이기도 했지만(사실 영월은 태어난 곳일 뿐이며 유년 시절은 경북 울진에서 보냈다), 주변 풍경이 마음에 들어 계약금만 걸고 다시 서울 로 돌아갔다. 당시 집이 딸린 200여 평의 밭은 200만 원이었는데, 맨손 으로 무작정 내려온 그에겐 큰돈이었다. 그래서 겨우내 잔금을 마련 한 뒤 이듬해 봄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한쪽 방에 살면서 집을 고치기 시?했다. 당시 집은 그에게 생 활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 고 자연 자재를 활용해 살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집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은 아내인 엄명옥 씨(41)를 만나 면서부터였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엄씨는 서울내기였지만, 산이 좋 고 사람이 좋아 2003년 무작정 이곳으로 들어온 뒤 유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혼자 살던 집에 아내가 들어오고, 도이(7)와 장민(5) 두 아이 가 생기면서 그의 시골집 개조는 가족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작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살면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돈을 들이기보다는 주로 주변의 자연 소재나 중고 물건을 재활용하지요.집 에 대한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 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자연 소재와 중고 물건 활용해 천천히 고친 집 길을 따라 길게 돌담이 이어진 집은 유씨의 바람처럼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울린다. 한마디로 오지에 있는 집 같다. 이런 곳에 화려한 집은 어울리지 않았을 터. 투박하고 정겹고 예스러운 분위기는 마치 1960~7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추억의 풍경 사이로 뭔가 다른 색채가 언뜻언뜻 보인다. 자유롭고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그 무엇. 그것은 바로 유씨의 손길이다. 유씨의 개성과 감각이 더해 진 집은 낡고 오래된 액자에 넣어둔 재미난 그림 같다고 할까.
외를 엮어 흙을 바른 벽에 낮은 천장, 좁은 툇마루, 함석지붕…. 유 씨의 손길이 닿기 전 집의 모습은 작은 방 세 개에 부엌과 외양간이 딸린 12평의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그는 일자로 이어진 세 개의 방 중 두 개를 터 아이 방과 안방으로 만들었다.
흙이 떨어져 ?리는 방의 내벽에는 시멘트를 얇게 바른 뒤 도배를 하고, 구들이 깔린 바닥은 그대로 살렸다. 안방에서 이어지는 부엌은 외양간까지 넓게 터 거실로 만들었다. 허물어져가던 부엌의 흙벽은 흙으로 메운 뒤,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퍼티를 발랐다. 바닥은 방과 같은 높이로 맞추고, 별도의 난방 시설 없이 장판을 깔았다. 방의 불 을 때는 아궁이의 온기와, 아궁이 옆에 설치한 연탄난로의 열을 이용 해 공기를 데우는 방식으로 난방을 해결한 것이다. 터져 있던 거실의 천장은 흙으로 메운 뒤 깔끔하게 퍼티로 마감했다. 그런 다음 합?과 단열재를 대고 기왓골 무늬의 강판 지붕을 올렸는데, 원래 있던 함석 지붕은 그대로 둔 채 지붕을 얹었다.
“기존의 지붕을 보수한 뒤 그 위에 새 지붕을 씌운 것은 단열 때문입니다. 집은 감싸면 감쌀수록 따뜻해지니까요. 그래서인지 강원도 인데도 겨울에 추운 줄 모르고 지냅니다. 거실은 아궁이와 난로에서 나오는 열기로 오히려 더울 정도지요.” 거실 뒤편에는 돌로 벽을 쌓아 욕실을 만들고, 거실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넓게 달았다. 또 방 앞쪽으로 작게 나 있던 툇마루도 더 넓 혔다. 외부의 흙벽은 그대로 둔 채 흙이 ?어지지 않도록 돌을 붙였 고, 집 둘레에는 주변에서 주운 돌로 돌담을 쌓았다.
“지은 지 40~50년은 족히 된 빈집이었습니다. 벽은 허물어지고 천 장은 내려앉고, 밭에는 잡풀이 무성했지요. 그런데 집을 찬찬히 살펴 보니 고치면 쓸 만하겠다 싶더라고요. ” 삼십대 초반, 서울에서 다니던 광고회사를 월급날 호기롭게 그만 둔 유씨는 귀농을 꿈꾸던 친구와 함께 전국을 돌며 터를 보러 다녔다.
그러다 정선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친구는 귀농을 포기하고 돌아갔 고, 혼자 남은 그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이곳을 발견했다. 영월이 고 향이기도 했지만(사실 영월은 태어난 곳일 뿐이며 유년 시절은 경북 울진에서 보냈다), 주변 풍경이 마음에 들어 계약금만 걸고 다시 서울 로 돌아갔다. 당시 집이 딸린 200여 평의 밭은 200만 원이었는데, 맨손 으로 무작정 내려온 그에겐 큰돈이었다. 그래서 겨우내 잔금을 마련 한 뒤 이듬해 봄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한쪽 방에 살면서 집을 고치기 시?했다. 당시 집은 그에게 생 활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 고 자연 자재를 활용해 살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집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은 아내인 엄명옥 씨(41)를 만나 면서부터였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엄씨는 서울내기였지만, 산이 좋 고 사람이 좋아 2003년 무작정 이곳으로 들어온 뒤 유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혼자 살던 집에 아내가 들어오고, 도이(7)와 장민(5) 두 아이 가 생기면서 그의 시골집 개조는 가족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작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살면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돈을 들이기보다는 주로 주변의 자연 소재나 중고 물건을 재활용하지요.집 에 대한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 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자연 소재와 중고 물건 활용해 천천히 고친 집 길을 따라 길게 돌담이 이어진 집은 유씨의 바람처럼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울린다. 한마디로 오지에 있는 집 같다. 이런 곳에 화려한 집은 어울리지 않았을 터. 투박하고 정겹고 예스러운 분위기는 마치 1960~7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추억의 풍경 사이로 뭔가 다른 색채가 언뜻언뜻 보인다. 자유롭고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그 무엇. 그것은 바로 유씨의 손길이다. 유씨의 개성과 감각이 더해 진 집은 낡고 오래된 액자에 넣어둔 재미난 그림 같다고 할까.
외를 엮어 흙을 바른 벽에 낮은 천장, 좁은 툇마루, 함석지붕…. 유 씨의 손길이 닿기 전 집의 모습은 작은 방 세 개에 부엌과 외양간이 딸린 12평의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그는 일자로 이어진 세 개의 방 중 두 개를 터 아이 방과 안방으로 만들었다.
흙이 떨어져 ?리는 방의 내벽에는 시멘트를 얇게 바른 뒤 도배를 하고, 구들이 깔린 바닥은 그대로 살렸다. 안방에서 이어지는 부엌은 외양간까지 넓게 터 거실로 만들었다. 허물어져가던 부엌의 흙벽은 흙으로 메운 뒤,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퍼티를 발랐다. 바닥은 방과 같은 높이로 맞추고, 별도의 난방 시설 없이 장판을 깔았다. 방의 불 을 때는 아궁이의 온기와, 아궁이 옆에 설치한 연탄난로의 열을 이용 해 공기를 데우는 방식으로 난방을 해결한 것이다. 터져 있던 거실의 천장은 흙으로 메운 뒤 깔끔하게 퍼티로 마감했다. 그런 다음 합?과 단열재를 대고 기왓골 무늬의 강판 지붕을 올렸는데, 원래 있던 함석 지붕은 그대로 둔 채 지붕을 얹었다.
“기존의 지붕을 보수한 뒤 그 위에 새 지붕을 씌운 것은 단열 때문입니다. 집은 감싸면 감쌀수록 따뜻해지니까요. 그래서인지 강원도 인데도 겨울에 추운 줄 모르고 지냅니다. 거실은 아궁이와 난로에서 나오는 열기로 오히려 더울 정도지요.” 거실 뒤편에는 돌로 벽을 쌓아 욕실을 만들고, 거실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넓게 달았다. 또 방 앞쪽으로 작게 나 있던 툇마루도 더 넓 혔다. 외부의 흙벽은 그대로 둔 채 흙이 ?어지지 않도록 돌을 붙였 고, 집 둘레에는 주변에서 주운 돌로 돌담을 쌓았다.
냄새 없고 깔끔한 생태 화장실‘ 똥방’
시골집 한 채만 폐가처럼 덩그러니 있던 곳에 지금은 별채와 작업 실, 창고, 화장실, 닭장이 들어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별채 (3.5평)는 목재 골조에 외벽을 피죽으로 마감해 투박한 멋을 살렸 고, 작업실(6.5평)은 조립식으로 지었다.
돌담 안팎의 건물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똥 방’이라 불리는 생태 화장실이다. 돌담 바깥의 계? 근처에 외따로 세워진 똥방은 외부와 내부는 물론 안에서 내다보는 전망까지 일품 이다. 나무의 굴곡을 드러낸 골조와 거친 흙벽, 벽돌색 함석지붕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돋보인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냄새가 나지 않는 깔끔한 내부에 놀라 고, 일을 볼라치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 바닥의 길쭉한 구멍 위에 덮 인 나무 덮개를 들어올리면 구멍 앞쪽에 원뿔 모양의 빨간 루비콘 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아래는 바닥까지 1미터 정도 공간이 뚫 려 있다. 소변은 루비콘 속을 통과하면서 따로 모이고, 대변은 흙이 깔린 아래쪽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만든 것. 옹기에 담긴 재를 삽으 로 퍼 분변 위에 덮어주면 발효가 돼 퇴비로 이용한단다.
“지인의 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태 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똥과 오줌을 분리하고, 위아래의 공간을 터 바람이 통하도록 했더니 냄새가 나지 않더라고요. 일을 보면서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얼마 나 기가 막힌지 모릅니다. 사람들은‘똥’이라는 말 자체를 꺼리는 데, 사실 화장실은 똥 누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똥방’ 이라 이름을 지었더니 다들 재미있어합니다.” 낡고 오래된 액자 속에 들어 있는 그림은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재 미가 있다. 그림을 그린 이의 남다른 감 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입한 40인치 TV(이 집에서 가장 빛나는(?) 물 건이다) 등 가전제품 외에는 대부분 유 씨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책상이 필요하면 책상을 만들고 의자 가 필요하면 의자를 만드는 식으로 필요 한 집기를 하나씩 만들었는데, 시중에 파는 제품처럼 정형화된 모양을 가진 것 은 없다. 천장 아래에 길게 매달린 통나무 선반, 마룻장을 분리하면 나타나는 바닥의 저장고, 기타 모양의 차 탁과 시계, 남근 모양의 옷걸이 등 그가 만든 물건들은 모두 자유분방 한 디자인에 색다른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크고 작은 창과 문도 네모반듯한 것이 없다. 길쭉한 타원형이나 사다리꼴 등 하나같이 독특한 모양이다. 창틀에 방충망을 달아 여 닫이로 만든 이중창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집에는 특히 많은 몇 가지 물건들이 있다. 스피커와 기타 그리 고 새총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유씨는 크고 작은 스피커를 집 안팎 곳곳에 세워두고 늘 음악을 틀어둔다. 또 기타는 치는 것뿐 아니라 만드는 데에도 취미를 붙여,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기타 제작 공방 을 운영할 구상도 하고 있다. 재미 삼아 만드는 새총으로는 가끔 쥐 를 잡기도 한다고. 그가 만든 가구나 물건들은 모두 나름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는 블로그‘ 똥방’(blog.naver.com/simple951219) 에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올리고 있다.
“예전에는 그저 감으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책이나 인터넷을 참고 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어떤 물건을 보면 어떻게 고쳐 무슨 용도로 활용하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인적 드문 오지에도 소문은 빠른 것일까. 그의 남다른 손재주와 감각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집을 고치거나 지어달라는 주문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집짓기는 그의 일이 되어버렸다. 얽 매이는 걸 싫어하는 그는 집을 지을 때에도 설계도 없이 작업을 하 며, 곡선이나 비대칭적인 디자인을 많이 시도한다.
자연 속에서 가족을 얻고 새로운 삶을 찾다 오래된 액자 위로 산 그림자가 길게 드러눕자, 학교와 유치원에 갔 던 아이들이 종알거리며 그림 속으로 들어온다. 풀어놓은 닭들은 마당에서 노닐다 툇마루 위로 올라가 뒤뚱거리고, 시골 아낙이 다 된 아내는“ 이놈들!” 하며 엄포를 놓는다. 산골의 어스름이 더욱 짙 어갈 즈음엔, 가재골 위쪽에 사는 아는 형이 지나가다 들렀다며 툇 마루에 슬그머니 걸터앉고, 영월 시내에 사는 한 동생도 막걸리를 사들고 가재골을 찾아 들어온다.
도시에 살던 젊은 남자가 꿈꿨던‘ 도 닦는 삶’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자연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기에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이들이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돌담 안팎의 건물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똥 방’이라 불리는 생태 화장실이다. 돌담 바깥의 계? 근처에 외따로 세워진 똥방은 외부와 내부는 물론 안에서 내다보는 전망까지 일품 이다. 나무의 굴곡을 드러낸 골조와 거친 흙벽, 벽돌색 함석지붕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돋보인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냄새가 나지 않는 깔끔한 내부에 놀라 고, 일을 볼라치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 바닥의 길쭉한 구멍 위에 덮 인 나무 덮개를 들어올리면 구멍 앞쪽에 원뿔 모양의 빨간 루비콘 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아래는 바닥까지 1미터 정도 공간이 뚫 려 있다. 소변은 루비콘 속을 통과하면서 따로 모이고, 대변은 흙이 깔린 아래쪽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만든 것. 옹기에 담긴 재를 삽으 로 퍼 분변 위에 덮어주면 발효가 돼 퇴비로 이용한단다.
“지인의 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태 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똥과 오줌을 분리하고, 위아래의 공간을 터 바람이 통하도록 했더니 냄새가 나지 않더라고요. 일을 보면서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얼마 나 기가 막힌지 모릅니다. 사람들은‘똥’이라는 말 자체를 꺼리는 데, 사실 화장실은 똥 누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똥방’ 이라 이름을 지었더니 다들 재미있어합니다.” 낡고 오래된 액자 속에 들어 있는 그림은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재 미가 있다. 그림을 그린 이의 남다른 감 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입한 40인치 TV(이 집에서 가장 빛나는(?) 물 건이다) 등 가전제품 외에는 대부분 유 씨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책상이 필요하면 책상을 만들고 의자 가 필요하면 의자를 만드는 식으로 필요 한 집기를 하나씩 만들었는데, 시중에 파는 제품처럼 정형화된 모양을 가진 것 은 없다. 천장 아래에 길게 매달린 통나무 선반, 마룻장을 분리하면 나타나는 바닥의 저장고, 기타 모양의 차 탁과 시계, 남근 모양의 옷걸이 등 그가 만든 물건들은 모두 자유분방 한 디자인에 색다른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크고 작은 창과 문도 네모반듯한 것이 없다. 길쭉한 타원형이나 사다리꼴 등 하나같이 독특한 모양이다. 창틀에 방충망을 달아 여 닫이로 만든 이중창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집에는 특히 많은 몇 가지 물건들이 있다. 스피커와 기타 그리 고 새총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유씨는 크고 작은 스피커를 집 안팎 곳곳에 세워두고 늘 음악을 틀어둔다. 또 기타는 치는 것뿐 아니라 만드는 데에도 취미를 붙여,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기타 제작 공방 을 운영할 구상도 하고 있다. 재미 삼아 만드는 새총으로는 가끔 쥐 를 잡기도 한다고. 그가 만든 가구나 물건들은 모두 나름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는 블로그‘ 똥방’(blog.naver.com/simple951219) 에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올리고 있다.
“예전에는 그저 감으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책이나 인터넷을 참고 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어떤 물건을 보면 어떻게 고쳐 무슨 용도로 활용하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인적 드문 오지에도 소문은 빠른 것일까. 그의 남다른 손재주와 감각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집을 고치거나 지어달라는 주문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집짓기는 그의 일이 되어버렸다. 얽 매이는 걸 싫어하는 그는 집을 지을 때에도 설계도 없이 작업을 하 며, 곡선이나 비대칭적인 디자인을 많이 시도한다.
자연 속에서 가족을 얻고 새로운 삶을 찾다 오래된 액자 위로 산 그림자가 길게 드러눕자, 학교와 유치원에 갔 던 아이들이 종알거리며 그림 속으로 들어온다. 풀어놓은 닭들은 마당에서 노닐다 툇마루 위로 올라가 뒤뚱거리고, 시골 아낙이 다 된 아내는“ 이놈들!” 하며 엄포를 놓는다. 산골의 어스름이 더욱 짙 어갈 즈음엔, 가재골 위쪽에 사는 아는 형이 지나가다 들렀다며 툇 마루에 슬그머니 걸터앉고, 영월 시내에 사는 한 동생도 막걸리를 사들고 가재골을 찾아 들어온다.
도시에 살던 젊은 남자가 꿈꿨던‘ 도 닦는 삶’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자연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기에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이들이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전원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