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아지는 의자
너한테만 말할게. ‘비밀 지키기 놀이’ 한 것. 그러니 너도 비밀 지켜야 돼? 이 놀이를 아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서 명화랑 나, 선생님 뿐일 거야. 아무도 없나 보고 와. 보고 왔어? 그럼 귀대 봐.
“슬기로운 생활” 시간에 말야. “내가 바라는 이웃” 에 대해 생각그물로 “좋은 이웃”과 “나쁜 이웃”을 나타내어 발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거든. 나는 다 쓰고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쓴 것을 봤어. 대부분, 좋은 이웃에는 경찰서, 소방관, 문구사, 책방, 떡볶이집, 통닭집 등을 썼고, 나쁜 이웃에는 술집, 담배집, 오락실, PC방 등을 적었어. 발표 시간이 되었어.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안 좋기 때문에 담배집은 안 좋아요.”
“오락실은 왜 안 좋으냐하면 눈이 나빠지고, 돈이 없어지고, 시간이 뺏기기 때문에 안 좋아요.”
“술집은 술을 먹으면 사람들이 욕을 하고 정신을 잃고 바보가 되기 때문에 안 좋아요.”
“제가 보충하겠습니다. 술을 먹으면 건강에도 안 좋고 싸움도 잘하게 됩니다.”
그때 나는 명화를 힐끗 보았어. 어머니가 술집을 하는 명화는 머리띠로 눈을 가리고 있었어. 나는 명화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편을 들어주고 싶었어. 그때 좋은 생각이 번뜩 떠올랐어.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리 아빠가 일하고 돌아올 때 술집에 가서 술 한잔 마시고 오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술집은 어른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집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빙그레 웃어 주더라구. 그제서야 명화도 용기를 얻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더라. “저도 술집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술을 먹으면 정직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거짓말을 안 하게 되면 좋은 사회가 됩니다. 또 저번에 월드컵 경기를 할 때 사람들이 우리 한국이 이긴 것을 축하하고싶어 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술집이 참 재미있고 즐거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PC방도 공부를 많이 해서 머리가 아플 때 머리를 식히는 곳으로 좋다, 스트레스를 푸는 곳으로 좋다는 식의 발표들이 나왔어.
“자, 그러면 정리해봅시다.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다.』그 다음에 말을 잇는다면 어떤 말을 이어야할지 각자의 생각을 적어보세요.”
선생님은 쪽지를 나누어주셨어. 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일어섰다 앉았다 했어, 선생님과 아이들은 내가 공부 시간에 잘 돌아다닌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니까. 이렇게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 생각이 잘 나거든. 나는 성균이 쪽으로 슬쩍 걸어가서 쓴 것을 넘겨다보았어.
「일은 모두 가치가 있는데, 술집, 오락실, 담배 가게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집들은 많이 있어서는 안되겠고 조금만 있으면 좋겠다.」
나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좋았어!’하며 내 자리로 돌아왔어.
「나쁜 곳이 우리 집 가까이 있어도 가지 않으면 없다는 느낌이 들고, 자주 가게 되면 많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술집이나 오락실도 꼭 필요할 때만 가면 되기 때문에 이 세상 일들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써놓고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썼나 훔쳐보러 다녔어. 명화가 책받침으로 살짝 덮어두고 화장실을 가는 사이 나는 슬쩍 책받침을 떨어뜨리고 보았어.
「나는 어머니가 밉다. 어머니처럼 거짓말하고 도망가서 숨지 않겠다. 그리고 사채도 쓰지 않겠다. 정직하게 돈을 벌겠다. 특히 사기를 치지 않겠다.」
나는 우리 반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가 교문 앞 의자에 앉아서 쑥떡거리던 이야기가 생각나더라. 명화 엄마가 술집을 하다가 부도를 내고 숨어버리자 아빠도 빚쟁이들을 피해 숨어버렸다고도 하고. 할머니가 명화랑 동생을 돌보는데 빚쟁이들이 와서 행패를 부렸다고도 했거든. 나는 명화가 참 불쌍한 생각이 들어 가만히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어. 명화는 돌아와 땅에 떨어져있는 책받침을 주워 다시 자기 시험지를 가리더라. 이제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우리들이 적은 것을 읽어보셨어. 명화 것을 보시더니 명화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
“선생님, 명화가 뭐라고 적었는데요?”
샘쟁이 세진이가 물었어. 그 말에 명화 두 귓불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있지?
“응, 명화는 자기 생활과 연관지어 잘 썼어.”
선생님도 참. 얼렁뚱땅 둘러대기를 잘하더라니깐.
“우리 중에 제일 잘 적었어요?”
세진이는 선생님이 명화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이 질투 나는지 또 한 번 묻더라.
“그럼. 그러니까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줬지.”
난 알지. 명화가 힘내라고 쓰다듬어 주신 걸. 하지만 세진이는 점점 더 샘을 내었어.
“어떻게 썼는지 좀 보여줘.”
이번에는 명화를 돌아보며 애교를 부리는 거야.
‘저걸 보면 안 되는데...... .’
나는 간이 오무라드는 것 같았어. 생각해봐. 철딱서니 없는 세진이가 그걸 본다면 철딱서니 없이, 철딱서니 없는 애들한테 종알거릴 것은 뻔한 일이거든.
“안 되지. 명화야 보여 주지 마. 다른 사람들은 얼른 자기 생각대로 쓰세요.”
선생님도 그러면서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 명화 쪽으로 눈을 돌렸어. 명화는 귓불이 빨개지며 두 손으로 책받침을 꽉 눌렀어.
“칫, 좀 보자.”
어느새 세진이가 쪼르르 달려가 명화 손을 억지로 떼어내더니 시험지를 착 잡았어. 나는 숨이 멎는 것만 같더라. 순간, 나는 다다다닥 뛰어서 세진이 손을 탁 탈치고 명화 시험지를 낚아챘어. 그리고는, 선생님께 서벅서벅 걸어가서 명화 시험지를 내밀었어.
“남의 것 보면 안 되지요? 자기 생각대로 써야 되지요?”
하면서. 그러자 선생님은 정말인지, 일부러 그러는지 나를 나무라는 말을 했어.
“학수, 너! 세진이가 보고 베낄까봐 뺏어온 거지?”
나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명화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참기로 했어. 어쨌든 선생님께 그 시한포탄 같은 비밀 시험지를 넘겨주고 나니까 마음이 놓였어. 나도 내가 명화 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설명하는 말도 아주 귀담아 들었어.
세상의 모든 직업은 다 중요합니다. 살다보면,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도박꾼, 소매치기 같은 일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가 아니고는 그런 일을 직업으로 하면 안되겠지요?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과 피해를 끼치는 일 가운데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더 보람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다음 시간에 더 공부해봅시다.“
나는 갑자기 내가 똑똑한 아이라는 걸 알았어. 왜냐면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사람은 명화랑 나뿐일 테니까. 그 일 뒤로 명화가 나를 잘 봐주는 것 같았어. 그 말 맞냐구? 물론이지. 화장실 갈 때 마주치자 다가와 살짝 이렇게 말해주고 갔거든.
“다음에 짝 바꾸면 나랑 앉자. 알았지?”
황홀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맞니? 아무튼 기분이 너무 너무 좋은 것 있지? 마치 아주,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했을 때처럼 말이야.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명화랑 나, 선생님뿐이거든. 그래서 너에게 ‘비밀 지키기 놀이’라고 한 거야. 그러니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알았지? 꼭이야?
※ ※
오늘은 토요일, 짝을 바꾸는 바로 그 날이야.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렸어. 이때껏 혼자 앉았지만 오늘은 굉장히 기대가 커. 너도 알지? 명화가 저번에 같이 짝하자고 했잖아.
그런데 짝꿍 바꾸는 시간에 광철이가 선생님께 토론을 해보자고 했어. 이유는 남자끼리 앉으면 좋겠다고. 남자들끼리 먼저 친해지면, 친해지는 법을 잘 알아서 여자아이들과 더 잘 친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어. 그러면서
“야, 변학수 너, 나랑 앉을래?”
하며 겁을 주는 거야.
‘뭐, 같이 앉자고?’
같이 앉았다가 책상 밑으로 다리 넣어 나를 차고 하면 나는 절대 무서운 건 아니지만. 그런 장난이 귀찮거든. 녀석이 차는데 잘못 맞으면 얼마나 아프다고. 하지만 나는 여유 있게 웃으며 머리를 돌래돌래 저어주었지.
“‘차라리 혼자 앉는 게 낫지. 너랑은 안 앉아.”
내가 이러는 사이에 문섭이를 좋아하는 지윤이가 일어섰어.
“저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하면 더 친하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순형이가, 여자아이들은 남자들을 잘 꼬집고 같이 놀다가도 조금만 건들리면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라서 피곤하다고 했어. 그 말을 받아 세진이가 일어섰어.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짝꿍 해보니 남자아이들은 둘레를 지저분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자끼리 앉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또 혼자 앉게 되잖아. 나는 겨우 명화를 짝꿍으로 맞춰놓았는데 그러면 안 되지. 명화를 지키기 위해 일어나서 말했어.
“제 생각에는 둘레를 더럽히고 고자질하고 하는 건 그 아이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래대로 남자, 여자가 같이 앉는 게 좋겠습니다. 한 아이가 자리를 더럽히면 한 아이가 말리고, 청소도 좀 해주면 친해져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대 의견 없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반대가 없자 본래대로 하라고 했어. 나는 명화를 바라보았어. 명화가 샐샐 웃으며 자기 책상을 밀고 내쪽으로 왔어. 얼른 가서 책상을 받았어. 그리고는 번쩍 들어 내 자리로 가지고 왔지. 명화는 샐샐 웃으며 걸상을 들고 왔고.
“야 장명화, 너 나한테 좀 잘해!”
나는 명화가 한없이 고맙지만 일부러 큰 소리를 쳐봤어. 명화도 쏘아보며 대들었어.
“야 내게도 자존심이 있어. 너가 나한테 잘해 줘봐. 나도 보답하기 위해서 잘해주지”
명화 말이 맞다싶으면서도 또 한 번 큰 소리를 쳤어.
“어쨌든, 너 나한테 잘해.”
그러자 명화는 지지 않으려고 대들었어.
“너 딱 걸렸어. 나 화나면 그냥 막 패. 너 조심하는 게 좋을걸?”
명화가 주먹을 들어 보였어. 나는 자질구레하게 노는 일로 아이들을 괴롭히기는 하지만 때리는 건 싫거든. 그래서 얼른 둘러대었어.
“장난으로 해본 소리야.”
“나도 장난으로 해 본 소리야.”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어. 그런데 아직 짝을 정하지 못하고 책상을 붙들고 엉거주춤 서있는 아이들이 있었어. 광철이도 그러고 있었어.
“광철이랑은 나, 다신 짝 안 할 거야.”
명화가 서있는 광철이 흉을 보잖아.
“뭐가 나쁜데?”
내가 물었어.
“뭐가 나쁘냐면, 저번에 급식실에서 지원이와 나를 한 방씩 때리고 또 우리 얼굴에 침도 튀겼다아?”
나는 명화를 절대 안 때리고 얼굴에 침도 안 튀어 가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명화는 필통을 보여주었어. 필통에는 숫자 맞추기 게임이 붙어 있었어.
“이 말판 네 개가 원 중심에 끼이면 말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원을 돌려서 숫자를 차례대로 맞추면 돼.”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어. 시키는 대로 해보았어. 말밑에 자를 놓고 위로 올리니 말이 튀어 올랐어.
“야, 이 필통 꽤 비싸겠다.”
“몰라. 작년에 우리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 준거야.”
명화는 내가 가지고 놀게 영 맡기는 것 있지? 나는 너무 너무 황홀했어. 일부러 아이들이 보란 듯이 크게 웃으면서 게임을 했어. 특히 광철이 녀석 들으라는 듯이 말했어.
“야, 재밌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 와보니 명화가 안 왔어.
‘나보다 먼저 오던데 왜 안 오지? 오늘 결석인가? 30분이 넘었는데.’
나는 기다렸지만 첫째 시간 마칠 때까지도 안 왔어. 둘째 시간은 글쓰기 한 걸 짝꿍과 바꿔서 틀린 글씨 찾아 주기를 하는데 나는 못했어. 쉬는 시간에도 같이 앉아 이야기 할 동무가 없어 쓸쓸하고. 새삼 혼자 앉아 있다 생각하니 자꾸 자꾸 쓸쓸해졌어. 그럴수록 명화가 더 기다려지고 궁금해졌어. 그래서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 가서 귓속말로 물었지.
“선생님, 있지요. 명화 말예요. 왜 안왔어요?”
그러자 선생님도 귓속말로 말했어.
“그걸 그냥 가르쳐 줄 순 없지.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선생님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듯, 샐샐 웃으며 말했어.
“뽀뽀해 드리면 안 돼요?”
“그래. 좋아.”
그래서 선생님 볼에 살짝 뽀를 해드렸어. 그랬더니 선생님이 샐샐 웃으며 내 귀를 아프게, 그것도 아주 아프게 잡아당기더니 이 말만했어.
“너 명화 좋아하지?”
이건 완전히 반칙이야. 알려주지도 않고, 선생님은 내 귀를 가지고 당나귀 귀 놀이를 한 거야. 전에, 선생님도 그랬잖아.
“너한테는 재미있어도 당한 아이들이 싫고 괴롭다면 그건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고 괴롭히는 거야. 알았어?”
그래놓구선, 선생님은 내 귀를 아프게, 그것도 당나귀 귀처럼 늘어뜨리며 막 재미있게 웃잖아. 치사해. 선생님은 자기도 그런 놀이를 좋아하면서 전에 나만 혼냈어. 난 귀가 얼마나 늘어졌나 싶어 거울로 쫓아가 거울을 보며 내게 말했어.
‘야, 변학수! 선생님이 장난하는 걸 보면 별일은 없는가 본데. 어쨌든, 내일 명화가 오면 새로 개발한 놀이 세 개 중에 명화 마음에 제일 드는 걸로 놀아 줘.’
명화랑 짝꿍하고부터 짝꿍끼리 하는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 놀게 되었어. 어떤 놀이냐구? 귀신놀이지. 내가 귀신이야기를 지어내면, 명화가 무섭다고 책상 밑에 숨잖아. 그러면 나는 이야기를 다시 안 무섭게 고쳐서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어떨 때는 내 머리카락 하나만 뽑아도 그건 내 손아귀에서 명화 눈을 속여 멋진 마술을 부리는 머리카락이 되곤 했는데 말야. 문제는 광철이였어. 명화랑 짝꿍하고부터 광철이는 악당놀이를 지어내었어. 자기네 부하들한테 내가 악당이라며 끌고 오라고 시키고 나를 끌고 다니며 발로 차곤 했어. 어떨 때는 팔꿈치를 걷어차서 며칠 간 글씨를 못 썼는데 선생님은 내가 게으름을 피우며 공책에 안 적는다고 머리를 쥐어박았어. 나는 차차, 학교에 가기 싫었어. 차라리 학교가 무너져 버렸으면 하고 바랐어.
‘나한테 존대말을 안 쓰면 축구 안 시켜 줘.’
하며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하는 광철이한테 ‘예, 대장!’하며 졸졸 따라 다니는 남자애들도 비겁해 보여 꼴 보기 싫었어. 여자 애들도 나는 곧장 고자질하면서도 광철이한테는 발길로 차여도 그냥 피해가기만 했어. 하긴, 여자 애들도 요즈음 광철이가 나쁘게 변한 걸 보고 겁이 났을 거야. 광철이는 우리 반에서 제일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니까 선생님께 일러 바쳤다가도 다시 맞을까봐 그러는 거겠지. 나는 자주 머리가 아프고 어떨 때는 열도 펄펄 났어.
“학수야, 우리 잡기놀이하자. 응?”
책상에 엎드려있는 나를 명화가 흔들며 말해도 난 그냥 ‘싫어’ 한 마디만 했어.
“우리 학수, 요즈음 자주 아프네. 학수가 엎드려 있으니까 학수 같지 않은데? 설치고 다녀야 학수답지.”
선생님이 나를 웃겨 보려고 해도 난 안 웃었어.
그러던 어느 날, 중간놀이 시간에 운동장에 나갔어. 나는 4학년 형아들이 축구하는 걸 구경하고 있다가 광철이 목소리에 깜짝 놀랐어.
“애들아, 이번 악당은 병민이 녀석이다. 잡아서 저 미끄럼틀 밑으로 끌고 와.“
하고는 아주 힘이 센 장군처럼 플라스틱 칼을 옆구리에 차고 배를 뒤로 쑥 제켜 저벅저벅 걸어가는 거야. 그 순간, 모래를 가지고 혼자 놀고 있는 병민이를 보았어. 심장이 안 좋다고 잡기놀이도 안하는 약골 병민이를 광철이 부하 녀석 다섯 명이 우 몰려가 팔 다리를 질질 끄는 거야. 동찬이 녀석은 병민이 목 뒤에서 목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끌고 가더라구.
‘저러다가 병민이가 숨을 못 쉬면 죽을 지도 모르는데...... .’
버둥대며 끌려가는 병민이를 보는 순간, 내가 병민이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어. 얼굴과 온 몸에 열도 팍 오르더라구.
“너희들 병민이 놓아줘.”
내가 매서운 눈으로, 병민이를 끌고 가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어. 광철이가 멀리서 보다 달려왔어.
“뭐야?”
나는 허리에 손을 턱 얹으며 목소리를 높였어. (약간 겁은 났지만)
“너어들한테는 재미있어도 당한 애가 싫다면 그건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고 괴롭히는 거야.”
“웃겨. 너나 아이들 괴롭히지 마.”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아주 커졌다.
“나는 놀아도 병민이처럼 약골인 아이를 때리며 논 적은 한 번도 없다. ”
그러자 광철이가 주춤하는 것 같더니, 증거를 대려고 한참 생각하는 듯 했어.
“저기 선생님이 내다보고 있는 게 안 보여? 데려 오래. 난 선생님 말을 전했을 뿐이야.”
그러면서 2층 우리 교실 창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어.
“뭐, 선생님이?”
그러더니 아이들이 모두 병민이를 놓아주었어. 나는 태연한 척 교실 쪽으로 걸어갔어. 광철이 부하들과 광철이가 비실비실 따라왔어. 병민이도 헥헥거리며 목을 만지며 따라왔어.
“병민이 너는 안 부르더라.”
나는 병민이는 그냥 놀아라고 손짓까지 해보였어.
‘내가 생각해도 내 머리가 팰팰 잘 돌아가는데?’.
나는 내 머리에 착착 떠오르는 작전을 정리하며 앞서 걸었어. 어깨를 짝 벌리고. 교실에 와서 앞문을 드르륵 열었지. 일기장 검사를 하던 선생님이 돌아봤어.
“선생님, 자기한테는 재미있어도 당한 애가 숨이 막히면, 그건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고 괴롭히는 거지요?”
그러자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며
“그러엄! 마침 잘 왔다. 너희들 일루(이리로) 다 들어와 봐.”
하면서 복도에 있는 우리들을 교실로 불러들였어.
‘선생님이 정말 보고 계셨을까?’
나도 놀라며 교실로 들어갔어.
“일기장 검사를 하며 보니 광철이 너 요즘 동무들 많이 괴롭히더라. 그리고 너희들이 광철이 부하들이냐?”
광철이랑 부하된 아이들이 고개를 팍 숙이더라구. 광철이한테 당한 아이들 중 누군가가 일기장에 적었나봐.
“너희들, 선생님과 상담 좀 해야겠다.”
그러면서 나보고는 나가 놀아라고 했어. 나는 광철이가 선생님 앞에서 떠는 걸 보고 용기가 생겼을까? 아니면 병민이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어쨌든, 집에 와서 병민이 때문에 거짓말한 일이며 나도 이때껏 광철이에게 당한 걸 일기장에 하나도 빼지 않고 싹 다 적었어. 학교 가기 싫어서 학교가 확 무너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안 숨기고 다 적었어. 솔직하게 적으니까 속이 시원해져 지더라구. 속에 담겨 있던 억울한 마음이 밖으로 다 튀어나와서 그랬나봐.
내 일기를 보신 선생님은 그 다음 날 오후에 나를 빙글빙글 도는 의자에 앉혀 주었어. 언젠가, 그 의자에 함부로 앉아 빙글빙글 돌려먹다가 꾸중도 들었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그 의자에 나를 앉히더니 내가 광철이한테 하고 싶은 욕과 말을 다 해보라고 했어. 하고 싶은 욕을 다하고 나니까 기분이 날아갈 만큼 상쾌해지더라. 그래서 이 의자 이름을 지어주었어.
“이 의자 이름요. 기분 좋아지는 의자라고 지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좋아했어.
“그래, 학수는 이름도 그럴듯하게 잘 짓네. 나는 ‘빈의자 기법’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부텀 ‘기분 좋아지는 의자’라고 해야겠네.”
그래서 이때부터 나는 선생님의 의자를 ‘기분 좋아지는 의자’라고 소문을 다 내고 다녔어. 물론, 선생님은 내가 광철이 이야기를 일기장에 적었다는 이야기를 비밀로 지켜주었어.
(원고 5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