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문학작품
강사:김관웅 교수님
문학작품은 영어에서는 문학 텍스트(text,文学文本)라고 한다. 문학작품은 문학창조의 표징으로서 문학창조에는 담론체계형식이 응결되어 있다. 문학작품의 형성은 문학창조과정의 결속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문학감상과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은 전반 문학활동에서의 초점이다. 이 강의에서는 문학작품의 외재적형식(류형과 장르) , 내재적인 형식(텍스트 층차, 심미표현형식), 외재적형식과 내재적형태가 융합되어 이루어진 경전형태(서사와 서정) 그리고 담론특색(풍격)에 대하여 언급하게 된다.
문학작품의 유형
지금 중국의 문학이론 교과서들에서는 문학작품의 유형을 현실형, 이상형, 상징형으로 나누고 있다.
현실형 문학(现实型文学)
현실형 문학의 가장 기본적 특징은 재현성(再现性)과 핍진성(逼真性)에 있다. 재현(representation)은 외재적인 객관현실상황에 대하여 여실하게 부각하거나 그려내는 것이다. 현실형 문학은 현실을 에둘러 가거나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현실에 립각하여 현실을 직면하고, 현실을 정시하고, 현실생활에 충실하는 것이다.
두보의 “삼리삼별”이나 “부영현현영회5백자”같은 시들이 바로 현실형 문학에 속한다. “朱门酒肉臭,路有冻死骨。”같은 시구들이 이 점을 보여준다. 백거이의 《밀 가을 하는 농부들을 보면서(观刈麦)》는 전형적인 현실형의 문학에 속하는 시작이다.
观刈麦
白居易
田家少闲月,농사군에게는 한가한 날이 없나니
五月人倍忙。오월이 되면 더욱 일손이 바빠지네.
夜来南风起,밤에 남풍이 불어오더니
小麦覆陇黄。밀밭은 이랑마다 누렇게 익었구나.
妇姑荷箪食,아나네들은 밥소쿠리 들고있고
童稚携壶浆。조무래기들 국 담은 주전자 들고있네.
相随饷田去,일군들의 밥그릇 들고 일밭으로 향하는데
丁壮在南冈。장정들은 남쪽 언덕에서 일을 하고 있네.
足蒸暑土气,두발은 피여오르는 흙기운에 뜨겁고
背灼炎天光。등어리는 땡볕아래 지지는듯 하구나
力尽不知热,힘을 쏟아 일하느라 더운줄 모르나
但惜夏日长。다만 여름해는 길기도 하구나
复有贫妇人,그중에 한 아낙네가 있어
抱子在其旁。아이를 안고 옆에 서있네.
右手秉遗穗,오른손엔 밀이삭을 주어들고
左臂悬敝筐。오른손엔 빈광주리 들었네.
听其相顾言,서로 마주보며 하는 말 듣노라니
闻者为悲伤。듣는 이들의 마음을 쓰리고 아프네.
家田输税尽,밭에서 거둔 곡식은 부세로 다 빼앗기고
拾此充饥肠。밀이삭 주어서 주린배를 달랜다네.
今我何功德,오늘날 내가 무슨 공덕이 있기에
曾不事农桑。농사도 길쌈도 안 하는가?
吏禄三百石,그라고도 3백석의 봉록을 받아
岁晏有余粮。해마다 남아도는 쌀이 있네.
念此私自愧,이를 생각하면 스스로 부끄러워
尽日不能忘。온종일 마음속에 걸려 잊을수 없구나.
이 시는 전형적인 현실형의 문학에 속하는 시작이다. 백거의는 겨울밀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노동현장을 진실하게 묘사하면서 가렴주구로 뼈빠지게 일해도 굶주림을 면치 못하는 농부들에 대해 무한한 동정을 표하였으며, 자기가 3백석의 봉록을 받아먹는데 대해 부끄러움을 표현했다.
悯农之二
李绅
锄禾日当午, 정오무렵 밭에서 기음을 매노라니
汗滴禾下土。땀방울이 곡식포기아래 떨어지누나
谁知盘中餐, 뉘가 알랴 사발에 담긴 찬과 밥이
粒粒皆辛苦。알알이 모두 신고로움임을
당나라 때의 시인 이신(李绅)의 이 시는 농민들의 노동의 간고함과 노동과실의 소중함을 사실주의적인 필치로 묘사했다.
일제식민지시대 이상화의 서정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전형적인 현실형 문학에 속한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혼자 혼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 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께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도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내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서름이 어울어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로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겼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 전문
이 시는 당시 일제의 식민통치아래 나라와 땅을 빼앗긴 3천만 백의 동포들의 보편적인 심정을 진실하게 표현한 현실형의 서정시로서 많은 공명을 불러 일으켰다. 김학철은 자기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읽고난 뒤의 심정을 술회하였다.
“… 이 치밀어 오르는 불덩이가 사그라지기도 전에 나는 이상화라는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 한 시인의 서릿발이 번득이는 듯한 시에 접하게 됐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부르짖음에 피가 끓어오른 나머지 나는 그 빼앗긴 땅에서 살아야 하는 게 새삼스럽게 원통하고 절통했다. —망국노, 망국노!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 건가. 이 하찮아 보이는 사건은 나의 인생 항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전환점으로 됐다.”
한국 박노해의 민중시 대표작 《지문을 부른다》는 전형적인 현실형의 시작이다.
진눈개비 속을
웅크려 헤쳐 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 지가
어언 육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한번쯤을 똑 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평생토록 쥐진 적 없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나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임석경찰을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 봐.
—박로해《지문을 부른다》전문
다소 장황하고 센티멘탈하게, 또한 산만한 감을 주긴하지만 전혀 수식이나 과장 없이 써 내려간 투박한 표현 가운데서 진실된 삶의 표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의 지문이 잘 안 찍히는 경우란 사실 흔한 “일상적 사건이다”이다. 이런 사건을 노동자들의 처지를 재현하는 시로 만들어낸 것이다.
유럽의 19세기 비판적사실주의소설문학에서의 스탕달의 《작과 흑》, 발작의 《고리오령감》, 톨스토이의 《부활》수많은 작품들은 모두 현실형의 작품에 속한다.
2.이상형문학(理想型文学)
이상형문학은 일종 직접적 서정의 방식으로 주관사상을 표현하는 문학형태이다. 그 기본형태는 표현성(表现性)과 허환성(虚幻性)이다. 그 가장 기본적 특징은 표현성과 허환성이다. 당나라 이백의 문학이 이런 이상형문학의 가장 전형성을 띠고 있다.
君不见, 그대여 보지 못했는가
黄河之水天上来,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내려
奔流到海不复回。 사품쳐 흘러 바다에 이르러 다시돌아올지 못함을!
君不见, 그대여 보지 못했는가
高堂明镜悲白发, 고대광실의 밝은 거울에 비낀 그 서글픈 백발을!
朝如青丝暮成雪。 아침에 검은 실오리 같더니 저녁에는 백설같이 되였음을!
人生得意须尽欢, 인생의 득의했을때 모름지기 즐거움을 다할지니
莫使金樽空对月。 금잔으로 하여금 공연히 달을 대하게 하지 말라.
天生我材必有用, 하늘이 낸 나의 재능은 반드시 쓸데가 있음이니
千金散尽还复来。 천금을 뿌려도 또한 다시 생기느니라.
烹羊宰牛且为乐, 염소를 잡고 소를 잡아 즐겨야 하며
会须一饮三百杯。 마실터이면 반드시 한꺼번에 삼백잔을 마싯것이리라.
岑夫子,丹丘生, 잠부자, 단구생이여
将进酒,杯莫停。 술잔을 권하니 그대여 멈추지를 마시라.
与君歌一曲, 그대들을 위해 내 한곡조 부르리니
请君为我倾耳听。 청컨대 그대들은 내 노래에 귀들 기울이시라.
钟鼓馔玉不足贵, 종정, 옥백이 족히 귀한것이 못되니
但愿长醉不复醒。 다만 늘 취해서 깨여있기를 원치 않노라.
古来圣贤皆寂寞, 예로부터 현인, 달사들은 모두 적막하여
惟有饮者留其名。 오직 술군들만 그 이름을 남기였노라.
陈王昔时宴平乐, 진왕이 옛날 평락관에서 잔치를 베풀 적에
斗酒十千恣欢谑。 한말의 술값이 만냥이였지만 마음껏 마셨노라.
主人何为言少钱, 주인은 어찌하여 돈이 없다고 하는가?
径须沽取对君酌。 당장 술을 사다가 그대와 대작하리라.
五花马,千金裘, 오색털의 말과 천금 가는 갖옷으로
呼儿将出换美酒, 아이를 불러 술을 바꿔오라 이르게나
与尔同销万古愁。 그대와 함께 만고의 시름을 녹이리라.
— 李白《将进酒》全文
日照香炉生紫烟, 향로봉에 해비치여 오색연기 피여나고
遥看瀑布挂前川。 멀리 바라보니 폭폭가 강물인양 걸려있네.
飞流直下三千尺, 곧추 날아내리는 흐름이 삼천척이라
疑是银河落九天。 높은 하늘에서 은하수 흘러내리는것 같네.
—李白 《望庐山瀑布 其二》
北风行
烛龙栖寒门,光曜犹旦开。
日月照之何不及此?惟有北风号怒天上来。
燕山雪花大如席,片片吹落轩辕台。
幽州思妇十二月,停歌罢笑双蛾摧。
倚门望行人,念君长城苦寒良可哀。
别时提剑救边去,遗此虎文金鞞靫。
中有一双白羽箭,蜘蛛结网生尘埃。
箭空在,人今战死不复回。
不忍见此物,焚之已成灰。
黄河捧土尚可塞,北风雨雪恨难裁。
秋浦歌 其十五
李白
白发三千丈,
缘愁似个长。
不知明镜里,
何处得秋霜。
한국시인 황송문의 서정시 《하루살이》는 인생의 리상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우리 하루만 살아요
단둘이서 산에 올라
남부럽지 않게 하루만 살아요
일상에서 만날수 없는 그대
젊은 하늘을 푸르게만 봐요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요
하루를 천년 같이 살아요
영원히 사는 마음으로
하루를 굽이굽이 펴며 살아요
골짜기가 산에 존재하듯이
내 속에 살아 있는 그대여
우리 하루를 천년 같이 살아요
산허리에 하루 살이 솥을 걸고
불때 솔때 불때 솔때
소꿉놀이하며 천년을 살아요.
—황송문 《하루살이》전문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가 《전적벽부》에서 사람의 일생을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비하였고 한악부에서는 “백년도 못사는 인생이 천년의 근심을 하면서 산다”고 읊기도 했는데, 황송문은 자기 뜻대로 되지 못하는 인생에서 단 하루라도 자기 뜻대로 자기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천진무구한 동심으로 갖고 “하루를 천년 같이 살고 싶다”고 표현하였다.
유럽의 바이론의 《맨프레트》, 중세기 아랍의 이야기집 《아라비안 나이트》, 오승은의 《서유기》 , 조선조 김만중의 《구운몽》 , 조선족문학에서의 신채호의 《용과 용의 대격전》, 《꿈하늘》 등은 모두 이상형 문학에 속한다.
3.상징형 문학(象征型文学)
상징형문학을 알기 전에 직유, 은유, 알레고리 등을 알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직유에 대해 말해 보자.
문학의 표현기교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것이 비유이다. 비유를 형성하는 데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신활동은 유추(类推)라고 할수 있다. 유추란 한 대상이 다른 대상과 어떤 부분에 있어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으리라 추정해 내는 추리작용을 말한다. 유추는 다른 두개의 사물 사이에서 동질성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우수한 비유는 유추적대상을 잘 발견해내는 데서 시작된다. 그빌견행위를 유발해 내는것은 시인의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시적인 표현이 곧 비유라고 할수 있다. 시인이 가장 신경써애 할것은 관습적인 비유가 아니라 개성적이고 참신한 비유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나그네》전문
고맙게 잘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이상화 《뻬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일부
한국 마광수의 《우리는 사랑했다》는 한편의 시가 주로 직유로만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우리는 사랑했다 꽃과 같이
불과 같이
바람과 같이
바다와 같이
우리는 입맞췄다 끈적끈적
흙탕물같이
소낙비같이
장마같이
천둥같이
우리는 서로 할켰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발톱으로
채찍같이
몽둥이같이
칼날같이
우리는 서로 안았다 배암같이
두더지같이
지렁이같이
아메바같이
우리는 서로 죽였다 예쁘게
박제된 백조같이
낭자하게 피흘리는
복날 개같이
깨갱깽 깨갱깽 울면서
우리는 성심껏 서로
죽였다
비수같은 혓바닥을 세워
서로를 깊숙이 찔렀다
한껏 음란하게
우리는 서로를 죽였다.
영화같이
— 마광수 《우리는 사랑했다》전문
둘째 은유에 대하여 말해보자.
은유는 서양에서는 메타포라고 한다. 직유가 “A는 B와 같다”의 형태라면 은유는 “A는 B다”의 형태로 나타난다. 글자의 뜻 그대로 은유는 “숨겨진 비유”라고 할수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배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초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히
그대를 떠나오리다.
— 김동명 《내 마음》
한국의 신진시인 홍종화의 《오래된 생불(生佛)》은 열한마리의 새끼를 낳아키우는 암캐를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살아있는 부처—생불에 비유하였다.
어미개가 새끼를 열한마리 낳았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털은 까칠했다.
어미개가 탯줄을 잘라먹고 새끼똥을 먹어치웠다
황금 꽃똥을 먹었는데 시꺼먼 설사를 해댔다
어미개가 새끼를 핥아 주었다
양수를 머금었던 강아지들의 털이 녹차밭 같았다
어미개는 배가 홀쭉해도 젖을 먹였다
젖에서는 피가 났지만 두 눈만 껌벅거렸다
장마 지나 개집에 곰팡이가 들이쳐도
어미개는 늘어진 젖을 드러내고 보살처럼 앉아 있었다
그렇게 오는 생불(生佛)은
아무도 몰랐다
— 홍종화《오래된 생불》
이 시를 종합하면 “암캐는 오랜 생불이다”라는 암유로 귀납할수 있다.
은유의 사례로 김학송의 단시《이혼하지 못하는 이유》를 들어보기로 한다.
앙상한 돌밭에
돋은 새 싹이
가여웁다
열 받은 보습날이
팍!
팍!
불꽃을 튕기지만
씨톨을 터치고
죄 없이 돋아난
이쁜 새싹
뿌리를 내린
그 돌밭마저도
버릴 수 없는 슬픔이다.
—김학송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전문
이 시는 자기 자신은 “열받은 보습날”, 보기 싫은 마누라를 “앙상한 돌밭”, 그 보기 싫은 마누라와 살아서 낳은 자식은 “이쁜 새싹”에 비유했다. 이 시는 자식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는 주제를 표현한 시작이다. 총적으로 은유를 동원한 시작이라고 할수 있다. 만일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만 “무제(无题)”로 바꾸었더라면 이 시는 하나의 완전한 상징시로 되였을것이다.
세째, 알레고리에 대하여 말해 보자.
알레고리(allegory)는 “하나를 말하여 다른것을 의미할때 알레고리가 나타난다. 즉 하나의 이야기속에 뜻을 담고 있을 때 알레고리가 나타나는데, 그 전형적인 형태가 우화이다. 고대 그리스의 이소프우화나 중국의 장자의 우화 같은것이 바로 알레고리이다. 《토끼와 거북의 경주》, 《개미와 매미》, 《어린 고양이의 낚시질》등이 그 좋은 사례이다. 유추적인것으로서 유의와 본의가 문면에 나타나 있다. 때문에 알레고리의 전형형태인 우화는 흔히 교훈성을 갖게 된다.
네째, 상징형문학에 대하여 말하여 본다.
상징형문학은 일종 암시의 방식으로 심미적의미를 기탁하는 문학형태로서 그 기본적인 특징은 암시성과 몽롱성이다. 상징에서는 유의만 있고 본의는 생략된다. 보조관념만 있고 원관념은 생략된다. 작품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경우에 전체적인 상징이라고 한다. 현실형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이상형문학이 정감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상징형문학은 어떤 의념이나 듯을 기탁하는데 중점을 둔다. 암시성은 뜻을 기탁하는 반식이다. 암시를 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몽롱하게 되는 것이다.
1392년 고려조정의 수문호시중으로 있었던 정몽주와 리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이 주연을 차려놓고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고자 아래의 시조를 읊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万寿山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서 百年까지 하리라.
—이방원 《하여가(何如歌)》전문
이에 정몽주는 취중에도 격앙하여 다음과 같이 시조로 화답하였다고 한다.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白骨이 尘土되고 넋이야 있고 없고
님 향한 一片丹心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정몽주 《丹心歌》전문
青山里 碧溪水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一到沧海하면 다시 오기 어렵거늘
明月이 满空山하니 쉬여 간들 어떠하리.
—황진이《青山里 碧溪水야》전문
벽계수라는 호를 가진 선비가 개성에 놀러왔을 때 개성의 명기 황진이가 자기와 함께 놀고 가라고 만류하는 뜻을 담아 암시적으로 불렀다는 시조이다.
조선조의 랑만적인 시인 임제(林悌,1549-1587)가 강계에 가서 강계의 명기 한우(寒雨)와 주고 받은 시조는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암시적이다.
北天이 맑다커늘 雨装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
—임제《北天이 맑다커늘》전문
이에 한우가 다음과 같이 넉살 좋게 화답했다고 한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
鸳鸯枕 翡翠衾을 어디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한우 《어이 얼어자리》전문
이런 암시성은 차원 낮은 암시성이다. 보다 차원높은 암시성은 다음의 시들에서 보인다.
중국의 많은 고전시들이 이런 암시성을 갖고 있다.
당나라 때왕지환(王之涣)의 《관작루에 올라(登鹳雀楼)》는 보다 심원한 암시성을 갖고있다.
白日依山尽,석양은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黄河入海流。황하는 출렁출렁 바다로 가네.
欲穷千里目,천리밖 먼곳까지 멀리 보려면
更上一层楼。여기서 한다락 더 올라야 하리.
조선조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는 교훈성이 강한 주제가 너무 로출되여 암시성이 결여된 시조라고 할수 있다. 한마디로 여운이 결여된 시조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되
오르고 또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登乐游原
李商隐
向晚意不适,저녁무렵 심기가 언짢아
驱车登古原。수레 몰고 언덕에 올랐네
夕阳无限好,석양은 더없이 아름다우나
只是近黄昏。애오라지 황혼에 가까웠네.
풀을 소재로 한 상징시들의 사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당나라시기의 백거의 《赋得古原草送别》나오는 풀을 보기로 하자.
离离原上草, 무성한 초원의 풀들은
一岁一枯荣。 해마다 시들었다가 푸르러지누나.
野火烧不尽,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여
春风吹又生。 봄바람 불면 다시 소생하누나
远芳侵古道, 멀리로 들꽃들이 옛날의 행길을 범하였고
晴翠接荒城。 푸르름은 황페해진 성곽에까지 이어졌구나.
又送王孙去, 또다시 친구들을 전송하니
萋萋满别情。 처연히 석별의 정이 갈마드누나.
미국의 랑만파시인 휘트맨의 《풀잎집》에서 풀잎은 평범하고도 완강한 생명을 상징했다.한국 참여파시인 김수영의 《풀》에서 풀은 민중을 상징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에서는 “바람”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압제에 기민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민중의 끈질긴 삶을 잡초에 비유하여 쓴 상징성이 다분한 시이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은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폭폭》전문
독립운동의 투사인 한용운(1879—1944)의 《님의 침묵》은 다분히 상징성을 갖고 있는 시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치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 같은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여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뒤걸음쳐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는 미리 떠날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을 아는 까닭에 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1926년) 전문
한국 당대 시인 황송문(1941— )의 시《간장》역시 상징성이 다분한 시이다.
우리 조용히 썩기로 해요
우리 기꺼이 죽기로 해요
토속의 항아리 가득히 고여
삭아 내린 뒤에
맛으로 살아나는 삶
우리 익어서 살기로 해요
안으로 달여지는 삶
뿌리 깊은 맛으로
은근히 사랑을 맛들게 해요
정겹게 읽어가자면
꽃답게 썩어가자면
속맛이 우러날 때까지는
속 삭는 아픔도 크겠지요.
잦아드는 짠맛이
일어나는 단맛으로
우러날 때까지
우리 곱게 곱게 썩기로 해요
우리 깊이 깊이 익기로 해요
죽음보다 깊이 잠들었다가
다시 깨여나는
부활의 轮回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인생이게 해요
사랑 위해 다시 사는
再生이게 해요.
—황송문 《간장》전문
이 시는 의인화수법을 동원하여 “간장”을 시적화자로 내세웠다. “죽음과 재생(death and reberth)”이라는 신화적원형의 암시를 통하여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한 상징시이다. 맛있는 간장이 만들어지는 지는 과정으로 참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암시한 시이다.
중국조선족 할빈의 시인 리삼월의 《접목》은 아주 상징성이 다분한 시이다.
접목의 아픔을 참고
먼 이웃
남의
뿌리에서
모지름을 쓰면서 자랐다
이곳 토질에 맞게
이곳 비에 맞춤하게
이곳 바람에 어울리게
잎을 돋치고
꽃을 피우고
이제는 접목한 자리에
든든한 테를 둘렀거니
큰 바람 두렵지 않고
한마당 나무들과도 정이 들고
열매도 한 아름 안고
그러나 허리를 잘리여
옮겨오던 그날의 칼소리
가끔 메아리로 되돌아오면
기억은 아직도 아프다.
이 시의 상징성은 아주 거대하다. 즉 조선족 같은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신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작이다. 사과배의 상징성을 닮은 시이다.
쏘련의 코리키의 산문시 《해연의 노래》, 미국작가 해밍웨이의 중편소설 《로인과 바다》, 우광훈의 단편소설 《메리의 죽음》, 메테를링크의 《파랑새》, 이오네스코의 《서우》등은 모두 상징형문학에 속한다.
《海燕之歌》
高尔基
在苍茫的大海上,狂风卷集着乌云。在乌云和大海之间,海燕像黑色的闪电,在高傲的飞翔。
一会儿翅膀碰着波浪,一会儿箭一般地直冲向乌云,它叫喊着,——就在这鸟儿勇敢的叫喊声里,乌云听出了欢乐。
在这叫喊声里——充满着对暴风雨的渴望!在这叫喊声里,乌云听出了愤怒的力量、热情的火焰和胜利的信心。
海鸥在暴风雨来临之前呻吟着,——呻吟着,它们在大海上飞窜,想把自己对暴风雨的恐惧,掩藏到大海深处。
海鸭也在呻吟着,——它们这些海鸭啊,享受不了生活的战斗的欢乐:轰隆隆的雷声就把它们吓坏了。
蠢笨的企鹅,胆怯地把肥胖的身体躲藏到悬崖底下……只有那高傲的海燕,勇敢地,自由自在的,在泛起白沫的大海上飞翔!
乌云越来越暗,越来越低,向海面直压下来,而海燕一边歌唱,一边冲向高空,去迎接那雷声。
雷声轰响。波浪在愤怒的飞沫中呼叫,跟狂风争鸣。看吧,狂风紧紧抱起一层层巨浪,恶狠狠地把它们甩到悬崖上,把这些大块的翡翠摔成尘雾和碎末。
海燕叫喊着,飞翔着,像黑色的闪电,箭一般地穿过乌云,翅膀掠起波浪的飞沫。
看吧,它飞舞着,像个精灵,——高傲的、黑色的暴风雨的精灵,——它在大笑,它又在号叫……它笑些乌云,它因为欢乐而号叫!
这个敏感的精灵,——它从雷声的震怒里,早就听出了困乏,它深信,乌云遮不住太阳,——是的,遮不住的!
狂风吼叫……雷声轰响……
一堆堆乌云,像青色的火焰,在无底在大海上燃烧。大海抓住闪电的箭光,把它们熄灭在自己的深渊里。这些闪电的影子,活像一条条火蛇,在大海里蜿蜒游动,一晃就消失了。
暴风雨!暴风雨就要来啦!
这是勇敢的海燕,在怒吼的大海上,在闪电中间,高傲的飞翔;这是胜利的预言家在叫喊:
让暴风雨来得更猛烈些吧!
4.현대에서의 문학유형의 발전과 변화
상징주의 문학은 19세기 나타나서 모더니즘문학의 선성을 울려주었다. 상징주의의 이 선색을 이어서 20세기에 이르러서 구미에서는 후기상징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실존주의, 부조리극, 신소설파 등 문학류파들이 일어나서 모더니즘의 큰 흐름을 이루었다.
후기상징주의: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오지리 1897年에 고독하고 적막한 심정으로 안고 유럽 각국을 편답하였다. 그 과정에서 톨스토이를 만나 뵈었고 조각가 로댕의 비서 노릇도 해보았고, 프랑스상징주의시문학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豹
-在巴黎动物园
里尔克
它的目光被那走不完的铁栏 지나치는 창살 때문에 표범의 눈은 지쳐
缠得这般疲倦,什么也不能收留。더는 보이는것이 없더라.
它好像只有千条的铁栏杆, 오직 수천의 창살만이 있는듯 하여
千条的铁栏后便没有宇宙。 수천의 창살 뒤에 세계는 없는것 같구나.
强韧的脚步迈着柔软的步容, 아주 작은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는
步容在这极小的圈中旋转, 탄력 있으며 억세고 소리도 나지 않는 걸음걸이는
仿佛力之舞围绕着一个中心, 크나큰 의지가 마비되여 서 있는
在中心一个伟大的意志昏眩。 하나의 중심을 도는 힘의 무용과도 같구나
只有时眼帘无声地撩起。—— 오직 때로 눈동자의 장막이 소리도 없이
于是有一幅图像浸入, 열린다— 그러면 한가지 모습이 비쳐들어
通过四肢紧张的静寂—— 고요한 사지의 긴장한 뚫고 지나간다
在心中化为乌有。 허나 다음에는 근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릴케의 이 시는 1903년에 발표되였다가 후에 《신 시집(新诗集)》에 수록되여 “영물시(咏物诗)”의 대표작으로 평가되었으며 아울러 릴케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가작으로 평가 받았다. 이 시에 대해 오그스트 스탈은 “자연에서의 삶의 공간의 상실 혹은 그 위협은 세기가 교체할 무렵의 하나의 중요한 주제였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 시는 동물원의 철창속에 갇힌 표범이라는 이 이미지를 통하여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의 미망(迷惘), 방황과 고민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암시하였다고 해석할수 있다.
벨지크의 극작가 메테를링크(1862-1949)의 연극 《파랑새》는 여섯살, 일곱살배기 남매가 꿈속에서 파랑새를 잡으러 떠나서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파랑새를 잡는 과정을 통하여 인류가 행복을 찾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다.
독일의 극작가 호프트만(1862-1946)의 《빠져버린 종》은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종을 만드는 헤인리시는 큰 구리종을 만들어 산꼭대기우에 운반하여 가다가 수레의 축이 끊어지는 바람에 큰 종이 산아래의 호수에 굴러 떨어져 내려간다. 헤인리시가 너무 피로하여 산속에 쓰러져 있는데 산속의 녀요정인 로덴드란에게 구원을 받고 산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리하여 헤인리시는 산아래의 세속사회를 벗어나서 산속의 선경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헤인리시는 로덴드란으로부터 사랑의 힘을 얻게 되며 따라서 그로 인해 다시 큰 종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산아래의 세속사회에서는 헤인리시를 가만히 놔두려고 하지 않는다. 목사와 학교의 교장 등은 분분히 산속에 찾아와서는 헤인리시더러 산에서 내려가라고 권유하고, 안해도 거듭 찾아와서 남편과 아버지의 책임을 리행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리하여 헤인리시의 내심은 극단적인 모순속에 휩싸이게 된다. 즉 산속은 신화세계이고 산아래는 따분한 세속사회이고, 산속에는 아름다운 녀요정 로덴드란이 있다면 산아래에는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은 본처 마그리트가 있다. 그는 산속에서 로덴드란과 계속 살려고 하지만 산아래의 세속사회와 마누라는 그로 하여금 안정을 찾을수 없게 한다. 나중에 그는 자기는 산속의 신화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또한 따분한 산아래의 마누라와 세속생활에로 복귀하기는 싫어서 마약을 먹고 자기의 생명을 끝내 버린다. 세상을 떠날때 그는 “태양이 떠오른다, 자연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부르짖는다. 자연속에서 그는 구원을 받게 된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경력과 상당히 비슷하다.
이미지즘
이미지즘은 191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나타난 시창작에서의 새로운 추구를 보여준 모더니즘문학류파이다. 1930년이래 아세아 각국에 많은 영향을 일으켰다. 이미지즘은 중국, 일본 등 나라의 전통시에서 영향을 받아서 스스로 자기의 체계를 건립한 후에 다시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양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친 시문학사조이다. 이 류파의 영향을 가장 깊이 받은 이들로는 중국조선족시단의 님영전, 최룡관, 김파 등이다. 남영전의 토템시라고는 하나 실제상에서는 동식물이나 자연대상을 이지화한 이미지시이고 영물시(咏物诗)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표현주의
표현주의는 사실주의의 모방, 재현의 원칙을 반대하면서 변형, 과장 등 표현수법을 광범위하게 창작에서 운용하였다.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형기》는 변형의 수법을 운용하여 현대문명 속에서의 인간관계의 소외의 주제를 다루었다.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는 1924년에 프랑스에서 나타나서 세계를 풍미했던 문예사조이다. 초현실주의는 문학은 인간의 이성을 표현하거나 재현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에 속하는 꿈, 환각, 광기 같은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르통의 “자동기술법”, 최룡관 등이 이 영향을 가장 많아 받았다.
아래에 한국 조향의 초현실주의 시 《바다의 층계》를 소개한다.
낡은 아코디온은 대화를 관뒀읍니다.
—여보세요!
<뽄뽄다리야>
<마주르카>
<디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 《바다의 층계》전문
마치 퀴즈게임을 하고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초현실주의 시에서의 돌발적 이미지의 결합에 의한 시작이다. 객관성있게 읽혀질수 없는 시이다. 시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있어서 이런 식의 “겉멋”에 도취하는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디젤엔진에 피는 들국화”라면 물 대신 석유를 먹고 피여나는 들국화를 말하는 것일까?아무리 시가 일상적 문법과 상식과 사리를 초월할수 있다고 해도, 이런 스타일로 일관하는것은 시인 자신에게도 피곤한 일일 뿐더러 독자에게 더 더욱 피로감을 주는 일이다. 시 역시 일상적인 어법과 론리성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일수록 객관적사실에 근거한 소재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연변의 최룡관의 초현실주의 추종하여 쓴 시 《상관물》을 보기로 하자.
괴짜괴짜괴짜
보들레르 몸에다 랭보옷을 입고
말라르메 안경에다 발레리 지팡이를 짚고
로르카 장갑에다 준자부로 신을 신고
뚜걱뚜걱뚜것
요귀요귀요귀
하늘 천장에 돌멩이를 붙여놓고
함박꽃네 집이랬지
어젯밤 불과 물이 한 침대에서 꼬옥 끌어안고
잤다고 그랬지
호랑이가 이끼한테 시집을 간다고 그랬지
산파산파산파
물속에 들어가 멧새를 낳는
풀잎속에 들어가 궁궐을 지어내오는
으하하 미쳐미쳐서 미쳐 사는 꽃이야
—최룡관 《상관물》전문
실존주의
사르트르(1905-1980)의 실존주의 철학의 “실존관”을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1. 인간의 실존이 인간의 본질에 앞선다
인간 실존과 인간의 본질의 관계에 있어서 사르트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의 경우 그 개체적, 실존적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본질도 없으며, 그 현실적인 존재자체가 철학의 기본이고 출발점이라고 인정했다.
인간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것은 사람은 먼저 존재하면서 그 자신을 만나고 또 세계에 나타나는것을 뜻하며 그 다음에야 자기의 본질을 규정할수 있음을 말한다.
2. “자유로운 선택”
이른바 “자유로운 선택”이란 바로 자유를 뜻하는것이다. 즉 인간이행동할때 절대적인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사르트르는 사람이란 원래 자유로운것으로서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은 모두 자유라고 인정했다. 사람들이 흔히 타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것은 자유를 상실하는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유를 상실한 인간의 실존은 진정한 인간의 실존이라고 할수 없으며, 적어도 불충분하거나 병적인 실존이라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실존적가치와 의의는 행동의 자유로운 선택에 있다고 보았다.
3. 세계는 부조리로 점철되여 황당하고 인생은 고통스럽다
무신론적인 실존주의로서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세계는 부조리로 점철되여 황당하고 인생은 고통스럽다”고 인정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들의 행동은 자유로운 선택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방향이나 원칙성이 없다는것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할때 다른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그것에 추종할 가능성도 배체할수 없으므로 세상은 황당하고 인생은 고달플수밖에 없다는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모두 개개의 독립적인 실존체이므로 내가 존재하면 너도 존재하고, 나의 자융에 맞서는것이 너의 자유이다. 마치도 모두 겨울을 나는 고슴도치처럼 자기의 리익을 지키는 송곳같은 가시털을 빳빳이 치켜세우고 살아가기 때문에 마찰과 충돌밖에 없다는것이다. 그런데 추운 겨울을 나려면 각자의 온기로 서로 몸을 덥힐 필요가 있기에 서로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지만 너무 밀착하면 서로 송곳 같은 가시에 찔리기에 일정한 거리를를 유지해야만 한다는것이다. 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거리감이 서양인의 계약정신으로 표현되였다는것이다.
따라서 량심이나 도덕, 륜리 같은것은 모두 꿀발린 거짓말에 불과하고 그 실상은 모두 대방을 먹어치우기 위한것이라는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개인이나 집단은 모두 자기의 리익을 위해 아귀다툼을 하게 되며, 따라서 세계는 부조리로 점철될수 밖에 없고, 인생은 고달플수밖에 없다는것이다.
프랑스 철학가이자 문학가인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철학에 기초한 문학창작이다. 사르트르의 실존관, 사르트르의 《담벽》, 카뮈《이방인》, 보바르《초대받은 여자》등을 소개한다. 실존주의는 전세계쩍인 영향을 끼쳤으며 중국조선족문학에서도 리혜선의 단편소설 《병재씨네 빨래줄》,《서로의 감옥》같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이 아주 깊다고 볼 수 있다.
부조리극
부조리극은 제2차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전통 희곡과는 완전히 다른 신형의 희곡이다. 프랑스에서 나타나서 구미 각국에 전파되여 한때 크게 류행하였다. 한어에서는 荒诞派戏剧이라고 번역하였다. 사리와 상식에 맞지 않고, 부조리하고 론리에 맞지 않다는 뜻이 내포되여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오네스코의 《서우》,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등이다. 《서우(犀牛)》는 인간의 소외(异化) 문제를 주제로 다루었다.
문학작품의 기본 장르
문학작품의 기본 장르는 시, 소설, 극본, 산문과 실기 등 기본 장르로 이루어졌다.
1) 시
시는 시어가 함축적이고, 세련되고 구조가 조약적이고 리듬과 운률이 있고 고도로 생활을 집중적으로 반영하고, 사상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장르이다. 시는 서정시와 서사시, 정형시와 자유시 등으로 나뉜다. 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귀납할 수 있다. 서정시의 근본은 정감의 표현이 있다.
첫째, 시의 함축성과 세련성
이 특점은 고도로 개괄된 예술형상, 극히 세련된 시어, 가장 집중적으로 사회생활과 사상감정을 표달한다.
웽그리아 시인 뻬떼피의 《자유》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生命诚可贵,
爱情价更高。
若为自由故,
两者皆可抛。
일본의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이다. 5.7.5 음보로서 모두 17개 음절도 이루어 졌다. 이를테면 마츠오바쇼의 하이쿠는 이러하다.
오랜 못이여 5
개구리 뛰여들어 7
물 치는 소리 5
한적함이여 5
바위에 스며드는 7
매미의 노래 5
조선의 시조는 3장6구로 되여 있다. 1391년 정몽주와 리방원이 서로 주고받았다는 《하여가》와 《단심가》는 이러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초장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중장
우리도 이와 같이 백년까지 하리라 종장
-리방원 《하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초장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야 있고 없고 중장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종장
-정몽주 《단심가》
아래의 시조는 白湖 림제(林悌)가 황진이의 무덤에 찾아가 술을 따라놓고 읊은 시라고 한다.
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 듯 누엇난다
紅顔(홍안)을 어듸 두고 白骨만 뭇쳤난다
盞 잡아 勸할 이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그의 행동이 양반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벼슬과 양반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던진 그의 자유로움과 낭만은 생각할수록 깨소금 맛이다. 그의 랑만적인 시가 또 있다.
강계의 명기 한우(寒雨)와 주고 받은 시조가 그것이다. 어느 비오는 날 임제가 기생 한우를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고 한다.
北天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山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그러자 기생 한우(寒雨)가 이에 화답하여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다고 한다.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자리
鴛鴦枕 翡翠衾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이처럼 시조는 남녀간의 풍류스러운 정사에도 많이 활용되였음을 알수 있다.
중국에는 4언, 5언, 6언,7언 시가 있고 절구와 률시가 있다.
关关雎鸠,在河之洲。
窈窕枢纽,君子好逑。
-《诗经》
왕지환의 《관작루에 오르며(登鹳雀楼)》는 다음과 같은 오언절구로 되여 있다.
白日依山尽,
黄河入海流。
欲穷千里目,
更上一层楼。
-王之涣《登鹳雀楼》
清明时节雨纷纷,
路上行人欲断魂。
借问酒家何处有,
牧童遥指杏花村。
-杜牧《清明》
시가의 절주성
두보의 《잡시 지이(杂诗其二)》는 리듬과 시률이 가장 완정한 칠언률시이다. 자수(음보), 평측, 압운, 대구, 기승전결이 잘 지켜졌다.
两个黄鹂鸣翠柳, →기
一行白鹭上青天。 →승
窗含秦岭千秋雪, →전
门泊东吴万里船。 →결
석화의 시 《연변·1》을 소개 한다
이른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여나는 곳이다
사래긴 밭을 갈면 가끔씩
오랜옛말이 기와 조각에 묻어나오고
용드레우물가에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다
할아버지는 마을 뒤산에
낮은 언덕으로 누워계시고
해살이 유리창에 반짝이는 교실에서
우리아이들은 공부가 한창이다
백두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 천리를 흘러
내가 지금 자랑스러운
여기가 연변이다
—석화 《연변·1》전문
석화의 이 시는진달래, 용드래우물, 버드나무, 작고한 할아버지의 산소, 백두산, 두만강 등 연변의 가장 대표적인 자연인문형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자기의 뜨거운 감정을 담아 쓴시이다.
소설
소설은 서사문학의 한 양식이다.
소설은 일종 인물형상을 부각하는데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서술하는 문학양식이다. 편폭의 각도에서 소설은 장편, 중편, 단편, 꽁트로 구분되며,언어문체의 각도에서는 문언소설과 백화소설로 구분된다. 소설의 기본특징은 세밀한 인물형상부각, 완정한 이야기의 서술, 구체적이고 충분한 환경묘사 등이다.
첫째 인물성격묘사 (동키호테, 햄리트. 쏘렐, 아큐 등)
둘째, 완전하고 복잡하고 스토리
세째, 구체적으로 충분한 환경묘사
극본
극본은 주로 인물의 대사를 수단으로 하여 모순과 갈등을 집중적으로 반영하는 문학장르이다. 극본은 비극, 희극, 정극으로 나뉘고 장과 막의 작과 많은 의해 단만극과 장막극으로 나뉜다. 극본의 가장 큰 특점은 현실생활을 농축적으로 반영하고, 모순충돌을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인물의 대사로 극의 동작을 추진시키는 것이다.
산문과 실기문학
산문
광의적인 산문과 협의적인 산문이 있다. 광의적인 산문은 시를 제외한 모든 문학장를 가리키고, 협의적인 산문은 바로 문학적의의상에서의 산문을 가리키는데, 시와 소설 그리고 극본과 병렬된 일종 문학의 양식이다.
협의적산문에는 서정산문, 서사산문, 철리산문, 잡문, 기행 등이 포함되여 있다. 문학산문은 그 제재범위가 광범위하고 구성이 령활하고 진실한 감수와 처지, 경력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이다. 아래에 송나라 때 주돈의의 산문 《애련설》을 소개한다.
爱莲说
周敦颐
水陆草木之花,可爱者甚蕃。晋陶渊明独爱菊,自李唐以来,世人甚爱牡丹。
물과 뭍에 사는 꽃들중에 사랑할만한 꽃이 심히 많다. 진나라 때의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 당나라 이래 세상사람들은 모란꽃을 심히 사랑하고 있다.
予独爱莲之出於淤泥而不染,濯清莲而不妖,中通外直,不蔓不枝,香远益清,亭亭净植,可远观而不可亵玩焉。
나는 홀로 련꽃이 진흙감탕에서 돋아나와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련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통했고, 겉은 곧으며, 넝쿨지지 않고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정정하게 깨끗이 서있고, 멀리서 바라볼수 있으되 더럽히거나 가지고 놀수 없음을 사랑한다.
予谓:“菊,花之隐逸者也;牡丹,花之富贵者也;莲,花之君子也。”
나는 국화는 꽃의 은일한 자요, 련꽃은 꽃중의 군자이라고 생각한다.
噫!菊之爱,陶后鲜有闻;莲之爱,同于者何人?牡丹之爱,宜乎众矣。
아, 국화를 사랑함은 도(陶) 이후에 들림이 있음이 드물고, 련꽃을 사랑함이 나와 같은 이가 몇사람이나 되느뇨? 모란꽃을 사랑함은 많음이 마땅하도다.
渔夫辞
(屈原, 朱熹《楚辞集注》)
초사( 楚辭 )한나라 말기의 학자 유향(劉向)이 편집한 시가 총집. 전16권.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인 송옥(宋玉)· 경차(景差)의 작품 및 한대의 작가와 자작 1편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후한의 왕일(王逸)이 자작 1편을 더하여 전17권이 되었다. 대표적 주석서로 홍흥조(洪興祖)의 《초사보주(楚辭補註)》 17권, 주희(朱熹)의 《초사집주(楚辭集註)》 8권 등이 있다.
“入世”와 ”出世”의 량난(两难) 의 선택속에서 수천년 동안 살아온 동양지식인들에게 가장 감명을 주는 작품이다
屈原既放,游於江潭,行吟泽畔,颜色憔悴,形容枯槁。
굴원이 죄 없이 추방을 당해 강과 못 사이를 쏘다니고, 연못가 거닐며 슬픔 노래 읊조리니 얼굴색은 초췌하고, 형용은 비쩍 말라 야위었더라.
渔夫见而问之曰:“子非三闾大夫与?何故至於斯?”
어부가 이를 보고 물어 말하길,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父) 아니신가요? 이런 곳엘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屈原曰:“举世皆浊,我独清;众人皆醉,我独醒,所以见放。”
굴원이 대답하여 말을 하기를, "온 세상 모두가 흐려 있는데, 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했으며, 뭇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은 정신 깨어 있어서 그만 이렇게 추방당한 거라오."
渔夫曰:“圣人不凝滞於物,而能与世推移。世人皆浊,何不淈(gu, 흐리게 할 굴)其泥而扬其波?众人皆醉, 何不餔其槽而歠(chuo, 들이마시다)其醨(싱거운 술)? 何故深思高举, 自令放为?”
어부가 이 말 듣고 말을 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막힘이 없어 세상과 추이(推移)를 같이 한다오. 세상 사람 모두가 흐려 있다면 어째서 진흙물 흙탕질을 쳐 그 물결 더 높이 일으키질 않으며. 뭇 사람 모두가 취해 있다면 그 술 지게미 배불리 먹고 박주(薄酒)나마 마셔 두지 않고서 어째서 깊이 생각 높이 행동해 스스로 추방을 불러 왔나요?"
屈原曰:“吾闻之, 新沐者,必振衣。安能以身之察察,受之汶汶者乎?宁赴湘流,葬於江鱼之腹中。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尘埃乎?”
굴원이 이 말 듣고 다시 말하기를 "내 일찍 이런 말 들은 적이 있다오. 새로 머리 감은 이는 갓 먼지 털어 쓰고, 새로 몸을 닦은 이는 옷을 털어 입는다고, 그러니 어찌 이 깨끗한 내 몸으로 저 더러움을 받을 수 있으리요? 차라리 상수(湘水) 물가로 달려 가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이 희고 깨끗한 내 몸으로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 쓸 수 있으리요?"
渔夫莞尔而笑,鼓而去,乃歌曰:“沧浪之水清兮,可以吾濯缨; 沧浪之水浊兮,可以濯吾足。”遂去,不复与言。
어부가 듣고서 빙그레 웃고는 돛대를 올리며 가면서 노래하길
“창랑의 물결이 맑을 때라면 이 내 갓끈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결이 흐릴 때라면 이 내 발이나 씻어보리라.”마침내 가 버리곤 말이 없구나.
실기
실기에는 전기문학, 보고문학, 실록 등이 포함되여 있다. 보고문학의 적시성, 실록성, 문학성 등을 그 특성으로 꼽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