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이십칙(二十則)
대역량인(大力量人) 큰 능력을, 가진 사람.
본칙(本則) 역(譯)
송원숭악 화상이 말했다.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가?
또 말했다.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혀에 있지 않다. 松源和尚云, 大力量人, 因甚抬腳不起. 又云, 開口不在舌頭上.
평창(評唱) 역(譯)
무문이 말했다. 송원은 창자를 꺼내고 뱃속을 뒤집어 보였다 하겠으나 다만 받아들인 사람이 없을 뿐이다. 설령 곧바로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무문의 처소에 와서 아프게 몽둥이를 맞는 것이 좋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진금(眞金)인지 알아보려면 불 속에 넣어봐야 한다. 無門曰 松源可謂, 傾腸倒腹, 只是欠人承當. 縱饒直下承當, 正好來無門處喫痛棒, 何故. 聻, 要識真金火裏看.
송(頌)역(譯)
게송으로 읊다. 다리 들어 향수해(香水海) 밟아 뒤집고 머리 숙여 사선천(四禪天)을 내려다본다. 이 한 개의 몸뚱이를 둘 곳 없으니 청컨대 나머지 한 구절을 이어주게나. 頌曰 抬腳踏翻香水海, 低頭俯視四禪天. 一箇渾身無處著, 請續一向.
사족(蛇足)
송원화상(松源和尙)은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의 송원숭악(松源崇岳) 선사를 말한다. 원래는 속가(俗家) 처사(處事)였으나 불도에 정진 수행하고 밀암함걸 선사로부터 득도(得度) 개오(開悟)한다. 송원스님은 구주(衢州) 서산사(西山寺)에서 밀암스님을 찾아뵙고 묻는 족족 대답하였는데, 밀암스님이 웃으면서 황양선(黃楊禪)이로다, 하였다. 송원스님은 뒷날 경산에서 밀암스님이 곁에 있는 스님에게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문득 크게 깨치고서 말하였다. 오늘에야 비로소 지난날 목암(木庵)스님이 '입을 벌려 말하는 것은 혓바닥에 있는 것이 아니다'하신 말씀의 뜻을 알았노라. 황양(黃楊)은 회양목인데 잘 자라나지 않는 생태를 가졌으므로 융통성(融通性)이 없고, 답답한 선수행(禪修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송원스님은 처주(處州) 용천 오씨(龍泉吳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대(蘇臺) 징조사(澄照寺)에서 개법(開法)하였고, 경원(慶元, 1195~1200) 연간에는 영종(寧宗)의 칙명으로 영은사(靈隱寺)의 주지가 되었다. 그의 가풍은 몹시 엄하였으므로 그 문하에서 큰 그릇을 이루지 못한 자는 거의 없었다.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의 사대법손(四代法孫)이다. 송원화상(松源和尙)의 실중수어(室中垂語)로 삼전어(三轉語)가 있다. 일전어(一轉語), 이전어(二轉語)는 이 공안화두(公案話頭) 본칙(本則)에 나와 있고, 삼전어(三轉語)는 명안납승인심마각하홍사부단(明眼衲僧因甚麽脚下紅絲不斷)이다. 명안납승이 무엇 때문에 다리 밑의 붉은 실을 끊지 못하는가? 이다. 송원선사가 이 세 가지 삼전어를 임종(臨終)할 때까지 답(答)을 하는 납자(衲子)를 찾았으나 의발(衣鉢)을 물려받을 제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전법제자(傳法弟子)가 없자, 탄식(歎息)하면서 유훈(遺訓)을 남겼는데, 30년 뒤에나 의발(衣鉢)을 받을 제자가 나온다고 하였는데, 30년 후에 유언(遺言) 대로 석계(石溪)라는 선승이 천자의 명을 받아 송원선사가 주지로 있었던 영은사에 주지를 하게 되었고, 송원선사 탑(塔)에서 발우와 가사를 꺼내어 들고 게(偈)로 말하기를 대유령 깊은 꼭대기에서 황매스님의 법의을 놓고 서로 다투니 부족하고 서로 양보하니, 남는구나. (大庾嶺頭 黃梅初半爭之 不足讓之有餘)라고 말했다.
내용은 오조 홍인스님이 육조 혜능에게 의발을 주어 남몰래 밤중에 강을 건너 주었으나 의발을 탐낸 혜명 수좌가 그를 추격하여 의발을 빼앗으려 한데서 나온 말이다. 즉 물질인 의발을 주고받고 해봐도 그것은 하나의 전법(傳法)의 물증(物證) 증표(證票)는 되나 실제 전법은 아니다. 부처님의 전법은 이심전심(以心傳心)에 득오처(得悟處)에 있다. 송원화상의 법을 30년 뒤에 석계선사(石溪禪師)가 받게 되었다. 공부를 다 마친 사람이 무엇 때문에 다리에 매인 붉은 실을 끊지 못하는가? 화두 고안을 석계(石溪) 선사가 깨닫고 송원선사의 법을 잇게 되었다는 선화(禪話)다. 이렇게 선문(禪門)에는 대사요한(大事了漢)이 30년 후에 나오기도 한다. 오직, 했으면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의 서장(書狀)에서 보면 몇 천명대중(千名大衆)에 눈 밝은 납자가 한 개 아니면 반개도 나올까 말까 라고 했다. 이십칙(二十則) 공안화두(公案話頭)는 도를 깨쳐 마친 대역량인(大力量人)이 무엇 때문에 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가? 일전어(一轉語)이고, 또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혀에 있지 않다. 가, 이전어(二轉語)다. 삼전어(三轉語)는 눈밝은 납승이 무엇 때문에 다리밑에 붉은 실을 끊지 못하는가? 이(明眼衲僧因甚麽脚下紅絲不斷)다. 송원선사(松源禪師)는 이 삼전어(三轉語)로 후참자(後參者)를 탁마(琢磨)를 했다고 한다. 혜개(慧開) 선사는 평창(評唱)에서 송원선사(松源禪師)가 창자까지 다 꺼내 뱃속까지 다 뒤집어 보여주었으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 딱하다고 했고 설령 누가 즉시 답을 주었다고 해도 혜개선사는 몽둥이, 찜질을, 했을 것라고 펑창 한다. 왜냐? 하면 진금(眞金) 참 쇠인지 알아보려면 시퍼렇게 달군 풀무 불 속에 넣어보면 금방 안다는 말이다. 참선공부(參禪工夫)는 구구순숙(久久純熟)하면 구구필유입처(久久必有入處)라 했다.
화옹송평(和翁頌評) 역(譯)
일을 마친 대인이 어찌 다리를 들지 못하는가? 입은 열었는데 혀는 어느 곳에 있는가? 명안 납승은 어째서 다리에 붉은 줄 끊지 못하는가? 이것이 송원선사 공안은 삼전어에 일세, 당시에 공안을 제시해도 답을 한 승이 하나도 없어서 탑전에서 삼십년 뒤에 석계가 전해 받았네.覺了大人脚不起 開口何處舌頭在 明衲豈不斷足紅, 松源公案三轉語 當提公案無答僧 塔傳石溪三十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