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沿革 ·고려태조 23年(1413)에 慶州府에 내속 ·조선말까지 內西面이라 稱하였음 ·1914년 府君廢合에따라 慶州郡 西面으로 改稱 함과동시에 19個里洞을 管割. ·1955년 慶州市제 가 施行됨에 따라 月城郡 西面으로 改稱. ·1973年 7月 1日 大統領令 第6543號에 의거 管內 11個里洞이 乾川邑으로 분리 나머지 8個里洞만을 管轄. ·1988年 12月 31日 法律 第4050號에 의하여 君名稱 慶州郡으로 改稱 現在에 이름. ·西面은 慶州郡의 西쪽단에 치우쳐 있고, 東으로 乾川邑, 西로는 永川郡 北安面, 南으로 山內面 北으로는 永川郡 古鏡面 과 接하고 있다.
▶유래
阿火里
(아화1.2.3.4리)-水利施設이 좋지 않아 農事를 짓지 못 하였으면 夏節期에 草木이 枯死될 정도로 旱害가 甚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繼續탔다하여 阿火라 稱하였다 함.
道溪里
- 善山朴氏가 마을을 開拓하여 道音이라 하였고 그후 平海 黃氏의 선비 黃以根의 號가 溪隱公이라 好學多聞하고 德望이있어 平海黃氏 中始祖가 되어 一門이 推仰하고 있으며 溪隱公이 길을 열었다 하여 道音을 道溪로 改稱하였음
泉村理
-이 마을 개척당시 뒷산에 올라 마을 形態를 보니 마을 周圍가 흡사 井戶처럼 地型이 깊고 空谷에 물이 새어나온다 하여 샘촌(泉村)이라 名하여 왔음.
棲梧里
-善山朴氏가 이마을을 開拓할 당시 梧桐이 많은 것을 보고 民가 洞梧가 有實에 將棲鳳이라 하며 살아왔다. 그후 果然 어느날 鳳이 날아와서 梧桐가지에 앉아 울고갔다하여 洞名을 棲梧라 하였다함.
深谷里
-이마을 改拓당시 深室이라 하였고 임진왜란을 피해온 晋州河氏 景賢이란 선비가 골자기가 깊다하여 深谷이라 改稱하여 現在에 이름
道里(1.2리)-이 마을 개척당시 深谷이라 하였고 1914년 府郡廢合時 道里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름
舍羅里
-約1200年前 密陽孫氏가 이마을을 개척 마을이 繁昌하라고 舍羅谷이라 하였으며 그후 1914年 行政 舍羅里라 改稱함
雲臺里
(운대1.2리)-군실/군곡(裙谷)(운대1리)연대는 확실히 알수 없으나 옛날 月城金氏가 이마을을 開拓할 때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용바위산의 모습이 옛여인들이 입던 한복의 바지처럼 생겼다하여 洞名을 군실 또는 裙谷이라 칭했다.
-부운/운곡/운대(운대2리)
浮雲臺 밑에 있는 마을로 新羅 善德(일설에는 眞德)여왕이 봉황이 날아들것같은 이곳의 산세와 그 아래 맑은 호수의 아름다움을 듣고 유람차 친히행차하시어 하루를 즐기셨다하며 뒷날이를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앞산에 浮雲臺라는 연꽃 무늬의 받침대를 받친 기념대를 세웠으며 또 여왕께서 행차하실때는 기이하게도 채색구름이 아름답게 떠있었기 때문에 浮雲臺라 부르기도 하여 동명을 부운(浮雲)또는 운곡(雲谷)이라 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