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연>
자연밥상이라는 말이 딱 맞다. 전체적으로 하나도 거슬림이 없이 입과 혀와 맘에 앵긴다. 점심만 하고, 예약이 필수라는 점이 부담스러운 것만 빼고 음식은 다 좋다.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오만한 경영이 오히려 보기 좋고 신뢰가 된다.
1.식당얼개
상호: 청자연
주소: 전남 장성군 황룡면 구석길 53-2(필암리 722-2)
전화: 061) 394-9909
주요음식: 한정식, 떡갈비
2. 먹은음식: 자연밥상 11,000원, 떡갈비 3,000원
먹은날 : 2020.8.13.점심
3. 맛보기
음식에서부터 실내장식과 운영방식까지 거슬리는 것이 없다. 세련되고 전문화되어 있으면서 자연친화적이다. 대부분 식당에서 식탁에 얇은 비닐이나 종이를 깔아 설거지 노동력을 절약하는데, 여기는 원목 그대로의 식탁 위에 그대로 상을 차려주고 목기를 주로 써서, 대접받으며 집밥을 먹는 거 같다. 집 식탁에는 유리가 깔려 있는데 그마저도 없어서 더 귀족이 된 거 같다. 음식의 자연친화가 식탁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면서 거꾸로 음식으로 신뢰가 전이된다.
음식은 주로 채소류다. 정갈하고도 싱싱한 채소 반찬이 텃밭 낀 시골집에 온 느낌, 음식 하나는 자신있다는 아낙이 차린 밥상을 접하는 느낌이다. 맛도 인상과 똑같이 담백하고, 깔끔하고 개운하다.
깻잎 등 여러 채소로 전을 부쳤다. 적당히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반죽의 농도가 알맞아 딱딱하지도 처지지도 않아 식감이 잘 살아난다.
떡갈비. 1개에 3,000원, 추가 주문을 해야 한다. 사실상 대부분 채소찬이라 주문을 해서 함께 먹어야 헛헛한 느낌을 잡을 수 있다. 보통 떡갈비와 달리 냄새없이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맛이다. 부추 양념을 했다.
나물찬. 깻잎무침나물이 특히 좋다. 여린 잎에 향이 잔뜩 담겼다. 죽순무침도 좋다. 국내산 죽순 만나기 쉽지 않은데 귀한 찬이 신선한 맛을 내니 더 좋다.
감자 머우 조림, 감자와 머우가 만나는 조합은 처음이다. 머우에 고추가루 양념찬도 처음이다.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싶다. 식재료의 조합은 신기한데, 맛은 자연스럽다.
부각. 부각은 보통 간식같은 느낌을 주는데, 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두께감이 있어서 든든하기도 하다. 타지 않고 적절하게 잘 튀겨졌다.
오디 소스는 처음이다. 장성에서는 곳곳에서 오디술이나 오디청을 판다. 약간 새콤달콤한 맛이 매우 신선하고 청량감을 준다. 남은 소스는 떡과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린다.
이렇게 먹다보니 프랑스 사람들 바케트빵 먹는 것이 떠오른다. 소스가 그릇에 묻어 남으면 빵으로 싹싹 닦아 먹는다. 바게트 빵맛도 돋구고, 음식 절약도 한다. 숟가락보다 깨끗하게 먹을 수 있다.
한식에 오디소스는 퓨전음식이지만, 이거야말로 동서양 합작음식 아닌가. 한식의 확장이다. 먹는 방식도 좋은 것은 배워와야 한다.
깨죽은 곡식 알갱이 맛이 식감도 조화도 좋다.
*각종 떡이다. 오디 소스로 간을 하니 맛이 한층 더 났다. 기장떡 등이 유난히 쫀득거리며 혀에 앵긴다.
된장찌개. 역시 순박한 맛이 난다. 된장맛이 짜지도 쓰지도 느끼하지도 않고, 개운하고 간이 잘 맞다.
차려지는 밥은 바닥에 아주 조금 담겨 있다. 이미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밥이 아닌, 반찬에 집중해서 몸에 좋은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라는 배려다. 이 배려가 서운하면 뷔페 바에서 더 가져오면 된다.
식탁에 차려주는 찬 외에 뷔페바에 차려진 여러 음식들을 직접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갑자기 상이 잡다해지며 여러 음식들로 그득해진다. 밥도 있다. 쫀득한 찰밥에 드문드문 돔부콩 놓인 밥을 또 가져왔다. 아직도 밥심에 매달린다. 너무 많아 종류별로 다 가져오면 분명 과식이 될 거 같지만 자제하기가 쉽지 않다.
개성 있는 실내 장식이 눈길을 끈다. 잔반을 한 그릇에 모아 놓으면 1,000원을 감해준다는 공지가 붙어 있다. 음식도, 차림도 설거지도 자연친화적이다. 내 손으로 잔반, 음식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니, 먹으면서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 거 아닌가. 일석 몇 조의 아이디어인가?
4. 먹은 후
요즘은 지자체마다 지역 내 식당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책자도 발행하고, 시청 홈피에서 소개도 하고, 여행지도에 소개하기도 한다. 특정 음식이 모여 있는 거리는 해당음식거리로 지정해 특별 홍보하기도 하며, 때로는 음식 축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식당의 활성화를 도모하기도 한다.
이 식당은 이런 홍보 대상에 올라 있지 않다. 장성의 특산품을 주재료로 사용하지 않아서인가. 장성 관련 특산물은 오디 정도다. 나머지도 모두 지역 농산품이라니 장성과 관련없는 식재료는 아니지만, 특산품이라기보다 어디서나 나는 한국의 채소들이다.
채소가 모두 텃밭에서 올라온 듯한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채소들이니 장성의 음식이라기보다 한국의 음식이다. 하우스 채소가 아닌 노지 채소를 고집하는 음식 철학이 식탁에 담겨 텃밭 분위기가 나는 거 같다.
점심만 하고 모두 예약해야 하고, 1시 반 이후에는 주문을 받지 않고, 월요일은 문을 닫고 등등은 모두 새로운 운영방식이다. 특히 식당이 저녁밥을 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술안주거리로 적당하지 않은 음식에 저녁 손님이 많지 않은 차에 직원들을 쉬게 하기 위한 전략이란다. 자연 배려에 인간 배려의 식당이다.
농가 식당이 이런 대담한 경영방식을 도입한 것은 이에 호응해주는 손님이 있어 가능할 터. 일단 맛을 알아보고, 정성을 알아보는 손님들이 믿어주고 호응한 덕분에 가능한 경영방식일 것이다. 수준 높은 전라도 맛쟁이들의 지원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시골지역에 가면 농가식당이라 하여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주는 식당이 간혹 있는데, 이런 경영방식을 눈여겨보면 좋을 거 같다. -청자연'은 장성을 넘어 한국의 새로운 음식문화를 선도할 새로운 모델이라 생각된다. 건투를 빈다.
5.먹은 후에 필암서원 돌아보기
필암서원을 돌아보고 먹거나 먹고 나서 돌아볼 터. 하서 김인후 선생을 배향한 필암서원, 유네스코 등재된 전라도 유일의 서원이니 놓치지 말자.
필암서원 지척에 이렇게 근사한 맛집이 있으니 일석이조, 금상첨화다. 고마운 일이다.
필암서원은 별도로 소개한다. 아래 사진 몇 장 우선 첨부한다.
#장성맛집 #장성청자연 #자연밥상 #떡갈비정식
첫댓글 시골 밥집이 대도시 음식점을 선도하는 경영방식을 보여줍니다. 후미진 곳이 첨단을 달린다고 하겠습니다. 식단도 건강한 밥상이라 찾아갈 생각입니다. 음식만으로도 이사 가서 살고 싶은 고장입니다.
저도 그 오만함과 정연함에 깜짝 놀랐어요. 필암서원 옆 시골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야 하는데, 안에 들어가면 주차장은 제법 넓어요. 전라도는 맛으로 확보된 고객으로 운영방식 다양화도 용이하지 않은가 생각했어요. 식당이 점심만 하는 집은 처음 봤어요. 가게세가 비싸지 않은 곳에서는 이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했어요.
식탁을 짜는 것은 완주 고산의 시골밥상 생각이 났어요. 카페에도 올렸는데, 예약만으로 운영되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상이 차려지지요. 상을 짜는 것은 스타일은 다르지만 매우 자신 있고 성의 있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같아요.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집들이지요. 네, 지나는 길 있으면 들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