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스님] 여수 향일암 주지 연규스님
“지역과 함께 하면 사찰도 젊고 건강해진다”
덕문스님 은사로 출가득도
출가 후 오로지 포교 한길
끊임 없이 소통·교감하며
신도 늘리고 단결력 키워
지역사회 기여활동 ‘활발’
1년새 여수불교 변화바람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여수 향일암은 돌산도 끝자락 남해바다와 인접한 산중턱에 자리잡은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소속 사찰이다. 호남권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앙종회의원 연규스님이 지난해 6월 향일암 주지로 부임한 이후 여수사암연합회 회장까지 맡으며 향일암을 넘어 여수지역 불교계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여수 향일암 주지 연규스님은 주지 부임 1년새 활발한 지역사회 기여와 참여 활동으로 여수지역 불교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17일 여수사암연합회 회장에 향일암 주지 연규스님이 취임했다. 주지 부임 1년도 되지 않아 여수 지역내 불교계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지역사회에서 불교계를 바라보는 인식도 차츰 변화하고 있다.
연규스님은 자비나눔 성금을 기탁한 것을 비롯해 자비의 쌀 나눔과 지역사회 장학금 전달 등 활발한 지역사회와의 소통, 교감에 나섰다. 너무나 적극적이어서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향일암의 활발한 활동에 여수지역 불교계도 이에 동참하며 지난 1년 동안 여수 불교계는 상당한 변화가 찾아왔다.
당장 지역내 불교 이미지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마디로 밝고 젊은 기운이 넘친다. 여수시는 물론 관공서와 지역 인사들도 불교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다. 유서깊은 사찰과 전통사찰이 많은데도 큰 기대감이 없었던 과거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향일암 주지 연규스님이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향일암에 와서는 사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신도들을 다시 사찰로 향하게 하는 것이 급한 일이었지만, 연규스님은 주지 소임을 맡은 곳마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제일 과제로 삼아왔다. 의왕 용화사 주지로 2만기를 살 때도, 부산 해동용궁사 주지를 잠깐 맡았을 때도 그랬다.
연규스님은 “처음엔 신도들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하고 낯설어 하지만 나중에 보면 신도들이 더 많이 모이고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며 “지역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되면 신도도 늘고 신도들의 단결력도 커질 뿐만 아니라 사찰도 젊고 건강해진다”고 했다.
연규스님은 가는 곳마다 신도들을 규합하고 지역사회 활동을 늘리는 등 신선한 변화를 주도해왔다. 그런데 달라지는 분위기 만큼은 주목받지 못했다. 내세우기 보다 역할을 하는데 치중해온데다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은사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의 명성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규스님에게 ‘금수저’라는 세속적 말이 따라 붙었다. 은사 스님의 문하에서 큰 어려움 없이 소임을 맡고 사는 것처럼 여긴 탓이다. 연규스님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빙그레 웃는다. 억울함이 담겨 있는 미소다. 교구에서 역할이 필요한 소임이 맡겨지고, 또 엄격한 잣대가 주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험지에 보내지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인하기 어려우니 웃을 수밖에 없다. 늘 믿음과 신뢰로 일을 맡겨주는 은사 덕문스님의 깊은 심지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작 마주하고 있을 때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제 간의 굳은 신의가 침묵 속에 담겨있음을 느끼곤 한다.
용화사 주지 소임을 받던 날, 연규스님은 덕문스님으로부터 주지 인장과 함께 손편지를 건네받았다.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선명하다. 가람을 수호하는 주지의 책임, 신도들을 대하는 주지의 자세, 수행자로서의 신심과 원력 등을 담은 당부의 편지였다. 평생 수지해야할 가르침을 세심하게 글로써 담아주었다. 해동용궁사와 향일암에 이르기까지 그때 그 훈교를 지남으로 삼고 있다. 연규스님은 “은사 스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은 그 덕분에 더 분발하고 정진할 수 있는 것”이라며 “격을 세우지 않고 늘 편하게 대해주시는 은사 스님의 배려에 늘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연규스님은 그동안 종단을 이끌어온 세대 보다 젊은 차세대에 해당한다. 종단의 한 축인 중앙종회에 두 번째 진출한 2선 중앙종회의원이기도 하다. 그만큼 불교와 종단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가장 절실한 과제는 역시 전법 포교임을 깨닫는다. 종단과 승가의 일원으로서 25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걸어온 길 역시 전법 포교였다. 서 있는 자리와 맡고 있는 소임은 달라도 오로지 초점은 한가지였다.
그래서일까. 포교 일선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아쉽기만하다. 뭔가 역할을 하려는 사찰과 스님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불교와 사찰이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복지관에서 밥도 푸고 사찰 형편이 어렵더라도 장학금도 내놓고, 사회에 필요한 종교가 되기 위해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 합니다.” 종단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세대이기에 연규스님의 말씀이 아프게 다가온다. 연규스님은 여수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여수지역과 19교구를 넘어 종단과 한국불교 전체로 퍼져나가길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 연규스님은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덕문스님을 은사로 득도, 1999년 사미계를 수지했다. 화엄사승가대학으로 입학해 직지사승가대학에서 대교반을 마쳤다. 조계총림 송광사 선원 등지에서 안거수행한 이래 은해사 기획국장을 거쳐 운흥사에서 첫 주지 소임을 살았다. 이후 의왕 용화사, 부산 해동용궁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17대에 이어 18대 중앙종회의원으로 있다. 향일암 주지, 여수사암연합회 회장을 맡아 지역불교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