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경이라는 사람이 일이 있어 출타했다가 시냇가에서 쉬면서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는데 얼핏 들으니 누군가가 옆에서 재채기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여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러기를 여러차례 반복하여 기이하게 여기다가 그만 피곤하여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한 선비같은 원귀가 베옷을 입고 나타나 넙죽 절을 하더니 진기경에게 말했다.
제게 지극히 원통한 일이 있어 당신에게
하소연하고자 하는데 존객께선 제 소원을 들어 줄 수 있겠는지요?
진기경이 꿈 속에서 말했다.
좋소이다 어서 말해 보시오.
원귀가 말했다.
저의 성은 모씨이고 이름은 아무개이며
어느 땅에서 살았습니다.
제게는 완악한 종놈이 하나 있었는데
장차 몇째 아들에게 그를 물려주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성정이 매우 엄한지라 종놈이 이를 심히 원망하여 저의 말고삐를 잡고 가다가 저를 죽여 이곳에 묻었습니다.
제 아들은 상중에 있으면서 조석으로 제를 지내며 그 종놈에게 젯밥을 올리게 하는지라, 저는 두려워서 감히 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장차 날이 되면 탈상을 할 터인데 이날 당신이 제 아들을 보고 은밀히 이 사실을 말해 주어 제 원수를 갚고 제 유해를 수습하도록 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제 유골은 저 냇가 나무 아래에 묻혀 있는데 풀잎이 바람결을 따라 제 콧구멍으로 들어오면 갑자기 재채기가 난답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를 죽인 종놈이 모습을
말하는데 매우 자세했다.
진기경이 놀라 꿈을 깨고 일어나서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이에 나무 아래로 가서 쑥을 잡아뽑고
모래를 헤치자 과연 사람의 유해 한 구가
있었으며 풀잎이 바람을 따라 그 해골의
콧구멍에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이후에 원귀가 가르쳐 준 그날이 되어 그집을 찾아가니 상을 막 끝낸 사람이 보였다.
그는 진기경을 보더니 허겁지겁 달려나와 맞이하고는 음식을 잘 차려 극진히
대접했다.
진기경이 그에게 부친은 무슨 연고로 어디에서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하였다.
저의 망부께서는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못하셨는데 돌아가신 곳을 알지 못해
이 산에다 허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꿈에 망부께서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오늘 처음 보는 손님이 있을 터이니 대접하기를 나를 대하듯 해라 그 분께서 필시 내가 죽은 곳을 알려 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존객께서 어느 곳을 가르쳐 줄지 모르겠습니다.
진기경이 이 말을 듣곤 홀연 정신이 아득해지며 마치 꿈을 꾸고 있는듯 했다.
그 때 병풍사이에서 지금 뜰을 지나가는
자가 바로 그 종놈이오.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놈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냇가에서 들었던 말과 똑같았다.
진기경이 이에 비로소 아들의 귀에대고
그 사실을 말하자 상주는 작은 과실을 빙자해 종놈을 결박하였다.
큰 매를 치면서 심문하자 그날의 상황을
낱낱이 실토하였다.
이에 죽여서 사지를 가르고, 아버지의 유해를 냇가에서 수습하여 전에 썼던 무덤에다 장사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