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서로 주고받은 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기한은 얼마나 될까? 유통기한이 지난 마음은 폐기해야 할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 사라질까?
최근에 나는 위와 같은 물음들을 내게 던지곤 했다.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 계기는 근래에 독일어 학원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학원에는 정말 다양한 국적과 나이대의 사람들이 온다. 그리고 모두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독일어를 배운다. 누군가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누군가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독일에서 살기 위해 등등. 각자 가야 할 길이 다르다 보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 학생뿐만 아니라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 중 한 분도 이번 주를 끝으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셨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에 익숙하지 않다. 심지어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이들과 독일어로 제한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이었고, 학원 시간 외에는 만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학원에서 보내는 3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혼자 보내고 있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는 새 그들에게 많은 정을 주었는지,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계속 씁쓸한 마음이 든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인데 내가 너무 과하게 행동하고 있는 걸까? 시간 지나면 기억조차 못할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들은 나를 이처럼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떠날 때 그와 나눈 마음마저 떠나는 것일까? 한 사람이 기억에서 잊혀지면 그와 나눈 마음마저 잊혀지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어떠한 사건을 경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때는 2023년 어느 날, 어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라는 시집을 발견했다. 이 시집은 다른 시집들과 다르게 굉장히 특별한 시집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집의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편지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OO형!
우리 항상 웃으며 살아요
요즘 저도 침체기인데
형도 침체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날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형!
우리 항상 웃으며 살아요 ^_^
200X.X.XX
형 생일 날에
서로가 침체기였던 시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시집에다가 편지를 적어 선물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마음으로 충만한 시집이었다. 하지만 이 시집을 선물 받았던 당사자는 이 책을 중고서점에 팔았다. 맨 앞에 있는 편지조차 떼어놓지 않은 채.
오직 자신만을 위한 마음이 담겨있는 책을 중고서점에 내놓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한때는 친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까운 사이가 아니게 된 걸까?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하여 크게 다투어 원수지간이 된 것일까?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나서 이 시집을 볼 때마다 그가 떠올라 슬픔을 견딜 수 없어 처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로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영원히 알 수 없다. 다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단 한 사람을 향했던 누군가의 마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 마음은 마치 기형도 시인의 표현처럼 빈집에 홀로 가엾게 갇힌 것만 같았다. (기형도-<빈집>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나는 홀로 남겨진 그 책을 그대로 두고 올 수 없어서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와 씁쓸한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다가 <재앙스러운 사랑>이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용암물이 머리 위로 내려올 때
으스러져라 서로를 껴안는 한 남녀;
그 속에 죽음도 공것으로 녹아내리고
필사적인 사랑은 폼페이의 돌에
목의 힘줄까지 불끈 돋은
벗은 생(生)을 정지시켜 놓았구나
...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아무리 하기 힘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화산암 속에서든 얼음 속에서든
하얀 김처럼 남아 있으리라
한 남녀의 필사적인 사랑은 그들의 삶을 바꿔놓지 못했다. 폼페이 화산 폭발은 그들의 사랑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생(生)을 정지시킨다. 자연 앞에서, 생(生) 앞에서, 불행과 부조리 앞에서 사랑은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황지우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아무리 하기 힘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화산암 속에서든 얼음 속에서든 하얀 김처럼 남아있다고.
그리고 며칠 전에 이 시를 다시 읽었을 때, 황지우가 말하는 ‘사랑’을 내가 생각했던 ‘마음’으로 바꿔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에 편지를 적은 사람의 마음은 더 이상 원래의 수신자에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제는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생각을 정리한 뒤 다이어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한 마음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영원히 남는다. 누군가가 그 마음을 버리고 떠나서 그 마음이 홀로 빈집에 남아있게 되더라도. 비록 그 마음은 홀로 수많은 계절을 보내야겠지만, 누군가는 다시 그 빈집의 문을 열고 그 마음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마치 내가 이 시집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것처럼. 그러니 마음을 주고받는 일을 멈추지 말자. 아니,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더 많은 속삭임을 주고받자.
김윤형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