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계 20:13).
큰 백보좌 심판에 대해 말씀하는 계 20장 단락에서 다소 특별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이 나온다. 그것은 "바다"와 "죽은 자들"에 대한 언급으로서 나는 이 구절을 난해구절로 간주하고 해석하는 주석가를 보지는 못했으나 내가 봤을 때는 이것도 난해 구절 또는 최소한 심도 있는 해석이 많이 필요한 구절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놓고 성경적 설명을 곁들여 가며 그 진의를 파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이 말씀이 진행되는 맥락은 큰 백보좌 심판이 시작된 단계의 시점으로서 이미 하늘과 땅, 그 안의 만물들이 우주적 불에 용해되고 깨끗이 청소된 뒤이다. 그래서 기실 "액상으로서의 바다"라 할 만한 것이 이때 존재하지 않고 그 바다가 지구상의 오대양을 뜻하건 우주적 물층을 말하건 이 때는 이미 우주 대폭발의 불길에 휘발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계 20:11).
그래서, 20:11을 놓고 봤을 때는 "땅과 하늘"이 이미 사라진 차에 어떻게 20:13에서는 "바다"가 여전히 등장하며 게다가 "사망"과 "지옥"이라는 장소들 또한 등장하느냐는 사소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일단 그 부분을 해결하자면 성경에서 어떤 장소가 그 장소에 해당하는 고유 명칭을 얻는 내력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를테면 레드 씨, 홍해라는 명칭은 어디서 발원한 것인지 아는가?
주께서 아주 강력한 서풍을 돌이켜서 메뚜기들을 쓸어다가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이집트의 전 지경 내에 한 마리의 메뚜기도 없더라(출 10:19).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지도를 따라 출애굽할 때 파라오와 그 병거 군단이 홍해까지 이스라엘을 쫓아왔는데 그 이집트 군대가 바닷길로 들어갔다 통째로 수장되는 사건이 있었다. 거기서 "홍해"라는 명칭이 나왔는데 즉 그 붉다라는 의미는 플랑크톤이 이상 증식해서 발생하는 적조 현상과 상관이 없고 이집트 군대가 엄청나게 거기 빠져 죽었기 때문에 남은 이름인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홍해라는 명칭 이전에 홍해를 갈대 바다라 부르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갈대로 만든 배들이 그 바다를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갈대바다라 하지 않고 홍해라 부르고 그것은 출애굽기의 역사적 사건 뿐 아니라 우주적 희생제(그리스도의 대속)와도 상관이 있어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피를 흘리시고 그 피를 모두어 갖고 올라가시면서 우주적 홍해, 곧 깊음은 붉게 채색이 되었다.
내가 보니,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그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숫자에 대하여 이긴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섰더라(계 15:2).
불로 뒤섞인(붉은 색: 핏빛) 유리 바다(절대 0도로 얼어붙은 우주적 빙판)가 북극성 방향 위에 존재하는데 성경은 그것을 바다라 부른다. 액면 그대로 15:2에서 그 장소를 규정하자면 "붉은 색이 우러나는 스케이트장 같은 빙판"이라 불러야 맞겠지만 성경은 그래도 "바다"라고 한다. 그 두터운 얼음장 밑에는 어마어마한 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바다라 일컫는 것이다.
물이 얼어붙은 빙판 자체로도 "유리" 바다라 부를 수 있다면 물이 폭발해서 증발된(H2O의 수소 대폭발) 그 남은 흔적, 공간도 바다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 20:13이 윗물을 가리키건 아랫물을 가리키건 바다가 있었던 공간, 위치를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계 1:7).
저 구절에서 위에 있는 물들과 아래 있는 물들을 구별하는 것은 우주의 위와 아래가 물로 채워져 있으며 그 중간이 우리가 아는 그 우주 공간(태양계와 항성들과 은하계와 성운들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죽은 것들은 물 아래서 형성되었고, 그곳에 거주하는 자들도 그러하도다(욥 26:5).
욥 26:5도 이 자체로서 상당한 난해 구절인데 계 20:13과 이 구절을 조합해서 같이 놓고 보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듯 하다.
첫째, 계 20:13에 나오는 바다 속의 "죽은 자들"이나 욥 26:5의 "죽은 것들", "그곳에 거주하는 자들"은 대서양이나 태평양, 지중해를 건너다가 빠져 죽은 대항해시대 군인이나 선원들, 또는 2004년 동남아시아 쓰나미에 휩쓸려 죽은 사망자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 20:13에서 바다에 있던 "죽은 자들"은 사망과 지옥에 있던 "죽은 자들"과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교리는 사람이 죽으면 땅 밑의 지옥이라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고 사람의 혼이 그 어떤 바다로 가는 게 아니다. 망자의 혼이 여러분 머리 위에 있는 우주적 깊음으로 가지 않고 아랫물로 가는 것도 아니며 오대양의 어느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도 않는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의 혼은 정확히 지옥으로 간다.
따라서 이번 경우의 죽은 자들은 죽은 사람들은 아닌 것이 맞다. 그렇다면 어떤 자들인가? 자기들의 "행위"에 근거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보면(계 20:13) 이 죽은 자들은 사람은 아니지만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 존재들이다. 즉, 사람과 같은 인격체, 마귀나 그의 천사들, 악령들과 같은 개성을 가진 인격체들이며 그들은 육체를 가진 적이 있었고 그 몸으로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할 수 있었던 자들이다.
여기에 대해서 <정설>을 특정해서 가르칠 수 없으나 마귀의 편에 가담해 있는 타락한 영적 존재들 중에 어떤 것들은 저 바다라는 곳에 들어가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세상에 놓여서 돌아다니면서 인간에게 빙의되는 악령이 되기도 하며 또 어떤 것들은 끝없이 깊은 구렁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며 아담의 범죄와 상관없이 자기들 의지대로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영적 존재들이다.
마귀들이 주께 간청하기를 그들에게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눅 8:31).
사실 눅 8:31에서 말씀하는 깊은 곳(the deep)이라는 용어가 우주적 바다와 상관이 있고 또 동일한 단어이기도 해서 관심을 끈다.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창 1:2).
보통은 눅 8:31에서 그 마귀들이 땅 밑의 구렁(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즉 아바돈과 아폴루온이 대장으로 있는 그 구렁, 메뚜기 악령들이 장차 올라올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겁냈다고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게 해석해 왔다.
그런데, 계 20:13을 놓고 비교해 보면 미심쩍을 뿐 아니라 이것이 정말 외계의 "깊음"을 말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하는 일종의 추측이 하나 있는데 공신성이 있는 내용은 아니다.
혹시 끝없이 깊은 구렁과 외계의 "대양"(the deep)은 서로 뭔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웜홀 같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터널 같은 것으로 말이다.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 두 공간이 강한 상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을 여니, 큰 용광로의 연기 같은 연기가 구렁에서 올라오는데 해와 공기가 그 구렁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더라(계 9:2).
이 지하 세계의 연결지점인 "끝없이 깊은 구렁"은 악령들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인데 세대주의자들, 특별히 피터 럭크만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구렁이 지구의 N과 S극을 관통하는 지하 터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이 터널 안에 있는 존재들은 지구의 엄청난 자전 속도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물론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이의없이 동의하고 그럴 것이라 여긴다. 또 만유인력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자들이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기에 이 구렁이 "끝이 없다"고 불리는 것이라 본다. 그런데 좀더 생각해 보면 뭔가 허술한, 미진한 게 발견된다. 럭크만 목사님 말대로 N극과 S극을 관통하는 터널이면서 그 북쪽과 남쪽 접점에 남문, 북문의 게이트가 있어서 계 9장의 악령들이 올라올 때 그게 열리는 식이라면 글쎄.... 끝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명확하게 남쪽과 북쪽 끝이 이 터널에는 존재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진정 끝이 없으려면 터널이 출구 없이 도우넛 형태로 연결되어 있는 튜브여야 한다. 지구의 N과 S극 연결 형태는 "끝없이"를 충족시키기 곤란하다.
그래서 럭크만 목사님의 설명은 일견 타당하면서도 해석이 온전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인데, 지하에 끝없이 깊은 구렁이 존재한다고 할때 뫼비우스의 띠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것이 영적으로 윗물이나 아랫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면 이 안에 있는 악령들은 어떤 공포를 느낄지 알만하다.
우리가 말하는 우주적 윗물, 아랫물은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가 아니라 허리케인, 태풍이 항상 몰아치는 풍랑 이는 바다다. 우주적 풍랑이 얼마만큼 거대할지 상상해 보라. 여러분이 태양의 표면에서 화염들이 솟구치고 일렁이는 것을 보면 지구 같은 행성이 거기에 들어갔을 때 태풍에 휘말린 조각배처럼 보일 것을 알 것이다.
그야말로 탈수기에 들어가서 최고 강한 모드로 계속 돌려대는 것 같이, 원심분리기에 집어넣고 돌려대듯이 그 바다 속에 있는 자들은 극한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물고문의 고통을 그렇게 당하다가 지구 중심의 구렁으로 오면 그때는 불고문의 고통이 기다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쫓아내신 그 악령들은 "깊은 곳"으로 가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우주적 바다로 가느니 차라리 돼지떼에 들어가서 갈릴리 바다 속으로 빠지는 편을 택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휴거 때 셋째 하늘로 올라면서 필히 구경하게 될 그 "깊음"이라는 공간은 여간한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죽은 자들, 혹은 죽은 것들이 있고 그 마귀들과 악령들은 타이타닉 호에서 얼음 바다에 빠져 고통스럽게 죽은 그 사람들보다 더 어마어마한 고통을 수천 년 동안 받으면서 거기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 위로 탐사선을 쏘아 올려서 달이나 화성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려 하고 또 거기서 그들은 물들이 홍수를 일으키고 빠져나간 것 같은 흔적들을 찾아낸다. NASA의 과학자들이 우주 북쪽에 진짜로 무엇이 있는지 안다면 그들은 소용도 없는 우주선을 만드는 대신 무릎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할 것이다.
첫댓글 오류를 깨달았으면 고쳐야 발전할 수 있죠. 배움이 부족한 것은 채우면 됩니다. 학문을 고집으로 붙들게 되면 지식도 지혜도 녹슬게 됩니다.
제가 이제 오류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성경적 세계관으로 돌이켰으니 다른 분들에게도 그것을 권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