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민족지 어떻게 쓸 것인가
한국학협동과정 홍 혜 숙
Ⅰ. 우도에 대한 이해
우도의 위치적 특성
제주시 구자읍 우도(牛島)는 수리적으로 북위 33°29′~33°31′, 동경 126°56′~126°58′에 위치한다.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성산포항에서 북동쪽으로 약 3.8km 떨어져 있고,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두문포에서 동쪽으로 2.8km의 거리에 위치한다. 조선후기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1861)에 우도가 상하로 구분되어 현재 중앙동 북쪽은 제주목, 중앙동 남쪽은 정의현에 속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우도가 지리적으로 제주목과 정의현의 경계부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섬의 남북길이는 약 3.8km, 동서길이는 약 2.5km이다. 우도 동쪽 해안에는 부속도서인 비양도가 위치하며, 현재는 도로를 만들어 우도와 비양도를 연결하고 있다.
2. 지질환경
우도는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얕은 바다 속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나 형성된 섬이다. 이 곳은 성산 일출봉과 같이 마그마와 해수(지하수)가 만나 폭발이 발생하면서 형성된 수성화산체(hydro-vocano)에 해당한다. 천진항 동쪽 해안에서 갈대 식물화석이 산출되는 것으로 볼 때 우도는 형성당시 성산포 내해(內海)와 연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우도 내에는 소머리오름(우도봉)이 만들어낸 다양한 화산지형들이 존재한다. 이 섬에는 응회구와 그 위에 흐른 용암 그리고 용암 내에 발달되어 있는 용암동굴과 화산 분화 후 재이동되어 퇴적된 화사 쇄설물이 존재한다. 이들의 형성순서를 보면 ⓵기반암 ⓶우도응회구 ⓷분석구 ⓸재동 태프라층 ⓹해안 사구 순이다. 이러한 지질층서의 단면은 ‘톨칸이’와 ‘검멀레’해안에서 일부를 관찰할 수 있다.
3. 기후경관
전통사회에서 우도 주민들은 여름철 남동계절풍을 의식해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분립형의 이자형(二字型: 안거리, 밖거리) 가옥을 만들거나 동풍을 의식한 ‘ㄱ’ 또는 ‘ㄷ‘자형 곡가형(曲家形) 집을 만들었다. 겨울철 북서풍을 의식해 가옥배치를 남향으로 했다. 바람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방풍담(울타리)을 만들었다. 가옥을 둘러싼 돌담과 밭의 경계역할을 하는 돌담은 현무암 암괴로 만들어진 것으로, 제주도의 독특한 기후경관에 해당된다. 방풍담은 주로 외담 쌓기를 하였으며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높이까지 쌓아올렸다. 밭담을 쌓을 때 돌 사이의 구멍을 막지 않음으로써 풍압을 감소시키고 와류(渦流)를 억제시켜 돌담이 쉽게 무너지지 못했다.
⓵소머리 오름과 초지
우도봉 일명 소머리오름은 우도의 형성과 관련되어 있는 경관적, 생태적, 지형적으로 중요한 자연자원이므로 수중분화한 2중화산으로 알오름인 망동산을 가지고 있다. 우도의 저지대는 대부분 목축욕이나 농경지로 활용되면서 인위적인 간섭이 가해져 원식생이 훼손되고 있지만 우도봉은 상대적으로 원식생이 남아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도봉은 산책로, 등대, 묘지 등의 시설물과 이용으로 인해 점차 나대지역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기존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조림은 필요하다. 단지 수종 선택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⓶홍조단괴 해안
홍조단괴 해안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자연문화재로 200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해빈의 길이 약 300m, 너비 약 15m, 단괴는 퇴적암속에서 어떤 특정한 성분이 농집하여 주위보다 단단해진 덩어리를 말하며 홍조단괴는 핵을 중심으로 자라면서 조류나 파도로 인해 구르고 뒤집히기를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동심원꼴의 돌덩어리를 일컫는다.
과거 이 일대에서 신석기 유적의 가능성이 있는 패총이 주차장과 농경지에 발견되어 이에 대한 조사와 발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유적이 발굴되면 과거 이곳에서 채집되었던 어패류 등의 생물에 대한 자료가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⓷하고수동 사구
현재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하고수동의 해안은 만으로 이루어져 만의 내부에 패사가 퇴적된 사구지형으로 패사는 안비양 해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해수와 모래가 깨끗하고 수심이 낮아 점차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홍조단괴 지역과는 달리 다른 시설물들은 많지 않으나 모래의 퇴적을 막는 축대가 쌓여져 있어 장기적으로 사구의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곳 해안선도 해안도로, 숙박시설, 포구 등 각종 시설물들이 자리잡고 있고 앞으로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지고 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여 해안의 원지형 및 원식생의 변화가 심해질 것으로 판단되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⓸양벵방통 습지
식수와 농업, 가축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물을 모은다는 것은 섬지역에 무엇보다 중요한 선결과제이다. 지금은 해수 담수화 시설이 되어 있으나 과거에는 대부분의 봉천수가 식수로 이용되어져 왔기 때문에 연못은 중요한 자원이다. 양벵방통은 지금도 골개비못 등과 함께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는데 우도 천진항에서 우도면사무소로 올라가는 곳에 있으며 습지식불, 수서곤충, 맹꽁이, 개구리류, 물새류의 서식공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양벵방통은 농업용수로만 활용되면서 시멘트로 정비를 하거나 폐기물과 농약병이 유입되면서 부영양화 되어 수질이 악화되면서 생물서식공간으로는 적절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 향후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⓹답다니 해안
답다니 해안은 우도의 북쪽 끝 해안에 있는 암석지로 돌로 쌓아올린 탑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각종 희귀한 식물들이 서식하는 곳이었으나 해안도로의 개설로 폐기물 유입, 사람들의 출입으로 생물 서식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⓺연평리 마을 농경지
이곳은 연평리 마을 중심에 위치한 농경지로 마을과 농경지는 섬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다. 가장 많은 건축이 이루어져 있으며 보리, 콩, 땅콩 등이 식재되어 있다.
⓻비양도
한림읍 비양도와 같은 이름의 비양도는 우도의 동북쪽에 있는 작은 섬인데 소규모어항과 함께 도로,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도에서도 다시 작은 다리를 건너서 닿는 또 하나의 섬 속의 섬이다. 바다와 접해서 사구도 만들어져 있으며, 섬 가운데 잔디밭이 섬 여행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섬에서 바다쪽으로 망을 보았던 망대도 제주도의 현무암으로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어 섬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
4. 우도의 야생동물 조사개요
우도는 남북의 길이가 약 3.53km, 동서의 길이가 약 2.5km인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화산도로서 대부분이 평탄한 용암삼각주로 되어 있는 화산도이며 섬의 남동부에 이중분화구인 소머리오름 응화구가 위치하고 있다. 우도 소머리오름 북향방면에는 곰솔 군락이 형성된 것 이외에는 숲이 없고 섬 전체가 목야지 또는 경작지로 되어 있다.
5. 우도의 인문 지리적 특성
2016년 9월 현재 우도면은 법정리로는 연평리 1개리, 행정리로는 서광리, 천진리, 조일리, 오봉리 등 4개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4개의 행정리에는 각각 2~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우도의 인구와 세대수는 2015년 12월 말 현재, 남녀합계 1,710명이 거주하며 이들을 구성하는 세대 수는 896세대로 파악된다. 따라서 세대 당 인구수는 1.9명으로 제주도 내의 면지역과 비교할 때 추자면(1.8명) 다음으로 낮은 비율을 보인다. 이러한 점은 최근 대한민국의 여러 도서지역에서 나타나는 세대 당 인구비율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도의 거주역사는 비교적 새롭다. 우도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한 해는 1843년(헌종9)이라 할 수 있는데, 제주도내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생계에 시달리는 도민들이 많았고, 또 국영목장이 해체된 이후에는 주변수역에서의 해초류 채취가 중요하게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도의 개경과 함께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동일한 국영목장의 성격을 띠고 있던 가파도와 비교할 때 1년이 느리다. 당시 우도나 가파도가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경 역사와 더불어 사람들의 거주 역사가 다소 더딘 배경에는 두 지역이 모두 오랜 기간 우마육성 지역으로 조정에서 관리해온 목장지역이라는 사실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우도는 고문서나 고문헌, 고지도 등에 우도(牛島, 소섬)로 표기하였고, 이른 시기부터 ‘소섬’ 혹은 ‘쉐섬’으로 부르다가 한자어로 ‘牛島’로 표기하며 사용해왔다. 따라서 우도라는 섬 자체의 지명은 개경이 시작된 1843년부터 현재까지 175년 동안 전혀 변함이 없는 섬지명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1900년에 우도를 ‘연평’(演坪:물에 뜬 두둑(들판)의 의미)으로 바꾸었다고 전하나, 그렇다고 해서 섬 자체의 이름이 ‘연평도’ 혹은 ‘연평섬’으로 바꾸어 사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 우도면 인구변화의 특징
우도면의 인구변화와 그 특징을 살펴보자면 통계상의 인구를 참고로 할 때 우도면의 인구변화의 특징은 3시기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제1기는 1970년대부터 1990년까지 우도의 전체 인구수가 3,000명을 넘는 상황 속에서도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수평적 인구감소 시기’이다.
제2기는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인구가 3,000명대 수준에서 2,000명대와 1,500대 수준으로 급감하는 특징을 보이는 ‘수직적 인구감소 시기’이다.
제3시기는 2012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제주도로 이주하는 이주민과 제주 본섬에서 우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증가하는 시기인 ‘수평적 인구증가 시기’이다.
이러한 우도의 인구증감을 마을단위별로 조사하고 살펴 볼 필요도 있겠다. 1988년, 2000년, 그리고 2015년에 실시한 우도면(3,224명) 마을별 인구 분포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88년도 조사에 따르면 오봉리(1,068명, 33.1%)-조일리(774명, 24%)-천진리(728명, 22.6%)-서광리(654명, 20.3%)를 각각 차지한다. 2000년 조사에서는 오봉리-조일리-서광리-천진리 순으로 서광리와 천진리가 자리바꿈 하였다. 그러나 2015년 조사에서는 오봉리-서광리-조일리-천진리 순으로 서광리의 인구증가가 오봉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급격하게 증가한다. 우도면 전체 인구수는 2000년과 2015년에 크게 차이가 없으나 서광리가 급격한 인구증가를 보이는 반면 나머지 3개 마을 즉 천진리, 조일리, 오봉리는 지속적인 인구감소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시점의 우도면 인구구성에서 특이한 사항은 우도면 전체는 물론 오봉리를 제외한 3개 마을에서 남성인구(104.5)가 여성인구를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광리(105.6), 천진리(109.3), 조일리(105.2), 오봉리(100.0 남녀인구 동일)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남성 중심의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고 있거나 우도로 유입되는 인구가 여성보다는 남성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7. 우도의 특산품
⓵넓미역
넓미역은 갈조류 다시마목 미역과에 속하는 일년생 해조류로 우리나라의 제주도와 일본의 큐슈 서북부 지방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의 넓미역 서식지는 제주도 우도, 비양도, 가파도 및 청산도 연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제주도 우도해역에 서식하고 있는 넓미역은 저질의 산호조류가 산재된 지역에만 서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넓미역은 미역보다 식감이 부드럽기 때문에 주로 쌈용으로 소비되어 왔으나 근래에 들어 그 자원량이 대폭 감소한 실정이다. 한편 우도지역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 넓미역을 쌈용으로 식용되어 어업인 소득원으로 큰 역할을 하였으나, 양식미역의 대량생산에 따른 소비둔화 및 가격하락 등과 자원량의 정확한 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용이 제한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넓미역을 보호대상 해조류로 지정하여 9월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즉 넓미역은 일부 제한된 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으며, 자연군락의 규모도 점점 줄어들어 멸종 가능성이 있는 해조류이다. 따라서 넓미역 자원이 지속적으로 번식할 수 있도록 인위적인 증식 및 서식지 확대를 통해 해양생태계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우도는 우리나라 705개 유인도 가운데 76번째로 큰 섬이다. 섬인 우도는 물의 흐름 즉, 해류의 영향을 받는다. 제주대학교실습선이 6년간 조사 채집한 사료를 중심으로 연구한 논문 가운데 ‘해양동물’(고유봉, 오종철)을 보면 77종의 동물플랑크톤 가운데 아열대 남방형에 해당하는 종은 오직 우도 연안에만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⓶우도의 농작물
우도는 조선시대 1697년(숙종23)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부터 국마를 관리, 사육하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 우도에서 언제부터 농사가 지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단지 1842년(헌종8)에 이원조 목사가 우도에 있던 목장을 폐지하고 입경허가를 하였으며, 1844년(헌종10)에 폐지된 목장의 개간을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아주 작은 면적에서나마 농사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는 예로부터 보리와 조 및 고구마를 주식으로 이용해왔다. 제주의 척박한 농경지 여건상 조와 보리 그리고 고구마는 3대 식량작물로서 오랫동안 재배되어 왔다. 재배시기도 보리가 동계작물인데 반하여 조는 하계작물로 농경지 이용면에서나 작부체계상 빼놓을 수 없는 작물이었다. 우도 또한 제주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 70년대에 조, 보리, 고구마를 주로 재배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제주도민들 생활에 식량사정이 여의치 않아 곤궁하였듯이 우도 주민들 또한 척박한 토지에서 생산된 보리와 조 만으로는 자급자족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세화리, 성산리, 고성리 장터 등 제주 본 섬과의 왕래 등으로 어려운 식량사정을 해결하곤 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도의 농작물은 크게 변하여 고구마, 유채, 보리, 조 등 식량, 환금작물을 밀쳐내고 지금은 땅콩, 쪽파, 마늘 등 32대 작물이 새로운 대표 소득작물로 자리를 잡고 있다.
⓷우도의 축산업
앞서 살펴보았듯 우도는 조선시대 국영목장으로 사용되었다. 1697년(숙종23)에 제주 목사 유한명이 우도에 말을 방목함으로써 국영목장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우도를 비롯한 가파도 등은 해로가 험난하고 포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마 관리를 하는데 불편하였다. 이에 결국 1842년(헌종8)에 목장이 폐지된다. 그 이듬해부터 농경지로 개간되었고 대신에 사복사(司僕寺)에 납세토록 하였다.
현재 우도에는 최북단 소와 최남단 소 사이에서 태어난 ‘평화통일의 소’와 그 후손이 사육되고 있다. 1996년 7월 경기 북부지방에 집중호우로 당시 북한의 황소 한 마리가 비무장지대 김포군 유도로 떠내려 온 것을 해병부대에서 극적으로 구조한 후 1997년 1월 17일 김포시가 최고의 청정지역인 북제주군 조천읍 와흘리 강익상 씨가 기증한 암소 ‘통일염원의 소’를 김포시에 시집보냄으로써 제2세 수소가 태어났다. 이에 따라 어미소의 고향인 북제주군에서는 새천년 새아침에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이곳 우도에 제2세 수소를 입식하기로 하고 2000년 1월1일 새천년 ‘평화통일의 소’라 명명하고 그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⓸식수
우도는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힘들만큼 물사정이 좋지 않았다. 우도의 물이용의 역사는 봉천수의 이용->대형 저수지 시설->담수와 시설->해저 상수도 공급이라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우도에서 식수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용천수가 ‘산물통’이다. 이 용천수로는 식수가 턱없이 부족하자 연못처럼 땅을 파서 비가 올 때 모아두었다가 그것을 음용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곧 봉천수이다. 『탐라계록』에 의하면 우도에는 두 군데의 ‘천락수(天落水)’가 있다고 하였는데 빗물을 모아두는 천락수는 바로 봉천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지금 마을에 있는 연못과 습지는 하나같이 마을 주민들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식수원인 셈이다.
우도에서 식수에 대한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은 해저수도관을 통한 본섬에서의 상수도 공급이 가능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 우도는 여전히 섬 속의 섬이지만 물 만큼은 본도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본도에 의지하는 섬이다. 1999년 우도의 담수화시설 완공에 이어 2010년 12월에 드디어 우도 전 지역에 해저수도를 통한 수돗물 공급이 이루어졌다. 이는 가히 물의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우도의 상주인구는 현재 1,500명 정도이며, 우도를 찾는 방문자의 수는 하루 5,000~8,000명으로 우도주민 수보다 관광객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 모금의 생수를 얻기 위해 고심했던 우도 주민들의 이야기는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우도의 물이용 문화 역시 달라졌다. 대개의 물통이 메워져버렸으나 현재 남아있는 물통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새로운 시대에도 박제화 되지 않는 살아있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하겠다.
⓹교통(자동차)
우도내의 주민들의 개별 교통수단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고령의 우도주민과 여성이 우도내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륜차 및 사륜오토바이가 있다. 반면에 우도의 젊은 층 및 중장년층 소유의 자가용, 농사 및 화물 수송을 위한 트럭, 특수차 등이 있다. 우도 주민들의 자동차 소유의 증가는 도항선을 통한 자동차의 원활한 운송과 우도주민의 소득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의한 것이다. 우도의 자동차 소유가 급격히 증가된 계기는 1980년대 후반 화물선 덕일호의 취항, 1990년대 초반의 도항선 우일호와 덕일3호의 취항으로 성산포와 우도와의 자동차 소송이 원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4년 우림해운과 우도해운의 통합으로 우도 주민에게 자동차 운송비의 50%할인 제공은 우도 주민들이 자동차를 소유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우도 관광개발로 인해 우도 주민들의 관광소득이 증가하게 되면서 우도내의 관광사업체를 포함한 서비스업체의 종사자 수의 증가는 우도내의 자동차 소유하는 젊은층과 중장년층 인구 유입게 기여했다. 따라서 우도 내의 자동차 소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5년 우도주민의 자동차등록현황은 2011년 총618대에서 2015년 총889대로 271대가 증가했다. ‘섬 속의 섬’ 우도발전은 해상교통인 도항선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 도항선의 저렴한 요금과 빈번한 웅항으로 인한 해상교통의 편리성은 우도 개발에 크게 기여했지만 많은 수의 차량수송으로 인해 우도내의 교통 혼잡성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우도의 좁은 도로에 관광버스 수의 증가와 우도주민의 자동차 소유의 증가는 우도도로를 더욱 혼잡하게 하여 관광객들을 비롯한 우도주민들의 이동에 불편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우도 육상 교통 문제 해결 및 우도 관광자원 보전, 관광객의 안전성을 위해 차량유입제한, 저공해 차량운행, 친환경적 운송수단 운행 등과 같은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도내에는 전세버스 25대, 마을버스 23대, 이륜차 405대, 전기삼륜차 460대, 자전거 628대가 운행되고 있으며 하루 평균 549대의 렌터카 진입으로 우도에서의 1일 운행되는 교통량은 2,888대이다. 특히 차량이 급증하는 7월과 8월에는 하루 605대로 우도 차량 진입을 제한하는 차량 총량제가 2008년에 도입되어 추진되고 있으나 2015년 이 기간에 진입한 차량은 총 49,488대로 1일 평균 789대가 들어가면서 차량 총량제는 실효성이 없어졌다.
이런 이유로 우도내에서의 교통사고 건수도 2013년에 58건, 2014년에 67건, 2015년에 7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우도 방문객의 급격한 증가는 우도내에서의 쓰레기 증가 문제를 초래하였다. 해수욕장을 비롯한 우도내의 클린하우스에서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어 쓰레기 수거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도 쓰레기 소각장 증설을 통해 우도내의 쓰레기를 처리하려 하고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몇 년의 기간이 필요하므로 관광객 증가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렇듯 우도는 최근 급격히 증가한 우도 방문객과 차량으로 교통 및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며 우도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해안선을 따라 무분별하게 건설되는 음식점을 비롯한 관광서비스업체들은 우도의 아름다운 해안가 돌담 침 환해장성을 파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도는 섬으로서 1일 수용 가능한 방문객과 차량 수를 확인함과 동시에 우도만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관광객들이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도면 역사문화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문화원연합회, 2016.12
Ⅱ. 우도의 문제점
우도의 현재성
우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도의 크기에 비해 우도를 찾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점이다. 경제적 이유에서 보면 적은 관광객은 관광으로 인한 수입원으로 충분하지 않다.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던 우도 주민의 입장에서 열악해지는 바다환경과 전통적 경제구조의 환경변화는 충분한 수입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관광은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고 나아가서는 1차산업보다 덜 힘든 관광에의 전념으로만으로도 충분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관광객이 우도에 와야 한다. 하지만 환경적 측면에서 해안도로의 개설로 인해 서빈백사(홍조단괴)의 유실,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영, 우도 고유의 경관파괴, 이주민과의 갈등 같은 주민간의 갈등표출 등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한적했지만 특별히 우도다운 우도가 좋아서 정착한 사람들이 떠나려 한다. 다음은 그런 우도가 좋아서 오던 관광객들일 수 있다. 즉 관광지 면적에 비해 너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게 될 경우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킬 수 있다. 장소적 한계를 갖는 관광지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 이상이 오면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적정한 관광객 수만 관리할 수 있다면 관광이 갖는 부정적인 면은 최소화하고 혜택은 극대화할 수 있다. 이제 우도는 수요의 끝없는 확대라는 양적성장의 패러다임에서 수요를 관리하는 질적성장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이는 똑같이 제주라는 섬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2. 우도 내 불법건축물을 통해 본 이주민과 원주민과의 갈등
우도 지역 내에 영업하고 있는 펜션과 음식점, 상점 등의 80~90%가 불법 건축물에 해당한다고 한다.
불법건축물을 조사하고 행정처분 하는 문제는 단순히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계속된 갈등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결과이다.
2014년 제주시는 우도 천진항 일대에서 ATV(바이크) 등을 대여하고 있는 업체 건축물을 강제 철거했다. 대여업체는 증가하고 있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2009년부터 4회에 걸쳐 불법건축물을 무단 증축했다. 대여업체 대표는 행정기관의 자진 철거 명령에 불복하기도 했고, 일부 건물이 철거됐지만 계속 영업을 했다. 우도주민들은 2014년 11월 ‘도내 도서지역 내 레저자율사업 중지 신청’탄원서를 제출했다. 아예 우도에 스쿠터나 오토바이, ATV 등의 영업 자체를 금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농촌이나 도서지역에서의 불법건축물은 항상 존재했다. 대지로 허가받은 땅 외에 텃밭이나 자투리 땅에 외양간도 짓고, 농기구나 농산물 보관용 창고를 허가 없이 증축하는 일도 빈번했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몇 년에 한 번씩 한시적으로 불법건축물을 양성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우도의 불법건축물 숫자가 섬이나 농촌 지역으로 보기 어려운 현황이라는 점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펜션이나 식당, 기념품 가게, 스쿠터 대여 업체 등이 워낙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역주민 처지에서 보면 한적한 섬마을에 이주민들이 들어와 급격하게 불법 건축물이 늘어났기 때문에 자신들도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은 서로가 불법인데 왜 자신들만 적발하느냐는 반감이 생겼다.
우도의 경우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 이외에 지역 주민 간의 문제로 봐야 할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갈등의 원인은 급격한 관광객 증가와 이주민의 증가로 인한 갈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갈등의 원인은 쉽게 말해 ‘돈’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급격하게 변해가는 제주의 인구 증가와 상업화에 있다. 제주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주도가 단순히 개발을 통한 관광 산업 육성화가 아닌 제주도민 누구나 행복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제주도는 법이나 조례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할 수 없다는 방관자적 입장만을 취한다. (The 아이엠피터 2016. 5. 28 참조)
Ⅲ. 우도 민족지 어떻게 쓸 것인가
공동주제 정하기
⓵ 먼저 큰 틀에서 공동주제를 정하고 공동주제에 따라 각 팀원들이 소주제를 정한다.
⓶ 각자가 맡은 소주제에 맞추어 이론적 자료검색과 수집을 한 후에 전 구성원이 모여 각자가 준비한 소주제에 대한 이론자료 발표와 토론을 한다.
⓷ 어느 정도 의견이 조율되면 각자가 맡은 소주제에 따른 민족지 자료조사를 우도 현지에 가서 한다.
⓸ 현지 조사 후 다시 한 번 전구성원이 모여 각자 수집한 자료를 공유하며,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조율한 후에 각자의 민족지를 작성한다.
(예를 들어 우도의 경우 네 개의 마을-서광리, 천진리, 조일리, 오봉리-단위로 민족지를 작성하는 방법도 있다.)
2. 각자 관심사에 따른 주제 정하기
⓵ 각자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하여 주제를 정한다.
⓶ 주제가 중복되는 일이 없도록 모든 팀원들에게 알리고 조율한다.
⓷ 각자 그 주제에 맞는 자료를 검색 수집한다.
⓸ 우도 현지를 방문해 자신의 주제에 맞추어 민족지 자료를 조사한다.
⓹ 전체 구성원들이 모여 각자가 현장에서 수집한 민족지 자료에 대해 발표한다.
⓺ 민족지를 작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