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넷의 여름 이야기
<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 엘리자베스 엔라이트 지음 햇살과 나무꾼 옮김 2023 (23.10.16황혜경)
내게 딱 맞는 편한 일바지를 만들기 위해 문화센터를 다닌다. 처음 4개월의 수업을 한 번 듣고, 요즘 두 번째 수업을 듣고 있다. 의외로 나는 옷본을 그리고 천을 가위질하는 일들에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상반기에 나와 같이 수업을 들었던 몇몇 사람들과 두 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이제는 아는 얼굴들이 되어 친근하게 인사를 한다. 며칠 전에 수업 시간에는 누군가 부지런하게도 싸온 김밥을 나눠먹었다. 김밥과 음료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별별 수다를 떨다가 뜬금없이 누군가 다시 태어난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 내게 익숙한 아주머니가 아주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금이 제일 좋아. 절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않아. 아니,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아!”
나는 지금껏 살면서 이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니.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까 자유롭게 상상하기를 즐겨하는 내게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날 <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를 읽었다. 아주 발랄하고 호기심 많고 실행력이 높은 청소년인 가넷 이야기이다. 아홉 살이라고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한창 사건사고 일으키는 중고등학생처럼 느껴졌다. 사고의 스케일이 크다는 말이다. 도서관에 갖히고, 가출을 감행하고, 품평회에 나가는 일들을 가넷은 그냥 일상생활처럼 해버렸다. 내가 엄마라면 뒷목 잡을 일이지만 가넷의 엄마는 바쁜 생활 탓에 아이를 따라다니며 뒤치닥거리를 하지 못했다. 아빠도 마찬가지고. 그럼 가넷은 돌봐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크는 아이일까? 아니다. 아이는 동네가 돌보고 있다. 제일 많이 돌보는 건 프리바디 아저씨이고.
가넷은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은골무 하나를 줍는다. 그리고 뒤이어 좋은 일이 생겼다. 바로 지독한 가뭄이 해갈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가넷은 은골무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사실 책 제목에 골무 이야기가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골무의 존재는 그리 강하지 못하다. 가넷이 치는 사고의 수준이 장난이 아닌 것과, 그 일이 수습되기까지는 어떤 마법이 통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친구와 갖혔을때도 마을 사람들이 도움을 줬고, 가출을 감행했을 때도 사람들과 얽혀가는 이야기였다. 이후 티미라는 돼지와 품평회를 가게된 계기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덕이었다. 사실 마법 골무는 작가가 바느질을 좋아해서 그냥 갖다 붙였다고 말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이 이야기는 가넷의 여름이야기이다. 일상생활과 모험, 그리고 좌충우돌 청소년기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빠와 어땠는지, 친구와는 어떻고, 애정하는 돼지 티미와의 이야기등 뭐 하나 뾰족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이다. 평범한 일상에 푹빠져서 나중에는 나 스스로 가넷과 에릭의 러브라인을 미리 만들고 있을 지경이었다.
책을 덮고 내가 어렸을 때는 어땠는지 생각했다. 사건들이 큼직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넷의 이야기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형제들과 다투고 혼자 하루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잠깐 그리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낮에 들었던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던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그리운 느낌이 드는 자신의 청소년기나, 첫 육아에 헤메던 그때로 돌아가 다시 잘 해내고 싶은 마음도 들텐데. 예전에 좋은 날이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왜 태어나는 것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프리바디 아저씨 같은 어른이 있었으면 그런 말을 안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발을 동동구르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나타나서 수퍼맨처럼 해결해주는 아저씨를 보며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모른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써야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주위에 프리바디 아저씨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오지랖 넓고, 자상하고, 항상 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봐줄 것 같은 어른들 말이다.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을 믿고 천진난만하게 모험을 떠날 수 있게.
첫댓글 앗 일바지 문화센터가 급 궁금해져서 살짝 여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