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는 사람이 없구나, 안녕하세요? 아는 분이 아니시네, 안녕하십니까?
단 브라이트/영국: 제 이름은 단입니다. 친구 조엘 베네트와 함께 영국에서 왔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런데 많이 먹으니까 뭔가 익숙해지고 조엘과 1년 넘게 하는 일이 있어요. 한국을 소개하는 다큐를 만드는 일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인데요.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의 주제입니다.
서울특별 마포구,
안녕하십니까? 촬영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뛰어야 합니다. 주로 인터넷을 보고 무엇을 사야 할지 결정합니다. 직접 사기 힘든 물건은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부탁드릴 게 있어요. 저희 오늘 야외 촬영을 해야 하는데 식탁이 없어서---, 어떤 거, 저거? 그러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려, 그려,
연남동 경의선 숲길,
한국 사람들은 참 친절해요. 저희가 촬영하러 나가면, 언제나 관심을 보여주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시죠.
단: 저희 김치찌개 만들어 먹으려고요.
동네 할머니: 김치찌개를 여기서 만들어 먹어?
단: 예, 조금 이따 시간 되시면 오셔서 저희가 맛있게 해드릴게요.
할머니: 아, 이렇게 거리에서?
단: 예,
할머니: 외국 사람이네,
Hello everyone! 저는 단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연남동 경의선 숲길에서 요리 촬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만들어 볼 것은 삼겹살 김치찌개입니다. 이것 좀 잘라 볼게요. 저는 한국음식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좀 넣어 볼게요. 촬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많은 분이 모여 응원해 주십니다.
동네 아저씨: 외국인인데 잘 하시네,
단: 그래요
아저씨: 아주 그냥 제대로 인데
단: 보기만 해도,
아저씨: 냄새 냄새
단: 아, 진짜 감사합니다.
아저씨: 고춧가루를 좀 더 넣고 소금 좀 더 넣어요.
단: 고추 하나를 더 넣을까요?
아저씨: 더 넣어야겠어 얼큰하게, 하려면
아저씨: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밥을 먹으면 더 맛 있는데,
단: 내년에 또 맛있게 해드릴게요.
할머니: 그래 알았어 꼭 이 자리야! 죽기 전에 와야지 건강하고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해야 돼!
단: 찌개나 이런 탕 같은 것은 간을 잘 맞추기만 하면 맛있게 만들 수가 있어서, 그냥 제 입맛에 간을 맞춰본 거죠. 그래서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직 해보고 싶은데 해 볼 용기가 없는 음식이 많아요.
조엘 베네트/영국: 우리가 그때 김치찌개 에피소드를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려고 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오시고 그분들과 대화를 나눴던 그 순간이 정말 특별했던 것 같아요.
촬영과 편집을 담당하는 조엘은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했어요.
조엘: 한국은 제가 살면서 처음 방문한 외국이었어요. 또 한국은 제가 처음으로 느낀 ‘와 이건 정말 다르다’ 라고 느낀 나라예요. 한국에 6주 밖에 살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인상을 받았죠.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한국에 대해 막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빠져들었어요. 단의 한국어는 정말 끝내줘요. 당시 저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죠. 우리가 이런 여정을 가게 되는데 카메라가 우리에게 한국문화를 좀 더 깊이 있게 탐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했죠.
Jeju, “단과 조엘의 해녀 다큐”
단 브라이트: 저는 자막을 쓰고 촬영할 때는 제가 PD 역할을 하고 조엘이 감독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편집을 조엘이 주로 하는데 만약에 영상에 나오는 대화가 한국어면 제가 편집 첫번째 컷 다운(영상정리)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한국 온 지 1년 정도 됐고요. 2012년에도 1년 있었어요. 그때 고려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어요. 제가 한국을 처음 할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어요. 영국에서 맛본 김밥 때문이었죠. 뭔가 그때 그 음식을 보고 제가 잘 알던 중국음식이나 일본음식이구나 생각했는데 저희 엄마가 저한테 막 강조하셨던 것 같아요. 중국음식이 아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음식이라고 강조를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다르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화요일은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날 입니다. 영상을 화요일마다 올리는데 화요일이 되면 뭔가 마음이 떨려요. 긴장 되더라고요. 저희한테만 있던 콘텐츠를 공공장소에 올려놓는 거잖아요.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이 되는 거죠. 그래서 기분이 되게 좋은데 뭔가 좀 떨리더라고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조엘도 저도 음식문화에 큰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흔히 말하는 ‘먹방’ 동영상을 만들기도 했어요.
단과 조엘의 시장탐험 다큐
So we’ve come out to Gwangjang Market! 우리는 광장시장에 나왔어요
Let’s go and have a look around! 구경해 봅시다
Let’s go! 가시다
So much madness in here! 진짜 말도 안되는 거 많네!
Oh my day! 대박!
Is this for eating? 이거 먹는 거야
Hello! 안녕하세요?
Is that fresh baby octopus? 산 낙지야?
Is that fresh baby octopus? 산 낙지예요?
Good evening all! 안녕하세요?
Try a bit! 좀 먹어봐
There’s no space, right? 자리가 없잖아요, 그죠?
Ah it’s skin! 아 껍질 이군요
What is it? 이게 뭐에요
First just try some! 얼른 먹어 봐.
Chicken skin! 닭껍질
Try it! 먹어봐, 먹어
Is it chicken feet? 닭발이에요?
Yes! 네
Try it! 먹어봐요.
Is it spicy? 매워요?
It’s not spicy 안매워
It’s really not spicy! 안매워
No, I’ve already got some! 아니 먹고 있어요.
It’s not spicy at all! 안매워, 안매워!
What is going on? 진짜 여기 무슨 상황이지?
I don’t even know what I’m eating! 내가 뭐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Soju! 소주
Cheers! 건배
South Korea jja-jja-jja-jja! 대한민국 짜짜짜짜
거기서 어떤 나이 좀 있으신 한국 남자분 만나게 됐는데 그분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게 되었는데 다시 그 콘텐츠를 보니까 이게 완전 다큐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 저희만 출연하면 그냥 먹방 에너지 넘치게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지만 다른 분들의 스토리를 보여드리야지 라고 생각해서 그런 방향으로 가기로 했죠.
단과 조엘의 인터뷰 다큐
이번 커피 시리즈를 통해 저희가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Through this coffee series we wanted to create a space to talk.
친구들하고 커피 마시면서
with our friends over coffee
그들의 스토리 이야기도 나누고
to chat about their stories
한국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다는 목적으로
and to find out more about what it’s like to live in Korea
내가 그래서 그냥 ‘난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었죠.
So it was just like this, ‘who am I?’
촬영할 때 저희의 인터뷰 스타일은 시청자들이 우리를 보고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직접 말하는 거죠. 관찰의 또 다른 형태가 뭔가를 듣는 거거든요. 사람들은 볼 때 가장 잘 배웁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이건 이런 거예요. 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사실 모든게 정답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달라지고 있는 한국 젊은 세대들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형을 만났습니다. 한국에선 꽤 유명한 외국인이죠.
파비앙/프랑스, 방송인 작가: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단: 안녕하세요, 오래만이에요. 파비앙 형은 저랑 같은 동네에서 살아요. 집 앞 빨래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죠.
파비앙: 단씨를 처음 만난 건 유튜브에서 봤거든요. 저는 집이 저쪽이니까 이렇게 걸어가다가 외국인 두명이 촬영하고 있는 거예요.
단: 김밥 먹으면서
파비앙: 뭐지? 웬지 본 것 같기도 하고
단: 맞아요 그래서 깜짝 출연해 주셨잖아요.
파비앙: 아무래도 같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고 둘 다 한국문화 관심이 많고 한국을 좋아하고 같은 유럽인이고 아무래도 통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얼마전 새로 마련한 저희 사무실에서 파비앙 형과 좀 더 얘기를 나눠보기로 했어요.
파비앙: 사무실 분위기가 되게 좋네
단: 감사합니다.
파비앙: 잘 어울려요. 단하고 조엘하고
단: 한국에서 거주하신 10년간 파비앙 형이 본 한국 문화적으로 가장 변화된 점은 무엇일까요?
파비앙: 아무래도 저희가 외국인이잖아요. 그 10년 전 한국이랑 지금의 한국이랑 외국인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고 느껴져요. 일단 10년전에 길을 걸어가면 그 쳐다보는 시선…, 저 사람이 뭐지? 여기 왜 있는 거지 하는 시선, 한국말로 주문하거나 얘기할 때는 오! 저 사람이 한국말을 하네! 외국 사람인데 요즘은 단씨도 그럴 거 아니에요. 커피숍이나 식당에 가면 유창하게 ‘저기요~ 이거 2인분이랑 밥 추가요’ 하면 예전에는 오? 이런 반응이었을 텐데, 요즘은 ‘예, 알겠습니다. 갖다 드릴게요’ 이거죠. 그래서 그만큼 외국인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고 한국이란 나라는 굉장히 많이 개방된 거죠.
단: 한국의 조직문화를 강하게 느끼신 적 있는지도 궁금해요.
파비앙: 한국에서 일이 힘든 건 상사 때문에 좀 그런 거 같아요. 상사가 좀 짓굳게 한다 아니면 퇴근했는데도 계속 전화가 온다. 업무전화 때문에, 그런데 이런 거 무시하면 절대 안돼요.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법적으로 규정이 되어 있어요. 퇴근하면 일 관련 전화, 이메일, 메신저는 절대 안되죠. 한국은 안된다는 거죠. 지금 단 대리님이에요. 단 대리님 위에 김 팀장님이 있어요. 6시에 퇴근 했어요. 단 대리님이, 그런데 6시 반에 중요한 바이어 연락이 와서 단에게 번역하라고 메신저가 왔어, 단씨가 놀고 있는데 지금은 안 받을래 이러면 바로 잘릴걸요? 혼나거나?
단: 무서워 진짜
파비앙: 저도 예전에 극단생활을 2~3년 했는데 그때 막내였거든요. 외국인인데도 많이 느껴졌어요. 혼자서 청소를 미리하고 심부름도 그냥 무조건 해라 눈치로 그냥 내가 해야겠구나 이런 게 느껴졌고, 그것 때문에 많이 배웠지만 그런 건 조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부나 명예 대신 자신만의 삶과 행복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아요. 삶의 방향과 문화패턴이 점점 바뀌는 걸 한국에 살면서 많이 느껴요.
단과 조엘의 롱보드 타는 사람들
저희 동영상 채널에 롱보드를 타는 여성분들을 촬영해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요. 무척 인상적이었죠.
단: 한국에서는 최근에 떠오르는 서브컬처(하위문화)가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잡아보고 싶어서 롱보드를 선택했습니다.
김별초롱/롱보더: 롱보드를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스케이트보드보다 조금 긴 길이에요. 휠도 좀 크고 좀 더 구릉성 좋게 속도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드가 롱보드 입니다.
단: 롱보드 타는 여성들의 개인 스토리를 보여드리면서 롱보드 타는 분들로서 어떤 어려움을 느끼셨는지 어떤 바라는 점, 보람된 점, 그리고 행복한 점을 느끼셨는지에 대해 보여드리는 콘셉트였는데…
김별초롱: 여자는 얌전해야 돼 남자는 울면 안돼 이런 것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듣고 자랐어요.
김별초롱: 서브컬처(하위분화) 라는 존 위험할 수가 있고 어떤 이가 바라보면 좀 부정적일 수 있는데 그들 만의 룰을 가지면서 우리나라에 원래 없었던 그런데 이제 막 생기고 소수의 사람이 즐기면서 많은 다양성을 가지는 거로 생각해요.
단: 영국 같은 나라는 그 몇백 년간 여러가지 서브컬처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한국은 사실 서브컬처가 생길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다행히도 한국에 서브컬처가 많이 생기는 것 같아서 뭔가 저희가 그 서브컬처를 같이 좀 경험해 볼 수 있는 느낌이에요.
김별초롱: 그래도 요즘에 사람들이 많이 그것을 깨려고 하고 있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서브컬처들도 점점 한국사회로 들어올 수 있고, 시각도 많이 넓어지고 생각도 다 다르게 할 수 있고, 다르다는 게 틀린게 아니고 다른 것일 뿐이지 이게 잘못된 게 아니구나 서브컬처가 한국 사회를 그래도 조금씩 변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성산동 서울특별시 마포구,
조엘이 처음부터 옥탑방에서 살고 싶어 했더라고요. 영국에서 이렇게 넓은 옥상 있는 집에서 살려면 월세가 엄청 많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사실 이렇게 생긴 집도 없어요. 영국은 집 자체가 다르니까 뭐랄까 사람사는 냄새나는 동네에서 살아서 그런 건지. 종로나 강남이나 그런데 가면 여기는 내가 사는 서울이 아닌 것 같은…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엘이 말한대로 그런 문화, 그런 느낌들을 더 자세히 더 깊숙히 느껴보고 체험해 보고 싶어서, 서울 아닌 외곽이라든지 아니면 완전 시골에 가서 며칠 그 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
여기 섬이 되게 많잖아, 그런데 우리가 가는 섬이 여기 우이도 거든. 우이도가 맨 서쪽이야 그러니까 이 바다에는 섬이 되게 많으니까 다도해 라고 하거든. 섬이 많은 바다 라는 뜻이야.
우이도를 가려면 목포에서 배를 타고 4시간을 가야해요. 한국에서 이런 넓은 배를 타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어요.
우이도 전라남도 신안군,
안녕하세요. 저희 섬 생활 체험하러 왔습니다. 한국문화를 제대로 느끼려면 이렇게 멀리 와서 이런 섬에서 사는 분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또 저희가 살고 있는지 서울 하고 얼마나 색다른지 체험하고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마침 고기잡이를 나가신다고 해서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전 미국 사람은 아닙니다. 영국 사람입니다.
어부 아내(한영단): 외국 사람들은 다 미국 사람들 이라고 해,
단: 알아요
한영단: 이런 배 처음 타 봤지?
단: 네 처음 타본 것 같아요.
한영단: 안무서워?
단: 괜찮은 데요. 선장님 하고 사모님 믿으니까.
한영단: 여름엔 재밌어.
단: 그래요?
제가 생각했던 고기잡이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낚시로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미리 쳐놓은 그물에 고기가 들어오면 그냥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되더라고요.
단: 이 만큼의 물고기는 며칠 만에 잡게 되는 거예요?
한영단: 3일 됐어 또 손님들이 와서 횟감 찾으면 날마다 와서 볼 때도 있고, 고기가 많을 때는 날마다 와서 봐도 많아 그런데 들어갈 철에는 많이 없지.
단: 30년간 어부로 살아온 주인 아저씨를 보면서 한국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선장님 부부께서 바다에서 잡은 것들로 한 상 가득 저녁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어부(박화진): 구운 전어는 좋은 냄새가 나거든. 집 나간 아내가 구운 전어 냄새를 맡고는 돌아온다는…, 그렇게 맛 있는거야.
단: 그렇게 맛있는 거예요? 한번 해봐야겠네요.
어부: 싸움은 하지마 바로 그렇게 먹어봐 맛있잖아. 사실 그대로 말해, 맛이 없으면 없다고 해,
단: 맛이 되게 감칠 맛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좀 짭짤하고 진짜 맛 있네요.
여러분, 오늘 되게 맛있게 먹었고 다 먹어야 되는데, 이분들 덕분에 또 다른 한국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게 된 것 같고, 앞으로도 한국문화를 깊숙이 계속 체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엘: 카메라는 우리가 관찰하는 것을 좀 더 창의적으로 녹화해 주는 도구예요. 그 환경과 순간을 기록하고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다는 것은 큰 영광일 뿐만 아니라 무척 평화로운 느낌이었어요.
단: 이게 외국에서 온 촌놈한테도 이렇게 힘든데 사모님은 힘 안드세요?
어부아내: 힘들지, 그런데 이걸 해야지, 많지 않게 조금씩 캐서 그때 그때 먹으면 훨씬 맛있어.
제 옆에 사모님이 너무 열심히 일하시고 웃으면서 하시는게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어요. 오히려 일하는 사람 중에는 왜 그렇게 바쁘고 왜 열심히 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그냥 열심히 일하시는 것보다 정해진 확실한 목적이 있어 그렇게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어요. 한국어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꼈어요. 한국어를 좀 더 배우기 위해 2012년에 한국에 처음 왔어요. (고려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와서 1년을 다녔어요. 그때 만났던 2~3명의 외국 친구들이 저한테 되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바실리: 오랜만이구먼,
단: 형도 그때 만났어요.
바실리: 그 동안 잘 지냈지?
단: 네, 잘 지냈습니다.
바실리: 그래, 가자, 밥은?
단: 밥은 먹고 왔어요. 그때 아마 석사논문 쓰시는 중이었던 것 같고 그 이후에 졸업 잘 하셨죠?
바실리: 졸업은 잘 했고 논문도 잘 쓰고 합격했고 지금은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에서 연구원을 하고 있고 계속 북한학 관련 연구를 하고 있어.
단: 그럼 한국에서 6년 사신거예요?
바실리: 다 합하면 8년 정도 되지 않을까
단: 8년 정도?
바실리: 다 합하면,
단: 저는 사실 한국에서 오래 살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기억에 남는 일이 많거든요. 좋은 추억도 많고, 형은 한국에서 8년이나 사셨는데 그 동안 진짜 기억에 남는 일이나 그런 스토리가 있으세요?
바실리: 스토리는 엄청 많은데 교육제도를 보자면 러시아 교육제도는 독일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교수나 학생을 학생이 아니라 미래의 과학자로 보는 거야. 그러니까 동료로 대하기도 해, ‘동료들 이런 것을 해야 한다’. ‘이런 책을 봐야 한다’ 하는데 한국에서는 학생을 부하로 보는 거야. 그래서 학생이 지도교수나 교수의 일을 도와줘야 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간주하는 거야. 그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고 일본도 똑 같은 거야.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이런 것이 착취에 가까운 현상인데,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 있는 외국 친구들도 착취를 많이 당해서 그런 부분이 한국에 대하여 아주 나쁘게 생각하게 만든다고 그러더라고, 나 대신에 연구해라 아무런 보상도 주지 않으면서 이런 것 번역해라 하는데 그건 정말…, 그런데 유교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좋은 점도 있어 유교문화에 따르면 일단 부하이기 때문에 부하가 단순한 부하가 아니라 자기의 아들 처럼---,
단: 키워주려고 하려고 하죠.
바실리: 아들이라는 그런 인식도 있어 그래서 그 아이가 나를 도와 주니까 나도 그 아이를 도와 줘야 한다고 하는데 뭐 밥 사주고 이런 것도 있고 아르바이트도 소개해 주고 그런 것을 볼 때 장단점은 다 있어. 우리가 오직 한 측면만 보지 말고 다 측면에서 봐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크다고 생각하긴 해.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면 재개발 현장과 종종 마주칩니다. 제가 보기엔 무너질 정도로 낡거나 보기가 흉하지 않은데도 다 부수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안좋은 것 같아요. 뭔가 집 같은 집 오래 살 수 있는 느낌이 나는 집 말예요. 저는 아파트에서 산 적 없고 한국에서 이런 주택가에서 산 경험이 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일단 집들이 컨디션이 좋은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없어지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투기꾼, 시공사만 배불리는 재건축, 재개발 강력반대, 내집 냅둬! 재개발 꺼져!), 그리고 원래 여기서 사셨던 분들은 한분도 못봬서 어디로 이사 가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궁금하고 뭔가 고민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주민: 여기 살다가 여기 이렇게 재개발 돼서 이사 갔어요.
단: 집들이 지금도 되게 컨디션이 괜찮은데…
주민: 집들이 좋은데 아파트 지으려고, 아파트…
단: 왜 이런 집보다 아파트가 더 좋은 건가요?
주민: 나라에서 하는 걸 모르니까 저도 몰라 왜 그런지,
단: 지금까지 여기서 몇 년 사셨어요?
주민: 한 40면 살았어요. 집 산지는 25년, 바쁘니까 가요,
모래내시장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제가 즐겨 찾았던 모래내 시장도 곧 없어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이 시장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영국에서 오래된 주택을 보는 것은 그렇게 신선하지 않거든요. 그냥 정상이에요. 사람들이 250년 된 집에서 살 수도 있고 그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60년된 시장이 좀 신선한 모습인 것 같고,
상인: 서울 시내에서 좀 알아주는 시장이지, 모래내 시장이라고 하면,
단: 어떤 장사하셨어요?
상인: 나는 처음 건어물 장사를 하다가 다음 닭 가게 하다가 이제 장사는 끝나고, 시장 끝나면, 장사도 끝난 거지 뭐,
상인2: 여기서 50년 했어, 50년 해서 아들, 딸 시집 장가 갔으니까 끝나야지.
단: 오래 됐다는게 무조건 쓸모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고 되살려내는 것에는 한국이 인색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암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한국의 아름다움과 전통문화를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이만열교수님이신데요.
부암동 서울특별시, 이만열/미국 아시아 인스티튜트, 미국 이름이 임마누엘 그래서 한국 이름도 발음이 비슷한 이만열이라 지었답니다.
단: 이런 것은 서울에서 처음 봤어요.
이만열: 네, 서울에 많지 않죠. 옛날 골목은 사실 대단히 옛날이 아니더라도 한 3~40년 전에는 옛날 이런 가게였거든요. 상당히 매력 있습니다. 다양한 도심 환경이 매력도 있고 그 다음에는 살기가 좋아요. 재개발 때문에 사라지는 그런 서울의 모습은 아주 아쉽고 앞으로도 전통하고 옛날 그런 골목을 잘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단: 제가 봤을 때는 이런 아파트는 아무리 살기가 편안하다고 해도 한국의 전통적인 매력을 갖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이만열: 맞습니다. 특히 현대의 아파트는 한국 한옥이나 전통 한옥과 전혀 관련이 없죠. 전통건축인 한옥이 친환경 건축이고 매력이 있습니다.
단: 여기가 산책길 인가요. 이만열 교수도 아파트 보다는 주택가를 선호하신데요. 저는 한국 처음 왔을 때 영국에 대해 제일 그리워했던 것은 서울에서 자연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거였어요.
이만열: 강남에 산다면 영원히 모를 수 있습니다.
단: 그렇죠. 한국에서 뭔가 한국 사람들에게 오래됐다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이나 영국에서 왔다면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 오래된 것들이 있긴 있는 거죠.
이만열: 지난 50년 동안에 고도성장의 경제패러다임은 거의 끝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을 제작해서 해외에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 다음에 한국이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방향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걱정스러운 점도 있고 반면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남북교류를 제대로 하면 새로운 시험도 할 수 있고 북한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0부터 시작하니까 인프라도 그렇고 우리 완전히 모범적인 나라를 여기서부터 만들 수 있어요.
교동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도를 지나면 또 다른 섬이 나타납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에는 오래된 시장이 있어요. 대륭시장, 한국전쟁 때 북한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이 고향인 분들이 살고 계세요.
주민: 날씨가 좋으면 잘 보이고 상당히 거리가 가까워요.
바다 건너 황해도에서 건너온 분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 황해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황해도 연산군, 땅이 되게 가깝다. 대박 잘 보인다. 그런데 생각보다 건물도 많고 심지어 아파트 같이 생긴 건물도 있고 여긴 북한 땅인걸 몰랐으면 아예 어느 나라인지 모를 거예요. 와 진짜 가까워요. 여기 펜스가 없었으면 제가 바로 수영해서 갈 수 있었을 걸요.
단: 여기서 북한 땅까지 몇 km 돼요?
주민: 여기서 3.3km 정도 될 거예요.
단: 여기 몇 살 때 오셨어요?
주민: 10살,
단: 10살 때 오셨어요?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주민: 78. 이제 죽을 나이가 다 됐지 뭐,
황대하(78): 가까워도 못가는 거예요. 가고 싶지 않겠어? 내 고향인데,
단: 고향에 대해서 특별히 그리운 그런게 있으세요?
황내하: 그럼요.
단: 뭐가 있으세요?
황내하: 대한민국에는 4명절이 있어 그때마다 생각나고 사실은 내가 어머니 소리를 한번 불러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야 내 10살에 어머니랑 헤어졌는데 어머니 소리를 한번도 못해봤어요. 70년 동안을 그게 제일 소원이고 그거 한번만 하고 죽어도 소원이 없겠어. 어머니라는 소리, 그런데 어머니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셨을 거야. 그런데 제일 부럽고 그리운게 어머니 소리가 제일 부러워요. 여러분들 어머니한테 잘해드려. 부모님께 그거 한번 못하면 함 눈물 나고 밤낮, 진짜 기가 막힌거야.
로열 베네트/영국: 그 섬에 갔을 때 말 그대로 북한을 직접 볼 수 없었어요. 돌을 던지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멀게 느껴진거같아요. 울타리 바로 뒤에 무언가가 있는데 잡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북한에 가족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알지 못하지만요.
한강하구 남북 공동수로조사 2018.11.5.
2017년만 해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여러 차례 해서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긴장했잖아요. 불과 1년만에 평화적으로 분위기가 바뀐 이유가 궁금해 지더라고요.
국민대학교,
그래서 북한을 공부하고 계시는 란코프 교수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단: 제가 보기에는 이제 남북한 관계가 어느 정도 좋아지고 옛날 보다는 달라진 것 같은데요. 제가 궁금한 것은 북한 사회에서도 이런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북한 사람들이 사는 것도 변화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어요.
란코프: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정책입니다. 제가 김정은 정책을 높이 평가 합니다.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면 보다 더 좋은 정책을 시행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올해(2018년) 5월에 북한에 보름 정도 갔다 왔습니다. 가본 족이 많아요. 개성공단, 금강산, 신의주 등 많이 갔습니다. 어디에나 상황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남한보다는 매우 어렵게 삽니다. 여전히 남북격차가 앞으로 수십년 동안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지금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많이 좋아진다면 국내경제발전도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사를 보면 경제발전이 기본입니다. 잘못 사는 나라에서 인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개인 자유가 있을 경우에도 그들이 먹을 게 없고 몸이 아플 때 치료를 못받을 경우에도 이와 같은 정치자유는 별가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남한은 먼저 개발독재로 튼튼한 경제의 기반을 만들고 민주국가가 됐습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타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도 지금 똑 같은 길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은의 기본 목적은 북한의 등소평 아니 북한의 박정희가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진짜 좋은 소식이죠.
단: 한국이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된다고 보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란코프: 대체로 말하면 단기적인 통일은 아무 근거가 없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기본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 평화공존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남북한은 평화스럽게 살고, 협력하고 무역하게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둘째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지만 북핵감소, 북핵동결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북한이 체재 유지를 위해서 필요만큼 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보다 더 많은 핵을 만들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는 북한에서 지금 김정은 정권이 개방이 없는 정책을 함으로서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때문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정책을 도와줘야 합니다. 인도주의 이유도 있고 매우 현실주의적인 실천주의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왜? 경제가 발전하는 북한은 덜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단: 저는 이렇게 30분 만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최근에 한국말 실력이 좀 늘어서 그런지 제 주위에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얘기가 있어요. ‘단, 이제 완전 한국 사람이네. 한국 사람 다 됐나 보네” 이런 칭찬 많이 듣고 있지만 제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전에 가보지 못했던 곳 그리고 직접 얘기못했던 분들하고 이런 흥미롭고 뭔가 많이 배울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됐는데 그 경험을 통해서 제가 아직 한국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 깨닫게 된 것 같고 또 얼마나 외국인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문화를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더 뭔가 한국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게 아니라 뭔가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한테 한국에 대해 더 깊숙히 알기 싶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끝. (KBS 스페셜 53화, “한국인도 미쳐 몰랐던 영국에서 온 단의 이야기”에서 정리).
① 한국인이 외국인에 대한 시선이 10년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많이 바뀌었다. 10년전 길을 걸어가면 쳐다보는 시선, 저 사람이 뭐지?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는, 외국인이 한국말로 음식 주문하거나 얘기할 때, 오! 저 사람이 한국말을 하네! 요즘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외국인이 주문해도, ‘예, 알겠습니다. 갖다 드릴게요’,
② 한국의 조직문화는 퇴근했는데도 상사한테서 업무연락이 오면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무시하면, 잘리거나 혼난다는 것, 신입이면 혼자서 청소를 미리 하거나 심부름도 무조건 해야 된다는 것, 이런 건 앞으로 바뀌어야 한다. 프랑스는 퇴근하면 일 관련 전화, 이메일, 메신저는 법적으로 절대 못하게 되어 있다고,
③ 최근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부나 명예 대신 자신만의 삶과 행복을 더 중시하는 방향과 문화패턴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최근에 떠오르는 서브컬처(하위문화)가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에 여자 롱보드가 있다. 여자는 얌전해야 되고, 남자는 울면 안되고, 이런 말을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듣고 자랐다. 그러나 여자도 롱보드를 타고 여가로 달릴 수 있게 바뀌어가고 있다.
④ 러시아인 바실리씨는 8년전 한국으로 유학와 8년간 공부하고 지금은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에서 북한학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동료로, 미래 과학자로 보고 대하는데, 한국은 지도교수가 학생을 부하로 보고 있다. 보상도 없이 나 대신 연구해라 이거 번역해라. 이런 건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착취의 현상, 중국과 일본도 같다고 한다.
⑤ 서울은 많은 곳이 재개발 중에 있다. 집들이 무너질 정도로 낡거나 보기에 흉하지 않은데도 다 부순다, 한국에서 전통 한옥이나 주택에 사는 것도 좋다. 오래 살 수 있는 상태가 좋은 집들이 재개발로 없어진다. 집은 왜 없어지는 걸까.
⑥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고도성장을 해왔다.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을 제작해서 해외에 판매 그 수익으로 발전해왔다. 미래의 한국은 어떻게 새롭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계발해야 한다. 한반도는 당분간 남북이 공존-공영해야 한다.
⑦ 강화도를 지나면, 교동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에 오래된 대륭시장이 있다. 한국전쟁 때 자유를 찾아 북한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북한 황해군 연산군을 마주보고 있다. 거리 3.3㎞, 건물도 아파트도 있고 철조망이 없었으면 수영해서 갈 수 있는 지근거리다. 날씨가 좋으면 잘 보인다. 10살 때 넘어온 소년 황내하는 지금 78세다. 명절 때면 어머니 생각이 나고 어머니 소리를 한번 불러보고 죽는 게 소원이다.
⑧ 남북관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김정은의 비핵화, 남한과 수십년의 경제적인 격차가 벌어져 있다. 역사는 경제발전이 기본, 빈곤국에선 인권이 있을 수 없고, 자유가 있어도 먹을 게 없고 몸이 아파 치료를 못받으면 정치자유는 가치가 없다. 남한은 먼저 개발독재로 경제적 기반에 민주국가를 만들었다. 김정은은 북한의 등소평이나 북한의 박정희가 될 수가 있을까. 잘 사는 북한은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