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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 핑계로 발표 때가 되어서야 첫 글을 쓰게 되었네요.
다른 분들 글 살펴보며 큰 배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래 이번 주차 발표할 글 과제와 좋은 문장 발췌를 첨부합니다.
4차시 장소
2024-05-12 이인현
빈 땅에서
머릿속에 생긴 불편함을 집에 가져가고 싶지 않아서 퇴근 후에 길게 걷는 습관이 생겼다. 고려대역쯤에 내려서 월곡역까지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는 게 좋아하는 코스였다. 거리로는 3km, 시간으로는 4-50분 정도. 내부순환도로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아래에는 정릉천이 흘렀다. 정릉천에는 계절의 변화가 있었고 새로 피어난 개나리와 민들레를 발견했으며 수위에 따라 오리, 왜가리, 참새, 붕어와 버들치가 나타났다. 덤으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걷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나와 같은 이유에서 혹은 나보다 더 곤란한 일을 안고 있는 이들의 속사정을 상상하게 했다. 그 모든 것 덕분에 하루치의 피로를 충분히 씻어낼 수 있었다.
하루는 매번 걷던 길을 벗어났다. 고려대역에서 내린 건 같았고 천 옆에 난 간선도로를 따라 걸었다. 인도가 좁았고 재활용 쓰레기장을 곁에 두고 걸어야 했지만 그리 위태롭지 않았다. 재활용 쓰레기장에 종이와 박스류를 압축하여 쌓아놓은 정사각형 모양의 블럭은 나름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쓰레기장이 끝나자,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파트 단지의 후면과 연결된 곧고 잘 정비된 산책로가 있었다. 길의 오른쪽에는 관공서의 담벼락 - 후에 알게 된 바로는 한국국방연구원 – 이 있었고, 그 아래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어 놓았다. 흥미로운 건 산책길 왼쪽 초록색 펜스로 둘러싸인 빈 땅이었다.
빈 땅이 빈 땅일 수가 있을까. 땅에는 무언가가 이미 존재했다. 푸석하게 메마른 흙. 제멋대로 무성하게 난 잡초와 오래 방치되어 삭아버린 농구대, 평행대, 배드민턴 네트 그리고 우직하게 자라난 가로수들. 그러나 그곳을 빈 땅이라고 말해야 했던 건 그 땅에 관한 인간적인 욕망, 땅 위에 무언가를 세우고 어떻게든 활용하려는 욕망이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이 메가시티에 이르는 규모가 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그중 하나가 지대상승이다. 한정된 자원에 폭발적인 수요가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원리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김성홍은 「서울해법」이란 책에서 땅의 활용은 용도에 관한 복잡한 제도, 건축법, 각종 조례의 틈을 피해 최대한의 임대수익을 낼 수 있는 수익 계산 등 땅이 이미 가지고 있는 한계를 최대치로 발휘하여 생성된다고 밝힌다. 서울의 땅 활용에는 정답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놀고 있는 땅은 흥미롭다. 게다가 길이는 200미터가 넘고 너비는 20미터 정도 되는 큰 땅을 쓰지 않는 건 더더욱. 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떤 무형의 계획이 세워져 있고, 미래의 쓸모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확률이 무척 높지만 말이다. 그 땅에서 나는 종종 상념에 잠겼다.
부모님과 어린 시절의 나는 서울 금호동에 살았다. 부모님은 경남 거창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각자 돈을 벌어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고 집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결혼했다. 아버지는 전자제품 설치 및 수리 기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장난감 공장에 일했다. 아버지 쪽 일가는 할머니의 중풍과 반신불수, 어머니 쪽 일가는 5녀 1남을 둔 외할아버지의 아들 편애로 두 분은 어쩔 수 없는 빈곤에 시달렸다.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판자촌과 달동네를 비롯한 십여 곳의 집을 돌아다녔고, 나 또한 서울에서 세 곳의 집에 살았다. 어머니는 지붕에서 구더기가 우수수 떨어졌고 바닥에서 지렁이가 기어 나오는 집에 살았다고 회상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 금호동은 재개발 열풍으로 삶과 공동체가 파괴된 철거민들의 투쟁이 한창이었다. 부모님은 1993년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부산으로 이사했다. 용역이 직접 집을 부수지 않았어도 내가 태어난 집은 번지 자체가 사라졌으며 터는 보도 블럭이 되었고, 인근은 모두 아파트가 되었다. 만약 철거를 자본에 의한 장소와 공동체의 파괴로 정의한다면 나는 충분히 철거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장 과정에서 나는 억눌려 있었다. 부산에서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집에 딸린 방에 네 식구가 살았다. 친구의 아파트에 갈 때면 매번 놀랐고, 이들과 우리 가족이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인식했다. 학교가 끝나면 가게 앞을 지나지 않기 위해 뒷골목으로 돌아갔다. 2천 원짜리 선물을 사지 못해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지 못했고, 돈이 드는 모든 욕망을 접어두는 방법을 일찍 터득했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늘 괴로웠고, 계급으로 삶을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다. 도서 「우리는 어떻게 가난을 외면해왔는가」에 실린 김윤영 활동가 인터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에 ‘빈곤’이라는 건 총체적인 박탈의 상황을 의미하고, 그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자기 인식이나 ‘긍정적인 빈곤층’으로서의 귀속감을 가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말은 다음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사람대접한다는 게 뭔지는 알아요. 어떤 공간이 자신을 환영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우리 모두 다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고 괴로울 때 같이 옆에 있는 거죠.”
그 후로 2년 동안 빈 땅을 지켜봤다. 정릉천에서 계절을 보듯 이 땅의 계절도 보았다. 눈이 내려 소복하게 쌓인 – 아무도 그 땅에 들어가지 않아 새들의 발자국 밖에는 없는 모습, 봄이면 맞은편 텃밭에 주민들이 대파와 콩과 상추를 심어 싹을 틔우고 수확하는 모습, 재활용쓰레기 장에서 불어온 바람에 쓰레기들이 날려오던 모습, 가을에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들이 무궁화 꽃을 듬성듬성 피우며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멍하게 이 땅을 바라보던 모습. 그 모습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푸 투안의 책 「공간과 장소」의 문장을 빌려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장소의 안전과 안정을 통해 공간의 개방성과 자유, 위협을 인식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공간을 <움직임 movement>이 허용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장소는 <정지 pause>가 일어나는 곳이 됩니다.” 내가 이 땅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는 것, 이 땅을 공간에서 장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이 땅을 내가 좋아하고 있구나. 이 땅의 무용함과 불온함과 적막과 자투리 같은 형상을.
그러나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로 문장만을 얻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당혹스러웠다. 어쩌면 내 삶에 힌트가 더 있지 않을까. 내가 이 땅에 반응하고 마음을 주는 이유를. 지금의 나는 그 이유를 천천히 되짚어 나가는 중이다.
스무살에 학업 성취를 통해 서울로 돌아온 나는 ‘내가 택하지 않은 집단과 계급’을 벗어나고 ‘내가 택한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내가 낭만적인 공동체로 생각했던 것들은 빈곤과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내가 나 본연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를 의미했다. 우연히 그런 곳을 만났을 때의 편안함과 기쁨이 컸다. 속했던 몇 개의 집단이 그러했다. 그러나 모든 현실의 공동체가 그렇듯 그것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무너지고 변화하였다. 공동체는 공간 위에서 세워졌고, 공간은 영원하지 않다. 철거민으로서의 경험은 어쩌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었다.
한 평 땅을 얻기 위해 긴 시간을 살아온 부모님의 삶, 쫓겨났던 서울에 다시 돌아와 살아가는 나, 잃어버린 고향, 환대와 배제의 감각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시점에 빈 땅에 흥미를 느끼는 건 이 모든 것의 발아일 것이다. 현재의 빈 땅에는 언어도 관습도 규칙도 자본도 없다. 이 땅에는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나는 거기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 빈 땅도 나를 환대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땅 또한 정책과 자본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기대에 부응하여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내 자아는 나만의 장소에서 공동체에 속하는 안정적인 경험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그 공동체가 결국 파괴되고 그 곳에서 쫓겨날 거라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런 모순이 내 안에 굴러 다닌다. 나는 무한히 다시 생각을 반복할 뿐이다. 이 땅 위에 다른 상상력을 세우는 건 어려울까. 이 장소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는 없을까. 자본의 영향력을 벗어난 시도는 불가능할까. 그리고 나는 결국 어떤 장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빈 땅에는 또 푸른 식물들이 자라났다. 여전히 펜스는 굳건하고 나는 그 땅을 바라볼 뿐 밟아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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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좋은 문장
1. 돌이켜 보니 쫓겨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쫓겨나던 자리마다 누군가는 늘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 나의 일이 아닌 것”이고 “언제가는 누구라도 그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 (24p)
2. 이익은 소수의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그것을 위해 대다수 세입자들의 삶은 희생되고 불평등으로 생기는 문제들은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으로 남는다. - 53p
3. 정리 해고, 직장 폐쇄, 강제 철거 등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폭력은 하늘과 가까워진 이들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 68p
4. “해결됐죠?” 마포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피켓을 들고 있던 한 철거민에게 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형사는 재차 물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얘기해 줘요. 해결된 거죠?” “해결이 뭔데?” 철거민이 되물었다. 분노와 슬픔이 단단히 서린 목소리였다. 그는 다시 물었다. “해결이 뭔데? 사람이 죽었는데 도대체 뭐가 해결인데!” - 97p
5. 살아남아 그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몫이 되는 것, 역사는 이 과정을 포함하는 역동적인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 아저씨가 알려 줬다. - 114p
6. 합동 재개발 이전의 철거 폭력은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시민들 간의 싸움이 된 것이다. 어제까지 한동네 주민이던 건물주와 세입자가 적이 되고, 건물주가 고용한 깡패들이 집을 부쉈다. - 131p
7. 공공성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라고 정의돼 있다. 공공 역사가 홈리스에게 문을 닫는 일은 개별 홈리스가 아니라 우리 사회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제다. - 151p
8. 박경석 대표는 운동에서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늘 말한다. 관계의 의미는 다양하다. 함께 세상을 바꿀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의견이 다른 사람과 논쟁해 보는 것도, 집을 벗어나지 못하던 장애인이 세상에 나오는 것도 모두 관계를 맺는 일이다. 관계가 남는다면 패배하더라도 허무하지 않다. 세상을 바꿀 씨앗이 남았다면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204p
9. 이곳은 재산권이라는 현실의 법과 점유자의 사용권이라는 이상이 충돌하는 작은 영토였다. - 240p
10. 이 책의 각 공간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이다. -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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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합평 시간에 말한 내용을 좀 더 정리해서 덧붙이자면, 통찰과 성찰이 주를 이루는 글이니만큼, 좀 더 예리한 사상과 통찰과 발견이 집약되거나, 보조개념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 글은 화자의 목소리가 매력인 것 같아서 목소리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좀 더 매혹하는 글이 될 수 있는, 화자의 세계로 독자가 초대된다고 느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정릉천에 몇 번 가봐서, 어디를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은데....ㅎ.ㅎ 서울에서 나대지 보기가 쉽지 않죠. 글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어요. 시점이 바뀌는 지점과 작가의 사유가 깊어지는 것의 흐름이 잘 어우러져서 읽기도 편하고 다 읽고 나서도 어떤 장면이 길게 연상되는, 여운이 남는 글인 것 같아요! 인용하신 책들이 많은데,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인용들이 인현님의 고유한 생각으로 바뀐다면 독창적인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