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강에서 은혜를 채우라
2023. 6. 11(총출석주일) 창세기 32:24-31
보험회사를 다니던 한 청년이 군에 입대하였다. 청년은 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을 즈음에 청년은 어디로 자대배치를 받을 것인가? 걱정과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신병훈련소 소장이 와서 너는 신병훈련소에 남으라는 명령을 하였다. 그리고 소장은 신병교육대 훈련을 마치면 군인보험을 소개하는데, 지금까지는 실적 5%밖에 실적이 되지 않지만, 앞으로는 20%의 실적이 나올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청년은 신병훈련을 마친 병사들 앞에서 군인보험을 설명하였는데, 가입률이 100%였다. 그리고 그 다음 기수도 역시 100% 군인보험에 다 가입을 하였다. 깜짝 놀란 훈련소 소장은 이 청년이 군인보험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강단 뒤에 숨어서 이 청년이 군인보험 소개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청년은 5분만에 모든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자원하여 보험가입서를 쓰도록 하였다.
이 청년이 무슨 말로 보험가입서를 받아 내었겠는가?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보험에 가입한 군인이 전투하다 전사하면 보험금 1억을 국가에서 지급한다. 그런데 군인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국가에서 장례비용 100만원을 지급한다. 만약 전쟁이 났을 때 그 전쟁터에 사병을 보낸다면 국가는 보험을 친구들을 보낼까? 보험을 안 든 친구들을 보낼까?
오래 전 문화일보 유머란에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이 청년은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배치를 앞둔 훈련병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하여서 군인보험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이 옳은 것인가? 야곱의 인생은 실패가 없었다. 이삭의 둘째로 태어난 야곱은 형님 에서에게 붉은 죽과 떡을 장자의 명분을 산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까지 받은 야곱은 형님 에서를 피하여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한다. 그렇게 도망한 야곱은 그가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또 삼촌의 아들들이 시기할 만큼 거부가 되었다. 훨훨 단신으로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한 야곱은 20년이 지났을 때 엄청난 재산을 가진 성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창세기 32장을 보면 야곱의 최대 위기를 맞이한다. 야곱은 자기 앞서 보낸 사자를 보내었다. 그리고 사자에게 보고를 받았는데, 형님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자가 에서가 야곱을 만나기 위하여 온다는 말에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해 하는 것이다.
왜 야곱이 두려워 떨고 있는가? 이제 창세기 32장 6절을 보시기 바란다.
(창 32: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만나려고 온다는 말은 에서가 야곱을 죽이기 위하여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또 400명의 군사로 야곱을 보호하기 위하여 온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성경은 만나려고 온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표준새번역은 치려고 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야곱은 형님이 자신을 치려고 오고 있다고 이해한 것이다.
이렇게 형님이 400명의 사람을 이끌고 자신을 치려고 온다고 해석한 야곱은 7절을 보면 심히 답답하고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5왕국 소돔과 고모라를 치고 조카 롯을 끌고 갈 때에 데리고 간 사람의 수는 318명이었다. 그런데 에서는 군대와 싸워서 이긴 아브라함의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황한 야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 한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것을 두 떼로 나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리라고 약속하였으니 이제 그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한 야곱은 형님을 위하여 예물을 각 떼로 나누어서 형님에게 보내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두렵고 심히 답답해하는 야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야곱의 마음에 있는 심히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은 풀어지지 않는 것이다.
왜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겠는가? C. S. 루이스가 쓴 스쿠르테이프의 편지 18장에 보면 사단이 생각하는 지옥이 설명된다. 그 부분을 제가 읽어드리겠다.
지옥의 전체 철학은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 라는, 특히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 라는 원칙을 인식하는데 있다. 즉 나한테 좋은 건 나한테 좋은 거고, 너한테 좋은 건 너한테 좋은 거지. 누군가 얻은 게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은 게 있는 법이다. <중략> 자아가 확장되려면 다른 사물을 밀어내거나 흡수해야만 하지. 자아가 확장될 때도 강한 자아가 약한 자아의 의지와 자유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이야
악마인 스쿠르테이프는 조카 웜워드에게 지옥은 너와 내가 구분되어져 있고, 또 서로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지옥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아서 흡수하는 곳이다고 하였다.
이곳이 지옥이다. 스쿠르테이프가 말하는 지옥은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빼앗아서라도 내 것을 만드는 곳이다 는 것이다. 그래서 싸우고 이기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곳을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야곱이 그 지옥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야곱은 형님 에서를 이겨서 장자의 명분을 차지하고, 아버지 이삭을 이겨서 장자의 축복을 받고, 삼촌 라반을 이겨서 거부가 되었다. 이러한 야곱은 이제 하나님과 겨루어서도 이기려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씨름을 걸어올 때 야곱은 밤을 새우며 하나님과 싸웠다. 하나님은 그러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위골되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는 야곱에게 그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다.
이상하지 않는가?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야곱과 싸워서 질 수는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준 것은 져 주신 것이다. 우리가 늘 하는 말처럼 아버지가 5살 된 아들과 팔씨름을 한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이 손을 잡고 무지막지하게 넘기고는 아빠 힘쎄지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하여 팔씨름을 하는 것처럼 하다가 져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이겼다고 좋아하는 그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 아버지이다. 그런데 하나님도 져셨다.
왜 하나님이 져 주신 것인가?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축복도 받았다. 그렇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야곱의 행동이 이상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으면 내가 하나님도 이겼다. 하는 승리의 고백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야곱은 승리의 고백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야곱이 무슨 고백을 하는가? 창 32장 20절을 읽기 바란다.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하나님의 져 주심으로 복을 받은 야곱은 내가 승리하였다고 고백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브니엘을 고백하는 것이다. 여기서 보전되었다는 단어인 נָצַל(나찰)은 일반적으로는 벗기다, 빼앗다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니팔형으로 사용될 때는 구원받다로 번역한다. 야곱은 져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구원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이 축복을 저와 여러분도 받지 않았는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악한 마귀와 싸워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져주신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져 주심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져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경기도 이천시 이천군 요골이라는 작은 마을에 태어난 박병기씨는 어머니 따라 전교인이 3명인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그 교회에 누가 드럼을 기증하여서 박병기씨가 9살에 드럼을 배웠다. 그리고 중학교에 갔는데 드럼을 좀 더 잘 배우기 위하여 밴드에 들어갔다가 신앙인의 길을 버리고,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밴드활동이 너무 좋아서 신앙인의 길을 버린 것이다. 그렇게 밴드활동을 하던 박병기는 고등학교 때 멋진 안경을 맞추기 위하여 안경점에 갔다가 시력이 나쁘다는 안경사의 말을 듣게 된다. 그래서 안과에 가서 동공검사를 하기 위하여 시약을 넣고, 빛을 쬐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 졌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결국 시력은 돌아오지 않아 장애진단을 받고 시골집으로 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박병기는 가난한 어머니가 주는 민간요법의 이상한 음식을 먹어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는 것은 두려움과 고통이라 화를 내었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힘들어 밤이면 우는 어머니를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앞을 볼 수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박병기씨는 태어나서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어머니 사랑해요. 감사해요 하는 말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용기에 용기를 내어 그 말을 했을 때 어머니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는 말을 반복하며 운다. 어머니가 그렇게 우신 것은 실명한 우리 병기가 감사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였는데, 실명한 아들이 감사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 후 박병기는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기도할 때 눈에 빛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눈이 열려 앞을 보게 된 박병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리노 박의 공연>박병기는 리노 박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머 활동한다. 오니츠카타이거 신발 브랜드를 만든 사람이 한국에서 콜라보를 하는데 리노와 함께 하고 싶다고 지명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리노만 받은 돈이 3천만원(?)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천만원대를 받고 공연을 하는 연주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연주자로 살아간다.
멋있지 않는가? 이것이 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져 주심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자기 힘을 자랑하고, 능력을 의지하고 산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이제 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비움의 강인 얍복강에서 우리의 모든 욕망과 성공을 내려 놓고, 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