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축 사 (전라북도지사) 5
축 사 (전라북도교육감) 6
격 려 사 (모악산진달래축제 제전위원 일동) 7
중등부 수상작
교육감 상 진달래 꽃 피우면(박지수) 11
도지사 상 모악 愛(박소영) 12
전주교육장 상 꽃향기 퍼지는 모악산(정가영) 14
완주교육장 상 모악의 전경이여(임선희) 16
전주시장 상 내눈안의 풍경은(이유림) 18
완주군수 상 꿈을 꾼다(하수빈) 20
우수상
모악산 바라보며(최지명) 22
베란다 너머의 모악산(손모아) 24
모악산에서 느낀 자연의 귀함(조현주) 26
엄마를 깨운 모악산(박시현) 28
모악산 하늘(박진솔) 30
씨앗 하나(노현주) 32
나의 추억, 모악산(이나라) 34
보이지 않는 미지수처럼(이유리) 35
모악산 속에서(김 산) 37
초등부 고학년 수상작
교육감 상 진달래의 추억(강수민) 41
도지사 상 발걸음의 추억(정지훈) 44
전주교육장 상 비단길을 오르던 추억(임승진) 46
완주교육장 상 내친구 진달래(소정은) 48
전주시장 상 나만의 추억(박진선) 50
완주군수 상 사계절 추억만들기(창가영) 52
우수상
추억(이진아) 54
진달래의 하루(유한송) 57
봄의 분홍빛 마음(윤라경) 59
진달래(윤정현) 61
추억(박지혜) 63
추억(이소민) 64
모악산 진달래(김수회) 66
꽃피는 봄에 나는…(황희선) 67
내마음도 진달래처럼(이승찬) 69
등산의 추억(전송화) 70
대원사의 추억(이해민) 72
진달래(최민아) 74
진달래 꽃과 아빠(강서림) 75
소중한 할아버지(장현도) 77
진달래(이문비) 78
가슴설래인 진달래 꽃잎(민채현) 80
아름다운 추억(이예원) 82
추억(김지현) 84
진달래의 속삭임(박유정) 85
참꽃, 진달래(이충민) 86
모악산 추억(이미지) 88
공학도라는 멋진 꿈을 향하여(송명곤) 89
추억(이재천) 91
초등부 저학년 수상작
교육감 상 할아버지(김아영) 95
도지사 상 우리가족(박 승) 97
전주교육장 상 봄풍경(김민규) 98
완주교육장 상 우리가족(주예진) 100
전주시장 상 개구리 죽음의 시작(이호인) 102
완주군수 상 진달래 꿈(이채영) 104
우수상
꽃바다 꽃향기(김진솔) 105
봄에 만난 모악산(박 진) 106
봄(개나리)(김해인) 107
농촌의 봄(박준혁) 108
우리 가족(안태빈) 109
우리 가족(김선민) 111
우리 가족(김지은) 113
우리 가족(이민영) 115
봄이 오는 길(곽시현) 116
진달래(이한솔) 117
우리 가족(김승빈) 118
봄동산(박준호) 119
봄(유일한) 120
우리 가족(이지승) 121
우리 가족(김태영) 123
우리 고장 전북의 아름다움과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축제가 다양한 형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각 지역별로 열리는 축제 가운데 봄철 향토축제로 자리를 잡은 모악산 진달래화전축제는 음력 3월이면 계절감각이 물씬 풍기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한마당 잔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모악산 화전축제는 글짓기와 그림그리기, 청소년 전통예능경연대회 등으로 꾸며져 청소년들의 숨은 재능과 역량을 겨루는 경연장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주축이 된 모악산 화전축제에서 좋은 성적을 낸 글짓기 작품들을 모아 작은 문집을 만든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청소년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시의적절하고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봄 성대하게 막을 올렸던 제7회 모악산 화전축제 당시 청소년들의 가슴에 새겨졌던 풍성한 추억과 감상이 다시금 아름다운 글로 선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늘의 작은 문집이 밑거름이 되어 앞으로 모악산 화전 축제가 도내 청소년들의 호연지기와 21세기 미래 사회를 이끌어 나갈 주역으로서의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가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007. 8
전라북도지사 김 완 주
녹음이 짙은 성하의 계절에 2007년 <모악산 진달래 화전축제 문예 우수작품집>이 발간하게 됨에 축하를 드립니다. 아울러 모악산 진달래 화전축제를 개최해주신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 제전위원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랑하는 학생여러분들과 지도를 해주신 선생님의 노고에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정서적인 사색보다는 이성적 행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자아를 성찰하며 감정을 정화시켜서 아름다운 심성을 길러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 교육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단지 인터넷을 필두로 한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시뮬레이션 만으로는 깊이 있는 문화의 발전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키우는 글쓰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필요성에 의거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회를 개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우수작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작품집을 통해서 정서를 공유하고, 아울러 보다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모악산 진달래 화전축제 문예 우수작품집>이 일선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널리 활용되어 문예지도의 참고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책자의 발간을 위해 수고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07년 8월
전라북도교육감 최 규 호
젊은 축제를 지향하는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가 벌써 7회째나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해마다 발전하는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는 명실공이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로 자리매김을 하였으며,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재주를 겨루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량으로 좋은 글을 쓴 학생들의 작품이 문집으로 발간이 된다고 하니, 축제를 진행한 제전위원들로서는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교 학생들까지, 저마다 숨은 기량을 뽐내며 적은 글들. 이 아름다운 글들이 후일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대대손손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보다 더 낳은 발군의 실력을 가진 많은 학생들이 또 내년을 기약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는 그러한 축제가 아쉬워 이렇게 좋은 결실을 맺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제전위원 일동은 모두가 손을 크게 벌려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 이 문집에 글이 올라온 학생들만이 아니라, 글이 실리지 않았다고 해도 축제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 작은 문집이 불씨가 되어,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우리 문단을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2007년 8월 19일
모악산진달래화전축제 제전위원 일동
(교육감 상)
전주 평화중학교
아린 달빛 풀잎 가에
슬 잠 깨우고
달빛 향기 소리 없는
호숫가에서
이슬만 흘러
하늘거리면
슬피 우는 이슬방울
내 마음 진달래 꽃피우면
추억 섞인 꽃 나래들
시린 숨결에 날려
물빛 짙은 내 눈물은
진달래 빛 깊은 하늘로
(도지사 상)
전주서중학교
3학년 7반
박 소 영
크고 작은 바위 품에
안겨 우는 물빛처럼
눈물마저 아름다운
향기를 선사한다.
뼈만 남은 나뭇가지
한 줄기의 그늘외어
그 사이로 날아드는
봄의 청명을 알린다.
내 마음 옆 고이 누운
생을 마친 낙엽들아
죽어서도 땅을 덮은
그 예쁜 마음,
두 눈 가득 감아본다
새싹들에 전해본다
산줄기를 바라보는
가슴 벅찬 이 마음들
네 손끝에 닿았을까
상처입고 상처 주는
인간이란 나약함 위에
넓은 가슴 뿐 이라서
그 상처를 대신 아파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닮은
네가 나는 좋다
(전주교육장 상)
전주 성심여자 중학교
1학년
정 가 영
산의 입구에서부터 퍼지는 꽃내음이 향기롭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꽃들에게 인사를 걸어본다. 얼마 전 내린 비를 맞고 마악 고개를 내민 새싹들이 낙엽 사이로 요리 조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대원사로 올라오는 길. 벌써 핀 진달래들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대원사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꽃을 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얼마 되지 않은 새싹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마구 짓밟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지나간 길 곳곳마다 새싹들이 고개를 숙인 채 아파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새싹들을 하나하나 보듬어주었다. 그 어린 새싹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산을 올랐다. 커다란 벚꽃 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제비꽃도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졸졸졸 노래를 불렀다. 작은 언덕위로 올라오자 축제를 시작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바람이 조금 쌀쌀해지고, 풍악소리도 조금씩 작아졌다. 나는 밝게 웃으며 안녕을 인사하는 꽃들을 뒤로하고 발 검음을 돌렸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이제 그만 가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방긋 웃는 꽃들과 손잡고 인사를 했다.
산 아래 꽃들의 향기가 느껴졌다. 꽃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완주교육장상)
모악의 전경이여
삼우중학교
2학년
임 선 희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한번도 보려 하지 않았다. 모악의 푸르뎅뎅한 부드러운 곡선의 능선도 체 바라볼 줄 몰랐다.
봄이라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내 귓가에 멤 돌 때조차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베란다너머로 누길 한 번 준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닐 터인데 ...
봄의 해가 떠오른 지도 오랜데 난 왜 한 번도 모악산을 찾아가보지 못했을까? 분홍빛 진달래의 여린 손길이 공부하랴, 내신에 신경 쓰랴, 여러 핑계를 대는 내 살갗을 어루만져 줄 텐데. 모악산 등반길로 흐르는 청청한 개울물소리가 자동차 경적소리에 익숙해 버린 내 작은 귀를 달래 줄 텐데.
오늘은 꼭 모악산에 가봐야지. 다리에 힘을 단단히 주고 혹여나 산 속 그늘에 잠들어 있을 어린 생명들을 위해 물병가득 채웠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오르고 싶지 않았으나, 수박재다리며, 사랑바우다리를 건너며 흐르는 개울을 보니 눈이 빛나고 가슴 속 가득 시원함이 스며들었다.
발밑으로 굴러 내려가는 조그만 조약돌들로부터 힘을 얻고 바위틈에서 피어난 노란 꽃들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머님들까지 웃게 만드는 그런 노란 꽃들.
물 한 모금 들이 키고 한 걸음 내 믿고 한 모금 들이키고 모악산이 뽐내는 자랑거리에 한껏 취해보고 밧줄에 몸을 의자하고서 정상을 바라보는 이 기분이란 ...
조금만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될 거다. 한 걸음 한 걸음 진달래와 함께 그리고 내 가슴을 적셔주는 개울물과 함께. 그렇게 난 또 오늘도 눈 밖에 장엄히 서 있는 모악산을 바라보며 꿈을 꾼다.
언젠가 이 봄이 가기 전에 꼭! 꼭! 한 번 가보리라.
(전주시장 상)
전주용흥중학교
1학년2반
이 유 림
모악산을 오르다 본
내 눈 안의 풍경은
모든 것을 안아 어르고
모든 것을 보듬는 따스한 햇살이
툭 떨어뜨린 한 장의 색종이였지.
끝없이 돌고 돌다
모악산 끝자락을
겨우겨우 덮어놓은
자그마한 색종이 한 장.
모악산을 오르다 본
내 눈 안의 풍경은
실수로 하느님이 부어버린
물감들 투성이였지.
말없이 흐르고 흘러
바람과 물이 도화지에 그려 논
오색으로 예쁜 그림을
물들여 논 물감들.
모악산을 오르다 본
내 눈 안의 풍경은
소리 없이 흐르던 물이
씨앗 하나 움켜쥐고 만들어낸
하나의 미술 작품 이였지.
씨앗하나가 자라고 자라
힘겹게 만들어낸 눈물겨운 미술작품.
모악산을 오르다 본
내 눈 안의 풍경은
정처 없는 세상이
만들어낸 하나분인 극장.
정처 없이 돌다 만든
말없는 극장
모든 것을 돌리는 자연만의 세상.
모악산을 오르다 본
내 눈 안의 풍경은
세월과 슬픔을 간직한 추억의 음악.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비단자락.
모악산을 오르다 본
내 눈 안의 풍경은
내 눈 안의 풍경은
(완주군수 상)
꿈을 꾼다
구이중학교
2학년 1반
하 수 빈
나는 오늘 ‘모악산 진달래 화전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이 곳에 와서 이 글을 쓴다. 모악산을 보며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듯싶다. 글이 더 잘 써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지금 현재 모악산이 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자랑스러운 구이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나는 십 몇 년 동안이나 모악산과 함께 지내왔다. 앞으로 계속 이 곳에 살고 싶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고개만 돌리면 모악산의 아름다음을 보고 감탄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상쾌한 공기가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다. 나의 꿈은 ‘수학선생님’이다. 이 꿈은 중학교에 막 들어와서 갖게 되었다.
나는 딱히 잘하는 것이 없다. 수학은 못하는 편이다. 수학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 문제를 풀어냈을 때, 그때 얻을 수 있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있다.
내가 꿈을 갖게 된 계기는 중1 담임선생님이 수학을 사랑하는 수학선생님이셨다. 나는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수학을 싫어하던 내가 수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는 수학을 정말 싫어했는데, 이렇게 변해버린 내가 실은 나도 놀랍다. 나는 버릇이 생겼다. 서점에 가면 수학문제집부터 찾고, 심심하면 수학문제를 푼다.
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걱정이 된다. 꿈을 이룰 수 있을지, 포기할까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웃긴 장면이 내 눈에 보인다.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포기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있겠지’라고 또 다시 꿈을 꾸며 다짐한다. 나는 내 꿈을 꼭 이루고 말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앞으로 이뤄야 할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다.
(우수상)
완주상관중학교
3학년 1반
최 지 명
모악산 바라보며
대원사 올라가니
인사인해 사람들 속
구수한 화전내음
철쭉꽃, 진달래꽃
어여쁜 잎을 따다
모악산 정기담아
철판을 지져대네
화전 한입 베어무니
다음주 중간고사
모든 걱정 사라지네
모악산 뒤로하며
대원사 내려오니
내 등에 내려쬐는
석양빛이 아름답네
베란다 너머의 모악산
전주 풍남 중학교
2학년 1반
손 모 아
우리 집에서는 멀리나마 모악산이 보인다. 베란다의 내 선인장을 보러갈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아파트 사이의 모악산이 작게나마 보인다. 우리 학교에서 한라산보다 유명한 모악산, 비록 모악산의 정상까지 올라가 본 적은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모악산이다. 그렇게 잘 보이는 모악산 인데도 정작 공부한답시고 모악산을 보고 생각에 잠겨본 적이 많지 않다.
자연은 항상 학교에서 배우는 데도 멀리만 느껴진다. 우리가 항상 접하는 자연인데도 공책을 들고 다니며 자연을 외우고 다닌다. 하지만 모악산은 우리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 준다. 마음이 혼란스러워도 편하게 해 주고 외로워도 위로해주는 게 모악산이고 자연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툼을 했을 때도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던 건 모악산이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해 힘들어 할 때도 진정으로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해결방안이 아닌 모악산의 아량이었다. 그래서 가끔씩이나마 모악산을 바라보면 고마운 마음과 항상 기대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나는 모악산을 멀리나마 바라보며 오르지 못해도 자연을 느끼고 고민도 해결한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그걸 모른다. 친구들과의 전화에서 내가 모악산을 보고 있었다고 하면 왜 보냐고, 나와서 같이 놀자고 하는 친구들에게 때로는 말해주고 싶다.
오를 용기가 없다면 가끔씩 베란다 너머로 모악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전일중학교
2학년 6반
조 현 주
‘허억, 무슨 놈의 산이 왜 이리 높고 험한 거야!’
힘이 들었던 나는 괜히 나의 운동부족인 줄 알면서도 애꿎은 산에게 투정을 부렸다.
‘휴우, 드디어 도착했다!’
올라오니 시원한 바람이 뿌듯함과 함께 나를 반긴다. 그러나 이 커다란 산에 단단히 화나있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찡그렸다.
강력한 햇빛, 북적대는 사람들...
선천적으로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 자리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좀 떨리, 높이 있는 곳에서 가라앉은 마음으로 아래를 바라보니 그제 서야 아름다운 벚꽃들과 우리나라 건축의 넋을 잃게 하는 색채, 돌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나의 왼쪽에 있던 푸르른 숲, 푸르고 활기차 보여서 내 마음까지 시원해지게 만드는 숲. 그 숲을 보면서 나는 지난번 친척모임 중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할머니네 집이 시골에 위치해 있어서 놀 일이 별로 없던 우리는 우리끼리 만의 놀이인 ‘불놀이’에 점점 심취되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자리도 정하고 기술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날도 평소 때처럼, 우리의 비밀장소에서 불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친척동생 은찬이가 ‘누나아!’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소리를 지른 곳을 살펴보니 산의 푸르른 풀 위를 빨간 불꽃들이 점점 장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앞, 뒤 가리지 않고 가방을 들고 달려들었다. 풀은 사방팔방으로 펼쳐있었기 때문에 산으로선 불이 피어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한 10분 쯤 퍼퍽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우리들이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까맣게 변해버린 산의 일부분을 고고 다소 마음의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우리는 누가 볼까 두려워 역시 까맣게 변한 가방을 던져놓고 도망쳐 나왔다.
그로부터 하루 후, 우리는 그게 창피한 감춰야 될 비밀이라는 걸 잊고 굉장히 큰 모험을 한 것처럼 여기저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랬던 내가 한심해진다. 그리고 이 모악산의 푸르른 자연을 보면서 만약 그 때 그 산이 통째로 없어졌었다면 얼마나 큰 일 이었을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자연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알게 된 나도 많이 반성해본다.
산을 오를 때,
‘아, 여길 또 내려와야 한단 말아?’라고 중얼중얼 대면서 올라왔는데 내려올 때에는 전혀 힘들 것 같지가 않다. 옆에선 쪼르륵 흐르는 개울이, 머리위엔 푸른 나무가 함께 할 테니까.
엄마를 깨운 모악산
전주 평화중학교
2학년 3반
박 시 현
얼굴이 거칠고
가슴이 답답하며
병원에 다니던 엄마
학교 갔다 오면
힘없이 누워만 계시던 엄마
밥맛이 없고
입안이 꺼끄럽다고 투덜거리던
얼굴이 유독 하얀
우리엄마
엄마가 달라졌다
작년 이맘때쯤
모악산을 다니신다며
분홍셔츠를 사들고 온 우리엄마
오늘은 대원사까지
내일은 수왕사까지 가야지
다리는 아프고 힘든데
가슴이 안 아픈 것 같아
“산에 갔다 오니 너무 좋다!”
언젠가부터 학교 갔다오면
창문이 열려있고
음악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꽃피는 봄
더운 여름
단풍든 가을
눈 내리는 겨울
한해를 모두
모악산을 다닌 우리엄마
올 봄부턴 일을 하신다.
오늘은 온 가족이 화전축제에 왔다.
엄마를 깨워준
그 품안에서
모악산 하늘
전주중앙중학교
3학년 5반
박 진 솔
오늘, 모악산의 하늘은 다른 곳의 하늘과 다르다. 파랗다. 파랗다는 것은 여느 산이나 모두 같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악산의 하늘은 다르게 파랗다. 더 눈이 부시다. 모악산에서 보는 하늘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 또한 아니다. 절 옆에 앉아서 보게 되면 하늘에 처마지붕의 끝이 있다. 계절마다 다른 나뭇가지도 더해져서 마침내 ‘하늘’이 된다.
“내가 너와 같은 하늘을 본다는 것이 수치스럽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는데, 이 구절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는 하늘이 기쁘다. 다른 사람과 같은 하늘을 보는 것이 싫다는 사람은 왜 그런 것일까? 그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도 하늘을 보고 있어서? 그래서 같은 하늘을 보는 것이 싫다는 것일까? 만약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조가조각 나뉘어 보여야 할 하늘이 이상하게 더 크기 때문이다.
하늘은 보는 사람의 감정과 마음에 따라 모양이 달라 보인다고 한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하늘을 보다보면 내 자식에게도 ‘하늘의 모양은 너의 마음먹기에 달렸단다. 항상 예쁜 모양을 보길 바란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악산의 하늘은 변덕스럽게 변하고 있다. 먹구름이 아주 약간 끼었다가 햇살이 비치고 파랗다. 지금 내 곁을 지나가는 어느 누군가의 하늘은 먹구름이 끼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의 하늘이 파랗고 빛나듯이 내 곁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의 하늘도 푸른 봄빛으로 빛났으면 좋겠다.
씨앗하나
전주 용흥중학교
노 현 주
‘나’라고 불리우는
아주 작은 공간에서
나는 오늘도 꿈이라는
씨앗 하나를 키웁니다.
너무 여리고 약해서
깨져버릴 것만 같은
씨앗 하나를 키웁니다.
매일매일 벌레들과
씨앗도 돌봐야하지만,
씨앗이 커간다는
그 사실 하나에
나는 그저 행복하기만
합니다.
때로는 귀찮고 짜증나서
버려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찾아와
희망을 주는
소망이라는 나비 때문에
결국 웃어버리고 맙니다.
훗날 깨어나,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할
꿈을 쳐다보며
나는 그저 웃기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
‘꿈’이라는 씨앗을
키우고 있습니다.
전주 호성중학교
2학년 6반
이 나 라
거실 베란다의 큰 창을 보면 건지산의 풍경이 보이는 우리 집에서는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모악산의 정상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엄마께서 가르킨 희미하게 보이는 모악산의 정상을 보았을 때는 마냥 좋았고 신기했었다. 기족끼리 모악산 등반을 왔을 때 딱 두 번 올라 본 모악산 정상의 모습은 나에게는 멋있고 마음 속 깊이 남을 추억이었다.
중학교에 입하하여 새롭고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하랴, 끝나기만 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찾아오는 시험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주말이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온종일 집 안에만 틀어 박혀있었던 나로서는 이번에 축제 구경할 겸 대회에 참가할 겸 겸사겸사해서 온 모악산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익숙한 산입구가 보이자 괜시리 반가운 마음이 들고, ‘선녀다리’를 건널 때는 어렸을 적 한살 많은 언니와 모악산의 다리들을 외고고 다니던 시절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오자 짜증이 나기도 놀라기도 했지만, 이렇게 앉아 글을 쓰고 있자니 모악산에서의 추억이 떠오르고, 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모악산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어린시절의모악산이 나에게 추억이 되버린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는 영원히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지수처럼
완주중학교
2학년 7반
이 유 리
삐약삐약 유치원 때부터 “난 간호사 언니가 되어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어야지”라는 야무진 꿈을 초등하교 6학년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것이지”라는 말을 듣고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솔직히 요즘 누가 불쌍한 사람들을 공짜로 치료해 주는, 그것도 간호사가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도 든다. 간호사는 옆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을 유치원 때의 유리는 왜 간호사가 되고 싶었을까? 좀 더 크고 멋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마 간호사들은 다 여자니까 그런 것 같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잘하는 것, 내 적성에 맞는 것 바로 작가다. 그것도 드라마 작가. 요즘 드라마들을 보면 면 하나하나에 작가들의 고뇌와 정성이 깃들어진 게 보인다. 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어떻게 하면 배우들이 내가 원하는 느낌을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몇 번을 썼다 다시 지우고 고민하는 초라한 작가. 우리 엄마는 가끔 내 꿈을 말하면 내 등을 찰싹! 때리며 “밤 빌어먹기 딱 좋겠다.”라는 말을 하신다. 솔직히 겁이 많이 나기는 하다. 추운 날, 원고 마감일에 쫓겨 난방도 안되는 골방에서 마지막 글자하나를 완성하지 못하고 저 체온증으로 서서히 원고가 아닌 인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런 어이없는 생을 보내고 싶지 않은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연필을 놀린다. 지금으로서 난 미래의 나를 위해 작은 글이나 책벌레가 되어 열심히 책을 갉아먹는 일 밖에 없다. 또 청년실업자가 50만명이 넘는 이 시대에 초등하교 때 글 잘 썼다고 상 좀 탔다 해도 꼭 드라마 작가가 될 수는 없다. 앞으로의 일은 어디까지나 미지수이다. 이것도 저것도 내가 될 수 있을지도 되지 못할지도 될 수 있는 답이 없는 무한의 공간. 하지만 난 오늘도 작고 초라한 작가의 미수에 주사위를 던져본다.
모악산 속에서
전주 동중학교
1학년 1반
김 산
하늘을 떠받든 나무들은
연초록빛으로 하늘을 수놓고
산을 물들이는
붉은 빛 벚꽃 바다
내 마음에 밀려온다.
겨우내 견디고 깨어난
풀과 꽃들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이 자연을 음미한다.
이름모를 풀과 꽃들은
땅을 꿈으로 물들이고
그들의 향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림으로 자연과 노래하고
글로 자연을 찬양하고
사진과 자연이 교감하고
흥겨운 전통 문화로
자연과 함께 춤춘다.
솟아오른 봉우리 마다
익어가는 흥겨운 봄 잔치
이 곳을 오른 사람들 모두
꽃이 되어 노래한다.
모든 것이
하나를 이루고
모든 것은
꿈이 된다.
이 아름다운 산을
마음 깊이 새긴다.
(교육감 상)
진달래의 추억
송광초등학교
강 수 민
솔솔 부는 봄바람이 냉이 냄새를 싣고 와서는 살살 내 코를 흔들어 깨운다. 나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동생 소희가 깨면 안 된다. 아침부터 나에게 매달려 징징거리는 동생의 모습을 보기 전에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새 것보다는 낡아서 떨어질 듯 말듯한 밀짚모자와 거무스름한 때에 절을대로 절은 치마를 챙기고 나서 집을 나서고는 한다. 챙이 떨어질 듯한 모자라서 밀짚모자를 머리에 얹어도 햇빛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 경험을 나는 어느 정도는 겪어보아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따뜻한 햇살에 젖어들며 나는 뒷산에 올랐다. 청설모 두어 마리가 따스한 햇살이 넘실대는 잔디밭을 뛰어다닌다. 제비도 이내 날아들어 힘차게 솟구친다. 나는 진달래꽃을 따러 흙이 고스란이 담겨있는 고무신을 뒤집어서 쏟아내고 달려갔다.
진달래꽃이 하나하나 내 손에 걸려들었다. 그 꽃들은 재빨리 소쿠리로 담기었다.
“하나아, 두울, 세엣 ... ”
진달래꽃의 개수를 세는 나의 명랑한 목소리가 뒷산을 감싸 안았다.
이제는 소쿠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진달래꽃을 많이 땄다. 그런데도 여러 그루의 나무에는 아직도 헤아릴 수 없는 양의 진달래가 조롱조롱 분홍 등불을 달고 있었다.
“에이, 배고픈데 조금만 먹고 보자!”
나는 소쿠리 곁을 떠나 이리저리 달리며 진달래꽃을 따먹었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하였다.
갑자기 졸음이 물밀 듯 밀려왔다. 나는 정자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앉았다. 엄마가 생각났다.
“아참, 엄마가 진달래꽃 많이 먹음 배 아프댔는데 ...”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잤을까. 내가 눈을 떳을 때는 정자나무 그림자가 다른 쪽으로 옮겨져 있었고, 하늘은 성이 난 듯 찌푸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소희 깬거 아냐?”
나는 급히 소쿠리 챙기고 집을 향해 달렸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점점 시커멓게 변하여 갔다. 이윽고 비가 땅을 밟았다. 나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뛰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제법 축축히 젖은 때절은 치마에, 또 밀짚모자 챙은 결국 떨어져 버렸는지 어디론가 사라진 뒤었다. 뒷산 한번 갔다 왔다고 이렇게 꼴 볼견으로 변해 버린 적은 여태껏 한번도 없었다.
나는 소희가 깼을까 걱정이 되어 안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소희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깨어 있을 텐데 어제 너무 무리를 하였나 보다. 나는 소희가 깨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리었다. 그러고선 나도 소희가 있는 안방으로 슬슬 기어들어갔다.
어제는 엄마의 산소에 갔다 왔다. 소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내손에 들린 것은 달 빛깔을 한 국화꽃 한 송이 뿐이었다. 뒤뜰에 핀 국화꽃 한 송이를 기다랗게 꺾어 신문지로 포장한다는 것이 그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나와 소희는 산소 앞에서 두어번 절을 하고나서 국화꽃을 그 앞에 넌지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침묵이 흘렀다. 발을 돌릴 수 없었다. 내 눈에서는 슬픔과 그리움을 머금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 속엔 달빛국화와 엄마의 산소가 고스란히 다 담기었다. 소희도 눈물을 흘리며 나와 같이 떠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 두 자매는 한참동안을 있었다.
산소에 갔다 와서 소희는 피곤했는지 지금까지도 잠들어 있는 것이다. 나는 소희의 그 마음 이해 할 수 있었다.
나는 심심한 탓에 내가 어렸을 때 찍은 엄마의 사진을 꺼내어 보았다. 그러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는 했다. 나와 소희를 두고 먼저 떠난 아빠와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다.
난 이불위로 드러누웠다. 내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더 원망스러웠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을 적셔왔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났다. 나는 방문을 찬찬히 열었다. 그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봄 햇살을 가득 담아 싱그러움을 뽐내는 물방울들과 물에 촉촉이 젖어든 목련잎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도지사 상)
서원 초등학교
4학년 3반
장 지 훈
한 발 한 발
내 딛는 발걸음은
바스락 바스락
나뭇잎을 밟은
내 발걸음은 나무를 닮아가네.
도토리를 찾아가는 다람쥐
산길따라 흐르는
내 발걸음은
계곡의 물을 닮아가네.
절에 다가간 발걸음은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가네.
지친 내 발걸음 산길을 돌고 돌아
어느새 정상에 가 있네.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아랫마을은 내 발걸음처럼
고요하네.
어디로든 움직이는
흙투성이 발걸음은
산의 추억이 되었네.
(전주교육장 상)
전주 용흥 초등학교
4학년 9반
임 승 진
중국의 모래바람인 황사가 푸른 소나무도, 예쁜 진달래도 뿌옇게 덮어버린 지난 일요일. 우리 가족은 중인리 비단길을 오르게 되었다.
산 아래 논가에서 장끼와 까투리 몇 마리가 우리 가족들 소리에 놀라 푸드득 숲속에 날아가는 모습이 정말 근사했다.
우리 가족은 봄이면 개구리알과 도룡뇽알이 새까맣게 깔린 논길을 따라 올라가는 비단길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바로 ‘비밀의 바위’도 있기 때문이다.
비밀의 바위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비밀의 바위 속에는 아무도 보지 못한 숲과 샘물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들이 장마 때가 되면 없어지고 얼마 있다가 보면 넓은 길이 새로 생겨있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좁고 불편한 오솔길, 폴짝폴짝 뛰어야 건널 수 있는 돌다리 등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어린동생 때문에 우리는 산 중턱에서 하산을 했다.
우리는 그곳이 정상인 셈이고 거기서 엄마의 사랑 고백이 시작됐다.
“여보, 사랑해~” 그러면 아빠의 짧은 대답도 들려온다.
“나도…. 나도….” 산속에서 엄마의 사랑 고백은 늘 용감하고 아빠는 수줍다.
나와 내 동생은 마냥 즐겁다.
외할머니에게 이 비단길은 어릴 적 추운겨울에 땔감을 구하려고 나뭇짐을 지고 오르내렸던 힘겨운 길이였다며 옛 생각에 잠기는 듯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이 계곡물을 마셔봤는데, 아무 탈도 나지 않았었단다. 그리고 산 아래 논두렁에서 잡은 개구리 알을 개구리가 될 때가지 키워보기도 했고, 등산을 하는 모르는 아저씨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사탕을 나누어 먹기도 했어,”
내가 할머니가 되면 손자와 함께 비단길을 오르며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때까지 이 비단길이 변하지 않고 나의 기억을 예쁘게 되살려 줬으면 좋겠다.
(완주교육감 상)
내 친구 진달래
봉동 초등학교
6학년 5반
소 정 은
나에게 친구가 되어줄 만큼 방긋 웃는 진달래. 우리집 뒷산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다. 내가 진달래꽃을 제일 좋아해서 2년전 식목일 날에 심은 것이다. 그랬더니만 지금은 활짝 피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좋은 것 같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진달래꽃을 보고나면 진달래꽃들이 날 방기며 웃는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진달래꽃이 내 친구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슬픈 일이나 괴로울 때 등, 진달래꽃을 보고나면 난 저절로 웃음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진달래가 활짝 필 때마다 나보고 웃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같이 느껴지는 것인가 보다.
난 진달래꽃을 잘 키워보아야겠다. 왜냐하면 진달래꽃이 시들어 죽게 되면 내 친구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가 진달래꽃을 잘 키우면 꽃이 활짝 피어서 내게 매일 웃음을 줄 것이다. 난 우리 집에 진달래꽃이 있는 것이 필 때마다 난 더 피게 만들어 주고 싶다.
진달래꽃을 키우려는 욕심을 가져야 꽃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넓게 해주는 진달래꽃.
진달래꽃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집을 더 활기가 있는 집으로 만들어주고, 나를 더 웃게 만들어주는 진달래꽃은 영원한 나의 친구인 것 같다.
난 진달래꽃을 내 몸같이 내가 챙기면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진달래꽃을 우리 집처럼 크게 만들어줘야겠다.
진달래꽃은 나의 제일 소중한 친구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진달래 축제가 있어서 너무좋은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꽃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진달래를 더 크게 활짝 피게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사랑 한다 진달래야!
(전주시장 상)
전주 송원초등학교
6학년 2반
박 진 선
나의 생일은 4월이다. 밖에는 싱그러운 목련화가 봄을 알리고, 개나리, 진달래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벚꽃축제가 한창인 그런 때에 나는 태어났다.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나를 낳고 긴 가로수 길을 꽃길에 취해 걸어오셨다고 한다. 또 아가인 나를 안고 병원을 여러 번 다니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를 기를 수 없을 만큼 다리가 많이 아프셨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모든 뼈가 다 아물기 전인데 엄마는 조심하시지 않고 무리하게 다리를 사용하신 것이다.
아들만 있는 집에서 자란 아빠는 유난히도 딸을 기다리는 끝에 내가 태어난 것이다. 그처럼 축복 속에서 따뜻한 엄마 품에서 자라야할 나는 그런 행복을 누릴 수도 없이 광주에 계신 이모님의 손에 의해 길러져야 했고 엄마는 계속 한방병원에 다니시며 다리를 치료하셨다 한다.
나는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이모, 이모부님의 사랑 속에 잘 자라고 있었고 가끔씩 엄마, 아빠는 나를 보러 오시곤 했다 한다. 그러기를 거의 일년. 첫 돌이 지나고야 나는 엄마 품에 올 수 있었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모 집은 나의 집 같고 이모는 꼭 엄마처럼 느껴지곤 해서 이모 집에 깔 때는 매우 행복했다. 어느 날 문득 사진첩을 보다가 나의 사진이 이모 집에 유난히 많은 것을 보고 여쭤보았더니 그런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알았을 때는 심통도 부리고 꽃피는 봄도 미워했었지만 차츰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건강한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감사한지를 알게 되었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다리를 갖게 되신 엄마. 나 또한 이처럼 예쁘게 잘 자라고 있고 나의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슬픈 추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가려고 2배, 3배 열심히 살려고 다짐한다. 꽃피는 4월, 이젠 나에겐 희망과 꿈의 달이다.
(완주군수 상)
사계절 추억 만들기
완주 동상초등학교
6학년 1반
창 가 영
새싹들이
돋아나는
파란바다
물결치는
상쾌한 여름의 추억
굽이굽이
풍성한 가을의 추억
군고구마 먹던
따뜻한 겨울의 추억
하나 하나
머릿속을
스쳐간다.
새로운 추억 만들어
행복하고
새로운 추억 만들어
아름다운 사랑 만든다.
나는 오늘도
추억 만들어
행복한 여행 떠난다.
(우수상)
전주 북일초등학교
6학년 1반
이 진 아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이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좋았던 추억, 또는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재미있는 추억. 생각만 해도 기쁘고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것이 추억이다. 나의 소중한 추억이 됐을 때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생일파티를 했을 때이다. 생일파티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들떠서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놀다가 엄마한테 혼난 적이 있다. 그때는 기분이 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어렸던 내가 귀엽기까지 하다. 또 친구와 싸우고 나서 ‘흥!’하고는 말도 안하다가 또 금방 화해한일, 단짝친구가 전학가서 일주일 동안 엉엉 울었던 일, 친구들과 시내에 가서 즐겁게 잘 놀았던 일, 다른 사람들에게는 흔하고, 시시하고, 재미없을지 몰라도 모두다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4학년, 5학년 때 극기 훈련에 가서 장기자랑을 했을 때 두근두근 설레며 틀리기라도 할까봐 가슴 졸였을때, 나는 그때 그 마음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추억은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계절마다 다른 추억이 생각난다. 봄에는 꽃이 활짝 핀 들판을 걸어 다녔었던 일, 여름에는 가족 또는 친구들과 물놀이를 했던 일, 가을에는 낙엽들이 떨어지는 길을 걸어갔던일, 겨울에는 언니랑 엄마랑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했던 일,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추억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사람이라면 다 누구나 자기안의 소중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엄마가 집안일을 하시다가 피곤해서 잠시 누워 계실 때 어린마음에 옆에 앉아서 아프지 말라고 팔을 주무르고, 다리를 주무르고, 옆에서 손을 꼭 붙잡고 지키고 있었을 때...
야영에 가서 지금까지 엄마한테 잘못한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을 때...
그 추억 하나 하나를 다 떠올리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아마 밤을 새도 끝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친구들과의 우정을 알았을 때와 가족에게 사랑을 느꼈을 때 나에게 감동했을 때도 있다.
추억이란, 우리들이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추억들 중에서 가장 좋은 추억을 단 하나만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 뽑지 못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추억 하나 하나가 다 나에게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는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추억이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우정이라는 중요한 것을 알게 되고, 스승의 은혜 또한 알게 되고, 진실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아주 값진 것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내가 하는 생각과, 하는 행동이 다 추억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생각이나 행동을 의미 있게 해야겠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값지고, 더 의미 있는 추억이 앞으로도 많이 생길 것이다. 오늘도 모악산 진달래 화전축제에 와서 아주 소중한 추억을 얻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야겠다.
진달래의 하루
서울 효제초등학교
5학년 5반
유 한 송
진달래의 하루는
멀고도 멀다.
하루안에 피운다고
피우지 못하고
피운다고
피우지 못하고
멀고도 험하다.
싹잎 피운다고
진달래꽃 피운나무
부러워 한다.
하루 하루 지나가도
꽃은 한 못 피우고
봄이 봄이 되어야
꽃이 피운다.
지금은 가을 이지만
봄이 되면
봄이 되면
피울거라
생각하지만
1년이 지나도
꽃은 안 피운다.
꽃은 하나씩
피어가지만
피울려면
멀고
하루는 멀고
꽃은 피우고
내일되면
봄의 분홍빛 마음
전주 삼천초등학교
6학년 2반
윤 라 경
햇살 따뜻한 싱그러운 봄이 오면 늘 먼저 찾아와서 반겨주는 꽃이 있다. 바로 진달래이다. 나뭇가지에 피어 있는 분홍색 빛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다. 꼭 봄의 마음처럼……. 봄은 늘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분홍빛하고 어울리는 것 같다. 진달래야말로 이런 봄의 단짝일 것이다.
나도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진달래 꽃을 많이 보았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봄의 정경이 진달래꽃과 함께 어울렸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을 이용해서 부친 화전 또한 맛도 일품. 모양도 일품인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진달래꽃은 여러 곳에서 이용되어 가고 있다. 진달래를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이젠 완연한 봄 …. 진달래뿐만 아니라 봄을 대표하는 꽃들이 이미 다 탄생하고 떨어질 무렵이다. 떨어지는 풍경이 더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진달래가 떨어질 때마다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분홍빛은 제일 아름다운 것 같다.
진달래……. 물론 이름도 아름다운 꽃이지만 더 아름다운 매력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이 곳 모악산도 오르다보니 듬성듬성 환하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을 볼 수 있었다 ……!
어쩌면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지만 열심히 힘을 모아서 올라올 수 있었던 까닭은 진달래꽃을 복 힘을 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봄바람이 어디에선가 진달래꽃잎을 실어서 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진달래를 너무 많이 이용하고 꺾으면 안 될 것 같다. 어떻게 되었든 진달래는 봄에 우리와 함께 하는 친구이다. 친구는 서로 편한 사이가 되어야하는 것처럼 나또한 진달래꽃을 사랑하고 친구처럼 아껴주어야 할 것 같다.
진달래 한 송이를 사랑하는 일은 모악산을 사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피어 있는 모악산이 아름다운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진달래가 주는 봄을 맞는 기쁨은 정말 좋은 것 같다. 진달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곳에서든지 볼 수 있는 이 솔직하고 평범한 친구는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분홍색인 이유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진달래는 아름다운 꽃이니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진달래는 어쩌면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열심히 보호를 해야 될 것 같다.
진달래도 하나의 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있으면 또 다시 봄이 갈 것이다. 지금도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이 꽃이 있는 이 순간을 열심히 아껴 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진달래는 우리가 늘 옆에서 볼 수 있는 꽃ㅇ이다. 그 아름다움만큼 우리가 아껴 줄 수 있게 만들어 주어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날을 겪게 하자!
진달래의 아름다운 분홍빛은 봄의 마음인 것처럼 싱그러운 이 봄을 진달래꽃과 함께 만끽할 수 있도록 하자!
진 달 래
전주 인봉초등학교
4학년 2반
윤 정 현
우리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진달래 봉오리
고개를
쏙쏙 내밀어요.
봄이오면
산에 피어
등산객의
길잡이이자
희망의
천사가 되지요.
행사장에
피어 있는
진달래는
축제분위기를
한껏 돋우어주지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짜기 어딘가에
맺혀있는
진달래 망울마저도
우리에게
꿈을 실어다
주지요.
언제나
곁에 있고
아름다운
우리진달래는
창조주가
봄의 전령 같아요.
소박하고
예쁜 진달래.
언제까지나
봄을 밝힐 거예요.
추 억
전주 화산초등학교
4학년 4반
박 지 혜
추억이란 단어는 생각해 볼수록 아름다운 단어인 것 같다. 나에게도 많은 추억들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2학년 현장 학습 때 디카를 가지고가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남는다. 친구들과 처음 찍는 사진이여서 그런지 약간 쑥스럽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기분은 최고로 좋았다. 또 애패소드도 있었다. 사진 찍기에만 열중하던 탓일까 우리는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평상에서 일행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때문에 시간을 지체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하였다. 그래서 단체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포즈도 아주 다양하였다. 진짜 웃겼지만 2학년 4반의 이름으로 축이 생겨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재미있는 볼거리도 참 많았다. 예쁜카드를 만들기도 했다.
사진도 찍고 만들기도 하고 결정타로 추억까지 만들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지금 이 추억은 사진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번 현장 학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이고 절대 잊을 수 없을 아주 소중한 추억이다. 이 날은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아주 행복했다. 이날은 몇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지만 내 기억 속에 아주 생생하게 살아있다.
추 억
전주 용흥초등학교
5학년 10반
이 소 민
추억은 물방울이다.
둥실둥실 떠다니고,
금방 사라지지 않는
물방울이다.
추억은 컴퓨터이다.
한번 웃고 떠든 친구가
떠나도 기억나게 하는
똑똑한 컴퓨터이다.
추억은 시계다.
똑딱똑딱 지날 때
더 기억나게 하는
추억은 내 맘의 시계다.
추억은 꽃이다.
피었다 지는 꽃은,
지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는 꽃처럼
추억은 곧 지는 꽃이다.
추억은 앨범이다.
각 페이지마다
사진 볼 수 있는
앨범이다.
추억은 각 단어들을
연상케 하는
좋은 시간이다.
모악산 진달래
서곡초등학교
김 수 회
긴 겨울 이겨내고
봄 축제 알리려고
파릇파릇 새순사이로
활짝 웃으며
나에게 엇 와라
반갑게 맞아주네
다시와라
모악산을 잊지 말고
나도 잊지 말아라
살랑살랑 춤추며
아쉬운 인사를 하네
전주 전일초등학교
6학년 5반
황 희 선
추억이란 단어는 나에게 굉장히 익숙한 단어이기도 하지만 포근함을 안겨주는 그런 양면성이 있다. 봄은 계절이란 테두리 안에 포함되어있는 시작의 계절이다. 어린 새싹이 돋아나고 모내기를 하고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나는, 조금씩 따뜻해지고 조금씩 밝아지는 계절, 추억이 많이 묻어나고 꽃이 피어나는 많은 이들에게 함박웃음을 전해주는 봄이여 추억이여.
허나 자칫하면 그 추억을 그리워할 수 있고 그 화창한 봄날을 그리워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포근하고 이렇게 화창하고 이렇게 격렬한 봄날의 추억들이다. 언젠가 벚꽃길을 걸을 적이 있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속살을 파고들며 향긋한 꽃냄새가 코를 찌르는 오후였다. 꽃에는 벌이 사뿐히 앉아있고 나는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하는 추억의 정의는 ‘그리움’이다. 자신이 인상 깊었던 시간…. 그 때를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것이 추억이다. 그 추억은 어느 누구나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봄이 더 특별하다. 봄이 있기에 봄에 관한 추억이 생기는 것이고 추억이 있기에 그리움이 돋아나는 것이다. 이렇듯 무엇의 반환점은 그 안에 있다.
이번 글짓기를 쓰다 보면서 추억과 봄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미 내 가슴은 넘쳐나는 추억을 담고 있고 남아있다. 다만 기억해 내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내 봄날도 넘쳐난다. 그러므로 우리 21세게 대한민국은 화창할 것이고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 누군가 내 반짝이는 눈을 보았다면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라! 그리고 만들어가라, 이 아름다운 추억들을….
전주 북초등학교
4학년 6반
이 승 찬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린 모악산
군데군데 붉게 물들인 진달래가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수줍은 진달래의 모습처럼
나의 마음도 수줍지만
붉은 진달래처럼
나의 마음도 커져간다.
전주 반월초등학교
6학년 4반
전 송 화
작년 봄 나는 모악산 대원사로 첫 등반을 떠났다. 그래도 걷는 것에 조금은 자신 있었던 나는 같이 등반하는 사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였다.
“등산쯤은 별것 아니라고!”
즐겁게 발을 띄어 대원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그런 자신만만한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등산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대원사에 도착했을 때는 나는 너무 힘들어서 두 다리를 거닐 수도 없고 눈가에는 눈물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이곳 대원사에서 등반을 포기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한번도 해 보지도 않고 자만했던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세웠다. 많이 걷고 운동해서 기회가 되어 다음에 모악산에 오게 된다면 꼭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원사를 뒤로 하고…….
그래도 그 날 나는 즐거웠다. 산을 오른다는 기쁨과, 맑은 공기, 맑은 물, 예쁜 꽃과 아름다운 새소리, 그리고 사촌들과 즐거웠던 시간, 이것이 산이 나에게 준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이였다.
드디어 내 다짐을 확인하는 날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첫발을 띄었다. 작년에 내가 갈 때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나마 올라가ㅑ기 수월했는데 오늘은 마치 길이 전쟁터 같고 우리들이 개미떼들 같았다. 그래도 발걸음은 가벼웠고 나는 앞서가는 많은 사람들을 앞질러 대원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뿌듯함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더 힘들었는데도 칭얼대지 않고 도착한 내가 나는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는 작년 봄, 나의 첫 등반의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간직할 것 같다. 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등산을 한 추억을 떠올리며 이겨내야겠다.
군산 경포초등학교
5학년 6반
이 해 민
너무나 더운 여름날,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산을 올라 대원사에 도착하였다.
할머니, 우리가족 모두가 다니는 절에서 실시하는 여름캠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 전주에서 온 친구들등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지만 군산에서 온 참여자는 오빠와 나 뿐 이였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를 하며 서먹서먹한 마음을 줄일 수 있었다. 법당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스님에서 훌륭하신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덥기도 하고, 스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 여러 친구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고, 여름캠프를 진행하시는 선생님들은 죽비를 들어 어깨를 가볍게 내리치며 “성불 하세요”라고 작게 말씀하셨다.
‘성불 흐는 것은 무엇일까?’
옆자리에 앉은 나도 깜짝 놀라 잠이 달아나곤 하였다.
설법시간이 끝나고 저녁공양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가지런히 놓여진 바로 위에 이미 정해진 배식당번들이 밥, 김치, 단무지, 물을 나누어 주었고, 스님께서는 단무지 하나는 먹지 말고 남겨두라고 하시고서 식사시작을 외쳐주셨다. 맛은 없었지만 한술한술 다 먹고 단무지 한 개씩만 남자 각자의 바로마다 물을 약간씩 부어주시고 남은 단무지로 바로를 깨끗이 씻어 마시라고 하셨다.
나는 속이 느끼하고 몇 번이고 토할 뻔 하였지만 참아내며 눈을 감고 모두 마셨으나 옆에 오빠는 눈물을 흘리며 먹지 않고 그대로였다.
스님과 우리 모두는 원 샷을 외쳤지만 끝내 오빠는 먹지 못하고 서저를 내려놓았다. 스님은 쌀 한 톨 없이 굶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작은 양이라도 감사히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생각하고 도와주는 것이 성불하는 길이라고 하셨다.
바로공양이 끝나고 잠시 쉬었다가 신나는 캠프파이어와 함께 우리의 서먹서먹함은 점차 사라지고 불꽃같은 즐거움이 활활 피어났다.
촛불 속에 집에 계신 엄마, 아빠를 떠올리며 감사의 인사도 드렸다.
캠프불이 점차 사그러지자 담력 훈련이 시작되었다. 절 아래 약수터까지 갔다 오는 것인데 출발과 함께 모두들 비명을 질렀다. 30m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선생님도 그곳에 계시는데 왜 이렇게 두렵고 무서울까?’ 캠프파이어를 모두 마치고 어둠속 달빛을 가로등 삼아 산을 내려왔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마음,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믿는 마음도 성불하는 것이라는 아빠의 말씀을 깊이 마음에 세기며 대원사에서의 지난여름 추억이 그리워진다.
4학년 7반
최 민 아
산과 새들의
긴 겨울잠을 깨우는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주는
진달래는 사진첩이죠.
글 솜씨, 그림 솜씨
진달래는 요술쟁이죠.
하하, 호호, 와글와글
진달래는 사랑이죠.
진달래꽃과 아빠
전주 대정초등학교
5학년 1반
강 서 림
우리 아빠는 뭐든 다 잘 드신다.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음식은 나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진달래꽃이다. 언젠가 아빠께서 맛있다고 하신 진달래를 먹어 본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 맛없었다. 아바는 그런 진달래가 뭐가 맛있다고….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빠는 계속 그 진달래가 맛있다고 하신다.
“진달래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게 뭐가 맛있어?”
동생도 맛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빠, 이게 그렇게 맛있어?”
아빠가 대답했다.
“그럼! 아주 맛있지!”
그러면서 진달래를 하나 따서 우거우걱 먹어치웠다. 아빠는 별종인가 봐.
그런데 5학년 사회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진달래 꽃전은 나쁜 기운을 없애주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봄이면 산으로 들로 나들이가서 진달래나 쑥을 이용해서 화전을 부쳐 먹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아빠가 왜 진달래를 드시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갑자기 진달래 화전이 먹고 싶어졌다. 오늘 진달래 화전 축제에 와서 진달래꽃을 넣은 화전을 먹어보았는데 진달래 향기가 입 안으로 퍼져 향긋했다. 이제야 아빠가 왜 호전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이제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소중한 할아버지
전주 진북초등학교
5학년 4반
장 현 도
나 어렸을 때
넘어진다 조심해라
뒤따라 다니시며 소리치시던 분!
잘 커라, 씩씩해라
꼬옥 품에 안아주시던 분!
나 어렸을 때
“어떡하누 쯪쯪 많이 아프니?”
밤새 기도하며 보살펴 주시던 분!
나 어렸을 때
“아이구 잘한다.”
박수치며 너털웃음 지으시던 분!
나 어렸을 때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넓은 사랑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소중한 추억!
진 달 래
전주 평화초등학교
4학년 2반
이 문 비
모악산 계곡에 앉아,
조용히 돌담 고 있는데,
갑자기 내 동생이
콩콩 날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대원사 대나무 숲으로
데려갔다.
톡톡톡톡 토닥토닥
대숲에 떨어지내.
나는 조마조마
망을 보고
“누가 봐?”
나는 걱정말라며,
“안봐”
앗, 문하야,
누가 너를 보고 있어!
으~앙
울어버리는 내동생
진달래도 창피해,
얼굴이 빨간해진다.
모악산 진달래야
너도 못 본 걸로 해줘,
내 동생은 부끄럼쟁이다.
너처럼…
가슴 설래인 진달래꽃잎
4학년 3반
민 채 현
우리의 마음을 알 듯 마음도 몸도 기쁘고 하늘의 날씨도 아주 화창한 아침. 우리 가족은 모악산 계곡을 등산하기로 멋진 계획을 세웠다. 여러번 오른 모악은 오늘도 나를 반갑게 맞았다. 끝없는 차들은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손에 손잡고 오르는 “대원산 대웅전” 동생과 아빠는 쉽게 올라가지만 엄마가 아주 힘들게 등산을 하셨다.
“엄마 조금만 오르면 되요”
“그래, 힘낼게, 최선을 다하자”
오르는 길에 활짝은 아니지만 드문드문 피어 있는 진달래꽃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잎들, 너무도 예뻣다.
대웅전에 오르니 너무도 많은 사람들!
모두들 웃음이 가득했다. 맛있는 절편! 향이 가득한 차 한 잔! 마음이 편안해 지고 저절로 숙연한 자세로 부처님께 삼배도 올리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진달래 화전” 30분 넘게 기다렸다 얻을 수 있었던 화전을 입에 넣으니 쫄깃쫄깃한 느낌과 입안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진달래 꽃잎 향기, 정말 환상적이었다.
“야, 정말 최고다! 최고!
우리는 정말 맛있는 화전을 맛보고 기쁜 마음으로 멋진 그림도 그리고 진달래 추억을 가슴에 가득 담고 주위를 깨끗이 정리하고 대웅전을 뒤로하고 2008년을 기다리며 내려왔다.
아름다운 추억
전주 신성초등학교
6학년 5반
이 예 원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아코디언으로 들려오는 노래 가락이 들리니 아빠 생각이 절로 난다. 우리 아빠는 직장 때문에 지금 미국에 계시는데, 나도 이제 남은 초등학교 1년을 공부하고 졸업을 하면 아빠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정든 나의 집, 정든 친구들, 정든 학교 모두 추억으로 간직해야만 한다. 난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엄마는 어떻게 6년을 보내냐며 심난하다고 하셨다. 그랬었는데 어느새 내가 6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올해를 보람 있게 보내려고 노력중이다.
오늘 같이 모악산 진달래축제도 참여하고 다른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중이다. 이제 이 곳에서는 더 이상 학창시절은 가질 수 없어서 나에겐 한 시간, 한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아빠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씀 하셨다. 그래서 요즘은 외국인 선생님과도 열심히 대화하며 공부하는 중이다. 엄마는 우리나라 역사도 잘 알아야 한다며 책도 많이 읽으라고 하시고 여행도 많이 보내 주신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지금 조금 고생하는 것은 나의 힘찬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며 투자하는 거라고 나를 다독인다. 유학을 가고 싶어도 못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 난 기회가 너무 좋다.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만큼 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1년은 나와 함께 가는 아름다운 추억이자 동행이 될 것이다.
추 억
전주 서일초등학교
4학년 7반
김 지 현
진달래 춤추던 언덕에서
진달래 꽃잎 따먹고
나물캐던 이야기
봄이면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는 어린시절
이제는 추억이 되버린
엄마의 봄날
엄마!
나와 함께
진달래 언덕으로
봄날의 추억여행 떠나요.
진달래의 속삭임
전주 효림초등학교
6학년 8반
박 유 정
엄마 아빠 손잡고
동생과 함께
모악산 오르는 길
길가에 진분홍색 진달래
새 색시처럼 곱게 피어있네.
맑은 공기 마시며
밝은 햇살 받으며
이마에 땀방울 송글송글
약수 한 잔 마시니
예쁜 진달래 꽃
나를 보며 속삭이네
‘나처럼 향기나는 그런 사람 되라’고
‘말없이 아름다움 나눠주는 그런 사람 되라’고
전주 화산초등학교
6학년 2반
이 충 민
진달래하면 개나리와 벚꽃과 같이 봄 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나는 진달래를 보면 마치 봄의 따스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아 진달래꽃을 좋아하는 편이다.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봄 햇볕을 받으며 산에 올라와 수줍게 핀 연보라 진달래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지금도 내 눈앞에 피어있는 진달래는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왜이리 아름답냐는 나의 질문에 진달래는 가지를 산들산들 흔들며 아름답지 않다고 겸손을 띠는 모습은 화려하고 웅장한 장미 같은 꽃보다 더욱 아름다운 소박한 아름다움이 내 마음 깊숙이 느껴져 다가왔다.
참꽃, 진달래.
아~ 생각을 내가 언제부터 했는지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그나마 뚜렷이 잘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가 어린시절 진달래는 화전을 부쳐 먹거나 다른 방법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참꽃이라 불렀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내가 진달래를 보며 참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참꽃, 진달래. 라는 말을 되풀이 할수록 묘하게 느껴진다. 마치 아주 신기한 것이 보는 것과 다르게 평범한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나는 진달래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왜 참꽃이냐. 하지만 진달래는 그저 봄 내음을 풍기며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화가 ‘욱’하고 솟아올라왔다. 고작 꽃 주제에 내말에 대답을 안 한 것이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진달래에 다가갔다. 그러고선 진달래 이파리 한 장을 아무 죄책감 없이 뽑았다. 그래도 진달래는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철든 아이가 부모님께 꾸중을 듣고 꾸욱 참는 것 같았다. 아!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진달래가 왜 참꽃인지를……. 장미 같은 꽃은 제 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가 솟아나지만 진달래는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 오로지 사람을 위해서 제 몸을 지키지 않는다. 참된 참꽃, 진달래.
참한 봄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모악산의 추억
태봉초등학교
4학년 1반
이 미 지
지난해 새싹이 돋아나던 어느 날 나는 모악산 천일암 이라는 중턱에 올랐다.
천일암에 오르기 전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돌 바위와 나무뿌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고 또 개울을 넘다가 빠질 뻔하기도 했다.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고 어느새 등줄기까지 흥건히 젖어왔다. 나는 너무 힘이 들어 주저앉고 말았다.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다시 돌아서는 순간 엄마의 내미는 손과 한마디의 말에 용기를 얻어 천일암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졸졸 흐르는 맑은 물에 세수도 하고 땀도 식히며 천일암에 도착했다. 그 순간 천일암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전주의 모습과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이 조화를 이루는 멋진 풍경이었다.
엄마와 본 그 풍경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뿌듯함이 가슴가득 채워졌던 그 날이 오늘 진달래 화전축제 참여로 모악산을 오르다 천일암 이정표시를 보니 지난해의 추억이 다시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따뜻한 봄이된 지금 또다시 엄마의 손을 잡고 모악산 정상에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오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공학도라는 멋진 꿈을 향하여
이서초등학교
6학년 3반
송 명 곤
공학도라는 꿈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지요?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생소한 꿈이어서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래도 공학도라는 멋진 꿈을 가지고 계속 나아갔다.
어느날, 학교에서 꿈발표대회가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의 꿈은 소방관, 경찰, 축구선수, 과학자 들이었다. 그런데 공학도라는 꿈 발표는 아이들 중에 없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발표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쥐 죽은 듯 모두 조용해졌다. 발표를 끝내자 아이들이 나를 보며 힘찬 박수를 쳐주며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의기소침 해졌던 자신감이 갑자기 친구들의 응원에 힘이 솟았다.
내가 공학도라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은 5살 때부터이다. 5살 때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 아빠가 망치와 삽을 창고에 넣는걸 보고 심심해서 이것저것 가지고 놀아 보았는데 흥미로웠다. 망치로 못을 박고 삽으로 땅을 파서 나무를 심었다. 지금 내 나이 13세…. 공학도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한 가지 꿈을 향해 달려왔다.
사실 우리 아빠 직업이 건설회사 사장님이시다. 가끔 아빠의 현장에 가서 포크레인과 레미콘을 이용하여 도로를 닦는 모습을 보면서 심부름도 하고 망치도 들어본다. 내가 아빠의 일을 도와주면 일꾼 아저씨들이 하시는 말씀, “야! 너는 진짜 커서 공학도가 꼭 되어라” 라고 말씀 하신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도 내가 어른이 되면 나에게 회사를 물려주신다고 하셨다.
인터넷 검색 중 60%정도는 공학도에 대한 검색이다. 공학도란 무엇을 만들고 건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오염되어 가는 환경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미래 환경, 도시 환경의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학도가 되는 꿈을 꼭 이루고 싶다.
추 억
완주 동상초등학교
6학년 1반
이 재 천
걸음마를 배우던
한살 두 살 때,
하얀 이 한 두개쯤
내보이며 가족들
재롱둥이 세살의 나
친구 손잡고
놀던 5살이 엊그젠데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식하고
벌써 6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제일 큰 형이래요
물론 추억도 제일 많구요
(교육감 상)
할아버지
용흥초등학교
3학년 10반
김 아 영
일 년이 좀 지났다. 잠자고 있는 새벽에 엄마와 아빠가 갑자기 우리를 깨웠다.
“아영아, 민수야, 일어나 봐!”
“왜? 아참!”
하며 일어났다. 무척 졸렸지만 이유도 모른 채 차를 타고 할머니 집에 갔다. 가는 길에 엄마가
“아영아, 민수야,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눈물이 나왔다.
금암동에 도착했다. 가서 할아버지 시체를 보고 마구 울었다. 장례식장에서는 너무 울어서 눈이 부었다.
“할아버지 보고 싶어.” 하고, 눈물을 흘리면 엄마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어느날 저녁 엄마와 나는 삼천으로 운동을 갔다. 걷고 있는데 무척 밝은 별이 하늘에 떠 있었다. 나는
“엄마, 저 밝은 별 우리 할아버지 같아. 할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고 있겠지 ?”
“그럼! 할아버지가 아영이를 보고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이제 아프지 않고 편안하시겠지? 나를 지켜보는 별이 있다. 생각하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아영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도지사 상)
전주부설초등학교
2학년2반
박 승
아빠는 회장님 누나는 공주님 나는 황태자. 우리 엄마는 늘 이렇게 부릅니다. 회장님 식사 하세요. 공주님도 황태자도.
우리 가족은 색깔이 분명하지요. 그래서, 엄마는 신호등하고 우리 가족이 닮은 데가 있데요. 항상 우리에게 힘과 사랑을 주시는 정열에 빨간색 아빠. 아빠, 누나, 나에게 휴식처이신 초록색 엄마. 시기심 많은 노란색 누나. 활동적인 나를 화살표로 말하지요. 우리 집은 항상 웃음꽃이 만발 하지요. 사랑과 기쁨이 나오는 힘은 가족의 힘이 아닐까요 ? 이렇게 따뜻한 봄날에 우리 가족이 함께한 진달래 화전 축제는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주었다. 봄에 만난 모악산은 핑크빛으로 물들어서 나를 기쁘게 한다.
(전주교육장 상)
봄풍경
전주 지곡 초등학교
3학년 1반 34번
김 민 규
목악산 줄기를 따라 올라서니 시원한 봄바람이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게 아기 바람이 그네를 타자고 졸라대고 있는 것 같다. 산허리를 올라오는 길에 벚꽃눈이 머리위에 떨어지면 땀방울 하나하나를 선풍기도 없는데 씻겨 주는 것 같아 너무 시원하다.
모악산 밑 구이저수지 속에선 잉어랑 메기들이 봄풍경을 구경하러 나오려다가 낚시꾼들에게 잡힐까봐서 해질 무렵에 나와 팔딱팔딱 뛰면서 벚꽃 한번 보고 철쭉 한번 보고 신이 나서 은빛 물과 춤을 춘다. 덩달아 신이난 나비와 꿀벌들은 철쭉꽃에 앉으면 개구쟁이 내 동생이 벌들을 놀리려고 장난친다. 파란 새싹들도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우리의 꽃을 꺽지 말라고 부탁을 하는 것 같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밤송이 한 알이 작은 돌 틈 사이에서 홀로 외롭게 새싹만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친구해 주고 싶다. 푸른 하늘빛을 맞으며 자란 나무에게 더욱 힘내서 쑥쑥 자라라고 이야기 해주면 나무도 나에게 고맙다고 방긋 인사 하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이 즐겁기만 하다. 꽁공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녹아서 졸졸 산골짜기를 내려와 봄에 피는 꽃들에게도 잘 자라고 물을 내어주면 큰 나무들이 목이 말라 시냇물에 풍덩 발을 담근다. 여름이 오기 전에 나에게 더욱 멋진 봄의 풍경들을 힘껏 보여주기 않을래!
(완주교육장 상)
봉동 초등학교
3학년1반
주 예 진
우리가족은 할머니, 아빠, 엄마, 둘째 동생, 막내 동생이 있다.
우리 가족은 특징이 하나씩 있는데 특징이 한명마다 다 다르다.
할머니의 특징은 고자질하는 대장, 아빠의 특징은 상관하는 대장, 엄마의 특징은 잔소리 대장, 둘째 동생 특징은 심술쟁이, 막내 동생 특징은 장난꾸러기다.
우리가족 특징은 정말 재미있다.
나는 우리 가족한테 바라는 게 있다.
뭐냐면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거다.
매일 우리가족은 내 동생에게만 관심을 가져서 나는 매일 동생을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다짐했다.
뭐라고 다짐했냐면 ‘앞으로 동생하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우리가족이 잘 하는 것 도 한 가지씩 있어요. 뭐냐면 할머니는 요리, 아빠는 조립, 엄마는 공부, 둘째 동생은 피아노, 막내 동생은 컴퓨터를 잘합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조립을 못 할 때 아빠한테 도와주라고 하면 되고 내가 공부를 못 할 때는 엄마한테 알려 달라고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짜 우리 가족이 자랑스럽고 저는 우리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 하지만 싫은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는 너무 고자질해서 싫고 아빠는 너무 상관해서 싫고 엄마는 너무 잔소리해서 싫고 둘째 동생은 너무 심술을 부려서 싫고 막내 동생은 너무 장난을 싫습니다. 하지만, 좋을 때가 많이 있는 것만 해도 저는 행복합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있어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피아노도 쳐서 정말 나는 멋있는 아빠, 예쁜 엄마, 섹시한 할머니, 귀여운 내 동생들한테 너무 고맙고 내 가족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전주시장 상)
개구리 죽음의 시작
전주 용소초등학교
3학년 4반
이 호 인
“개나리 노오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봄이 오면 우리 가족은 막내고모네 집에 간다. 고모네 집은 장수군 번암면 지진리에 있다. 오빠와 나는 고모네 집에 가고 있는 중이다. 고모네 집에 가면 소, 염소, 강아지, 올챙이, 개구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두근거리면서도 즐거웠다.
고모네 집 가는 길에는 동화댐도 있다. 동화댐을 지날 때, 난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저기에 있는 게 뭐야 ? 꼭 바둑판 위에 바둑알 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 같다. 그치 ?”
“으~악! 호인아, 저것 개구리 시체야.”
난 너무 놀랐다. 이 많은 게 다 개구리 시체였다니
……. 알고 보니 개구리들이 댐 아래에서 겨울잠을 자다 경칩이 지나자 알을 낳으러 논으로 가려고 아스팔트 위를 지나가다가 차에 치여 죽은 것이라고 한다.
개구리들이 너무 불쌍했다.
3월은 봄이다. 봄은 사람들에겐 새로운 날의 시작이다. 새싹들도 꽃들도 피어나고 새로운 학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구리에겐 아니었다. 개구리들에게 봄은 죽음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화전 축제에 왔는데 몇명의 아이들이 물구덩이에서 올챙이를 잡아 장난을 치고 있었다. 봄이 오면 안 그래도 동화댐 위에서 수많은 개구리들이 죽어 가는데 올챙이들을 못살게 구는 건 개구리들의 씨를 말리는 일이다. 몇 년 만 있으면 개구리들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봄은 개구리들의 죽음을 알리는 것 같다.
(완주군수 상)
진달래 꿈
이서초등학교
3학년 1반
이 채 영
이제부터 모악산 화전 축제에 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일찍 엄마께서 찰밥을 하시느라 주방에서 바시락 바시락 하시면서 빨리 일어나라고 하시면서 갈 준비 하라고 하신다. 모악산 입구에 올라오면서 저번 년에도 왔지만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옆에 물소리도 나고 스님들도 올라가시고 날씨도 좋고 기분이 좋다. 대원사 올라와서 내 꿈을 생각해 본다. 병들고 아프신 우리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글썽글썽 흘립니다. 그래서, 꼭 낫아 들이려고 커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 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외과의사 봉달이 입니다. 그것은 의사들이 수술과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나 보람났습니다. 더 더욱 절에 와서 보니 제 꿈을 꼭 이루어서 꼭 할머니를 낫아 드리고 싶습니다. 더욱더 공부도 열심히 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예쁜 의사가 되겠습니다.
(우수상)
꽃바다 꽃향기
전주 여울초등학교
3학년 한빛반
김 진 솔
한발 두발
산 위에 올라서니
노랑 꽃 빨간 꽃 예쁜 꽃들이
꽃바다가 되어 나를 반긴다.
울긋불긋
서로 자랑이라도 하며
분홍 꽃, 하얀 꽃 예쁜 꽃들이
꽃향기로 나의 코를 간지럽힌다.
산에 오르면 내 마음이
꽃바다도 되고
꽃향기도 된다.
내 마음은
바다만큼 넓어진다.
봄에 만난 모악산
전주 부설초등학교
3학년 3반
박 진
모악산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5살 때 외할머니를 따라서 대원사를 온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는 부처님께 절을 드리고 또 드리고 또 드렸다.
봄이 오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우리 할머니는 다른 음식도 잘 하시지만 진달래 화전도 잘 만들어 주셨다.
“지글 지글” 뿌~우 하고 올라오는 찹쌀이 맛있게 기름에서 익어간다. 그러면 가족들이 모여서 즐겁게 먹지요. 이제는 맛있는 진달래 화전을 먹을 수 없어서 슬퍼요.
모악산은 멋쟁이구나! 겨울에 만나면 하얀 옷을 입고 따뜻한 봄이 오면 분홍색 옷을 입고 우리 만나지요. 어릴적에는 진달래가 있었는데 이제는 벚꽃이 나를 반기네요. 봄은 모든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 새싹도 인사하고 모든 사람들의 시작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봄이 정말 좋다. 3학년이 되어서 만난 이 봄날에 “진달래 화전 축제”가 나를 반기니 더욱더 신이 나는 것 같아요. 작년에도 올해도 내년도 봄이구나는 진달래 화전 축제로 알 수 있다. 내년 봄에는 벚꽃이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봄(개나리)
전주 화산초등학교
2학년 3반
김 해 인
그저께는 오들오들
추위에 떨고 있더니
어저께는 삐죽
파란 잎을 내밀었어요.
노란 옷을 갈아입고서
학교 가는 나에게
미소 지어요.
나리야 나리야
너는 하룻밤에 나이를 몇 살씩이나 먹니?
그저께는 엄마 품속
어저께는 응애응애 어린아이
오늘은 몇 살?
나는 아홉 살
나와 친구 할 거니?
농촌의 봄
전주 효림초등학교
3학년 3반
박 준 혁
한적한 시골 마을은
봄이 바쁘고도 좋은 계절이다.
농부들은 씨 뿌리느라 한창이고,
새싹들은 돋아나느라 한창이다.
산너머 동산 위는,
꽃들이 피어나느라 한창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은
봄이 바쁘고도 좋은 계절이다.
상쾌한 바람은
따스한 햇볕은
새싹들을 비추어 준다.
우리 가족
한들초등학교
1학년 4반
안 태 빈
우리 아빠는
만들기 박사예요.
잘 만들어요.
우리 엄마는
노래 박사예요.
무슨 노래든 척척
잘 불러요.
공부 박사예요.
시험보면 자꾸
백점을 맞아요.
나는 어떤 박사지?
아하!
나는 공룡 박사예요.
우리 가족은
모두 박사예요.
행복한 우리 집에
전주 서일초등학교
3학년 7반
김 선 민
우리 가족은 개그맨 가족입니다. 집안에는 날마다 서로 서로 웃기려는 식구들 때문에 웃음꽃이 핍니다.
먼저 개구쟁이 이고 웃음이 많으신 우리 아빠는 저희와 구슬치기와 왕 딱지놀이를 좋아 하시고 같이 목욕하기와 가끔은 우리와 잔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해주십니다. 또 애교가 많으신 엄마는 약간 공주병을 갖고 계시지만 요리를 잘 하셔서 언제나 식사 시간이 즐겁답니다.
저는 축구와 수영이 제일 즐거운데 학원 다니는 것이 제일 싫습니다.
맨 끝으로 제 동생 재형이는 울보와 떼쟁이 인데 가끔은 둘이 다퉈서 엄마한테 혼나고 벌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귀여운 동생이랍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물에서 수영하는 것을 제일 좋아 하는데 여름에 식구들 끼리 물에서 배구를 할 때가 제일 즐겁고 신이 납니다.
주말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서곡에 있는 황방산까지 등산을 하는데 약간 힘들 땐 중도에 포기하고 싶지만 엄마가 뒤에서 밀어 주시고 앞에서 아빠가 손을 잡아 주셔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하고 중간 중간에 버려진 휴지나 음료수 깡통을 주워 가지고 내려올 때가 제일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하루에 한번씩 저녁식사를 마치고 책 읽기 시간이 있는데 저는 책 읽는 시간이 즐겁고 기다려집니다.
저는 우리 식구들이 건강하고 지금처럼 항상 웃음이 많아 서로 먼저 챙겨주고 다독거려 주는 식구로 살고 싶습니다.
저는 엄마 아빠 동생 재형이 우리 식구 모두를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
전주 서곡초등학교
3학년 1반
김 지 은
우리 가족은 늘 우리에게 다정하신 아빠, 때로는 무섭지만 포근한 우리 엄마, 장난꾸러기 내 동생, 약간 수줍음이 많은 나다.
우리 아빠는 운동을 좋아하셔서 못 하는 운동이 없다. 아빠는 그중에서도 배드민턴을 잘 하시고, 우리에게 운동을 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말씀하신다. 아빠는 나이가 많은데도 일요일이면 광주까지 가서 공부를 하신다. 힘들지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빠가 자랑스럽다. 엄마는 다정한 아빠에 비해 꾸중도 많으시고 화를 잘 내시지만 나중에 포근하게 우리를 안아주시는 마음이 따뜻한 우리 엄마다. 엄마가 해주시는 떡볶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나는 피아노치기를 좋아하고 태권도를 잘한다. 좀 내성적이어서 나의 주장과 표현을 잘 못하지만 활달한 성격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좋은 점은 친구가 많다. 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심이 많아서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내 동생은 책을 많이 봐서 그런지 상상력이 풍부하고 글 재주가 좋다.
얼마 전에는 반 선생님이 발표력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으로 용기를 얻어서 반장선거에 나가서 반장에 뽑혔다. 항상 모범적이고 성실한 동생이 부러울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 가훈처럼 참되고 진실되게 바르게 살 수 있는 사람, 늘 우리가족에게 웃음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
우리 가족
전주 인봉초등학교
2학년 7반
우리 아빠 웃음소리
우리 엄마 웃음소리
내 웃음 소리
깔깔깔 귀여운 소리
애완 거북 “투투” 웃음소리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움찔 움찔
항상 건강한 우리 가족
봄이 오는 길
만수초등학교
3학년
곽 시 현
골짜기에 눈이 녹아
시냇물 잠 깨우고
겨울잠 자던 나무 기지개켜면
새싹이 파릇파릇 인사를 하고
살을 애이듯 꽃샘추위 시샘하여도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보슬보슬
산수유꽃 노오랗게 봄을 깨우고
매화꽃 뽀오얗게 봄을 알리고
벚꽃 하이얗게 봄노래 하네
진 달 래
중산초등학교
3학년 2반
이 한 솔
연분홍 진달래는
부끄럼 많은 내 얼굴 같아요.
함박 웃는 아가 웃음이지요.
봄바람 살살 불어 오며는
살랑살랑 춤추는 진달래
폴짝폴짝 뛰어가는 내 친구
꽃분홍 치마 같아요.
나무엔 벚 꽃
땅엔 진달래
꽃 속의 천국잔치 같아요.
추운겨울 잘 견뎌낸 진달래꽃
따스한 봄바람을 마음껏
이제는 잔치속의
화전으로 감동 주는
진달래 너는 영원한 사랑
우리 가족
전주 송북초등학교
1학년 1반
김 승 빈
우리 집은
언제나 시끌벅끌
리모콘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할아버지와
나만의 전쟁이다
할머니와
누나는 구경꾼
엄마는
가족이란
서로 위해주는 것 이란다
봄 동 산
전주 용흥초등학교
2학년 8반
박 준 호
졸졸졸 시냇물 소리에
쑤욱쑤욱 새싹이 인사하네.
수줍게 피어난 아기 진달래
활짝 웃는 개나리 소녀.
희고 고운 목련 아가씨
귀여운 눈꽃송이 오순도순
속삭이는 벚꽃 아이들.
즐거운 봄날에
엄마 아빠 손잡고
봄나들이 가보자
쪼로롱 쪼로롱 종달새 노래하고
뻐꾸기 피아노 소리 울려 퍼지면
화사한 봄 동산은
꽃들의 축제
마음껏 피어나라 꽃들이여.
봄
전주 용봉초등학교
1학년 2반
유 일 한
벚꽃도 웃고 있네
진달래도 웃고 있네
사람들도 웃고 있네
해님도 방긋방긋
구름도 방긋방긋
바람도 방긋방긋
우리도 방긋방긋
부처님 얼굴도 방긋방긋
우리 가족
봉동초등학교
3학년 5반
이 지 승
우리 가족은 언제나 싱글벙글 안 웃을 때가 없지 우리 가족은 멋쟁이 슬픈 일이 있을 땐, 같이 슬퍼 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땐, 같이 기뻐 해주네. 우리 가족은 힘들은 일이 있으면 함께 하여, 모두 이겨내네, 우리 가족은 최고 우리가 없으면 아무 일도 이겨 낼 수 없네, 우리 가족은 함께 도우며 사네, 동생이 울면 누나가 지켜주고, 누나가 울 땐 우리 가족이 지켜주네, 우리 가족은 언제나 도움을 받고 주고, 우리 가족의 최고는 아빠 그 다음은 엄마 또 그 다음은 큰 누나 또 그 다음은 작은누나 마지막은 나, 언제나 활기 차네, 함께 힘을 합치면 안 될 일이 없네, 엄마 아빠는 일을 하고, 우리는 공부를 하네, 엄마는 집안일도 하시고 엄마 아빠는 사이좋게 운동도 가고, 우리 가족은 왜 맨 날 도우며 살까? 왜냐하면 사이가 무지 좋으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싸울 때도 있는 우리 가족, 가족이 꼭 싸우지 않으면 안되나? 정말 이상한 우리 가족. 가족이 도울 때도 있고 싸울 때도 있지 뭘 그래 도우며 살고 싸우며 살면 어때서,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는 우리 가족. 친구도 우리는 아끼지.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사람은 우리 가족이 도와주지. 그 어느 때나 함께하는 우리가족 왜냐하면 우리가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 있어도 비록 슬픈 일이 있어도 이겨내지 못 하네, 우리 가족은 언제나 때에 맞는 일을 하네, 그래서 그런지 사이가 좋나 앞으로는 힘든 일에 더 도움을 청해 줘야지 언제나 도움을 줄 거야. 다짐한 우리 가족이다.
“엄마 아빠 죄송 잘해드리지 못한 것 엄마 아바 사랑해요 파이팅!”
우리 가족
완주 봉서초등학교
3학년 4반
김 태 영
우리가족을 소개합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나
다혈질 우리 엄마
잘난 체 우리 누나
저는 장난꾸러기
그리고 할머니 두 분
할아버지는 안 계셔요
우리 가족은 주중엔
주말에야 같이 시간을 보내지요
그래도 저는 항상 바빠요
학교생활도 바쁘고요
방과 후에도 친구들과 놀기도 바쁘지요
엄마가 하라는
숙제는 많지만
저는 노는게 더 재미있어요
오늘은 우리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야외나들이를 나온건데요
누나는 공연장도
기웃거리며 참 바쁘네요
화전도 먹고
공연도 보고
아빠 엄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
오랜만의 즐거운
가족나들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