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이모로 바뀌기까지
곽흥렬
뜨겁게 달구어진 불판에서 고기 굽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실내는 안개가 드리운 것처럼 연기로 자욱하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왁자하니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우리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벗 하나가 주방 쪽을 돌아보며 큰소리로 종업원을 부른다.
“이모, 여기 불판 좀 갈아 주고 고기 한 접시 추가요.”
실제 그의 이모일 가능성이 전혀 없을 법함에도 여자 종업원은 응당 자기를 두고 하는 소리인 줄을 알아듣고서 쪼르르 달려온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어, 이모가 아니라 언니여야 하는데……’나는 호칭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머릿속으로 그 시점을 가량해 본다. 그러면서 왜 ‘고모’가 아니고 하필이면 '이모'일까, 불현듯이 평소의 그 유별난 탐구중독증이 또다시 고개를 든다.
예전엔 남자 손님들이 음식점의 여자 종업원을 부를 때면 으레껏 "아가씨"였다. 그때만 해도 남자의 위세가 당당했던 시절이어서 인 듯싶다. 그랬던 것이, 언제인가부터 '언니'로 불리어지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언니"“언니”하다 보니 자연스레 '언니'로 굳어졌다. 그렇게 한동안 언니로 통용되어 오다 몇 해 전 쯤부터는 그 호칭이 다시 '이모'로 대체되었다. 언니로 바뀔 때는 왜 ‘누나’가 되지 않았고, 이모로 바뀌면서는 어째서 '고모'가 되지 않았는지 내게는 하나의 숙제로 다가왔다. 남들은 참 좀스럽게 별걸 다 숙제로 삼는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퍽 흥미로운 하나의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곰곰이 헤아려본 끝에 마침내 나름의 답이 찾아졌다. 그 답은 바로 세상사의 흐름에 있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여자 세상이 아닌가. 어디를 가든 여자로 넘쳐난다. 다소곳한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여자들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그들의 위세가 시간이 흐를수록 등등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사내들은 자꾸만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간다.
예부터 낱말을 만들 때 높고 귀한 것은 앞쪽에, 낮고 천한 것은 뒤쪽에 두는 것이 관습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경우에서처럼 가장 대접 받던 선비는 맨 앞에다 놓았고 가장 천시 당하던 상인은 제일 뒤로 돌렸다. 거꾸로 나쁜 의미를 지닌 말은 그 반대였다. '비복婢僕'이라는 낱말을 보면 계집종은 앞에다, 사내종은 뒤에다 두고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남녀를 싸잡아서 욕할 경우 ‘연놈'이라고 하지 '놈년'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중심적인 것은 앞에 두고 부수적인 것은 뒤로 보냈다. 우리는 남한과 북한 사이를 일컬을 때 우리 중심으로 항상 '남북 간'이라고 말하지만, 북한은 자기들 중심으로 반드시 '북남 간'이라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를 함께 가리키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남존여비 사상의 반영이라고 할까, ‘남녀’ 이렇게 표현한다. 또한 동기간의 경우 역시 형제자매'라고 하지 '자매형제'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가씨가 언니를 거쳐서 이모로 호칭이 바뀌기까지 위상의 무게 중심이 남자에게서 여자에게로 간단없이 이행해 온 흐름을 감안하면, 이 '남녀'와 '형제자매’또한 언젠가는 '여남'과 '자매형제'로 고쳐 불리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서적인 거리에서도 남녀 간의 위상 변화가 뚜렷이 감지된다. 요새 아이들은 자기 할아버지를 호칭할 때 외할아버지는 그냥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친할아버지는 꼭 앞에다 '친' 자를 붙여서 "친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는 그만큼 외할아버지 쪽이 친할아버지 쪽보다 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5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한때 인구에 회자되었던 적이 있다. 며느리한테 매겨진 집안에서의 서열이 3번인 강아지보다, 4번인 가사도우미보다 못한 5번인 아들에게 꼴찌인 6번의 시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남겨 놓았다는 쪽지 편지의 제목이다. 오늘날 며느리의 위세가 어떠한가를 바늘로 찌르듯이 꼬집어 놓은 그 기발한 풍자에 무릎이 쳐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웃픈 현실이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지난날 며느리의 호된 시집살이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잠시라도 대열을 놓치면 따라잡기가 버거울 만큼, 지금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는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장차 어디까지 미칠지 앞날의 흐름이 무척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어찌하여 오늘날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무딘 머리 굴려가며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보는 일로 요즘 나는 아까운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