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서울에는 대략 1,700여 개의 사찰이 있다고 하며 그 중 역사성이 있고 성보문화재를 갖고 있는 전통사찰이 5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전통사찰의 상당수는 산에 있는데 특히 북한산에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북한산 자락에 가면 도처에 사찰이 즐비하다. 성북구 정릉동에도 곳곳에 절이 있다. 그 중 참 아담하면서도 유서가 깊은 전통사찰이 바로 경국사(慶國寺)이다.
여느 절과 달리 전각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종교시설물에 대한 현대인들의 안목이 크고 장대한 것에 치중되어 있다면 경국사는 비록 전통사찰이라고 하더라도 규모가 작아 오히려 관심 밖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요즘 들어 언론보도의 집중조명을 받아 불가인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학승인 지관 큰스님이 평소 주석하시던 곳이고 입적하신 장소이기 때문이다. 경국사는 고려 때 창건되었는데 창건 이후 시대별로 주목을 받아왔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계를 선도하는 사찰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국사는 고려 충숙왕 12년(1325)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하였는데 사찰이 청봉(靑峰) 아래에 있어 청암사(靑岩寺)라 하였다. 창건 이후 1330년경에는 무기(無寄)스님이 머물면서 고려 천태종의 중흥을 이루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불교를 배척하는 사회 풍조로 말미암아 사세가 기우는 듯하였지만 인종 1년(1545)에 중건을 하고 그 이듬해인 명종 1년(1546)에는 명종의 모친이면서 수렴청정으로 나라를 지배한 당시 최고의 권력자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 만약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언론사가 있었다면 당시의 중창불사 현장을 취재하려는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다.
숙종 19년(1693)에는 연화선사 승성(昇誠)이 중수하고 천태성전을 신축하였다. 천태성전은 독성(獨聖)인 나반존자(那般尊者)를 모신 전각으로 이때 기록한 「천태성전상량문」이 남아 있다. 이 상량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독성각의 건립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종 5년(1868)에는 칠성각과 산신각을 신축하고 호국대법회를 개최하였다. 1921년 보경스님이 주지로 지내면서 사찰의 모습을 일신해 나갔다. 전각은 관음보전, 극락보전, 영산전, 삼성보전, 명부전, 산신각, 천태성전 등이 있고, 지정 문화재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제748호)과 목관음보살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8호)이 있다.
사찰에서 첫 번째로 접하는 건물이 바로 관음성전이다. 관음성전 내부에는 입적하신 지관스님의 영정과 봉안소가 있으며, 다비식에서 나온 스님의 사리 8과가 안치된 진열대가 있고, 건물 내부 중앙에 목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보살상으로 원래는 전라남도 영암 도갑사에서 조성되었다. 1980년 새롭게 개금(蓋金)할 때 보살상 몸속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강희 42년(1703)에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에서 색난(色難)비구가 조성하였고, 월출산 도갑사 견성암에 옮겨 모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따라서 원래 도갑사 암자에서 봉안되어 있던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관음보전 뒤편에 극락보전이 있다. 극락보전 안에 있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불화의 내용을 나무로 조각한 목각상으로 흔히 목각탱이라 부르며, 불화로 분류되면서 기법은 조각에 속한다. 아미타삼존상 뒤에 후불화로 봉안된 아미타 본존은 암석으로 표현된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연꽃무늬로 장식된 광배(光背)를 두르고 있다. 양 옆으로는 팔대 보살이 시립하고 있고, 상·하단으로 사천왕을 배치하고 있다. 아미타불이 중생들을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아홉 단계로 나누어 설법하여 극락왕생시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약간 어두운 법당 안에서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불화를 보면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신심이 가득해진다.
지금 관음성전에 있는 현판의 경국사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이다.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1921년에 주지로 부임한 보경스님은 이후 약 60여 년간 경국사를 떠나지 않았다. 스님은 워낙 성품이 강직하고 계율에 철저하여 일례로 짧은 치마를 입은 처자는 아예 경내 출입을 못하게 하였고, 조용한 사찰을 요란하게 하는 뾰족 구두를 신고 들어오면 구두 굽을 잘라 버릴 정도였다.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이 절에 들렀다가 보경스님의 인격과 태도에 감화되어 이후 몇 차례 들르곤 했다. 1953년 11월 에는 미국 부통령이 방한하자 한국 문화의 참 모습이 경국사에 있다고 여겼는지 그를 절에 안내하였는데 그 부통령은 후일 회고록에서 당시 경국사 방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라고 밝혔다.
경국사를 방문하고 지관 큰스님이 주석하시던 곳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불현듯 이준(李儁) 열사의 말씀이 떠올랐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1907년 4월 20일 종로 YMCA강당에서 행한 연설문 중에서)
성북구 보국문로 113-10(정릉3동 753)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다. 경국사로 가려면 지하철 4호선 길음역에서 110A, 110B, 143, 1113, 성북 06마을버스를 타고 정릉4동 주민센터, 경국사 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한다. 길 건너 경국사 팻말을 보고 가면 극락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경국사 일주문이 나온다.
■ 경국사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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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종민(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문화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