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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화톳불이 투툭툭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넘실 거리는 불길에 서로의 얼굴 붉고, 드리우는 음영도 밝은 얼굴들을 가리우지는 못했다. 한켠에 내걸린 횃불이 초라할 정도였다.
너른 빠오 앞 공터의 단 위에선 려한은 이제 비 오는 날만 기다릴 게제가 못 되었다.
비가 와도 천여 명을 다 수용할 너른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짬을 내어 부족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저녁들 많이 드셨습니까?"
"네?"
"말기름(馬油)은 계속 채취하고 계시죠?"
"네!"
부족민들 큰 기대를 안고 냉큼냉큼 대답들은 열심히 잘 했다.
"이 말기름을 꾸준히 채취해 각 가정에 두고 상비약으로 쓰시고, 앞으로 전쟁에 출정할지도 모를 남편이나 형제에게 반드시 준비해 보내도록 하세요. 이 마유라는 놈을 다친 부위에 바르게 되면 소독이 되어 상처가 덧 낫지않고, 그 만큼 빨리 아뭅니다.
그래서 먼 옛날(후일 일본)에서는 양이 적고하니, 희귀한 두꺼비 기름이라 속여 팔아 큰 돈을 번 나쁜 장사치들이 생겼다할 정도로 유용한 상비약 입니다. 알겠지요?"
"네!"
훗날의 관우가 화살에 다쳤을 때 화타가 발라 치료해준 이 기름 또한 마유(馬油)였다.
"그럼, 전에 이어서 제사상에 꼭 올려야 할 삼실과 중 두번째인 '감'이라는 과일에 대해서 얘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감나무라는 것은 원래가 저 먼 나라인 천축(天竺)이 원산지 입니다. 게중에는 중국의 양자강 변에도 조금 야생으로 자라고 있지만 원래는 그렇습니다.
하여튼 이 감나무가 열대 나무이다 보니, 좀 기온이 덜 따뜻한 곳에서는 자리긴 그럭저럭 자라, 가을이면 붉은 단풍으로 멋있어 부자들이나 높은 지위의 자들이 관상수라 하여 보고 즐기는 나무로는 되었습니다만, 도대체가 열매를 맺지않으니, 과일 나무로서는 부적격 이었죠.
헌데 몇몇 사람들이 꾸준히 연구를 하다보니 드디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빨 없는 노인들도 자실 수 있는 홍시가 주렁주렁 열리게 된 거죠."
여기서 잠시 준비된 차로 목을 축인 려한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 열매 맺게 된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냥은 절대 감이 안 열리던 감나무가 고욤나무라는 것에 중간에 접을 붙이니, 거기서 자란 감나무는 열매를 맺게 되었더란 말 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
자식 낳아 그냥 방치하지 말고,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중간에 접 붙이듯 '자식들 교육' 시키라는 의미로, 제사상에 차려놓고 자신과 조상님네들에게 다짐하는 것 입니다.
"나 만은 못 배웠지만 자식들만은 꼭 훌륭하게 교육시키겠습니다!'하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네!"
"그러면 앞으로 제사상에 감을 놔야 되겠습니까? 말아야 되겠습니까?"
"놔야돼요!"
대답 소리가 얼마나 큰지 려한의 귀가 잠시 멍멍할 정도였다.
"보세요! 이게 감을 가을에 깍아 말린 '곳감' 이라는 것으로, 자셔보면 쫀득쫀득한게 아주 달고 맛 있습니다."
"단녀는 호위대원들을 시켜 한 사람 앞에 딱 하나씩만 나누어 주도록!"
"네!"
웅성, 웅성!
부족민들의 소란속에 종찬무의 상행에 의해 준비된 곶감이 모두에게 나누어져 맛을 보게 하였다.
감나무는 BC 2세기 경 부터 유실수로 자리하고 있음이 문헌에 밝혀지고 있다.
잠시후.
"맛 있습니까?"
"네! 하나 더 주세요!"
"하하하......! 그게 준비된 전부 입니다. 나중에 돈 주고 사 잡수세요."
"하하하......!" "호호호........!"
"자, 자! 조용히들 하시고, 하여튼 지금 자신 곳감이, 이 외에도 설사를 멎게하는데는 직효입니다. 이 속에 탄닌(타닌)이라는 험, 험, 성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려한 또 말 실수하여 둘러보니, 심지어 을지즈믄 조차 그, 흉노어까지 유창한지라 흉노어로 알아들었는지 별 표정이 없었다.
"하여튼 이 감나무는 참으로 유용해서, 그 나무 조차 아주 단단하여 자단목(紫檀木), 흑단목(黑檀木) 이라하여, 탁자나 고급 가구를 만드데 쓰입니다. 여하튼 참고로 알아두시고, 다음은 삼실과의 또 하나인 대추에 대해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이 대추라는 놈 또한 신기해서, 다른 것들은 꽃이 필 때에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흉년이 드나, 이 대추나무 만은 그럴수록 풍년이 듭니다.
해서 '모진 세파에도 자식들이 번성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이 대추를 놓습니다."
려한 잠시 준비 된 대추를 보여주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대추가 열린 것을 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가 되시겠지만, 여린 가지에 짜개질듯 주렁주렁 달린 이 대추를 보노라면, 절로 우리 가문과 자식들이 저렇게 번성하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이래저래 해서 자손들 번창하고 집안 잘 되라는 뜻으로 제사상에 꼭 올립니다. 알겠습니까?"
"네!"
"내가 삼실과를 빌어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주된 얘기는 효도(孝道)~ 하라! 이 얘깁니다. 살아 생전 부모 공양 잘 하고, 돌아가신 조상님네들 지성으로 위하고, 자식들 잘 키우라는 의미 입니다. 알겠지요?"
"네!"
"다음으로 드리고 싶은 얘기는 충성(忠成) 한 마디로 줄여 '충(忠)' 입니다.
효로 각 가정이 잘 되면 이렇게 모인 집단도 잘 되어야 하나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먼 옛날의 어느 나라가 임금의 방탕으로 나라가 망 하게 생겼습니다. 그 틈을 타서 강성한 이웃 나라가 쳐들어 온거지요.
헌데 이 무너져가는 나라에도 충신은 있었습니다.
계백 이라는 훌륭한 장수인데, 그 전장에 나가기 전 무엇부터 하신지 아십니까?"
"몰라요! 얼른 얘기해 주세요!"
"바로 들려드리죠. 처 즉 자신의 부인 그리고 딸자식들을 불러놓고는, 전후 사정을 얘기하곤, 단참에 전부 목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가 설명한 이유가 이렇습니다.
나 죽고, 나라 망해, 적군들에게 욕 보일 바에는 내 손에 죽는게 차라리 낫다고 말입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래서 나라가 강해야 됩니까? 약해야 됩니까?"
"강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꼭 강해야 됩니다. 아무튼 이렇게 전장에 임한 장수 밑에는 죽음을 각오한 똑 같은 심정의 오천 결사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런 오천 결사 이다보니 적의 수, 열 배가 넘는 오만이 넘어도 쉽게 깨트릴 수가 없었습니다. 쳐들어가는 족족 죽고 생포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보다 못한 적장의 아들이 의연하게 나라를 위해 나섰습니다.
아직 열 다섯 홍안의 나이 였습니다."
"그 용감하게 홀몸으로 적진에 쳐들어갔으나 기어코 생포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엾이 여긴 계백이 이 홍안의 소년 즉 관창을 풀어주었더니, 또 덤벼와 생포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계백 이번에는 용서 할 수 없었던지라 그 죽여 창대 높이 달으니, 이를 본 오만여 장졸들 그의 기개에 감탄하고 부끄러워 또한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승리를 쟁취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위해 말을 끊었다 이었다.
"위의 얘기에서 알 수 있듯,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 던질 진정한 충신이 많아야 겠지요?"
"네!"
"만약 나라가 약해 망해보십시요. 부인은 적 앞에 강제로 가랭이 벌리게 되고........"
려한은 이 부분에서 자극을 주기위해 직설적 화법을 썼다.
"늙은 부모 적의 단칼에 잘려 피분수 뿜고, 쓸만한 자식들 노예로 질질 끌려가 평생을 그들의 온갖 시달림 속에 살아야 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내 얘기의 요점은 이렇게 내 한 몸 희생하여 적으로 부터 내 식구를 돌보는 충성된 마음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 입니다. 아시겠지요?"
"네!"
"하고 전장에서 목숨 바치는것 만 충성이고 충신이냐?"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아까의 예에서 나라가 약하면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한다 했지요? 그렇게 안 될려면 강한 군대가 있어야 되고, 그 군대가 맨몸으로 나가 전쟁에 임 합니까? 다 죽을려면 뭔 짓은 못 합니까?
해서 그 군인들이 안 죽고 안 다치도록 무장을 해야겠는데, 갑옷, 창, 칼등의 무기며 또한 말등 이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하는데, 여러분들 개인 개인이 각자 사들이는 것 보다는 단체로 사면 싸게 먹힐 뿐더러, 없는 사람은 맨몸으로 싸우라 합니까?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쳐주시고, 무예를 가르쳐주시는 훌륭한 분들은 맨날 하는 일이 그 일인데, 어디서 돈나고 곡식 생겨 밥 먹고 필요한 것 사씁니까?
해서 여러분들이 꼭 내주시어야 할게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금(稅金) 입니다.
이 세금으로 공동으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장만되고, 고마운 분들 녹봉도 줄 수가 있는 것이니, 세금을 내시되, 잘 사는 집은 잘 사는대로, 못 사는 분들은 못 사는대로, 형편에 맞게 물리겠습니다.
세금에는 인두세(人頭稅)라 하여 사람 머리 수 하나 당 부과하는 세금이 있고, 집집 마다 부과하는 가옥세(家屋稅)가 있는 바, 우선은 저 고구려에서 여러분과 같이 목축을 하며 떠도는 사람(遊民)들에게 부과하는 대로, 일 년에 한 집 당 좁쌀이나 콩 기준으로 3말 3되, 열 사람 당 베 1필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기준이고, 잘 사람은 조금 더 내시고, 못 사는 사람들은 형편에 맞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앞으로가 되겠습니다만, 공동으로 필요한 우물을 판다든지, 방어를 위한 성을 쌓는다든지, 길을 낸다든지 할 때 참여하는 부역(賦?役)에 기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또한 충성의 다른 한 형태입니다. 알겠습니까?"
"네!"
"오늘은 밤도 깊고하니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는 또 다른 얘기를 들려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네!"
* * *
"저 중국의 한(漢) 나라를 세운 유방이 진양(晉陽)에 머물러 있을 때 였습니다.
흉노왕 묵특(冒頓?)이 대곡(代谷)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공격하려 했습니다.
이에 이를 안 묵특은 정예군과 살찐 가축들은 깊숙히 감추어두고, 비쩍 마른 가축과 병사들만 겉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를 세작들로 부터 전해들은 유방이 마침내 공격의 칼을 빼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묵특의 40만 정예병에 의해 유방군이 백등산(白登山)에서 완전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유방은 한 유능한 세작을 보내어 흉노 묵특의 아내인 알씨에게 몰래 접근, 금은보화를 안기니, 혹한 알씨의 베갯머리 속삭임에 의해 한쪽 포위망이 풀리는 바람에 살아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내 질문 하나하겠습니다. 만약에 유방의 세작들이 좀 더 유능하고, 똑똑했더라면 유방이 그런 험한 곳에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당연히 안 들었겠습죠!"
"그렇습니다."
"반대로 유방의 보낸 세작이 똑똑치 못했더라면 그 포위가 풀렸겠습니까? 안 풀렸겠습니까?"
"안 풀렸겠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만큼 여러분의 임무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기술 한가지는 알씨라는 내부인을 적당히 잘 세작이 이용했다는 점 일 것입니다. 이것이 곧 내부인을 이용한 세작술인 내간(內間) 이라는 것 입니다. 잘들 아셨죠?"
"넵!"
실제로는 진평(陳平)의 꾀와 사자가 가서 회유했지만, 이들 역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세작으로 변형하여 들려준 것이다.
"오늘로서 여러분들은 소정의 교육을 전부 마쳤습니다. 그동안 고생들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한 고생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용감하고 유능한 여러분들은 이를 잘 헤쳐나가, 여러분이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처자식들을 잘 지켜내리라 믿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넵!"
"수고들 하셨습니다. 떠나기전 여러분들의 가족과 마지막 해후도 하시고, 준비된 술과 고기로 마음껏 회포도 푸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해산 하겠습니다!"
"얏호!"
구월 하고도 열여드레.
이들은 상행을 위해 말에 한 가득 실린 이리의 가죽이며 치즈, 소금 외에도, 비상식량으로 보르쓰라는 음식이 든 소의 방광과 마유, 금창약 등의 비상약품, 비수외 무기류등을 품고, 부족민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흥안령을 넘었다.
여기서 잠시 이들의 비상 식량인 '보르쓰'에 대해 언급하겠다.
이 보르쓰라는 것은 소를 도축하여 청려곡, 그중에서도 지하창고에서 일년 넘게 냉동에 건조에 건조를 한 식품으로, 이게 세월이 흐를수록 부피가 작아져, 소 한 마리 분량이 소의 방광(오줌보) 하나에 전부 들어갈 정도로 부피가 작아진다.
이것을 유목민들 말로 보르쓰라 하는데 이 작아진 놈을 약간 한줌만 떼어 끓는 물에 익혀 불리면, 엄청난 부피로 팽창하며 충분한 한끼의 식사가 되는 것이다.
여하튼 이 보르쓰가 있으므로해서 징키스칸의 군대가 치중에 신경을 안 쓰고 먼 원정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세계를 정복하다시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첨언하면 지금도 이 보르쓰는 몽골 유학생들의 필수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한다.
구월.
곧 가을은 있는듯 없는듯 그렇게 이들 곁을 스치고 이들은 대대적으로 귀환길에 올랐다.
방목을 위해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던 이들이 려한의 지시에 의해 다시 청려곡을 향해 북으로 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려한이 혹시 있을지 모를 고구려 군대와의 조우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 이었다.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차지는 속에 건초와 빠오를 실은 이들의 행렬은 북으로 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말과 양, 소, 염소등의 가축을 몰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