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 황무지에 피어난 불멸의 사랑과 복수의 비극
에밀리 제인 브론테(Emily Jane Brontë, 1818~1848)가 남긴 단 한 편의 소설,『폭풍의 언덕』, 그리고 그 작품 속 주인공 히스클리프. 이 단 한 편의 작품은 세계문학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이자 위대한 고전으로 남았고, 히스클리프는 문학사상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되었지요.『햄릿』의 햄릿,『실락원』의 사탄,『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프랑켄슈타인』의 프랑켄슈타인,『백경』의 에이헙 선장 같은 인물들과 나란히. 사랑인지 광기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인 캐서린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과 주변 인물에 대한 폭압과 증오로 가득 찬 히스클리프의 그로테스크(기괴)한 열정과 집착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히스클리프를 보면서 연민과 안타까움과 함께 영원히 변치 않는 불멸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의 열정에 대해 부러움을 느끼게 될 지도 모릅니다. 두 세대를 이어 푹풍처럼 몰아치는 불같은 사랑과 증오, 그리고 복수의 이야기, 『폭풍의 언덕』속으로 들어갑니다.
이야기는 <쓰러쉬크로스 그랜지>의 새 세입자인 록우드 씨가 황무지에 자리한 저택 <폭풍의 언덕>으로 집주인 히스클리프를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그가 머물게 된 방에서 전에 그 방에 살던 캐서린 언쇼의 일기를 읽고 잠이 들었다가 캐서린의 유령이 들어오겠다고 창을 열어달라는 악몽을 꿉니다.
“I must stop it, nevertheless!” I muttered, knocking my knuckles through the glass, and stretching an arm out to seize the importunate branch; instead of which, my fingers closed on the fingers of a little, ice-cold hand!
The intense horror of nightmare came over me: I tried to draw back my arm, but the hand clung to it, and a most melancholy voice sobbed,
“Let me in—let me in!”
“Who are you?” I asked, struggling, meanwhile, to disengage myself.
“Catherine Linton,” it replied, shiveringly (why did I think of Linton? I had read Earnshaw twenty times for Linton)—“I’m come home: I’d lost my way on the moor!”...
“Begone!” I shouted. “I’ll never let you in, not if you beg for twenty years.”
“It is twenty years,” mourned the voice: “twenty years. I’ve been a waif for twenty years!”
“어떡해서든 멈추고야 말겠어!”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고 귀찮은 가지를 잡으려고 팔을 쭉 뻗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뭇가지 대신 내 손에 잡힌 것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자그마한 손이었다!
악몽을 꿀 때 느껴지는 강렬한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팔을 빼려고 애썼지만 그 손은 떨어지지 않았고, 너무도 애절하게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줘. 들여보내줘!”
“넌 누구냐?” 여전히 팔을 빼려고 애쓰면서 내가 물었다.
“캐서린 린턴.” 떨리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왜 나는 린턴을 떠올렸을까? 린턴 보다는 언쇼를 스무 배는 더 읽었는데.) “나 이제 집에 왔어. 황무지에서 길을 잃었어.”...
“꺼져!” 내가 소리쳤다. “나는 널 들여보내지 않을 거야. 20년을 빌어도 소용없어,”
“20년이야!” 그 목소리가 울먹이며 말했다. “20년. 20년 동안이나 떠돌고 있어.”
꿈도 기괴했지만 록우드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집주인 히스클리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그 방을 나가 헤매던 록우드는 히스클리프가 격렬하게 통곡하며 외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He got on to the bed, and wrenched open the lattice, bursting, as he pulled at it, into an uncontrollable passion of tears. “Come in! come in!” he sobbed. “Cathy, do come. Oh, do—once more! Oh! my heart’s darling! hear me this time, Catherine, at last!” The spectre showed a spectre’s ordinary caprice: it gave no sign of being;
그는 침대로 올라가 걸쇠를 비틀어 풀더니, 창을 당겨 열고는 주체할 수 없이 격렬하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들어와! 들어와!” 그가 흐느꼈다. “캐시, 어서 들어와. 아, 제발 한 번만! 아! 내 사랑! 이번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줘, 캐서린!” 유령은 유령다운 변덕스러움을 보이며 자기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공포스럽고 기이한 꿈과 히스클리프의 이 같은 모습은 <푹풍의 언덕>이라는 저택 이름이 자리 잡은 황량한 그곳에서 벌어진,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광기어린 사랑과 복수의 전조를 보여줍니다.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로 돌아온 그는 하녀인 넬리 딘으로부터 히스클리프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넬리의 이야기는 삼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폭풍의 언덕>에는 언쇼 부부와 힌들리, 캐서린, 그리고 하녀인 넬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여행을 떠났던 언쇼 씨가 길거리에 버려진 어린 사내아이를 데려옵니다. 언쇼 씨는 그 아이를 죽은 아들의 이름을 따라 히스클리프로 부르며 몹시 아꼈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차지한 히스클리프를 처음부터 싫어했던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히스클리프에 대한 힌들리의 구박이 심해지자 결국 언쇼 씨는 교구 목사의 조언을 듣고 힌들리를 대학에 보냅니다. 반면, 캐서린과 히스클리피는 서로 죽이 잘 맞는 사이여서 하인인 조지프의 간섭과 감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들판을 쏘다니며 서로만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가질 만큼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둘만의 세계로 빠져들지요. 그렇게 3년 쯤 지난 뒤 언쇼 씨가 세상을 떠나고, 힌들리는 집에도 알리지 않은 채 결혼한 아내를 데리고 아버지의 장례식 참석 차 돌아옵니다. <푹풍의 언덕>의 주인이 된 힌들리는 이제는 히스클리프를 아예 하인처럼 대하며 숙소마저 하인이 거처로 옮기게 할 정도로 모질게 대합니다. 그럴수록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더욱 둘만의 세계인 황무지를 뛰어다니며 지냈지요. 집에서 나와 황무지를 뛰어다니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자유롭지만, 집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구속, 관습과 질서로부터 벗어난 두 사람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어느 날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근처 <쓰러쉬크로스 그랜지>에 사는 에드가 린턴과 그의 여동생 이사벨라 집에 갔다가 캐서린이 그 집의 개에 크게 물려 그 집에서 5주나 머물며 치료를 받게 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이때 에드가와 캐서린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됩니다. 언쇼 가족의 초대로 린턴 가족이 방문하던 날 그렇지 않아도 캐서린의 호감을 받는 에드가를 미워하던 히스클리프가 사소한 오해로 그에게 폭력을 행사한 뒤 갇히게 되면서 히스클리프는 에드가를 더 미워하고 자기를 가둔 힌들리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I’m trying to settle how I shall pay Hindley back. I don’t care how long I wait, if I can only do it at last. I hope he will not die before I do!”
“For shame, Heathcliff!” said I. “It is for God to punish wicked people; we should learn to forgive.”
“No, God won’t have the satisfaction that I shall,” he returned. “I only wish I knew the best way! Let me alone, and I’ll plan it out: while I’m thinking of that I don’t feel pain.”
“힌들리에게 복수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 얼마나 오래 걸려도 상관하지 않아. 반드시 복수할 거야. 그 전에 힌들리가 죽지 않기를 바라!”
“히스클리프, 그러면 못써!” 제가 말했지요. “악한 자를 벌주는 것은 하느님 몫이야.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해.”
“싫어. 내가 복수하는 걸 하느님은 싫어할 수 있겠지. 제일 좋은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어. 나 좀 가만 놔둬. 내가 계획을 세울 테니. 복수를 생각하는 동안은 아픈 것도 모를 거야.”
이 사건이 있던 그해 여름 힌들리의 부인은 아들 헤어턴을 낳고 앓고 있던 폐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부인의 죽음은 힌들리의 방황을 불러왔고, 하인들에게도 포악하게 굴기 시작했지요. 히스클리프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한편, 캐서린은 애드거 린턴과 점점 더 자주 만나면서 결국 에드가의 청혼을 받습니다. 청혼에 승낙은 했지만 캐서린의 본심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캐서린은 넬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I’ve no more business to marry Edgar Linton than I have to be in heaven; and if the wicked man in there had not brought Heathcliff so low, I shouldn’t have thought of it. It would degrade me to marry Heathcliff now; so he shall never know how I love him: and that, not because he’s handsome, Nelly, but because he’s more myself than I am. Whatever our souls are made of, his and mine are the same; and Linton’s is as different as a moonbeam from lightning, or frost from fire.”
“나는 천국에 살면 안 되는 것처럼 에드가 린턴과 결혼할 일은 없어. 저기 저 안에 있는 사악한 인간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이 결혼은 생각도 안 했을 거야. 지금은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똑같이 천해지는 거야. 그러니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면 안 돼.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그가 잘생겨서가 아니야, 넬리.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같기 때문이야. 우리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건 우리 둘의 영혼은 같은 걸로 만들어졌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과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 같아.”
불행하게도 히스클리프가 이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캐서린이 자신과 결혼하면 자기도 천해진다는 딱 거기까지만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곧장 그 자리를, 그리고 집을 떠나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진 캐서린의 말과 아래 계속된 말을 들었더라면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둘의 운명은 달랐을 것인데 말입니다. 성급함과 불같은 성격은 결국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삶을 바꿔놓았지요.
“My great miseries in this world have been Heathcliff’s miseries, and I watched and felt each from the beginning: my great thought in living is himself. If all else perished, and he remained, I should still continue to be; and if all else remained, and he were annihilated, the universe would turn to a mighty stranger: I should not seem a part of it. My love for Linton is like the foliage in the woods: time will change it, I’m well aware, as winter changes the trees. My love for Heathcliff resembles the eternal rocks beneath: a source of little visible delight, but necessary. Nelly, I am Heathcliff! He’s always, always in my mind: not as a pleasure, any more than I am always a pleasure to myself, but as my own being. So don’t talk of our separation again: it is impracticable.”
“내가 이 세상에서 겪은 가장 큰 불행은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야. 나는 처음부터 그걸 지켜봤고 느꼈어. 살아가면서 내가 가장 마음을 쓴 애는 그 애였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그 애만 남아있다면, 나는 계속 살아갈 거야. 그러나 만약 모든 것이 다 남아있는데도 그 애가 죽는다면 온 세상은 완전히 낯선 곳이 되고 말 거야. 나는 그 세상의 일부라는 느낌이 없을 거야. 린턴을 향한 내 사랑은 숲 속의 나뭇잎 같아. 겨울이 나무를 바꾸어버리듯, 시간이 그 사랑을 변하게 하리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어.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에 뿌리박은 영원히 변치 않는 바위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은 거의 주지 않지만 꼭 필요한 거야. 넬리, 내가 히스클리프야! 그 애는 언제나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내가 스스로에게 늘 기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다시는 하지 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렇게 집을 떠난 히스클리프는 삼 년 뒤, 결혼한 에드가와 캐서린 앞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다시 나타납니다. 부유한 신사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버린 캐서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에드가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폭풍의 언덕>의 주인 힌들리는 알콜 중독에 도박까지 손을 대며 망가져가다가 결국 도박으로 진 빚을 히스클리프에게 빌려 갚게 되면서 재산을 그에게 저당 잡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히스클리프는 에드가가 여동생 이사벨라를 만나는 것을 반대하자 이사벨라를 데리고 달아났다가 에드가의 아이를 가진 캐서린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몰래 돌아옵니다. 그렇게 돌아와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대방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하지만, 사실 그 원망은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서로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요.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배신한 캐서린에 대한 복수로 이사벨라와 결혼하겠다는 자신의 속셈을 숨기지 않고, 캐서린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을 감출 수 없지만 이미 에드가의 부인이 된 자신의 처지를 되돌릴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흔들립니다. 결국 에드가도 이사벨라도 그런 캐서린의 마음과 히스클리프의 진심을 알게 되는 지경에 이르죠.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고 넬리에게 말합니다.
“You suppose she has nearly forgotten me?” he said. “Oh, Nelly! you know she has not! You know as well as I do, that for every thought she spends on Linton she spends a thousand on me! At a most miserable period of my life, I had a notion of the kind...but only her own assurance could make me admit the horrible idea again. And then, Linton would be nothing, nor Hindley, nor all the dreams that ever I dreamt. Two words would comprehend my future—death and hell: existence, after losing her, would be hell...Catherine has a heart as deep as I have: the sea could be as readily contained in that horse-trough as her whole affection be monopolised by him. Tush! He is scarcely a degree dearer to her than her dog, or her horse.”
“그 애가 나를 거의 잊었다고 생각해?” 그가 말했어요. “이봐 넬리, 그게 아니란 건 당신도 알잖아. 나만큼이나 당신도 알잖아. 린턴 생각을 한 번 할 때마다 내 생각은 천 번 한다는 걸!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시절에는 나도 그런 생각도 했어...하지만 그 애가 인정하기 전까지는 그 끔찍한 생각을 하지 않아. 그때는 린턴도 힌들리도 아무것도 아닌 거지. 내가 꾸었던 꿈도 다 그렇고. 그때는 오직 두 말, 죽음과 지옥만이 내 미래가 될 거야. 그 애를 잃으면 살아있다는 게 지옥이야...캐서린의 마음은 내 마음만큼이나 깊은데, 그 애의 사랑을 그 자가 다 차지하겠다는 건 바다 같이 넓은 마음을 말 여물통이 담겠다는 것과 같지. 쳇! 그 자에 대한 그 애의 사랑은 개나 말에 대한 사랑보다도 못한 거지.”
히스클리프의 이 같은 확신에 찬 자신감은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지금 캐서린의 상태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캐서린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가고, 넬리를 이용하여 그녀를 만나려고 하는 히스클리프의 고집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결국 둘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를 비난하며 더 이상 자기 오빠와 캐서린을 괴롭히지 말라고 막아서지만 돌아오는 것은 심한 욕설과 비난뿐이었습니다. 결국 넬리의 도움으로 둘만 만나게 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서로를 원망하듯 서로의 마음을 쏟아냅니다.
“I wish I could hold you,” she continued, bitterly, “till we were both dead! I shouldn’t care what you suffered. I care nothing for your sufferings. Why shouldn’t you suffer? I do! Will you forget me? Will you be happy when I am in the earth?...I’m not wishing you greater torment than I have, Heathcliff. I only wish us never to be parted: and should a word of mine distress you hereafter, think I feel the same distress underground, and for my own sake, forgive me!”
“널 붙들어두고 싶어.” 그녀가 비통한 심정으로 말했지요. “우리 둘 다 죽는 날까지! 네가 얼마나 괴롭든 상관없어. 네 괴로움은 상관없어. 나는 괴로운데 너는 왜 괴로우면 안 되는 건데? 내가 땅속에 묻혔을 때도 너는 행복하겠어?...네가 나보다 더 고통받는 걸 바라는 게 아니야, 히스클리프. 그저 우리가 영원히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내 말이 나중에 너를 괴롭히거든 나도 땅속에서 똑같이 괴로워한다고 생각하고, 나를 용서해줘!”
히스클리프는 대답합니다.
“You teach me now how cruel you’ve been—cruel and false. Why did you despise me? Why did you betray your own heart, Cathy? I have not one word of comfort. You deserve this. You have killed yourself. Yes, you may kiss me, and cry; and wring out my kisses and tears: they’ll blight you—they’ll damn you. You loved me—then what right had you to leave me? What right—answer me—for the poor fancy you felt for Linton? Because misery and degradation, and death, and nothing that God or Satan could inflict would have parted us, you, of your own will, did it. I have not broken your heart—you have broken it; and in breaking it, you have broken mine. So much the worse for me that I am strong. Do I want to live? What kind of living will it be when you—oh, God! would you like to live with your soul in the grave?”
“네가 날 얼마나 잔인하게, 잔인하고 거짓되게 대했는지 알겠다. 왜 나를 경멸했어? 왜 네 마음을 배신했어, 캐시? 널 위로할 말이 한 마디도 없어. 이렇게 된 건 마땅한 일이야. 너를 죽인 건 너 자신이야. 그래, 입맞춤을 하건 눈물을 흘리건 마음대로 해. 나한테서 억지 입맞춤을 짜내건 눈물을 짜내건 마음대로 해. 나의 입맞춤과 눈물이 너를 말려버리고 너를 망가뜨릴 테니까. 나를 사랑했잖아. 그런데 무슨 권리로 나를 떠났어? 무슨 권리로...말해봐. 린턴에게 느꼈던 그 보잘 것 없는 환상 때문에? 비참해도 몰락해도 죽는다 해도 신이나 악마가 그 어떤 짓을 해도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었는데, 너는 네 마음대로 우리를 갈라놓은 거야. 네가 네 가슴을 찢어놓았어. 그러면서 내 가슴까지 찢어놓았지. 내가 이토록 강한만큼 내 괴로움은 더 고약해. 내가 살고 싶겠어? 네가, 오...그때 내가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이 되겠어? 제길! 네 영혼은 무덤 속에 있는데 그렇게 살고 싶어?”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자 캐서린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밤 자정, 캐서린은 딸 캐시를 낳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사벨라 또한 히스클리프를 떠나 그의 아들 린턴을 낳습니다. 얼마 후 힌들리도 사망하게 되면서 <폭풍의 언덕>은 마침내 히스클리프의 소유가 됩니다.
사랑은 복수로, 복수는 집착으로
린턴은 딸 캐시를,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을 데리고 있었는데, 히스클리프는 헤어턴에게 전혀 교육을 시키지 않은 채 무지렁이로 키웠지요. 자신을 구박하고 무시하면서 하인처럼 취급하고 괴롭힌 힌들리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이 작용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사벨라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턴이 외삼촌 에드가의 집으로 오게 되면서 린턴과 캐시는 서로 호감을 갖고 함께 지냅니다. 자신의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안 히스클리프는 아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린턴과 캐시를 결혼시키려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산때문입니다.
“My design is as honest as possible. I’ll inform you of its whole scope,” he said. “That the two cousins may fall in love, and get married. I’m acting generously to your master: his young chit has no expectations, and should she second my wishes she’ll be provided for at once as joint successor with Linton.”
“내 계획은 더할 수 없이 정직하지. 전부 다 알려주지.” 그가 말했습니다. “내 계획은 두 사촌이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만드는 거야. 내가 당신 주인에게 관대한 아량을 베푸는 거야. 그의 어린 딸년은 물려받은 유산도 없는데, 내 뜻을 따른다면 린턴과 공동 상속자가 되어 그 즉시 생계를 보장받을 거야.”
그의 계획은 자신의 아들 린턴과 캐시를 결혼시켜 자신을 핍박했던 언쇼와 린턴 두 집의 재산을 모두 차지하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에드가는 히스클리프에게 호감을 보이며 린턴과 사귀는 캐시를 떼어놓기 위해 과거에 있었던 히스클리프의 악행을 들려주며 다시는 그를 만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이처럼 에드가가 캐시를 린턴에게서 떼어놓으려 하자 히스클리프는 린턴을 시켜 캐시에게 구애편지를 쓰도록 강요하는 등 린턴과 캐시를 결혼시키려는 계획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히스클리프는 에드가가 방문을 금지한 <폭풍의 언덕>으로 린턴을 만나러 온 캐시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가두고 둘을 결혼시켜 버리죠. 막장 같은 상황이지만 이러한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이 바로 히스클리프의 광기의 한 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히스클리프에 대해 캐시가 대들며 한 다음과 같은 말은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I’m glad I’ve a better, to forgive it; and I know he loves me, and for that reason I love him. Mr. Heathcliff, you have nobody to love you; and, however miserable you make us, we shall still have the revenge of thinking that your cruelty arises from your greater misery. You are miserable, are you not? Lonely, like the devil, and envious like him? Nobody loves you—nobody will cry for you when you die! I wouldn’t be you!”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 용서할 수 있어서 기뻐요.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 알아요. 그러니 나도 그를 사랑해요. 히스클리프 씨, 당신을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이 우리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들더라도 당신의 그 잔인함은 우리보다 더 비참한 당신의 불행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서 복수할 수 있지요. 당신은 비참해요, 그렇지 않나요? 악마처럼 고독하고, 시기심으로 가득하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이 죽는다 해도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을 거예요. 나는 절대로 당신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히스클리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캐서린이 가자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혼자 간직했던 자신의 비밀을 넬리에게 고백합니다. 십팔 년 전 캐시가 묻히던 날 밤, 그는 혼자 몰래 캐시의 무덤을 찾아가 흙을 파고 캐시의 관을 열어보았다고 말입니다.
“I knew no living thing in flesh and blood was by; but, as certainly as you perceive the approach to some substantial body in the dark, though it cannot be discerned, so certainly I felt that Cathy was there: not under me, but on the earth. A sudden sense of relief flowed from my heart through every limb. I relinquished my labour of agony, and turned consoled at once: unspeakably consoled. Her presence was with me: it remained while I re-filled the grave, and led me home. You may laugh, if you will; but I was sure I should see her there. I was sure she was with me, and I could not help talking to her.”
“살과 피로 된 그 어떤 생명체도 없다는 건 알았지. 하지만 어둠속에서 분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 실질적인 존재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 그처럼 분명하게 나는 캐시가 거기 있다는 걸 느꼈어. 내 발 아래가 아니라 바로 그 땅 위에. 갑자기 내 심장에서 시작된 안도감이 온 몸으로 밀려왔어. 고통스러운 노동을 그만두고 돌아보는 순간 위안을 느꼈지. 말로 표현 못할 위안을 말이야. 그녀가 거기 나와 함께 있었어. 내가 무덤을 다시 메우는 동안 내내 거기 나와 함께 있다가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지. 비웃겠지.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가 거기서 그 애를 본 것은 분명해. 그 애가 나와 함께 있어서 말을 걸 수밖에 없었어.”
이후 십팔 년 동안 히스클리프는 깨어있을 때도 잠들었을 때도 죽은 캐시가 바로 그렇게 곁에 있는 것 같은 “허깨비 같은 희망을 품고” 황무지를 헤맸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죽음을 앞둔 린턴의 묘터를 준비하면서, 인부에게 부탁해 캐시의 무덤 속 관을 열고 죽은 캐시의 얼굴을 다시 보았던 것이었지요. 이 말을 들은 넬리가 그건 망자의 죽음을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비난하자 히스클리프가 말합니다.
“Disturbed her? No! she has disturbed me, night and day, through eighteen years—incessantly—remorselessly—till yesternight; and yesternight I was tranquil. I dreamt I was sleeping the last sleep by that sleeper, with my heart stopped and my cheek frozen against hers.”
“내가 걔를 어지렵혔다고? 아니! 걔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 지난 십팔 년 동안 밤이나 낮이나 내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무자비하게. 바로 어젯밤까지 그랬지. 어젯밤에야 비로소 나는 평안해졌어. 나는 잠든 그 아이 옆에 누워 마지막 잠이 드는 꿈을 꾸었지. 내 심장은 멎고 내 뺨은 그 애의 뺨에 맞닿아 얼어붙은 채.”
그렇습니다. 지난 십팔 년 동안 히스클리프가 보였던 그의 모든 행동은, 캐시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집착, 캐시를 잃은 슬픔과 분노로 인한 광기의 분출이었던 것입니다. 그 슬픔과 분노가 힌들리에게, 에드가에게, 이사벨라에게, 그리고 대를 이어 캐서린과 린턴과 헤어턴에게 분노로 표출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십팔 년 만에 다시 캐시의 관을 열고 거기 평안하게 잠든 캐시의 얼굴을 본 후 비로소 얼마간의 평화를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길고 긴 그의 광기어린 사랑이 조금 진정된 것처럼 말이지요.
린턴이 세상을 뜨고 연이어 에드가마저 숨을 거두게 되자 이제 모든 일은 히스클리프의 뜻대로 됩니다. 이제 히스클리프에게는 더 이룰 것도 복수할 대상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룬 듯 보이니 말입니다.
록우드가 황무지를 떠났다가 8개월 뒤 <폭풍의 언덕>으로 다시 돌아오니 캐시는 글자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살고 있던 헤어턴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대로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았던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환영을 보는 상태가 되어 식음을 전폐한 채 지내다 얼마 후 캐서린의 옛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됩니다. 히스클리프가 죽은 뒤 캐시와 헤어턴은 결혼하여 그랜지 저택으로 가려하고, 몰락해가는 <폭풍의 언덕> 저택에는 하인 조지프만이 남게 됩니다. 캐시와 헤어턴의 결혼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완결인 동시에, 히스클리프의 복수가 그가 의도했던 대로 비극이 아닌 새 세대의 화해로 끝나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넬리는 그 지역 사람들이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유령이 함께 그곳을 배회하는 모습을 목격한다는 말을 전하고, 록우드가 히스클리프, 에드가, 그리고 캐서린 세 사람의 평화로운 무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I sought, and soon discovered, the three headstones on the slope next the moor: the middle one grey, and half buried in heath; Edgar Linton’s only harmonized by the turf and moss creeping up its foot; Heathcliff’s still bare.
I lingered round them, under that benign sky: watched the moths fluttering among the heath and harebells, listened to the soft wind breathing through the grass, and wondered how any one could ever imagine unquiet slumbers for the sleepers in that quiet earth.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황무지 옆 비탈에 서있는 묘비 셋을 발견했다. 가운데 묘비는 회색이었고, 덤불숲에 반쯤 묻혀있었다. 에드가 린턴의 묘비만이 뗏장과 조화를 이루고 이끼가 비석 밑동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의 묘비는 아직 말짱했다.
나는 맑은 하늘 아래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황무지와 초롱꽃 사이에서 나풀거리는 나방들을 지켜보고 풀잎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면서, 어떻게 그 고요한 대지에 잠든 이들을 두고 불안하게 잠을 설치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히스클리프입니다. 그는 확연히 구분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그는 고아이자 떠돌이, 박해받는 이방인이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그는 자신의 야수성, 악마성, 그리고 사회의 규범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아웃사이더이자 복수심에 불타는 악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자신의 복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식한 듯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순교자 같은 모습도 보여줍니다.
힌들리, 캐시, 에드가, 히스클리프 세대가 보여준 폭력과 갈등,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비극이 그들의 다음 세대에서는 똑같이 되풀이 되지 않고 화해와 조화의 양상으로 전개됨으로써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자신을 학대했던 힌들리의 아들인 헤어턴에게 히스클리프는 똑같이 학대하며 무지렁이로 키우지만 헤어턴은 히스클리프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따르고, 그가 세상을 떴을 때 진정으로 슬퍼하는 유일한 인물이 되어줍니다. 캐서린의 딸 캐시는 헤어턴에게 글자를 가르치면서 거칠고 학대받은 그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변모시키고 그와 결혼합니다. 히스클리프가 복수를 위해 이용하느라 결혼했던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를 증오했지만, 그녀의 아들 린턴은 캐서린의 딸 캐시를 사랑합니다.
이처럼 선대의 폭력과 갈등,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비극이 후대에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어쩌면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의 소망이자 우리 모두가 삶을 바라보는 희망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하기에『폭풍의 언덕』에서 우리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과 복수라는 비극적 정조가 가득한 대지 위에 피어나는 희망의 싹을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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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Emily Jane Brontë, 1818~1848)
첫댓글 몇년 전에 강의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