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기에트슈바우트 성모발현 성지
개요
기에트슈바우트 성지는 폴란드 북부 바르미아 지역의 아주 작은 마을에 있다. 1772년부터 1795년까지 폴란드는 3차에 걸쳐 분할되어 영토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귀속되며 유럽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프로이센이 점령한 바르미아 지역은 가톨릭에 대한 박해와 강압적인 독일화 정책으로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자 폴란드는 다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성모님의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발현하신 성모님이 폴란드의 해방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어, 수많은 폴란드인이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고 이 성지를 순례하였다.
성모님의 발현
1877년 6월 27일 폴란드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 기에트슈바우트에서 13세의 유스티나 샤프린스카는 첫영성체를 하기위한 시험을 보고 어머니와 함께 성당을 나오다가 단풍나무 위에서 밝은 빛을 보았다. 그때 성당 종탑에서 종이 울리면서 삼종기도 소리가 들려왔는데, 빛 속에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천사들에 둘러싸여 진주로 장식된 황금 왕좌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다음 날인 6월 28일 유스테 신부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으며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았다. 그녀가 친구인 12세의 바르바라사물로프스카와 단풍나무 앞에 가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다시 날개 달린 천사와 함께 그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과 거의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머리에 베일이나 왕관은 없었고 긴 머리카락을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린 모습으로 단풍나무 위에서 구름을 밟고 서 있었다. 그 후로 발현은 9월 16일까지 거의 날마다 계속되었으며, 성모님은 하루에도 여러 번 나타나시어 82일 동안 약 160번 이상 발현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월 30일 본당신부가 지시한 대로 “당신은 무엇을 원하시나요?”
라고 유스티나가 묻자 여인은 “내가 바라는 것, 그것은 묵주기도를 날마다 바치는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치면 내가 매일 저녁 이곳에 을 것이다"라고 폴란드어로 답하였다,
7월 1일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마친 후 단풍 나무 아래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여인이 다시 나타났다. 유스티나가 “당신은 누구신가요?”라고 묻자 여인은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인 성모 마리아다”
라고 당신의 신분을 밝히셨다,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이 당신을 원죄 없는 잉태라고 말씀하신 이후 19년 만에 다시 성모님이 기에트슈바우트에 발현하시어 당신의 신분을 원죄 없는 잉태로 드러내신 것이다. 유스티나와 바르바라는 그날부터 매일 저녁 묵주기도를 올렸으며 다른 사람들도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7월 3일, 아이들이 성모 님께 언제까지 나타나실 것인지 묻자 성모님은 “나는 두 달 동안 여기에 올 것이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며, 병자들이 치유될 것이다. 병자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7월 6일, 성모님이 당신의 성상과 경당을 건립하라고 말씀하셨고, 다음 날인 7월 7일에는 성상과 경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리셨다.
7월 22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자 교회는 질서를 유지하고 종교적 분위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아이들은 단풍나무 가까이에서 묵주기도를 하고, 순례자들은 성당 광장의 지정된 곳에서 묵주기도를 하도록 조정하였다.
7월 28일, “누군가가 거짓 맹세를 한다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자 성모님은 “그런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으며, 그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은 것이다”라고 답하셨다.
8월 1일, “버려진 교구에서도 사제를 받을 수 있나요?”라고 묻자 성모님은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한다면 교회가 박해받지 않을 것이며, 버려진 교구에서도 사제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답하셨다.
8월 11일, 폴란드 교회가 해방될 것인지 묻자 성모님은 “그렇다”라고 답하셨다.
9월 8일 저녁 7시경 성모님은 샘을 축복하시며 “이제 병자들은 치유를 위하여 이 물을 마실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이 샘물은 성사 때마다 사용되었고, 순례자들이 샘물을 마시기 시작하며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9월 16일 오후 3시경 14명의 사제와 15,000여 명의 신자가 아쇠 경당에서 새로운 성모상을 봉헌하는 예식에 참석하였다. 성모님은 그때 마지막으로 발현하시어 먼저 야외 경당에 배치된 당신 성상을 직접 축복하셨고, 이어 은총을 바라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셨다. 그리고 끝으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여라”라고 당부하셨다. 위 발현 일자는 성모님이 주요 메시지를 전하신 경우만 선별한 것이다. 실제로 성모님은 거의 날마다 발현하셨으며, 발현은 주로 시현자가 질문하면 성모님이 답변을 해 주시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발현 장소
1772년 1차 분할 때부터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고 있던 기에트슈바우트 지역의 폴란드 국민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었다. 더욱이 23년 후인 1795년 3차 분할로 인하여 폴란드가 유럽 지도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자 그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했다.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은 지 100년이 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탄압은 심해져만 갔다. 희망이 사라지고 고통만 남은 그때 폴란드 북부의 작고 가난한 마을 기에트슈바우트에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시현자들은 성당 앞에 있던 단풍나무에서 성모님을 목격하였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장면을 그린 성화를 보면 뒤쪽에는 성당이 있고 앞쪽에는 성모상을 모신 경당과 큰 단풍나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모님이 7월 6일 지시하신 당신의 성상은 독일 뮌헨에서 제작되어, 9월 12일 성지에 도착했다. 1877년 9월 16일 그 성상을 성모님이 발현하신 자리에 세운 경당에 모시며 봉헌하였고, 지금은 거기서 자주 야외 미사가 열리고는 한다.
성당 앞에는 나무가 많지만, 성모님이 발현하신 단풍나무는 현재 없다. 단풍나무는 야외 경당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없어졌다고 한다.
단풍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그 대신 기념 석이 놓여 있다. 기념 석에는 ‘1877년 6월 27일부터 9월 16일까지, 여기 있던 단풍나무에 성모님이 발현하셨다’라고 새겨져 있다. 또한, 성모상을 모신 경당 하단에는 유리로 볼 수 있는 창이 나 있는데 그곳에는 그 단풍나무의 조각이 보관되어 있다. 기에트슈바우트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주로 이곳에 머물며 미사 참례를 하고 성모님이 우리에게 거듭 요청하신 묵주기도를 바친다.
시현자
성모님을 처음부터 목격한 주된 시현자는 유스티나와 바르바라이다. 유스티나는 매우 겸손하고 조용한 편인 반면에 바르바라는 영리하고 재능이 많으며 활동적이었다. 두 소녀는 어머니가 서로 친척 관계라 매우 친했다. 그런데 발현 장면을 그린 성화를 보면 두 소녀 외에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두 여성 시현자가 있다. 두 여성은 45세의 엘주비에타와, 23세의 카타지나이다.
두 여성 시현자는 7월 12일과 13일부터 성모님을 목격하기 시작하여, 그 후 유스티나, 바르바라와 함께하였다.
그런데 두 소녀와 두 여성이 보고한 내용에는 미미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8월 16일에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횟수가 두 소녀는 3번, 엘주비 애타는 6번, 카트지 나는 4번이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이 같은 차이로 두 여성은 의심을 받았고, 이따금 시현자로 언급되지 않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두 여성도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았으며, 항상 겸손과 인내, 순종을 보여 주었기에 지금은 네 사람 모두를 시현자로 인정하고 있다. 대성당의 내부 벽화에도 성모님이 발현하신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거기에도 시현자가 네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두 소녀는 발현하신 성모 님께 자신들의 미래에 관해 물어보았고, 수녀원에 들어갈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결국, 두 소녀는 기초 과정을 마치고 파리에 있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에서 수련 과정에 들어갔고, 1889년 2월 2일 드디어 수녀가 되었다. 성모님의 말씀이 현실이 된 것이다. 유스티나는 14년 후 수녀회를 떠났지만, 프랑스에서 계속 봉사 활동을 이어 갔으며, 바르바라는 1895년 선교 활동을 위하여 과테말라로 떠난 이후 평생 고아원과 병원에서 봉사하다가, 1950년 12월 85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선종했다.
성지 소개
성지는 대성당과 야외 경당, 사제관, 순례자의 집, 치유의 샘,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야외 제대가 있는 초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의 성당은 1352년 나무로 세워졌으며, 1500년 3월 31일 고딕 양식의 성당이 건립되어 성모 님께 봉헌되었고, 성모님의 발현 이후에는 신고딕 양식으로 개축하고 증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7년 발현 100주 년을 맞이하여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착공되어 1989년에 완공되었으며 100개의 침상을 확보하였다. 1877년 9월 8일에 성모님이 샘물을 축복하자 샘물을 마신 병자에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바위를 지팡이로 내리치는 모습의 모세 성상과 물을 마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새겨진 대리석을 샘 위에 설치하였다. 2007년 6월에는 십자가의 길이 봉헌되었는데, 은 초원 위에 처마다 잘 조성되어있다. 또한, 대성당에서 기적의 샘물로 이어지는 나무 숲속 길에는 묵주기도를 하며 걸을 수 있도록 묵주기도의 길도 만들어져 있다.
[자료: 세계의 성모발현 성지를 찾아서. 분도출판사. 최하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