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함께함
김상건 목사
지난 주간 주말에 집사님 한 분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집안의 장녀였던 집사님은 서둘러 장례식장이 있는 금산으로 떠나면서 목사에게 연락을 하였었지요. 자주 맞이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상을 당한 분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할 말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주일 예배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미안해하는 그 집사님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궁급했었답니다. 그래서 겨우 목사의 반응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다녀오세요~’라는 정도였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이 장례식장에 가야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혼자라도 어떻게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선뜻 나서주는 성도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에서 금산까지 문상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비까지 내리는데 더 추운 윗 지방을 다녀온다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찍 밤이 내려깔리는 초겨울 오후를 달리는 걸음에도 불평하지 않는 성도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왕복 7시간에 달하는 거리를 줄곧 홀로 운전한 집사님도, 동행한 성도들도 감사~
그렇게 달려 오가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묵상이 물들었다 풀렸다 했습니다. 이런 것이 교회가 아니겠는가...... 생각하다, 우리는 어떤 경우와 상황에서도 건강한 교회일까..... 고민하다, 별 대단한 것이 없지만 이렇게 함께하며 교회가 되어가는 것이리라...... 스스로 위안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에 간직하게 된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문상이란 위로하는 것인데, 그 위로에 대하여 전에 없던 깨달음 하나를 건져내어 정돈하게 되었습니다.
준비된 장례는 없습니다. 그래서 늘 급작스럽게 이별을 맞이합니다. '응급 위로(?)'가 필요한 이유가 되겠지요. 좋은 위로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아는 위로는 '함께함', 그것입니다. 그래서 '응급 함께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묵상......
‘응급 위로’라고 이름 붙여 놓고 보니 그럴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항상 그럴 듯한 일은 아닐 겁니다. 상황과 여건이 여유로워서 위로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누구든지 자신의 상황이 늘 급하고 각박한 것이니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닐 터입니다.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줘야 할지 가늠하는 것이 까다롭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응급 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따뜻하게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겠습니다. 그리고 좀 모자라더라도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여야겠습니다. 대단하지 않아도 응급으로 위로할 수 있는 교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를 때 그저 함께하는 것으로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아는 교회,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