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작품 모음 제8부 /춘강 서
山夕詠 井中月 李奎報 선생詩 / 춘강 書
< 김춘강갤러리>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의상대사와 원효 대사가 중국으로 공부를 하려 가는 길에 밤이되어 어느 산골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목이말라 물을 찾던 중 마침 오목한 용기에 물이 있어서 그 물을 맛있게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 나보니 어제 밤에 마셨던 물이 사람의 해골에 담긴 물이었던 것이다 그걸보니 뱃속에 있는것들이
다 토해질 것 같았는데 다시 어제밤 맛나게 마셨던 물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 시키다보니 토할 것
같은 속이 진정 되어 그때에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로 공부하려가던길을 멈추고 돌아 왔다는 일화가 있지요,
▶ 秋日偶成 : 程明道선생 詩 ◀
閑來無事不從容:한가롭자 일마다 조용하지 아니함이 없고
한래무사부종용 ㊀폭
睡覺東窓日已紅 :잠 깨자 동창에 해가 이미 붉었구나
수각동창일이홍 ㊁폭
萬物靜觀皆自得:만물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두 스스로 득의함이요
만물정관개자득 ㊂폭
四時佳興與人同:사계절의 흥취도 인간과 더불어 같은 것이라
사시가흥여인동 ㊃폭
道通天地有形外(無形外):도는 천지의 형체 가진 것 밖으로 통하고
도통천지유형외 ㊄폭
思入風雲變態中 :생각은 풍운의 변화 속에서 얻어진다.
사입풍운변태중 ㊅폭
富貴不淫貧賤樂 :부귀에 빠지지않고 빈천을 즐겨하니
부귀불음빈천락 ㊆폭
男兒到此是豪雄 :남아가 여기에 이르러면 영웅 호걸이라.
남아도차시호웅 ㊇폭
▶ 程顥 : (1032-1085), 북송(北宋) 중기의 유학자, 자 백순(伯淳). 호 명도(明道). 시호 순(純). 주돈이(周敦 : 濂溪)의 門人, 존칭으로 명도선생이라 불리고, 동생 정이(程 : 伊川)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알려졌다.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성즉이설(性則理說)’을 주창하였는데, 그의 사상은 동생 정이를 거쳐 주자(朱子)에게 큰 영향을 주어 송나라 새 유학의 기초가 되었고, 정주학(程朱學)의 중핵을 이루었다. 저서에 《정성서(定性書)》 《식인편(識仁篇)》등이 있다. 그의 전기는 주자의 《이락연원록(伊落淵源錄)》에서 유저(遺著)는 서필달(徐必達)의 《이정전서(二程全書)》에서 볼 수 있다.
반야심경 해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는 크다(대), 많다(다), 초월하다(승)의 뜻이고, 반야는 지혜, 깨달음의 뜻이며, 바라밀다는 저 언덕에 이르다(도피안)는 뜻이다. 심경은 핵심되는 부처님의 말씀이란 뜻이다.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가장 핵심되는 부처님의 말씀.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이 (삼계. 사생. 육도의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깊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오온(물질적 현상, 감각작용, 의지적 충동, 식별작용)이 모두 공함을 (실체가 없음을) 확연히 알고 이 모든 고통(4고, 8고)에서 벗어 났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사리자여, 물질적 현상이 그 본질인 공과 다르지 않고, 공 또한 물질적 현상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적 현상이 곧 본질인 공이며, 공이 곧 물질적 현상이니라. 감각작용, 지각작용, 의지적 충동, 식별작용도 다 공이느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 이 모든 존재들이 외관상으로는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더러운 것 같기도 하고 깨끗한 것 같기도 하고 증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감소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모든 현상계의 본질적 차원(관세음보살의 차원)에서는 생겨나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감소하는 일도 없고, 증가하는 일도 없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사리자여) 이 현상계의 본질의 차원인 공의 입장에서는 물질적 현상도 없고, 감각작용과 지각작용 그리고 의지적 충동과 식별작용도 없느니라.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이 공의 세계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사유작용 등 감각작용도 없고, 빛깔과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비감각적 대상인 원리 등 객관대상도 없으며, 시각의 영역도(청각의 영역, 후각의 영역, 미각의 영역도(청각의 영역, 후각의 영역, 미각의 영역, 촉각의 영역) 사유의 영역등 주관작용도 없느니라.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이 공의 세계에서는) 무명도 없고, 무명의 소멸도 없으며(행, 식, 명색, 6입, 촉, 수, 애, 취, 유, 생도 없고 그 소멸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늙고 죽음의 소멸도 없느니라.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이 공한 세계에서는)고통도 없고, 고통의 원인도 없고, 그 원인의 소멸도 없고 그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수행방법도 없느니라. (그럼므로 이 공의 세계에서는)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을 얻은 것도 없고,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도 없느니라.
菩提薩埵 依般若波羅密多 故心 無罣碍 無罣碍 故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그럼므로 사리자여)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느니라. (보살은) 뒤바뀐 잘못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는 열반에 이르렀느니라.
三世諸佛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완전한 깨달음)를 얻었느니라.
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그러므로, 이 반야바라밀다는 이 큰 신비한 주문이며, 큰 밝은 주문이며, 큰 최상의 주문이며, 이 얼마나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주문인가를 알아야 하느니라.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이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은 능히 일체의 고액을 소멸시키며 진실하여 거짓이 없나니, 그러므로(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일러 가로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3번)[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우리 함께 피안으로 가자. 피안에 도달하였네. 아! 깨달음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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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字 글자가 백자를 다른글자로 쓴 현판입니다
현판을 꺼꾸로 걸어 두면 백가지 복이 쏟아 진다는 중국 사람들의 속설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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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 一 /龜巖 金 正 德 ***
五 千 歷 史 輝 傳 統 반만년 역사위에 빛나는 우리전통
華 麗 江 山 守 國 家 화려한 금수강산 지켜온 우리국가
新 羅 花 郞 成 統 一 신라의 화랑정신 삼국통일 이룩했고,
魏 滅 蜀 吳 換 歷 史 위나라 오촉멸해 새역사 바꾸었네.
三 一 萬 歲 振 海 東 삼일의 만세소리 한반도에 떨쳤었고,
五 四 運 動 蓋 海 四 중국의 五四운동 천하를 뒤덮었네.
運 命 血 脈 分 同 胞 운명의 같은 핏줄 나뉘어진 우리동포
怨 恨 砲 聲 染 天 下 피맺힌 포성소리 천하를 물들였네.
軍 事 革 命 救 亂 國 五一六 군사혁명 난국을 구제했고,
辛 亥 革 命 成 中 華 중국의 신해혁명 중화민국 이룩했네.
過 去 龜 鑑 冀 未 來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내다보면
平 和 統 一 創 總 和 우리의 평화통일 총화에서 비롯되네.
有志竟成(유지경성)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 지리라
淸心事達)청심사달)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에 도달할 수 있다
1996년도 작
和氣滿堂(화기만당)
화목한 기운이 집안에 가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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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千字文] 念齋 김균(1888-1978) 著
01. [天地覆載] [日月照懸](천지복재) (일월조현)
하늘은 만물을 덮고, 땅은 만물을 싣고 있으며,
해와 달은 하늘에서 비친다.
02. [人參兩間] [父乾母坤](인참양간) (부건모곤)
사람만이 천지사이에 참여하여,
하늘을 아버지로 하고 땅을 어머니로 한다.
03. [慈愛宜篤] [孝奉必勤](자애의독) (효봉필근)
자애는 돈독해야 하며,
효성스럽게 모시기를 힘써야 한다.
04. [兄弟同胎] [夫婦合歡](형제동태) (부부합환)
형제는 같은 배에서 태어났으며,
남편과 아내는 기쁨을 같이해야 한다.
05. [委質爲臣] [事君如親](위질위신) (사군여친)
몸을 바쳐 신하가 되었으니,
임금을 부모와 같이 섬겨야 한다.
06. [師其覺後] [友與輔仁](사기각후) (우여보인)
스승은 후인들을 깨우쳐야 하며,
벗은 함께 어짐을 도와야 한다.
07. [苟昧紀常] [曷若走翔](구매기상) (갈약주상)
만약 벼리가 되는 떳떳한 도리에 어둡다면,
어찌 달리는 짐승과 나는 새만이나 하겠는가?
08. [一丸朝鮮] [二聖檀箕](일환조선) (이성단기)
탄알처럼 조그마한 조선에,
단군과 기자라는 두 성인이 있었다.
09. [三韓鼎峙] [四郡遠縻](삼한정치) (사군원미)
삼한이 솥의 발처럼 우뚝 솟아 있는데,
네 군이 멀리서 둘러쌌도다.
10. [五耶呑幷] [六鎭廣拓](오야탄병) (육진광척)
다섯 가야를 모두 삼키고,
여섯 진영을 개척하여 넓혔다.
11. [七酋內附] [八條外薄](칠추내부) (팔조외박)
(여진의) 일곱 추장이 우리나라에 붙으니,
여덟 조목의 법이 나라 바깥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12. [九城定域] [十圖進屛](구성정역) (십도진병)
아홉 성을 설치하야 국경을 정하고,
열 폭의 그림을 병풍에 그려 임금에게 올렸다.
13. [百濟句麗] [徐伐統均](백제구려) (서벌통균)
백제와 고구려를,
서라벌이 하나로 통일하였다.
14. [開京漢都] [孔釋敎殊](개경한도) (공석교수)
개경과 한양은,
공자와 석가를 받들어 종교가 달랐다.
15. [靑邱勝境] [白頭雄據](청구승경) (백두웅거)
청구의 빼어난 곳에,
백두산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16. [黃楊帝廟] [赤裳史庫](황양제묘) (적상사고)
황양동에는 황제의 사당이 있고,
적상산성에는 역사 창고가 있다.
17. [黑雲掃去] [蒼昊快睹](흑운소거) (창호쾌도)
검은 구름을 쓸어버리니,
푸른 하늘을 시원하게 보게 되었다.
18. [鴨綠土門] [分嶺建碑](압록토문) (분령건비)
압록강과 토문강의,
분수령에다 비석을 세웠다.
19. [極旗特色] [加之坎離](극기특색) (가지감리)
감괘와 이괘를 더한 것이다.
20. [鳳熊胸背] [盤領角帶](봉웅흉배) (반령각대)
봉새와 곰의 그림을 가슴과 등에 붙이고,
동정을 달고 각띠를 둘렀다.
21. [官儒道服] [宕程毛製](관유도복) (탕정모제)
문관과 유학자는 도포를 입으며,
탕건과 정자관은 털로 만든다.
22. [蔽陽煖帽] [套袖綿襪](폐양난모) (투수면말)
머리에는 폐양(패랭이)과 추위를 막는 난모를 쓰며,
손목에는 투수(토시)를 차고 발에는 솜버선을 신는다.
23. [花冠圓衫] [巨髻維結](화관원삼) (거계유결)
족두리를 쓰고 소매가 둥근 적삼을 입고,
큰 쪽을 쪄서 머리카락을 묶는다.
24. [草笠蓮纓] [小學童名](초립연영) (소학동명)
풀로 엮은 삿갓을 쓰고 연밥을 꿰어 만든 갓끈을 매고,
소학동자로 이름을 삼았다.
25. [水田謂畓] [羅祿曰稻](수전위답) (나록왈도)
물로 농사짓는 밭은 논이라고 부르고,
신라의 녹봉을 의미하는 나록을 벼라고 말한다.
26. [飼烏飯蒸] [辟蟲豆炒](사오반증) (벽충두초)
까마귀를 기르기 위하여 찐 밥을 먹이고,
벌레를 물리치기 위하여 콩을 볶는다.
27. [農時憂旱] [太宗雨下](농시우한) (태종우하)
농사 때 가뭄을 걱정하면,
태종우가 내린다.
28. [嘉俳秋夕] [碓樂除夜](가배추석) (대악제야)
추석에는 가배놀이를 하고,
섣달 그믐날 밤에는 방아타령을 연주했다.
29. [扶婁赴夏] [末欣拘夷](부루부하) (말흔구이)
부루는 하나라에 가고,
말사흔(미사흔)은 왜에 구금되었다.
30. [復矢愚達] [代命忠堤](복시우달) (대명충제)
국토의 회복을 맹세한 바보 온달과,
목숨을 대신 바친 충성스런 박제상이라.
31. [解經方言] [降巢飛檄](해경방언) (항소비격)
경서를 방언으로 해석하고,
격서를 날려보내 황소를 항복하게 하였다.
32. [聯唐庾信] [破隋文德](연당유신) (파수문덕)
당나라와 연합한 김유신이요,
수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이라.
33. [斯多含郞] [千餘徒生](사다함랑) (천여도생)
화랑 사다함은,
천여 명의 생도를 거느렸다.
34. [萬春卻敵] [姜贊宣威](만춘각적) (강찬선위)
양만춘은 적을 물리치고,
강감찬은 위엄을 떨치었네.
35. [階殺妻孥] [豊存邦畿](계살처노) (풍존방기)
계백장군은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고,
왕자 풍은 나라를 보존하였네.
36. [尸諫后稷] [肉戰丕寧](시간후직) (육전비령)
죽음으로 간한 김후직,
비녕자는 몸으로 싸웠네.
37. [石磬淸響] [竹橋血凝](석경청향) (죽교혈응)
돌종 소리는 맑게 울리고,
선죽교에는 피가 엉기었네.
38. [甲子适變] [乙巳僞約](갑자괄변) (을사위약)
갑자년에 이괄이 변을 일으키고,
을사년에는 거짓 조약을 맺었다네.
39. [丙寅洋擾] [丁酉再掠](병인양요) (정유재략)
병인년에 서양이 시끄럽게 하고,
정유년에 다시 노략질하였네.
40. [戊午株連] [己卯網打](무오주연) (기묘망타)
무오년에 연루자가 모두 처벌되고,
기묘년에는 일망타진되었네.
41. [庚戌屋社] [辛酸未妥] 경술옥사 신산미타
경술년에 왕실이 망하여 집안으로 되었으니,
괴롭고 편안하지 못하였다.
42. [壬辰倭亂] [癸丑斁倫](임진왜란) (계축두륜)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나고,
계축년에 인륜이 무너졌다.
43. [亥訟構罪] [申理平反](해송구죄) (신리평반)
기해년 예론의 다툼으로 죄를 받았다가,
다시 다스림에 의하여 바르게 되었다.
44. [晦軒倡緖] [圃隱繼燭](회헌창서) (포은계촉)
안유는 실마리를 일으키고,
포은이 촛불을 이었네.
45. [靜高資稟] [退深純慤](정고자품) (퇴심순각)
정암은 높은 바탕을 지녔고,
퇴계는 순수하고 성실함이 깊었다.
46. [栗正發揮] [沙嚴禮敬](율정발휘) (사엄예경)
율곡은 바르게 발휘하였으며,
사계는 예와 경에 엄하였다.
47. [展也尤成] [尊攘談柄](전야우성) (존양담병)
진실로 우암이 이룬 것은,
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으로 이야기의 근본을 삼은 것이네.
48. [東魯近思] [賢粹續錄](동노근사) (현수속록)
우리나라의 근사록은,
어질고 순수한 분들의 말씀이 곧 근사록 속록이다.
49. [湛齋出處] [重峯氣魄](담재출처) (중봉기백)
담재의 나아가고 물러남이요,
중봉의 기백이라.
50. [舍筐仰鳥] [硏精忘暮](사광앙조) (연정망모)
광주리를 놓고 새를 쳐다보며,
자세히 살피다가 저무는 것도 잊었네.
51. [兎遂換號] [蛛切寓慕](토수환호) (주절우모)
토계를 드디어 퇴계로 바꾸고,
거미조차도 간절하게 사모하였다.
52. [佩鈴警輕] [植鋒祛悍](패령경경) (식봉거한)
방울을 차고 가벼움을 경계하고,
칼날을 세워 사나운 버릇을 없앴다.
53. [亡驗擊瓢] [操譬弄卵](망험격표) (조비롱란)
마음을 잃었는가를 물바가지 맞추기로 시험하고,
마음잡는 것을 달걀을 쥐는 것에 비유하였다.
54. [國系辨誣] [至誠相感](국계변무) (지성상감)
왕실 계통이 잘못된 것을 고쳤으니,
지극한 정성이 서로 감응한 것이라
55. [音以訓民] [律亦諧審](음이훈민) (율역해심)
음으로써 백성들을 가르치고,
음률도 골고루 자세하게 정하였다.
56. [典編綱實] [疑覽備便](전편강실) (의람비편)
대전통편과 삼강행실을 짓고,
의례문해 가례집람 상례비요 사례편람도 지었다.
57. [輯要旣獻] [蒙訣且傳](집요기헌) (몽결차전)
성학집요를 임금께 올리고,
격몽요결도 전하였다.
58. [世茂先習] [許浚醫鑑](세무선습) (허준의감)
박세무는 동몽선습을 지었고,
허준은 동의보감을 지었다.
59. [臨瀛回望] [任堂詩贍](임영회망) (임당시섬)
임영(강릉)을 뒤돌아보며,
사임당은 많은 시를 지었네.
60. [老少南北] [黨派爭裂](노소남북) (당파쟁렬)
노론 소론 남인 북인으로,
당파가 다투어 찢어졌네.
61. [湖洛梅華] [心性衡決](호락매화) (심성형결)
호론과 낙론의 계승자인 매산과 화서는,
심성에 대하여 생각하여 결정하였다.
62. [遼伯星兵] [弗負朱明](요백성병) (불부주명)
요동의 장수와 성주의 사병은,
주원의 명나라를 저버리지 않았다.
63. [海牙殉身] [滅賊哈賓](해아순신) (멸적합빈)
헤이그에서 몸을 바치고,
하얼빈에서 적을 무찔렀네.
64. [侯休政靈] [僧家奇偉](후휴정령) (승가기위)
김윤후 휴정 유정 영규는,
승가의 뛰어난 인물이라.
65. [論介桂娘] [落巖罔美](논개계낭) (낙암망미)
논개와 계랑은,
낙화암의 궁녀들만 칭송받게 하지 않았다.
66. [埋蓋獒驛] [掛櫝鷄林](매개오역) (괘독계림)
개를 묻어서 오수역이 되었고,
함이 걸려서 계림이 되었다.
67. [古寺踵蓑] [妓坊斬驂](고사종사) (기방참참)
옛 절에서 도롱이를 벗기도 전에 따라오고,
기방에서 말을 베었다네.
68. [采菊祭允] [題松忤袞](채국제윤) (제송오곤)
국화를 따서 백이를 제사지내고,
소나무 글을 지어 남곤을 거슬렀네.
69. [捧腹絞枕] [銜鬚受刃](봉복교침) (함수수인)
배를 잡고 웃으며 베개목을 죄고,
수염을 물고 칼날을 받았네.
70. [玄匏預供] [紅衣超見](현포예공) (홍의초견)
박을 검게 칠해 미리 준비한 것은,
홍의장군의 뛰어난 식견이라네.
71. [龜船潛溟] [貂裘謀征](귀선잠명) (초구모정)
(이순신) 거북선은 바다에 잠기고,
(효종) 담비 갖옷으로 정벌을 꾀하였네.
72. [隻臂呈烈] [寸指悔愆](척비정렬) (촌지회건)
(김남주의 처 기씨는) 한쪽 팔로 정조를 드러내고,
(맹사성 망우지처는) 한 마디 손가락으로 허물을 뇌우쳤네.
73. [誰唾已瘡] [彼譯助援](수타이창) (피역조원)
누구(노수신)의 침은 부스럼을 낫게할 정도였고,
저 역관(홍순언)의 도움은 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네.
74. [園柘馬鬣] [禁苑蜜葉](원자마렵) (금원밀엽)
(정여립의 난) 뜰 안 뽕나무에 돋은 말갈기이며,
(조광조의 기묘사화) 대궐 동산의 꿀 바른 나뭇잎이라.
75. [汝眞吾息] [我豈爾表](여진오식) (아기이표)
(중봉 조헌) 너야말로 참으로 나의 자식이요,
내가 어찌 너의 스승이 되겠는가?
76. [玉鯉脫愁] [珠鵝洗咎](옥리탈수) (주아세구)
(걱정없는 노인) 옥가락지를 삼킨 잉어가 근심을 벗겨 주었고,
(윤회)구슬을 삼킨 거위가 허물을 씻어 주었다.
77. [匪伊拜焉] [膝自屈然](비이배언) (슬자굴연)
그가 절한 것이 아니요, (송익필에게)
무릎이 저절로 굽혀진 것이다.
78. [激鷹勵志] [聽猫漏禍](격응려지) (청묘루화)
(김약묵) 매 고기의 차별에 격분하여 공부의 뜻을 독려하였고,
(박상) 고양이를 따라가서 재앙을 벗어났다.
79. [鐵更煮冷] [裙緩卽整](철갱자냉) (군완즉정)
(성삼문,박팽년등 사육신) 쇠가 식으면 다시 달구도록 하였고, (김자점모친) 치마끈이 느슨해지자 곧바로 가다듬었다.
80. [曳賞幼慧] [盜佛孟浪](예상유혜) (도불맹랑)
(김시습) 상을 끌고가는 어린아이의 슬기로움이요,
(장사룡) 불상을 훔치는 맹랑함이라.
81. [斥和危節] [毁亭早朗](척화위절) (훼정조랑)
(홍익한,윤집 등) 화의를 배척하여 절개를 바르게 세웠고,
(김대립-대정여립) 정자를 허물어 일찍이 뜻을 밝혔다.
82. [稱病啞瞖] [避仕狂廢](칭병아예) (피사광폐)
(기건) 병을 칭탁하여 벙어리와 장님 행세를 하고,
벼슬을 피하여 짐짓 미치고 폐인이 되었다.
83. [藥守貞魂] [香抱舊寃](약수정혼) (향포구원)
(길재 사모여인) 약가는 곧은 마음을 지키고,
향랑은 (시부모의) 묵은 원한을 품었다.
84. [祝髮留髥] [說卿苦忱](축발류염) (열경고침)
(김시습) 머리를 깎되 수염은 남겼으니,
열경의 괴로운 정성이라.
85. [皓首作姿] [愧哉沐脂](호수작자) (괴재목지)
(유몽인 老寡婦詞) 흰 머리로 자태를 지으니,
머리 감고 연지 바른 것이 부끄럽구나.
86. [拒使斷芍] [孤憤難度](거사단작) (고분난탁)
(이시백) 사신을 물리치고 작약을 뽑아버리니,
외로운 분노를 헤아리기 어렵구나.
87. [跣雪傘霖] [儉素孰能](선설산림) (검소숙능)
(유관) 맨발로 눈 위를 다니고, (황희) 우산으로 장마를 견뎠으니,
그 검소함을 누가 할 수 있으리오!
88. [請借沒柯] [召幸浣紗](청차몰가) (소행완사)
(원효) 자루 없는 도끼 빌리기를 청하고,
(고려태조) 비단 빠는 아가씨를 불러다 총애하였다.
89. [勿求良僕] [善主是欲](물구양복) (선주시욕)
(이지함) 어진 종을 찾지 말고,
착한 주인이 되기를 바라야 한다.
90. [對芋責從] [截餠試兒](대우책종) (절병시아)
(許穆의 종형厚) 토란을 앞에 두고 종제(허목)를 꾸짖고,
(韓濩모친) 떡을 썰어 자식을 시험하였다.
91. [投金全恩] [椄果免欺](투금전은) (접과면기)
(공민왕시 형제) 금을 던져버려 형제간의 사랑을 온전히 하였고,
(민형남) 접붙인 과일로 기롱을 면하였다.
92. [繫驢問牛] [騎虎還駒](계려문우) (기호환구)
(유척기)당나귀를 묶어놓았고, (황희)소의 우열을 물었으며,
(효자도씨) 랑이를 타고, (최석)망아지까지 되돌려 보냈다.
93. [于琴蘭笛] [率畵玖筆](우금란적) (솔화구필)
우륵于勒의 거문고와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피리요,
솔거率居의 그림과 김생金生의 글씨라.
94. [堅瓷曾造] [活字又刷](견자증조) (활자우쇄)
단단한 고려자기를 일찍이 만들고,
(태종 계미 1403년 주자소) 활자를 만들고 또한 인쇄하였다.
95. [棉始益漸] [茶祖大廉](면시익점) (차조대렴)
목화의 시조는 문익점이요,
차의 비조는 신라 대렴이라.
96. [非乘朽舟] [因秤升荏](비승후주) (인칭승임)
(조석윤) 썩은 배를 타지 않았고,
(모 아이) 들깨 한 되를 저울로 헤아렸다.
97. [粟屑脯片] [享儀可範](속설포편) (향의가범)
(조헌) 좁쌀떡과 (김장생) 육포 조각이니,
제사의 예법이 규범이 될 만하다.
98. [束偶舞戱] [女鬼現怪](속우무희) (여귀현괴)
(신숭겸) 풀로 엮은 인형이 춤추며 놀고,
(남이의 득처) 여자 귀신이 괴이함을 드러내었다.
99. [鐘路逢批] [銅雀流視](종로봉비) (동작류시)
종로에서 뺨맞고,
동작에서 흘겨본다.
100. [於甑注江] [用簣掩空](어증주강) (용궤엄공)
시루에 강물 붓기.
삼태기로 하늘 가리기.
101. [裸體橫刀] [露脚行纏](나체횡도) (노각행전)
벌거벗은 몸에 칼 차기.
맨다리에 행전 차기.
102. [數砧容手] [暗柱觸顚](삭침용수) (암주촉전)
다듬이질에 날쌘 손놀림.
어두운 밤 기둥에 이마 부딪치기.
103. [盲者得閭] [拳而捕魚](맹자득려) (권이포어)
장님 문고리 잡기.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104. [西瓜舐皮] [烹斧飮波](서과지피) (팽부음파)
수박 겉핥기. 도끼 삶아 물 마시기.
105. [放尿凍足] [執餌雙掬](방뇨동족) (집이쌍국)
언 발에 오줌누기. 양손에 떡 쥐기.
106. [予食奪匙] [上樹搖枝](여식탈시) (상수요지)
밥 주고 숟가락 빼앗기. 나무에 올려놓고 가지 흔들기.
107. [火檐揚扇] [瓮店縱蹄](화첨양선) (옹점종제)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옹기점에서 말 달리기.
108. [爐邊置飴] [肛底燃柴](노변치이) (항저연시)
화롯가에 엿 두기. 不忍<-> 能忍 항문 밑에서 불 지피기.
109. [蟹尾知識] [狗革面目](해미지식) (구혁면목)
게 꼬리 같은 지식. 개 가죽을 쓴 얼굴.
110. [喫梨修齒] [兼麞射雉](끽리수치) (겸장사치)
배도 먹고 이도 닦고. 노루도 잡고 꿩도 잡고.
111. [碧龍恭義] [灌漑普施](벽룡공의) (관개보시)
김제 벽골제․연안 와룡지․상주 공검지․
제천 의림지는 관개를 널리 베풀었다.
112. [剛拏地異] [此神仙界](강라지이) (차신선계)
금강산․한라산․지리산, 이 산들은 신선의 세계이다.
113. [所屯潮泉] [朴淵瀑布](소둔조천) (박연폭포)
문경 소둔산의 조천이요, 개성 박연의 폭포라.
114. [溫氷酒椒] [潘醋何故](온빙주초) (반초하고)
온천․빙천․주천․초정과, 뿌연 물과 신 물은 무슨 연고인가?
115. [銀甁貨楮] [箭幣通寶](은병화저) (전폐통보)
은병과 저화요, 전폐와 상평통보라.
116. [錦蔘芝芐] [完薑報棗](금삼지하) (완강보조)
錦山금산의 인삼과 (정읍)지장동의 지황이요,
(완주)완산의 생강과 報恩보은의 대추라.
117. [苧長麻谷] [原紬晉木](저장마곡) (원주진목)
모시는 정성長城이요 삼은 석곡石谷이며,
鐵原철원의 명주와 晉州진주의 무명이라.
118. [貝粧煙管] [案漆席莞](패장연관) (안칠석완)
(진남 동래)패물과 담뱃대요,
(나주) 칠을 칠한 상과 (강화,옥과)왕골자리라.
119. [梳密簾細] [鉢凹簞團](소밀렴세) (발요단단)
(영암) 촘촘한 참빗과 (나주) 세밀한 발이요,
(고창) 오목한 사발과 (전남지역) 둥근 대그릇이라.
120. [沿岸漁獵] [鑛牧各業](연안어렵) (광목각업)
연안지방의 고기잡이와,
광산과 목축은 각각 생업이다.
121. [收取山積] [財源洞闢](수취산적) (재원동벽)
재화를 거두어 산처럼 쌓고,
재화의 근원은 유통시켜야 한다.
122. [汽運風轉] [遞郵旋電](기운풍전) (체우선전)
증기로 움직이고 바람처럼 빠르게 굴러가며,
우편과 전신이라.
123. [棊列絲繹] [交互周遍](기열사역) (교호주편)
바둑판처럼 나열되고 실처럼 얽혀 있어,
서로 얽혀 두루 뻗쳐 있다.
124. [桑旭有昇] [槿榮無窮](상욱유승) (근영무궁)
동방에 아침해가 떠오르니,
무궁화의 영화가 끝이 없으리라.
125. [獨立無懼] [永譽克終](독립무구) (영예극종)
홀로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니(周易 大過卦),
오래도록 명예롭고 끝이 좋으리라.(詩經 周頌)
출처=金春剛카페갤러리 金春剛印
만자.반야심경![](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daum.net%2F_c21_%2Fpds_down_hdn%3Fgrpid%3Do3ty%26fldid%3DcQF%26dataid%3D46%26grpcode%3DkimGallery%26realfile%3D%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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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원문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 또는 「능단반야바라밀경」입니다. 600권의 「대반야경」가운데 제9회 제577권 「능단금강분」과 같은 것으로, 별도의 번역본들이 독자적인 경전으로 고려 팔만대장경에 실려 있기도 합니다. 「반야심경」과 함께 널리 독송되고 있는 「금강경」은 교종이나 선종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지금까지 강원에서 교육할 때 고등 교과인 사교과(四敎科)의 주요 경전으로 교육되고 있습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입니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금강경의 구성
금강경은 분량이 약 300송쯤 되기 때문에 「삼백송반야경」이라고도 부르는데, 전부 여섯 번 번역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널리 독송 되고 있는 것은 402년에 번역된 구라마집의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경의 구성을 살펴보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공의 이치를 가장 잘 터득하고 있었다는 수보리와 부처님의 문답식의 대화를 전개해 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법회인유분」제1에서 시작하여 「응화비진분」제32 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 사상의 골자는 철저한 공사상에 입각한 윤리적 실천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위국에서 수보리 등을 위하여 처음에 경계가 공(空)함을 말하고, 다음에 혜(慧)가 공함을 보이고, 뒤에 보살공 (菩薩空)을 밝혀 공혜(空慧)로서 체(體)를 삼고 일체법 무아(無我)의 이치를 말한 것을 요지로 하고 있습니다. 금강경은 반야부 계통 경전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사상(空思想)을 설하고 있지만 공(空)이란 글자를 전혀 사용치 않으면서도 공의 이치를 유감없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이 경이 대승불교의 최초기에 성립된 것으로서 아직 공이라는 술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 금강경의 내용
이 경의 전편에 흐르는 사상은 다른 반야부 계통의 경전과 같이 공사상(空思想)입니다. 철저한 공사상에 의해 번뇌와 분별심을 끊음으로써 반야지혜를 얻어 대각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경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공사상에 가장 밝은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존자라는 점은 이 경의 내용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즉 수보리는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최고의 진리를 배우고 닦으려는 마음을 낸 선남선녀는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며(어떻게 수행해야 하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이에 답하시게 되니 이 경의 주요 내용은 수보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엮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 법회의 말미암음(法會因由分)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하실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대성에 들어가셨다. 성안에 있는 집들을 차례로 다니시며 밥 받기를 마치고 다시 본래 계신 곳으로 돌아와 공양을 끝내신 다음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해석> 내가 이렇게 들었다는 붓다가 이렇게 말했다와는 다르다. 제자가 스승의 말을 기록할 때는 이렇게 적어야 한다. 사위성은 스라바스티, 즉 영광의 도시라는 뜻이다. 붓다는 45년간 가르침을 폈는데 그 중 25년을 이 도시에 머물렀다. "붓다가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을 마친 다음 의발을 치우시고 발을 씻으시고" 등과 같은 자질구레한 내용이 기록된 이유는 붓다의 모든 행동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붓다는 매 순간 각성된 의식으로 산다. 어떤 몸짓을 할 때 붓다는 그 몸짓 자체가 된다. 미소지을 때 붓다는 미소가 된다. 붓다의 걸음, 앉음, 몸짓 하나 하나를 지켜보는 것은 커다란 은총이다.
삼마사마디, 즉 바른 삼매(正定)는 전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경지이다. 홀로(alone)라는 말은 모두가 하나(all one)라는 의미이다. 홀로 있음 안에서 우리는 우주 만물과 하나가 된다. 바른 삼매는 삼매하는 자가 사라짐으로서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금강경은 벼락처럼 단번에 자르는 지혜의 완성이라는 뜻이다. 붓다는 그대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이 설법을 했다.
2. 선현이 일어나 법을 청함(善現起請分)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속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걷어올리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을 표시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護念)하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불법을 잘 부촉하십니까? 세존이시여, 어진 남자(善男子)와 어진 여인(善女人)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도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염하고 부촉한다.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노니 잘 들으라. 어진 남자와 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해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행동하며 이렇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원합니다."
時 長老須菩提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合 掌恭敬而白佛言 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 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請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世尊 願樂欲聞
<해석> 수보리의 질문은 한가지이다. 보살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보살은 99%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이미 저쪽 기슭에 거의 도달하였다. 그렇지만 보살은 이쪽 기슭에 남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여래라는 말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산스크리트 원어 tathagata를 tath-agata로 읽을 때는 그와 같이 왔다 라는 뜻이고, tatha-gata로 읽을 때는 그와 같이 갔다 라는 뜻이다. 그렇게 왔다 라는 의미는 자기의 의지로 오지 않은 사람, 이 세상에 올 동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붓다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고 존재계가 그의 몸을 빌어 온 것이다. 그렇게 갔다 라는 의미는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자라는 뜻이다. 그의 몸은 이 세상에 남아 있지만 그는 더 이상 육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비어 있는 공간이 되었다. 타타가타는 그런 맥락에서 그렇게 오고 그렇게 가는 자라는 뜻이다. 바람처럼 오고 바람처럼 가는 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무런 집착도 없이 오고 가는 자라는 뜻이다.
체청이라는 말은 자세히 들으라는 뜻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수용성 안에서 듣는다는 뜻이다. 올바르게 듣는다는 것은 복종하는 자세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복종(obedience)이라는 말은 철저하게 듣는다는 “obedire"에서 온 말이다. 수보리에게는 보시하는 보살에게는 큰 공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있었을 것이다. 붓다는 수보리의 무의식에서 그와같은 상념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3. 대승의 바른 종지(大乘正宗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있는 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卵)에서 생겨나는 것이나, 태(胎)에서 생겨나는 것이거나, 습기(濕氣)로 태어나는 것이거나, 화(化)하여 태어나는 것이거나, 형태가 있는 것이거나 형태가 없는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것들을 내가 모두 남김 없는 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제도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어느 중생도 멸도(滅度)를 얻은 바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若胎生 若濕生若化生 若有色若無色 若有想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則非菩薩
<해석>수보리는 두가지 질문을 했다. 마음을 어디에 머물러야 하며,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킬 것인가? 그러나 붓다는 한가지만 대답했다. "마음을 어디에 머물 것인지는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오직 네 마음을 무릎 꿇릴 길만 찾아라“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한다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치도파드이다. 치토파드는 위대한 결정을 말한다. 즉 다음과 같은 위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는 뜻이다.
이 부분이 금강경의 핵심이라고 한다. 왜 핵심인가? 보살은 모든 중생을 무여열반의 세계로 인도하되, 자신이 인도했다는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붓다의 말이다.
四相이라고 하는 아, 인, 중생, 수자는 산스크리트어로 anatman, pudgala, sattva, jiva이다. 아트만은 진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너와 다른 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푸드갈라는 내가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짐승이나 식물, 벌레 따위와 다른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사트바는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다. 무생물과 다른 생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지바는 내가 시간의 존속을 가지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명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이 네가지는 분별심의 열매이다. 모두는 나라는 외연의 확대이다. 백승욱 박사는 사상을 나라는 생각(아상), 남이라는 생각(인상), 무식한 마음(중생상), 경험이 많아 잘 안다는 마음(수자상)이라고 해석했다.
4. 집착함이 없는 실천(妙行無住分)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법(法)에 집착하는 바 없이 보시(布施)를 행할지니라. 그것은 형태에 머물지 않는 보시이며 소리․냄새․맛․느낌,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보시이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 형상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동방의 허공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보리여, 남서북방과 상하(上下), 사방(四方)과 그 중간의 방향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수보리여, 그와 같이 보살이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보시의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오직 가르침대로 실천해야 하느니라."
復次須菩提 菩薩於法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不主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 須菩提於意云何 東方虛空可思量不 不也 世尊 須菩提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可思量不 不也 世尊 須菩提 菩薩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不可思量 須菩提 菩薩但應如所敎住
<해석> 집착은 동기를 의미한다. 집착한다는 것은 내가 보시함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래이지 보시가 아니다. 보시는 흘러 넘치는 것이다. 깨달음은 샘물과 같다. 그것은 끊임없이 솟아난다. 그 때 주는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다. 왼손이 오른 손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無着은 보시란 보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물건이라는 대립적인 관계로부터 마음을 차단하는 일이라고 했다.
허공은 法身을 말한다.
5. 진리에 대한 통찰(如理實見分)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가히 육신의 형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의 형상만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육신의 형상은 곧 육신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凡所有相) 모두 허망하느니라.(皆是虛妄) 모든 형상이 실체가 없다고 보면(若見諸相非相) 곧 여래를 보느니라(卽見如來)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告須菩提 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해석> 붓다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깨달음조차 소유하지 않는 것이 붓다의 특징이다. 그래서 붓다는 전적으로 평범할 수 밖에 없다. 붓다는 외부적인 특징이 아니다. 그래서 法身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히브리서 11:2). 만일 누가 어떤 사물에서 그것을 있게 한 ‘사물 아닌 것’을 본다면 그는 바로 하느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6. 바른 믿음의 숭고함(正信希有分)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여서는 안된다. 여래가 입멸한 후 오백 년이 지난 뒤에도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이 글귀를 보고 능히 신심을 내고 진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한 분의 부처님, 두 분의 부처님, 세 분, 네 분의 부처님에게만 귀의하여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께 귀의하여 여러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글귀를 듣고 일념에 청정한 믿음을 낼 것이다. 수보리여, 여래는 다함없는 지견으로써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은 무량 복덕을 얻은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에게는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없으며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마음의 대상 없음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 모든 중생이 형상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며 만약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마음의 대상 없음에도 집착하게 되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법(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여러 제자들이여, 나의 설법은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라고 설한 것이다.
須菩提白佛言 世尊 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 佛告須菩提 莫作是說 如來滅後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於此章句能生信心 以此爲實 當知是人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 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 須菩提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得如是無量福德 何以故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無法相亦無非法相 何以故 是諸衆生 若心取相 則爲着我人衆生壽者 若取法相 則着我人衆生壽者 何以故 若取非法相 卽着我人衆生壽者 是故不應取法 不應取非法 以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해석> 믿음은 사드하(shaddha)이다. 사드하는 산스크리트어 쉬라드하이다. 이 말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자기 확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내맡김을 가능하게 한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내맡기지 못한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이야말로 마치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이 붓다에게 내맡길 수 있다. 그래서 깨끗한 믿음(정신)이란 믿는 나도 없고, 믿는 대상도 없고, 믿는 일도 없는, 믿음만 있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
여래의 다함없는 지견이란 이원성을 벗어난 바라봄을 말한다. 사랑과 증오는 한 단어이다. 사랑증오, 낮밤, 삶죽음, 불행행복, 고통쾌락, 물질마음이 모두 한 단어이다. 우리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두 개로 분리해서 본다.
7. 얻음도 설함도 없는 깨달음(無得無說分)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는가? 또한 여래가 설한 진리가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말씀에 의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일정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여래께서는 일정한 법을 설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모두 들어서 취(取)할 수 없으며, 또 말해질 수 없고 법이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현인과 성인은 하염없는 진리(無爲法)로써 차별을 두기 때문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須菩提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如來可說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不可說 非法非非法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8. 진리를 따르는 복덕(依法出生分)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 세계에 가득 찬 칠보(七寶)로써 보시를 행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은 얼마나 많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복덕성(福德性)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의 사구게(四句偈)를 항상 외우고 배워서 남을 위해 설한다면 이 복덕은 앞의 복덕보다 더욱 훌륭할 것이다. 수보리여,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또한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이미 불법이라고 말한다면 곧 불법이 아닌 것이다."
須菩提 於意云何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所得福德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 是福德卽非福德性 是故如來說福德多 若復有人 於此經中 受持乃至四句偈等爲他人說 其福勝彼 何以故 須菩提 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약三菩提法 皆從此經出 須菩提 所謂 佛法者 卽非佛法
<해석> 여기서 사구게는 특별한 구절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圭峰스님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이면 則見如來가 가장 묘한 구절이라고 하였다.
복덕성과 복덕의 차이는 마음에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으면 곧 복덕이요, 없으면 복덕성이다. 내 이마의 땀을 내 손이 닦는다면 누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누가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경은 손가락과 같고 법은 달과 같다. 다만 경에 의지해서 법을 알 수 있거니와 경문은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법은 慧眼으로만 볼 수 있다.
법이란 하나의 말에 불과하다. 삶도 말이고 죽음도 말이다. 행복도 말이고, 진리도 말이다. 그러나 바람과 나무, 참새와 어린아이, 태양은 실재이다. 태양에 관한 말에는 그림자라는 실체가 빠져 있다. 그리고 태양에 관한 말은 실제의 태양보다 훨씬 차갑다. 소리 높여 요구하는 마음, 찾아 헤메는 가슴은 태양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태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의 편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대지는 태양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대지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태양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9. 무상(無相)의 가르침(一相無相分)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은 자신이 능히 수다원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다원은 영원한 평화의 흐름에 들었지만 영원한 평화의 흐름에 들었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형태(色)를 얻은 것도 아니며, 소리(聲), 냄새(香), 맛(味), 느낌(觸), 마음의 대상(法)에 이르기까지 얻었다고 생각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수다원이라고 불리웁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다함은 자신이 능히 사다함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은 다시 한번만 태어나면 깨달음을 얻을 사람이지만 사실은 가고 옴이 없는 까닭에 사다함이라고 불리웁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나함은 자신이 능히 아나함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나함은 결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일이 없기 때문에 아나함이라고 불리웁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라한은 자신이 능히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법이 없기 때문에 아라한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며 욕심을 여윈 아라한 가운데 으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라는 생각까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제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는 아란나행(阿蘭那行)을 즐기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실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란나행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陀洹 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須菩提 於意云何 斯陀含 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陀含 名 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陀含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須菩提 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不來 是故名阿那含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 名 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 我得阿羅漢道 卽爲着我人衆生壽者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 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世尊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世尊 我若 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 則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 實無所行 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해석> 수다원은 스로타 아파나(srota-apanna)라고 해서 인간세의 미혹함을 끊고 성자의 영원한 평안함에 들어간 자라는 뜻으로 入流라고 한다. 사다함은 사크르다가민(sakrdagamin)으로 한 번 오는 자(一來)라는 뜻이다. 아나함은 아나가민(anagamin)으로 不來 또는 不還이라고 한다. 아라한(arhat)은 無諍 또는 應供이라고 한다. 무쟁은 끊어야 할 번뇌가 없고 여의어야할 탐진이 없으며, 어기거나 좆을 정이 없어 마음과 경계가 공하고 안팎이 언제나 고요한 사람을 말한다.(六祖) 다툼은 여기 내가 있고 저기 네가 있어 생겨나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때 어찌 다툼이 생기겠는가? 내 손과 내 발이 다툴 수 있겠는가?
이 네가지 단계는 같은 것을 4번 반복한 것이다. 구태여 아나함과 아라한을 구별한다면 아나함은 색계나 무색계로 돌아올 수 있어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면, 아라한은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는 無學位에 이른 사람이다.
10. 정토의 장엄(莊嚴淨土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날에 여래가 연등부처님 계신 곳에서 얻은 바 법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연등부처님 계신 곳에서 실로 얻은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이 불토(佛土)를 장엄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니 형태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와 냄새, 맛과 느낌,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 수보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왕만 하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 몸이 크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은 몸 아닌 것을 이름하여 큰 몸이라고 설하시기 때문입니다."
佛告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昔在燃燈佛所 於法 有所得不 不也 世尊 如來在燃燈佛所 於法 實無所得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 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而 生其心 須菩提 譬如有人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해석> 장엄에는 세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世間불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절을 짓고 경을 베끼고 보시공양을 베푸는 것이요, 둘째는 身불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요, 셋째는 心불토를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세 번째의 장엄이 가장 중요하다. 유마경에는 “마음을 깨끗이 하면 곧 부처님 땅을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거죽을 꾸미랴”고 하였다.
불토는 깨달음의 땅이다. 깨달음의 땅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부처를 깨울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이 곳에서는 세상사로 인해 산만해지고 미혹되는 일이 없으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으며, 일상적인 일이나 금기 사항이 면제되고 깨달음을 위한 모든 시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오직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되는가’하는 문제만이 유일한 문제가 된다. 이러한 깨달음의 땅이 필요하다. 인류는 지금 문턱에 서 있다. 멸망하여 사라지거나 아니면 크게 도약하여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문턱에 서 있다. 수백만년전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내려오면서 인간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육조 스님이 한 번 듣고 깨달음을 냈다는 아무데도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낸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말은 아무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마음을 낸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면서 그 모양에 잡히지 않고, 귀로 들으면서 그 소리에 잡히지 않고, 몸으로 느끼면서 그 느낌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눈은 보이는 사물의 상을 망막에 비치는 순간 지워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비친 상을 망막에 붙잡아 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귀의 고막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11. 영원한 복덕(無爲福勝分)
"수보리여,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같이 많은 항하가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얼마나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모든 항하만 하더라도 이미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모래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수보리야, 지금 내가 그대에게 진실로 이르노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저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한다면 그 얻는 바 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속의 사구게 등을 배우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준다면 이 복덕이 앞의 복덕보다도 나으니라."
須菩提 如恒河中 所有沙數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 須菩提 我今 實言 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以用布施 得福 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해석> 경을 읽어주는 것은 法布施에 해당된다. 財布施는 欲界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법보시는 능히 三界를 벗어난다고 한다. 법보시가 중요하다고 해서 재보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向善背惡, 즉 선을 향하고 악을 등지지 않고 선악을 함께 버리는 길로 곧장 가는 중생은 없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웃과 나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경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12. 바른 가르침의 존중 (尊重正敎分)
또한 마땅히 알라. 수보리여, 이 경과 사구게를 설하면 모든 세간의 천(天)․인(人)․아수라(阿修羅)가 모두 공양하기를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하거늘 사람에게 이 경을 받아 지니게(受持) 하고 독송하게 함에 있어서랴! 수보리여,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가장 높고 으뜸가는 희유한 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곧 부처님이나 혹은 존경받는 제자가 있는 곳이라고 할 것이다.
復次須菩提 隨說是經 乃至四句偈 等當知此處 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應供養 如佛塔廟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 若尊重弟子
<해석> 육조 스님은 이 구절을 해석하여 “자기 마음(自心)으로 이 경을 誦得하고 자기 마음으로 경의 뜻을 해득하고 자기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고 모양을 짓지 않는 이치(無着無相之理)를 체득한다.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 부처님의 행을 닦으니 곧 자기 마음이 부처인 것이다(自心是佛). 그래서 그 있는 자리가 곧 부처님이 있는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두워서 중생이요 깨달으면 곧 부처(迷卽衆生 悟卽是佛)라고 하였다. 이는 곧 주먹으로 손바닥을 만들고 손바닥으로 주먹을 만드는 것과 같다. 무엇이 부처냐? 하는 질문에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騎牛討牛)라고 하거나 무엇이 부처가 아니냐(如何不是佛)고 하거나 지금 그대가 곧 부처다(只汝便是)라고 대답하는 것은 다 같은 말이다.
13. 여법(如法)히 받아 지님 (如法受持分)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경전은 무엇이라고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金剛般若波羅密)'이니 그대들은 이 명칭대로 받들어 지녀야 할 것이다. 수보리여,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한 바 진리가 없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작은 먼지(微塵)가 많다고 하겠는가? 적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모든 먼지를 여래는 작은 먼지가 아니라 그 이름을 작은 먼지라고 설하시며 여래는 세계가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일 뿐이라고 설한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히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삼십이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삼십이상은 곧 형상이 아니며 그 이름이 삼십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항하의 모래알 수 같은 목숨을 바쳐 보시하고 또한 어떤 사람이 이 경의 사구게 등을 배우고 외워서 남을 위해 설해주면 그 복이 매우 많으니라."
爾時 須菩提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佛告須菩提 是經 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所以者何 須菩提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所說法不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須菩提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須菩提 諸微塵 如來說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 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甚多
<해석> 慈受禪師는 말에도 침묵에도 빠지지 않으면 곧 자성의 청정함을 본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비록 종일 말을 해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것 같고, 종일 설해도 설하지 않은 것 같다. 보살은 사람과 법이 모두 공임을 깨달아 설하는 바가 없음을 안다.
부처님께서 문수보살에게 대답하기를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떠나고 티끌에 있으면서 티끌을 떠나는 것이 구경법(在世離世 在塵離塵 卽究竟法)이라고 하셨다.
성경에 이르기를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더라고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다”(고린도전서, 13:3)고 하였다. 사구게는 사랑과 같다. 목숨은 보이고 사랑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4. 형상을 초월한 적멸 (離相寂滅分)
그때 수보리가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그 의미를 깊이 깨달아 슬픈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제가 과거에 얻은 바 혜안(慧眼)으로서도 일찍이 이와 같은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믿음이 청정하면 곧 실상(實相)의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마땅히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실상(實相)은 곧 상(相)이 아니므로 실상이라고 여래께서는 설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와 같은 경전을 듣고 믿어서 받아 지니기에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만약 후 오백 세 뒤의 중생들이 이 경전을 듣고 믿어서 수지한다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제일 보기 드문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상(我相)은 곧 상(相)이 아니요,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모든 형상을 초월한 그 이름이 부처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듣고서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가 설하는 제일바라밀은 곧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인욕바라밀도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한다.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끊기었으나 나에게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마디마디 사지를 찢길 때 만약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다면 마땅히 성내고 원망하는 생각을 일으켰을 것이다. 수보리여, 또 생각하니 내가 인욕선인(忍辱仙人)이었던 오백 세 전에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相)을 여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해야 한다. 마땅히 형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와 냄새, 맛과 느낌,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만약 마음에 머뭄이 있으면 곧 바른 머뭄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보살의 마음이란 마땅히 형상에 집착하여 하는 보시가 아니어야 한다'라고 하였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해서 마땅히 이와같이 보시할지니라. 여래는 '일체의 모든 형상은 곧 형상이 아니며 일체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다'라고 설한다. 수보리여, 여래는 참답게 말하는 자이며, 진실을 말하는 자이며, 진여(眞如)를 말하는 자이며,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자이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바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느니라. 만약 보살이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여 보시를 행하면 마치 어둠 속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 것도 못보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이 마음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마치 눈 열린 사람이 햇빛에 밝게 비치는 여러 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여, 먼 미래세에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능히 수지 독송하면 곧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모두 무량무변한 공덕을 성취하게 하느니라."
爾時 須菩提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 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 淸淨 則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世尊 是實相者則是非相 是故 如來說名實相 世尊 我今 得聞如是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當來世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則爲第一希有 何以故 此人 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 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離一切諸相 則名諸佛 佛告須菩提 如是如是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何以故 須菩提 如來說第一波羅蜜 卽非波羅蜜 是名波羅蜜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是名忍辱波羅蜜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嗔恨 須菩提 又念 過去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 是故 須菩提 菩薩 應離一切相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有住 則爲非住 是故 佛說菩薩 心不應住色布施 須菩提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須菩提 如來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思狂語者 不異語者 須菩提 如來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 入闇 則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 有目 日光 明照 見種種色 須菩提 當來之世 若有善男子善女人 能於此經 受持讀誦 則爲如來以佛智慧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해석> 수보리가 드디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깊이 깨닫는다. 그 결과 슬픈 눈물이 흐른다. 그의 머리(知)가 아니라 가슴(感)이 법에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의 고백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슬픈 눈물(悲泣)일까?
눈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소위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눈물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문명은 우리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심어 놓았다. 그러나 눈물은 우리가 가진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눈물이 반드시 슬픔의 표현인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우리의 가슴을 걷잡을 수 없이 휘저어 놓을 때, 무엇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담고 있어서 마구 흘러 넘치기 시작할 때 바로 그 때 눈물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눈물로 가득찬 눈은 진리를 볼 수 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은 이 삶의 아름다움과 축복을 볼 수 있다.
물결이 물이듯이 나는 사람이다. 내가 물결로서 나를 인식하면(역사적 차원) 나는 나다. 그러나 내가 사람 속에 흡수되면, 다시 말해 내가 나로서 행세하지 않고 사람으로서 행세한다면 나의 참 實相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렇게 드러난 참 실상도 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노자는 나에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병을 앓겠는가하고 말하였다. 암이나 결핵이 병이 아니다. 독립된 나(個我)가 따로 있다는 미숙한 의식이 병이다.
15. 경을 배우고 외우는 공덕(持經功德分)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에도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도 다시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또한 항하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겁 동안 몸으로 보시하였다고 하자.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믿어 거역하거나 비방하지 않으면 이 사람의 복덕은 앞의 사람보다 훨씬 크다. 그러므로 하물며 이 경전을 붓으로 쓰거나 수지, 독송하고 사람들을 위해 해설함에 있어서이랴! 수보리여, 간추려 말하건대 이 경은 가히 생각할 수 없으며,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지니고 있다. 이 경은 여래가 대승심(大乘心)을 발한 사람을 위해서 설한 것이요, 최상승심(最上乘心)을 발한 자를 위해서 설한 것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능히 수지하고 독송하며 사람들을 위해 널리 설하면 여래가 이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알고, 다 보고 있어서 모두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도 없으며 끝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진 것과 같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소법(小法)을 즐기는 자는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능히 알아듣고 독송하며 남을 위해 해설하여 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이 경이 있는 어느 곳이라도 일체 세간의 천(天)과 인(人), 아수라(阿修羅)가 마땅히 공양할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즉 탑이 되어 모두 공경하여 예배드리며 모든 꽃과 향을 그 속에 뿌리게 되리라.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 勝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若有人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則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天人阿修羅所應供養 當知此處 則爲是塔皆應恭敬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해석>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으로 향해 찾을 것이니, 만약 부처를 보고자 하면 오직 모름지기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 부처를 받들어 모시는 것은 밖을 향해 어지럽게 구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소법을 지키는 자는 法相을 가진 자이다. 그는 법에 대한 하나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을 뿐 실은 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행복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 아무 조건없이 무조건적으로 행복한 사람, 이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의 정의이다.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이 포도주가 될 정도로 즐겁게 마셔라. 장미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취할 수 없다면 그 때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취하게 할 수 없다. 만족을 연기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만족해야 한다. 지금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도 만족은 없다.
16. 업장의 정화(能淨業障分)
수보리여,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여 남에게 박해를 받게 된다면 이 사람은 전생의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今世)에 사람들의 박해를 받은 까닭에 전세(前世)의 죄업이 소멸되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수보리여, 내가 과거의 한량없는 아승지겁을 생각해보니 연등불 앞에서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 다 공양하고 받들어서 헛되이 지남이 없었으나, 만약 훗날의 말세에 다른 사람이 있어 능히 이 경을 수지하고 독송하여 얻은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서도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며 천만억분 내지 숫자의 비유로써는 결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됫날의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여 얻는 공덕을 내가 다 설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이를 듣고 마음이 광란하여 의혹을 품고 믿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여, 마땅히 알라. 이 경전의 진리는 불가사의하며 과보 또한 불가사의한 것이다
復次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 輕賤故 先世罪業 則爲消滅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我念 過去無量阿僧祗劫 於燃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 不及一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或有人 聞 心則狂亂 狐疑不信 須菩提 當知是經義 不可思議 果報 亦不可思議
<해석>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와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를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가복음 10:29-30)
17. 무아의 가르침(究竟無我分)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생활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 일체 중생을 제도했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도 제도된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진실로 유법(有法)에 집착함이 없어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이니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연등 부처님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얻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이해한 바에 의하면 부처님이 연등 부처님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을 얻은 일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다. 수보리여, 그와 같으니라. 참으로 여래는 법(法)이 있으므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여, 만약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얻었다면 연등 부처님께서 나에게 '그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연등 부처님께서 내게 '그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는 수기를 주셨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곧 제법(諸法)이 여여(如如)하다는 뜻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실로 유법(有法)이 없으므로 부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니라. 여래가 증득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실(實)함도 허(虛)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이 모두 불법(佛法)'이라고 설한 것이다. 수보리여, 일체법(一切法)이란 곧 일체법이 아니니 그 이름만이 일체법이다. 비유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것과 같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것은 곧 큰 몸이 아니라 그 이름이 큰 몸임을 설하신 것입니다." "수보리여, 실로 유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은 무아(無我)이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다'라고 설했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내가 마땅히 불토(佛土)를 장엄하리라'라고 한다면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불토를 장엄한다고 설한 말은 곧 장엄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을 장엄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무아법(無我法)에 통달한 사람이 있다면 여래는 그를 '참다운 보살'이라고 이름하리라."
爾時 須菩提白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佛告須菩提若 善男子善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當生如是心 我應滅度一切衆生滅度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實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則非菩薩 所以者何 須菩提 實無有法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於燃燈佛所 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 於燃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實無有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若有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燃燈佛 則不與我授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故 燃燈佛 與我授記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 釋迦牟尼 何以故 如來者 卽諸法 如義 若有人 言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名一切法 須菩提 譬如人身 長大 須菩提言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則不名菩薩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須菩提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해석>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 다른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때 다른 곳에 있다가 유일한 현실인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깨달았다고 하면 아직 온전한 깨달음이 아니다. 깨달은 자가 없어야 온전한 깨달음이다. 여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바탕이다. 바탕이니 그게 다 그것이고 그래서 如如라고 한다.
사람이 존재계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가? 아무리 횃불을 밝게 해도 그 빛으로 태양을 더욱 밝게 할 수는 없다.
연등불과 석가모니 부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있다. 연등불은 석가모니 부처에게 등불을 전했다(傳燈). 깨달음의 등불을 전했다. 그러나 사실은 연등불은 석가모니 부처에게 아무 것도 전달한 것이 없다. 다만 스승의 현존에 힘입어 제자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것은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승의 현존, 그 자체로 인해 제자의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표면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스승이 현존이 제자의 존재를 앞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진정한 스승은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이란 제자 앞에 현존하는 것이다. 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바로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스승이 하는 일이 전부이다. 해바라기는 제자의 상징이다. 태양이 어디로 움직이건 해바라기는 그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 해바라기는 제자도의 상징이며 은유이다.
18. 평등한 체관(一切同觀分)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육안(肉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천안(天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혜안(慧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법안(法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불안(佛眼)을 가졌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을 가졌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처는 '항하의 모래와 같이'라고 말한 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이 모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수의 항하가 있고 이 모든 항하의 모래 수만큼 부처님의 세계가 있다면 참으로 많다고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저 모든 국토에 살고 있는 여러 중생들의 가지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알고 있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모든 마음을 다 마음이 아니라고 설하기 때문이니 이를 일컬어 마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慧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法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法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佛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恒河中所有沙 佛說是沙不 如是 世尊 如來說是沙 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有如是沙等恒河是諸恒河所有沙數佛世界如是 寧爲多不 甚多 世尊 佛告須菩提 爾所國土中所有衆 生若干種心 如來悉知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해석> 부처에게 다섯가지 눈이 있다는 것은 중생에게도 다섯가지 눈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눈으로 무엇을 본다는 것은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사이에 아무 것도 없어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눈이 맑다는 것은 눈에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야타 부탐(있는 그대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천안은 하늘의 눈이다. 육안은 한 쪽으로만 볼 수 있지만 천안은 앞뒤 위아래를 동시에 본다. 혜안은 지혜의 눈이다. 대상과 하나가 되어 꿰뚫어 보는 눈이다. 법안은 진리의 눈이다. 개구리를 보면 개구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불안은 부처의 눈이다. 성을 밝게 꿰뚫어 보아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을 영원히 없애는 것(見性明徹 能所永除)이다. 내가 꽃을 볼 때 나도 없고 꽃도 없고 다만 봄(seeing)이라는 의식만 있는 것이다.
깨달은 자에게는 죄가 없다. 그것을 지은 자가 없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자에게도 죄가 없다. 다만 그 흔적과 죄책감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의 의미이다.
19. 법계의 완성(法界通化分)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를 한다면 그 사람은 이 인연으로 얻을 수 있는 복이 많다고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그 인연으로 얻을 복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수보리여, 만약 참된 복덕이라면 여래는 얻을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라. 복덕이 없는 까닭에 여래는 복덕이 많다고 설한 것이니라. "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 多不 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 甚多 須菩提 若福德 有實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 無故 如來說得福德多
<해석> 참된 복덕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복덕은 발견하는 것이다.
20. 색과 상의 초월(離色離相分)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처는 모든 상(相)을 다 갖춘 색신(色身)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색신을 구족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한 구족색신은 곧 구족색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름만이 구족색신인 것입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를 모든 상을 다 갖춘 제상(諸相)이 구족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구족제상(具足諸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한 제상구족은 제상구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름만이 제상구족인 것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佛 可以具足色身 見不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色身 見 何以故 如來說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是名具足色身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可以具足諸相 見不 不也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諸相見 何以故 如來說諸相具足 卽非具足 是名諸相具足
<해석> 에고는 세상의 씨앗이다. 하나의 작은 씨앗이 세상 전체를 담고 있다. 단지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 하나만 일어나도 즉시 온 세상이 뒤따라 일어난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앉아 보라. 그냥 방안에 나무 곁에, 풀밭에 누워 있어 보라.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라. 그러면 순간적으로 어떤 느낌이 우리에게 밀려오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음과 동시에 난생 처음으로 존재한다. 깨달음은 죽음인 동시에 부활이다.
21. 설한 바 없는 설법(非說所說分)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가 '나는 응당히 법을 설한다'라고 생각한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설하는 바 법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이는 내가 설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수보리여, 법을 설하지만 가히 설할 만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일컬어 설법이라고 한다." 그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미래세에 자못 많은 중생들이 설하신 이 법을 듣고 신심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들은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님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는 중생이라는 것은 중생이 아니라고 설하나니 오직 이름만이 중생인 것이다."
須菩提 汝勿謂 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 言如來有所說法 則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爾時 慧命須菩提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生信心不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 非不衆生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해석>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삶은 권태로와진다. 아이들은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의 초보적인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에고는 아직 발달되지 않았다. 우리들이 에고가 권태를 만드는 요인이다. 동물들은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나무들도 그렇다. 장미 덩쿨은 해마다 같은 장미꽃을 피우고 새들은 매일 똑같은 노래를 부르지만 싫증을 느끼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자연은 아직 에고가 없기 때문이다.
22. 버림으로써 얻는 진리(無法可得分)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은 얻은 바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다. 수보리여, 그와 같나니라.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그 어떤 법도 얻은 바가 없기 때문에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
須菩提白佛言 世尊 佛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無所得耶 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乃至無有少法可得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해석> 미운 오리새끼가 자신을 오리라고 생각하는 한 그는 백조이면서 백조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백조가 아니라고 생각하든 말든 이미 백조이다.
23. 선을 닦는 청정한 마음(淨心行善分)
"수보리여, 이 법(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다. 아상(我相)도 없고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이 모든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선법이란 선법이 아니기 때문에 선법이라고 부른다고 설하느니라."
復次須菩提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修一切善法 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卽非善法 是名善法
<해석> 길을 떠나서는 길을 갈 수 없다. 그러나 길에 달라붙으면 또한 길을 갈 수 없다. 길을 간다는 것은 길에서 길을 떠남이다.
24. 비할 데 없는 복덕과 지혜(福智無比分)
"수보리여,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수미산왕과 같은 칠보의 무더기를 가지고 보시를 행한다고 할지라도 이 반야바라밀경의 사구게만이라도 수지 독송하며 사람들을 위해 설한다면 앞의 복덕은 이에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는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라."
須菩提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 有人 持用布施 若人以此般若波羅蜜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說 於前福德 百分 不及一 百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해석> 복덕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평화스럽고 사랑에 충만해 있다면 그것이 최상의 복덕이다.
25. 최상의 교화(化無所化分)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여래가 '마땅히 중생들을 제도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실로 여래가 제도한 중생은 없으니 만약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있다면 여래는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음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께서 '나'라고 함은 곧 '나'가 아니지만 범부들은 그것을 '내가 있다'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범부라는 것에 대해서도 여래는 곧 범부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이다."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 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 則有我人衆生壽者 須菩提 如來說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說卽非凡夫 是名凡夫
<해석> 범부와 부처의 차이는 범부는 부처의 씨앗이요, 부처는 범부의 열매라는 것이다.(凡是佛因 佛是凡果) 부처가 범부라고 하고 다시 범부가 있는 것이 아니고 허명으로 범부라 부른 것이라고 하는 것은 “금방 들어 보이고 금방 지워 버리는” 隨擧隨掃의 설법이다. 무엇을 지우려면 들어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내면에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우리는 오직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을 안다. 우리는 직접 우리 자신의 존재에 다가설 수 있는 길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에게 간다.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 바로 사랑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주의를 쏟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깊이 사랑할 때 그들은 온 세상을 잊는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완전히 몰입해 있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볼 때에는 그 밖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마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몰입의 순간 그들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 이러한 사랑의 빈자리를 손쉽게 메꾸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26. 형상이 없는 법신(法身非相分)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히 삼십이상(三十二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을 아는 바로는 마땅히 삼심이상을 여래라고 볼 수 없나이다."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형태에 의해서 나를 보고(若以色見我) 소리에 의해서 나를 찾는 자는(以音聲求我) 잘못된 노력에 빠져 있나니(是人行邪道) 마침내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不能見如來)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 觀如來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則是如來 須菩提白佛言 世尊 汝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 觀如來 爾時 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해석> 그렇지만 우리 중생들이 삼십이상이 아니면 어떻게 여래를 알아보겠는가? 도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데 속하지 않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떠나 있지도 않다.(道不屬見聞覺知 亦不離見聞覺知)
27. 단멸상을 버려라(無斷無滅分)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는 상(相)을 구족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리라. 수보리여, 이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상을 구족하지 않은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 자에게는 모든 법의 단멸(斷滅)이라는 상이 있다고 설하셨다'라고 생각하리라.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 자는 법의 단별이라는 상이 있다고 설하지 않은 까닭이니라."
須菩提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莫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汝若作是念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說諸法 斷滅 莫作是念 何以故 發阿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法 不說斷滅相
<해석> 그러나 얻기 전에는 얻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니 없다고 하지 마라. 얻은 뒤에는 얻은 것이 없다. 그러니 있다고 말하지 마라. 깨달은 뒤에는 불법을 닦을 필요가 없지만 깨닫기 전에는 불법이 없을 수 없다. 무상정등각을 얻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불법을 좇아 수행해야 하므로 불법이 없다느니 그런 것은 쓸 곳이 없다느니 그 따위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무상정등각을 구하는 자는 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28. 복덕에 대한 무집착(不受不貪分)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하더라도 일체의 법이 무아(無我)임을 깨닫고 인(忍)을 성취한 보살의 복덕이 더욱 나으리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何以故 須菩提 以諸菩薩 不受福德故 須菩提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提 菩薩 所作福德 不應貪着 是故 說不受福德
<해석> 忍을 이룬다는 말은 도리에 평안히 머물러 이리저리 헤매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주와 객을 나누는 마음(能所心)이 없어지면 인을 이룬다고 한다.
29. 고요한 위의(威儀寂靜分)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어디로부터 오고 어느 곳으로 가는 바도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여래라고 하느니라"
須菩提 若有人 言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 是人 不解我所說義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해석> 눈 앞의 바위를 본다. 저 바위를 쪼개고 쪼개면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 전자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저 바위는 움직이고 있는가? 진여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아무 의견도 갖지 않고 보는 것, 판단이나 비난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뜻한다. 즉 무심의 상태를 진여라고 한다.
30. 하나에 대한 집착(一合離相分)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 세계를 부수어 먼지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 먼지들은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먼지들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는 곧 먼지라고 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먼지들이란 곧 먼지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먼지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 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세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실로 있는 것이라면 곧 하나로 합하는 상(一合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일합상(一合相)은 곧 일합상이 아니다'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합상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일합상이란 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다만 범부들이 그 일에 탐착할 뿐이다."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 則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則是一合相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則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해석> 내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은 부분이 전체를 얻겠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보겠다는 것은 열매가 나무를 보겠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나의 눈과 귀가 붙들려 있는 한 나는 전체를 볼 수 없다.
31. 지견을 일으키지 말라(知見不生分)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부처님께서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말씀하셨다'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가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곧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다'라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일체법을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이 믿고 깨달아서 법(法)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수보리여, 법상(法相)이란 곧 법상이 아니라고 여래는 설한 것이니 곧 법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須菩提 若人 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於意云何 是人 解我所說義不 不也 世尊 是人 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須菩提 所言法相者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
<해석> 법상이란 ‘이것이 법이다’라고 정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이라고 규정한다. 천국은 이러저러한 곳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행복과 천국은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행복과 천국은 자기 자신이 그것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 안에 천국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디서도 천국을 발견할 수 없다.
32. 진정한 공덕(應化非眞分)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무량아승지 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보살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이 경전을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해서 설한다면 그 복덕이 저 복보다 나으리라.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연설할 것인가? 형상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여여(如如)하여 동요함이 없느니라.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一切有爲法)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如夢幻泡影) 이슬, 번개와 같다. (如露亦如電)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應作如是觀)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셨다. 장로 수보리와 여러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天), 인(人), 아수라(阿修羅)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을 듣고 크게 환희하여 모두 믿고 닦으며 받들어 행하였다.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演說 其福 勝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 及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尼一切世間天人阿修羅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해석> 부처는 우리 마음을 별처럼 여기라고 한다. 별은 캄캄할 때만 존재한다. 의식의 태양이 떠오르면 마음은 자취를 감춘다. 마음은 삐뚤어진 눈이다. 삐뚤어진 눈으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마음은 등불이다. 등불은 욕망이라는 연료가 있어야만 타오른다. 마음은 환영이다. 마술이라는 말은 마야에서 왔다. 마음은 이슬방울이다. 우리는 마음을 진주나 다이아몬드와 같이 아름답게 여기지만 아침해가 떠오르면 없어지는 순간적인 현상이다. 마음은 물거품과 같다. 마음이 가진 모든 경험은 물거품처럼 터져서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음은 꿈이다. 마음은 우리 자신이 감독이며 배우며 관객인 주관적인 상상이다. 마음은 번갯불과 같다. 한 순간 번쩍했다 사라진다. 마음은 구름과 같다. 마음은 하늘인 의식 주위에 일어나는 구름과 같다.
마음이 없는 상태를 자유라고 한다. 자유라는 말은 자아로부터 자유로와진다는 뜻이다. 모든 자아는 형상이다. 바위도 자아가 있고 영혼이 있다. 나무도 자아가 있고 동물들도 자아가 있다. 그러나 부처는 자아가 없다. 그는 완전한 자유이다. 자유는 모든 사람의 본성이다. 자유는 이미 주어져 있다. 새삼 자유를 가져와야 할 이유가 없다. 자유가 거기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제6. 수기품(授記品)
이 때, 세존께서 이 게송을 읊으시고 여러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의 제자인 마하가섭은 오는 세상에서 3백만억 부처님을 받들어 뵈옵고, 공양하고 존중 하며 찬탄하여 여러 부처님의 한량없는 큰 법을 널리 펴다가 최후의 몸으로 성불하리니, 이 름은 광명(光明)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라 하리라. 나라 이름은 광덕(光德)이요, 겁의 이름은 대장엄(大莊嚴)이라 하리라.
그 부처님 수명은 12소겁이요, 정법은 20소겁이며, 상법도 20소겁 동안 세상에 머무르게 되리라.
그 나라는 장엄하게 장식되어 모든 더러운 것과 기왓조각, 가시덤불, 똥오줌 따위가 없고, 땅이 반듯하여 높은 데, 낮은 데, 구렁, 둔덕이 없으며, 땅은 유리로 포장되고, 보배 나무들 이 줄을 지었으며, 황금 줄을 길 경계에 늘이고 보배 꽃을 흩어서 두루 가득하여 깨끗하리라. 그 나라의 보살들은 한량없어 천만억이고, 성문들도 수 없으리라. 마의 장난(魔事)이 없고, 마왕과 마의 백성이 있어도 모두 불법을 옹호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려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구들에게 말하노라. 내가 부처눈(佛眼)을 가지고 가섭의 장래를 살피니, 오래고 오랜 오는 세상에 수없는 겁을 지난 다음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라. 그가 오는 세상에서 3백만억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뵈옵고, 공양도 하고 공경도 하여 부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범행을 깨끗이 닦으며, 복과 지혜 구족하신 최상의 세존께 공양하여 마치고 갖가지 위없는 지혜를 부지런히 닦아 익히다가 최후의 몸으로 부처를 이루게 되리라.
그 나라 땅은 청정하여 유리로써 포장되고, 여러 가지 보배 나무가 길가에 줄을 짓고, 황금줄을 경계에 늘이어 보는 이마다 기뻐하고, 훌륭한 향기 가득하고 아름다운 꽃이 흩날려 여러 가지로 기묘하게 국토를 장엄할 것이며, 땅은 반듯하고 평탄하여 둔덕이나 구렁이 없으며, 여러 보살 대중들이 셀 수 없이 많고 그 마음 부드럽고 화평하며, 크나큰 신통을 얻어 여러 부처님의 대승 경전을 받아 지니리라.
모든 성문 대중은 무루의 최후의 몸을 얻은 법왕의 아들들로 그 수효 이루 헤아릴 수 없어 하늘눈(天眼)을 가지고도 다 셀 수 없으리라. 그 부처님의 수명은 12소겁이 될 것이요, 정법이 세상에 머무르기 20소겁이요, 상법도 20소겁을 세상에 머무를 것이니라. 광명 세존 부처님의 그 일이 이러하리라.
이 때, 대목건련과 수보리와 마하가전연 들이 모두 송구스러워하면서, 일심으로 합장하고 존안을 우러러뵈옵고 잠시도 눈을 떼지 아니하며, 소리를 함께 하여 게송을 읊었다.
크게 웅장하고 용맹하시며 법왕이신 석가 세존이시여, 저희를 어여삐 여기사 부처님 음성을 내리시이다. 우리의 깊은 마음 살피시어 만일 수기(授記)를 주신다면, 감로수를 뿌려 열(熱)을 식혀 서늘하게 하심과 같으오리다.
흉년든 나라에서 온 사람이 임금이 주는 음식 받고도 송구하고 의심스러워 감히 먹지 못하다가 먹어라는 명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듯이, 저희도 그와 같아서 소승의 과오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위없는 부처 지혜 얻으려는지 모르옵다가, 비록 우리도 부처 되리라는 부처님 말씀 듣자와도 마음에 오히려 송구하와 감히 먹지 못함과 같사오니, 만일 부처님께서 수기 주시면, 비로소 쾌락 하겠나이다. 웅장하고 용맹하신 세존이시여, 세간 중생 안락하게 하시니, 저희에게 수기를 주시면 배고픈 자에게 먹어라 명하심과 같으리이다.
이 때, 세존(世尊)께서 큰 제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수보리가 오는 세상에서 3백만억 나유타(那由他) 부처님을 받들어 뵈옵고,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며, 항상 범행을 닦아 보살의 도를 구족하고 최후의 몸에서 성불 하리라. 이름은 명상(名相)여래, 응공, 정변지, 명 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며, 겁의 이름은 유보(有寶)요, 세 계의 이름은 보생(寶生)이라 하리라.
그 국토는 번듯하고 방정하며, 파리(頗梨)로 땅을 덮고 보배나무로 장엄하며, 둔덕과 구렁 과 기왓조각과 가시덤불과 똥오줌 따위의 더러움이 없고, 보배꽃이 땅을 덮어 두루두루 청 정하리라. 그 나라 백성들은 보배로 된 누대와 훌륭한 누각에 거처하고, 성문 제자가 한량없고 그지없어 산수와 비유로 알 수 없고, 여러 보살 대중은 수없는 천막억 나유타이리라. 부처님 수명은 12소겁이요, 정법은 20소겁이고, 상법도 20소겁 동안 세상에 머무를 것이니라.
그 부처님은 항상 허공에 거처하면서 법을 설하시어 한량없는 보살과 성문들을 제도하리라."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설하셨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의 말을 들어라. 나의 큰 제자인 수보리는 오는 세상에 성불하여 이름을 명상여래라 하리니, 마땅히 수없는 만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부처님의 행하심을 따라 큰 도를 점점 갖추어 최후의 몸을 받아 32가지 몸매가 단정하고 뛰어남이 보배산과 같으리라.
그 부처님의 국토는 깨끗하게 장엄함이 제일이어서 중생의 보는 이마다 좋아하지 않을 이 없으리. 부처님은 그 가운데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그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수많은 여러 보살들은 모든 근성이 총명하여 물러나지 않는 법륜 굴리어 그 나라는 언제나 보살로 장엄되리라.
여러 성문 대중도 이루 다 셀 수 없는데, 다 세 가지 밝음(三明)과 여섯 가지 신동(六神通) 갖추었고, 여덟 가지 해탈에 머물러 큰 위엄과 공덕이 있으리. 그 부처님의 법문, 한량없는 신통 변화와 헤아릴 수 없는 일을 나타내 설하시니,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여러 천상 사람들이 다 함께 합장하고 부처님 말씀 들으리라. 그 부처님의 수명은 12소겁이며, 정법이 세상에 머무르기 20소겁 될 것이고, 상법도 그와 같이 20소겁 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말하노라. 이 대가전연은 오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공양거리로 8천 억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경하고 존중하리라. 여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는 각각 탑을 조성하는데, 높이가 1천 유순이요, 가로와 세로가 5백 유순이니,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진주, 매괴의 7보를 합하여 이룩하고, 꽃과 영락과 바르는 향, 가루향, 사르는 향과 일산과 당기와 번기로 탑에 공양하리라. 그런 뒤에 또 2만억 부처님께도 그렇게 공양하며, 이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여 마치고는 보살의 도를 구족하여 마땅히 성불하리라. 그 이름은 염부나제금광(閻浮那提金光)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 부, 천인사, 불․세존이라 하리라.
그 국토는 번듯하고 평평하며, 파리로 땅이 되고 보배 나무로 장엄하였으며, 황금줄로 길 가에 경계선을 만들고, 아름다운 꽃이 땅을 덮어 두루 청정하여 보는 이가 모두 환희하리 라. 네 가지 나쁜 갈래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가 없고, 천상 사람과 인간계 사람이 많으며, 성문들과 보살들이 여러 만억이어서 나라를 장엄하느니라.
부처님의 수명은 12소겁이요, 정법이 20 소겁 동안 세상에 머무르고, 상법도 20소겁을 머 무르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설하시었다.
여러 비구들이여, 다 일심으로 들어라. 나의 말함과 같아서 진실하고 다르지 않으니라. 이 대가 전연은 마땅히 가지각색 훌륭한 공양거리로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리니, 여러 부처님 열반하신 뒤에 7보로 탑을 조성하고 꽃과 향으로 사리에 공양하며 그 최후의 몸에 부처 지혜를 얻어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국토가 청정하며, 한량없는 만억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여 모두 시방 여러 세계의 공양을 받게 되리라. 부처님의 찬란한 광명 더 나을 이가 없으며, 그 부처님 이름은 염부나제금광여래라 하리라. 보살과 성문들로서 모든 삶(有)을 끊은 이가 한량없고 그지없어 그 나라를 장엄하리라.
이 때, 세존께서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시었다.
"내 이제 너희에게 말하노라. 이 대목건련은 마땅히 여러 가지 공양거리로 8천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리라. 여러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는 각각 탑을 조성하는데, 높이 는 1천 유순, 가로와 세로가 다 같이 5백 유순 이며,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진주, 매괴의 일곱 가지 보배로 이루고, 여러 꽃과 영락과 바르는 향, 가루향, 사르는 향과 비단 일산과 당기, 번기로 공양하고, 그 뒤에 또 2백만억 부처 님께도 이와 같이 공양하리라. 그런 뒤에 성불하여 이름을 다마라발전단향(多摩羅跋 檀香)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라 하리라.
겁의 이름은 희만(喜滿)이요, 세계의 이름은 의락(意樂)이니, 그 국토는 번듯하고 평평하며 파리로 땅이 되고 보배나무로 장엄하며, 진주로 된 꽃을 흩어 두루 청정하여 보는 이마다 환희하며, 천상 사람, 인간계 사람들이 많고, 보살들과 성문들의 수가 한량없으며, 부처님 수명은 24소겁이요, 정법이 40 소겁동안 세상에 머물러 있고, 상법도 40소겁 동안 세상에 머무르리라."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설하시었다.
나의 제자인 대목건련은 이 몸을 버린 뒤에 8천 2백만억 부처님 세존을 받들어 뵈오면서 불도를 위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며, 여러 부처님 계신 곳에서 항상 범행을 닦고 한량없는 겁 동안 불법을 받들 것이며,
여러 부처님 열반한 뒤에는 7보로 탑을 조성하는데, 황금 찰간(刹竿)이 높게 솟고, 꽃과 향과 풍류로 여러 부처님의 탑에 공양하면서 보살의 도를 점점 구족하여 의락국에서 성불하리니, 그 부처님 이름은 다마라발전단향이라.
그 부처님 수명은 24 소겁 언제나 천상, 인간에게 불도를 연설하오리. 성문 대중들 한량없어 항하의 모래와 같은 이들이 3명, 6신통 갖추고 큰 위덕이 있으며, 수많은 보살 대중은 뜻이 굳고 정진을 잘 해 부처 지혜에서 물러나지 않으리라.
그 부처님 열반하신 뒤 정법이 세상에 머물러 있기 40 소겁 동안이고, 상법도 그와 같으리. 나의 모든 제자로서 위엄과 덕이 구족한 이 그 수효 5백 사람 모두 수기를 받아 오는 세상 미래 생에 모두 다 성불하리라. 나와 너희의 지난날의 인연을 내 이제 말하리니, 너희는 잘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