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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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명 : 변광섭의 재미있는 공예 e야기 ③ |
한국의 보자기, 일본 여심을 사로잡다
낯선 도시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는 풍경, 혹은 가장 기억에 남거나 추억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아니면, 유년 시절의 아련한 추억 속에 담겨있는 경쾌하거나 은은한 빛은 무엇일까. 추억이란 달리 말하면 경험이라는 아날로그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며, 그 경험이라는 것은 기억의 또 다른 기록이다. 우리 곁의 그 많은 추억 속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유혹받고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겠지만 시간과 공간을 따라 배치되고 있는 수많은 콘텐츠에 대한 기록만은 그 어떤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공예, 또는 공예적 가치라고 부른다. 공예란 도자 목칠 금속 섬유 유리 한지 등 재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산물을 일컬으며 공예적 가치란 이러한 산물들이 일상생활과 접속하면서 얻어지는 에너지라 할 것이다.
도쿄의 뒷골목을 걷다보면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며 자연친화적인 소재의 절제된 미학을 만날 수 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바라 본 파리의 추억은 생태적이지만 인간 중심의 크고 작은 문화아이콘에 밤잠을 설치게 되고 수상도시 베니스에서는 카니발과 중세건축물을 바라보며 에너지를 얻게 된다. 발 닿는 곳마다, 스쳐 지나가는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의 기예와 혼으로 만들어진 결정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새로운 인스피레이션을 얻을 때 진정한 공예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그렇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 방에 놓여있던 자개장의 은은한 향기와 반짝이는 멋을 잊을 수 없다. 당신께서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가져 온 것이다. 혼수품은 자개장뿐이 아니었다. 화각경대는 쇠뿔을 이용해 만든 것인데 색채의 화려함이 이 순간에도 느껴지며 칠보로 색을 내고 문양에 따라 비취로 장식한 비녀는 쪽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당신께서 항상 애용했다. 때로는 감물로 염색을 한 뒤 색동저고리를 만들기도 했으며 수백 개의 천 조각을 모아 손수 바느질로 조각보를 만들어 다포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붓을 직접 만들어 글을 쓰곤 했다. 이따금 뒷산에서 족제비를 잡은 뒤 꼬리부분의 털을 골라 빗질하고 기름을 제거하며, 털의 앞쪽을 가지런히 한 후 재단하여 체질하고 뒤 털을 가지런히 한 다음 모양을 내고 건조해서 묶는 등 그 과정만도 수백 번은 넘는 것 같았다. 이처럼 몇 날 밤을 시간과 사투해야한 붓 한 자루가 나왔는데 이것이 황모필이었다. 당신께서는 황모필로 우리집 족보를 직접 써 내려 가면서 몇 대조 어느 조상이 과거에 급제해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누구는 장군으로 이름을 떨쳤노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동경의 킨시쵸 뒷골목에서 ‘가라무시’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본 여인들에게 한국의 자수를 가르치고 있는 최양숙(48)씨. 그녀는 염색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여행을 하던 중 한국의 조각보와 자수 기술을 일본인에게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에 눌러 앉은 것이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사실 그녀가 자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녀는 일본에서 염색을 배우던 중 불현듯 옛 생각에 젖었다. 어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수를 놓았다. 호롱불을 가운데 두고 섬섬옥수 고운 손길로 한 땀, 한 땀 정성과 사랑을 심었다. 그러기를 며칠 계속하면 베갯잇에 알록달록한 한 마리 학이 날고 목단꽃이 피어났다. 어느 때는 여러 개의 조각보가 모여져 책보나 괴나리봇짐이 되기도 했고 나들이 할 때 사용하는 고운 보자기(면사보)가 되기도 했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논 다음에는 항상 무릎이나 팔꿈치에 큰 구멍이 나고 찢어지게 마련인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예쁜 천을 대고 바느질을 하셨고 오롯하게 새 옷이 되곤 했다. 그 때 만난 한국의 오방색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너무 아름다워 꿈결에서도 줄곧 나타나던 곱디고운 어머니의 얼굴을 닮았다. 세상 곳곳을 다녀봤지만 그만한 색상과 그만한 감동을 주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염색 기술은 다양성과 색채감 등에서 한국보다 뛰어나지만 바느질 솜씨는 어머니의 그 재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부랴부랴 귀국해 조각보와 바느질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오방색 정신을 전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공방은 일본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자수 전문가 대부분이 한번 씩 거쳐 갈 정도로 유명하다. 자수를 배우고 싶어하는 여인네들은 당연지사 이곳에서 수강을 해야 한다. 20년간 배출한 수강생만 해도 1천여 명에 달한다. 이 중에 20여명이 일본 각지에서 자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는 노정이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고 어머니의 사랑이자 디자인이며 예술이라는 것에 모두들 깊은 감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수와 조각보야말로 실용미학의 정점이자 다양한 삶의 형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천이라는 인공의 지평에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마술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또 “천을 물들이고 곱게 실을 만들어 정성껏 보자기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는 빛과 바람과 인간의 정성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그동안 여러권의 책을 펴냈다. <한국의 자수> <천의 겹침과 이음의 미_보자기> <색채 보자기>는 일본 전역에 수십만 권이 팔려 나갔다. 한국의 전통 자수 기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고 그녀의 작업노트와 삶의 에세이까지 곁들어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와 한국인의 삶이 누군가의 느낌과 열정을 만나면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되고 브랜드 파워가 된다. 느낌이라는 것은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침잠하는 것이고, 열정은 그 느낌을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템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힘을 일컫는다. 여기에 디자인 감각이 첨가되면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하이터치문화라고 부른다. 전통적이지만 혁신적인 가치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 긴장감과 새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예리한 감수성이 곳곳에 묻어있는 상품을 만들려는 열정이 필요한 것이다. 국적불명의 디자인이나 족보도 없는 상품을 만들려고 하는 노예의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정신적 가치를 표현하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녀의 20년 자수인생이 결코 아깝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인의 혼과 열정을 일본인들에게 투영시키는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