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갖혀있을 때,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시위대 뜰에 갇혀서 첫 번째 들은 것은 앞서 본 32장에 나오는 "밭을 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죠.
오늘은 이제 잡혀갈 유다의 포로들, 그리고 이미 잡혀간 북왕국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고 구원하며 기쁨과 영광으로 삼고 이 예루살렘 성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우리 즐겨 인용하는 3절 말씀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죠! 그런데 이 서두 4절 이하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라는 것은 시드기야 왕 11년에 유다가 멸망 당하고 시드기야 왕이 눈이 뽑히고 잡혀가니까,, 그 전 해이죠.
그러니까 이게 아주 말기입니다.
바벨론 공격에 예루살렘 성 일부가 이미 무너지고, 안으로 들어온 공격 부대를 막기 위해서 집과 집 사이, 성곽 사이에 참호를 만들고 대항하였으나,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벌하기 위해서 `내가 외면하여 내 백성들의 시체가 성 안에 가득하게 했다`라는 그때 역사적 현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는 내용이 그 다음에 나오죠.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악을 사할 것이라
이게 얼마나 큰 역사냐 하는 것이,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여기는 이방사람들 입니다. 주로 그들을 잡아가던 앗수르와 바벨론에 대해서)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그러니까 굉장한 구원이죠! 굉장한 회복이죠!
이것은 당시에 `포로로 잡혀간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남왕조 유다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이킨다`는 것은 그 포로들은 당연히 하나님 앞에 진노의 대상, 심판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입니다.
가장 대표는 시드기야 왕 자신이죠.
그러니까 그 포로된 자들은 범법자들이고 그 포로를 면제받는 남게 된 자들은 심판을 면한 자라는 오해도 일부 있었던 시대에, 주로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은 그 포로들에 대해서 있습니다.
남아있는 자들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회복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포로들이 어떤 회복에 대한 근거,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 없이, `하나님이 저들에게 화를 낸 것보다 크게, 포로 된 자들을 돌이키며 이 성을 복되게 하며, 기쁨이 되며, 영광되게 하여 그 적국에서 보고 놀라서 정말 기절하게 만들겠다!` 이런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레미야는 그 말기의 유다 왕국이 망하는 때에 주로 예언을 하게된 선지자였고,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을 버리셨다, 심판하셨다. 그러니 너희는 바벨론에 항복하고 곱게 끌려가서 벌을 받아라`라는 말씀을 전해야 됐었으니까, 매국노로, 또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서, 지금도 시위대 뜰에 갇혀있는 겁니다.
시위대 뜰이니까 우리로 말하면 수도경비사 영창에 잡혀있는거죠.
거기서 이제 이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잡혀가고 심한 재난을 만나는 것은 자기들 잘못이지만, 돌이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의 회복을 여기서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까 3절을 우리가 늘 자주 인용하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크고 놀라운 응답을 하겠다` 이게 실제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이 장이 말하고 싶은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너는 벌 받아 마땅하지만 결국은 내가 너를 회복시킬 것이다 걱정마라` 그런 얘기가 됩니다.
여기가 기독교가 매번 하는 얘기인데, 우리는 회개를 앞세웁니다!
회개는 보통 조건이 아니고, 결과에 대한 이해입니다! 보통! 돌이킨 다음에!
하나님이 벌을 베풀었을 때 회개를 하는 게 아니라, 돌이킨 다음에! `아 그랬구나!`보통은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과 비교해야 됩니다. 신명기 30장,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1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여기서는 분명히 `회개하면`입니다.
너희가 이방민족에게 붙들려 가서, 그것은 앞에 나오는 신명기 28절 이후에 나오는 복과 저주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에서, `하나님을 불순종하면 어떤 저주를 받을 것인가의 최악의 형벌이 나라와 민족이 이 땅에서 뽑혀서 이방에 붙잡혀가는 것이 최악의 심판이요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제 이 말씀이 생각나거든 `아,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불순종해서 받는 벌이다`가 생각이 나서 하나님 앞에 돌아와 통회 자복하면, 내가 너희를 하늘 끝까지 가서라도 다 다시 데리고 와서 너희에게 복을 주고 너희 마음과 그 속에 내 기쁨과 내 약속들로 채우리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내렸던 벌을 거두시고 다시 예전과 같은 복을 주신다, 하는 것이 우리에게 잘잘못에 기준해서 이해를 하면, 역사 내내, 인생 내내 결국은 쳇바퀴를 돌게 됩니다!
잘못해서 벌받고, 벌 받아서 회개하고, 다시 사면을 받고, 다시 잘못을 하고,, 이게 왜 반복되는가?
우리의 인생, 우리의 현실에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실입니다!
그들은 매번 실패하고 매번 벌을 받고 매번 다시 용서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습니다.
그 핵심되는 내용, 즉 회개가 왜 필요한가? 하나님이 그들을 벌주어 쫓아내신 것은 이유와 그 이유의 결과에 해당하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을 약속하실 때는 아무 조건없이 약속하시고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엮을 수 있는가?
벌 받는 것, 잘못해서 심판받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얘기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가진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거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배운다고요?
잘못해서 벌 받아서, 그리고 하나님이 회복시켜 줌으로써, 회개하면 회복이 되는 것보다 더 크게, 잘못에 대한 벌을 받게 하고, 다시 한번 `다시 하자! 다시 하자`는 것이죠!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시행착오, 한번의 경험, 한번의 쓰라린 추억이 쌓이는 것`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왜 다시 회복시켜서 다시 실패하게 놔두시는가? 은혜로 하나님의 작정으로 권능으로 아무 조건 없이 회복을 약속하신다면, 다시는 벌 받지 않게 왜 붙들어 매어놓지 않는가?
우리의 실력을 키우시거든요!
그때 잘못한 것을 반복하는 것도, 하나 더 나아가는 것도, 우리의 인생에서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허락되고 있죠!
아니 더 크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치는, 철들게 하시기 위해서 인류 역사 내내, 약속의 민족 역사 속에 그리고 우리 현실 속에 하나님이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일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회복은 잘못하면 벌 받고 끝나는 것이 없고, 잘못해서 벌 받으면 벌을 받는 바람에 이제 깨우치는,
`아, 행복이란 복이란 평안이란 정의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구나! 하나님밖에 쫓겨나면 그게 집에서 쫓겨난 꼴이 되는구나!` 를 배우죠!
단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와서 알지 않습니까!
철이 든다는 것은 나이와 매우 관계가 깊습니다!
어린데 철이 드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는 것은 외운 거죠!
명분을 외운 것과 그것이 자기 실력이 되는 것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우리가 축구 중계를 보거나, 요즘은 드물어졌습니다만, 권투 중계를 보면 이렇게 답답해요. 그렇잖아요?
그것 하나 제대로 못 차? 그것 한 대 못 갈겨? 선수들은 얼마나 미치고 환장하겠습니까? 그들은 선수입니다!!
기억나는 옛날 신문에 이런 게 났었어요. 육십 년 대에 한창 권투가 인기였던 시절에, 일본의 어떤 유명한 세계 챔피언이 있었는데, 도전자를 맞이해서 권투경기를 하는데, 그렇게 클인치를 자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놓고 치기를 해갖고는 안되는까, 자꾸 끌어안는 겁니다. 답답하고 재미가 없죠. 그래서 인기가 없는 챔피언이었는데, 어느 해설자가 신문에 이런 자기의 해설을 해놓은 겁니다.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가 상대방을 끌어안을 때마다 그의 등근육이 부들부들 떠는 것을 나는 봤다. 그도 놓고 같이 타격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면 진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는 끌어안을 수밖에 없고 비난을 감수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는 굉장한 선수다!` 안 믿어지시나요?
우리 씨름 한판 인기였을 때, 이만기라는 선수가 한라급 장사인데, 통합급 챔피언을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죠.
그때 이만기 씨 때문에 걸출한 선수들이 조역으로 전락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봉걸 씨 같은 분들,, 이준희 씨 같은,, 열두 사도들의 사도들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름 없는 장지영 씨라는 분이 결승에 올라와서 둘이 붙게 되었는데, 장지영 씨가 무릎 꿇고 삽바를 다 잡아야 일으켜 세워야 시합이 되는데, 이 삽바 싸움을 계속하는 겁니다. 엉덩이를 빼서 이만기 씨가 자기 엉덩이에 손 넣는 건 뒤로 빼서 얕게 잡게하고 자기는 자꾸 깊게 잡고 계속 그렇게 해서 귀찮아서, 이 삽바 싸우에 져서 이렇게 불리한 채로 일어나서 이만기 씨가 집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비난했습니다.
`저 장지영 씨는 챔피언 자격이 없어!`이렇게 비난을 했는데, 인터뷰에서 아나운서가 딱 그걸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챔피언은 됐지만 좀 창피하지 않으세요? 삽바 싸움을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 하고 비난의 소리가 높은데요?`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안 그러고는 이길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이만기를 이깁니까? 비겁하게 굴어야죠!`
여러분 인생 이야기 아닌가요?
여러분이 정답을 몰라서 못한 경우는 드뭅니다.
아는데 안되죠! 그렇게 크는 겁니다!
그렇게,, 그래서 철이 들죠!
쉬운 말 할 수 없고, 누구를 비난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겸손해지고 온유해지고 이해력이 생기죠!
눈빛이 따뜻해집니다. 입바른 소리 못하게 됩니다. ^^
그것은 명분으로 외워서 논쟁에 써먹는 단어들이 아니라, 살면서 배우는 인격이요, 성품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디로 몰고 간다고요? 하나님이 기어코 그 백성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영광과 찬송이 되는 자리로 우리를 끌고 가신다고 말합니다.
그게 성경이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이사야 61장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얼마나 굉장한 회복이에요!!
`너희가 당한 고생의 그 보상을 배나 받을 것이라 너희가 나의 기쁨이 되고 너희는 나의 찬송이 될 것이라 너희를 괴롭히던 모든 자들이 너희의 종노릇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시는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 아픔이 이 우리에게 재앙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기르려고 그러십니다!!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겟,, 행복이 뭐냐 그랬더니 `고통이 없는 것!`세상은 그렇게 말합니다.
좋은 일만 있는 것,, 그건 바보입니다!! 생각이 없고 뇌가 없으면 그렇게 되죠! 그냥 무생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믿음의 대상으로 요구하는 인격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영화롭고 놀라운 위대한 자리를 우리는 서둘러 도망 다니기에 바쁩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적이 뭐냐 그러면, 죄 관리 복음이 되는 겁니다.
`죄 관리 복음` 이 표현은 달라스 윌라드가 쓴 말입니다.
`죄 짓고 회개해서 사면받고 죄 지으면 회개해서 사면받고`가 전부인 복음이 되는 것을 최고로 문제라고 지적을 합니다!
자라나지 않고 크지 않고, 그 안에 철이 들지 않는 죄 관리 복음의 문제!
지혜와 사랑과 깊은 어떤 역량이 생기는 것!
위대함과 자랑과 보람과 의미와 명예와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강한 의리를 가지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목적하시고 일하신, 그리고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신명기 33장으로 가면, 모세가 죽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 마지막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 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대적이 누구겠어요?
역사적으로는 앗수르고 바벨론이고 그 전에는 아람이고 그 전에는 블레셋이고 그 전에는 애굽이었죠.
그들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대적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뭣이죠? 헛된 것이죠! 헛됨! 헛된 것! 부끄러운 것!
그 헛되고 부끄러운 것을 눌러서 그것으로 뭘 만드는 거예요?
위대함과 영광과 명예와 자랑과 기쁨과 거룩한 하나님의 축복을 만들죠!
모세가 우리가 아는 성경의 극히 일부분, 출애굽 광야 사십 년이 그가 겪은 것 다인데,
그 출애굽 광야 사십년으로 그에게 이 고백을 만듭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백성이로다!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하시고 애쓰시고 편드는 백성이 어디 있단 말이냐!`
신약시대에 이르면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죠!
`너희는 복된 사람이로다! 너희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그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성경의 증언들이 다 합쳐져서 여러분들에게 이걸 묻고 있는 거죠.
`하나님이 기어코 우리를 그의 승리와 자랑으로 만들겠다`고 하셨다면, 여러분들은 무슨 결심을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좋다`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건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입니까?
`하나님이 결국 이기시며 그의 약속을 지키고야 말겠단다, 그럼 나도 열심히 동참하겠다, 그 자랑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이걸 명분으로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언제 써먹으라고요? 실패하거든 절망이 찾아오거든 나는 아닌가보다라는 생각이 들거든 생각을 하시라고요!
성경에는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어요!
`너희가 하늘 끝에 쫓겨갔을지라도 내가 가서 데려오겠다!` 그게 하나님의 약속이라고요!
여러분이 어떤 절망과 어떤 처지에 있어서 `나만은 안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귀한 새로운 재기, 반전, 각오를 희망을 일으키겠습니까?
그 인생을 살아내시고 누리시는 여러분의 귀한 현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확인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진지한 하나님의 이끄심인지 확인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붙잡혀가며 피 흘리며 울며 불며 그 처참한 성전과 이스라엘 성의 폐허됨과 망함과 부끄러움과 고통 속에서 잡혀갔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웃고 찬송하고 즐거워하고 모든 나라가 놀라 자빠질 구원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모든 일, 무지한 일, 그것을 회복하고 지우는 걸로 끝내지 말고, 앞서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명예와 기적을 누리는 우리 생애 되게 하사, 우리와 우리 이웃들을 구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