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35) 하나님을 찾아댄 사람, 역대하 1:1-6
다윗은 마지막 모습까지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깨끗하게 내려놓고, 깨끗하게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누렸던 복 세 가지 무엇이었지요? 먼저, 수한을 다 하도록 부유하고 존귀한 가운데 살고 죽습니다. 또한 그의 왕의 행적이 최소 세 사람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되는 복,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가 하나님 앞에 나보다 더욱 존귀하게 세워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지요? 우리 성도님들도 이 복을 다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그런 솔로몬에 대한 증거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역대상 29장 23-25절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형통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 왕의 여러 아들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대상29:23-25)
그래요.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난 왕이 되게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십니다. 와 부럽다, 그런데 이 솔로몬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전부 다 아버지 다윗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역대하의 시작은 솔로몬의 통치 초기, 오늘 그가 왕이 되어 제일 먼저 했던 일 하나를 소개하며, 어떻게 그가 이토록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지를 증언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토대로, 솔로몬이 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하게 하시니라”(대하1: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강대하게 하셨다는 것은 꼭 그 아버지 다윗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표현인데, 역대상 11장 9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대상11:9)
그래요. 아버지와 아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이 복의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하듯, 이 모든 창대함, 강성함, 견고함의 복,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심은, 그저 단지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늘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함께 해주시고 복을 주시는 이유가 소개되고 있지요. 무엇입니까? 2-3절이 기록하듯, 그것은 온 신하와 함께 하나님을 찾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을 찾아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5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지은 놋제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대하1:5)
오늘 본문 “나아가서”라고 되어 있는 히브리어 단어는 ‘다라쉬’라는 단어인데, ‘자주 가다(드나들다), 찾다, 탐구하다, 탐사(조사)하다, 구하다, 요구하다, 문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의 NIV의 번역을 보면, inquire of HIM, 면회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솔로몬과 회중이 거기에서 그를 면회하였다고 기록이 되고요, 영어 메시지 성경의 번역을 보면, Solomon and the congregation gathered to pray. 입니다. 거기서 솔로몬과 회중이 기도하려고 모였노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이지요? 솔로몬이,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 뵙고, 그분께 구하기 위해, 자주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다녔다는 뜻입니다. 작년 사순절에도 말씀드렸습니다. 반복하여 드리는 기도의 원리,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말씀드릴 때, 드리고 또 드리고 또 드리다 보니 어느 새 1천 번이 되었더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의 오래 반복하여 드린 기도에 응답해주신 사건이 오늘 본문의 사건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요. 다윗도 4절을 보니 언약궤를 옮겨 하나님께 물으면서 그의 통치를 시작했고(대상13:3), 솔로몬도 오늘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드리면서, 자주 하나님 앞을 드나들며 하나님께 구하고 물으며 그의 통치를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래요. 아버지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믿음과 신앙을 잘 이어받았기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 서 있었고, 늘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기에 오늘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견고함, 강성함, 강대함, 형통함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한 자신을 왕 삼으신 하나님 앞에서, 더욱 아버지 다윗의 마지막 유언과도 가르침, 생명을 걸고 전한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죠? 역대상 28장 9절, 확인해보겠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28:9)
네 하나님을 알고 섬길지어다.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오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더욱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그분을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러나 솔로몬이 굳이 오늘 저 기브온으로 나아간 까닭을 생각해보면, 역시 아버지의 당부를 한 번 더 잘 준행하기 위함인 것도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단 하나 남긴 유언이 무엇인데요? 예, 그가 평생에 준비한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전 살펴보신 9절에 이어지는 다음 1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런즉 이제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하니라”(대상28:10)
그래요. 우리는 궁금합니다. 왜 솔로몬은 아버지가 언약궤를 옮겨둔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그토록 기뻐하신 것은 다윗의 장막이라고 하시는데, 왜 솔로몬은 기브온까지 갔을까요? 아버지와 나는 달라! 하며, 아버지는 예루살렘, 나는 기브온 산당, 아버지와 어떤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으로 보여지지는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예루살렘에는 대규모 제사를 드릴 여건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바로 여기 기브온 산당에 하나님의 성전의 원형, 모세시대에 명령하여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회막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시던 회막, 무엇보다 그들에게 하나하나 친히 말씀하시던 회막, 그 남아 있는 회막의 구석 구석을, 저 모든 성물들에 놓은 자수 한땀 한땀을, 일천 희생을 드리면서 확인하고 확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은 저 하나님의 성전 설계도의 의미들을 보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그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본문 3-5절입니다.
“솔로몬이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에 있음이라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쳐 두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그것을 위하여 준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지은 놋제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그래요. 의미도 모른 채, 옛 성막이 어떠했는지 확인도 안한 채, 그저 설계도만 보고 성전을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재료와 설계도가 있으니 짓는 성전이 아닙니다. 역시 물어야 하고, 역시 그 모든 의미들을 알면서 지어야 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 놓여진 성물의 가치와 이유를 알면서 우리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명령한 성전을 짓기 위하여 당신의 회막을 늘 찾았던 솔로몬, 백성들과 함께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 수십, 수백 번을 기브온 산당에 오고 가는 것을 기꺼이 감당했던 솔로몬, 직선거리로 8.6키로 당시 최고급 승용차인 노새를 타고도 3-4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고 하지요. 산과 골짜기를 지나 하나님 앞에 늘 드나들고 물었던 솔로몬이었기에 하나님은 드디어 그의 제사에, 그의 물음에, 그의 찾음에 응답을 주시지요?
그날도 하나님을 찾고 회막을 돌아보고 잠든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복을 주십니다. 구한 것도 주시지만, 당신께서 그것까지 보시고, 그의 통치와 나라에 필요한 것들을 다 공급해 주시는 것이지요. 강성함과 형통함과 강대함과 견고함을 오늘 그의 나라에 허락해주셨던 것입니다. 듣는 마음도, 부도 수도 원수멸함도 다 허락해주셔서, 이름 그대로 전쟁 한번 겪지 않는 샬롬의 나라를 세우는 솔로몬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 사랑은 부모님이 하시고, 하나님 축복은 내가 받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은 내가 열심히 했으니, 내가 받을 복, 내 자식한테 주세요. 이리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오늘 우리가 자녀들 앞에 보여야 할 모습은, 특별히 주일이 아닌 날, 더욱 우리가 분명하게 선언하며 보여야 할 모습은 오늘 저 솔로몬 왕이 온 백성 앞에 보여내고 있는 ‘다라쉬’입니다. 역시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배워가는 모습이지요. 그러나 혼자 가지 않습니다. 모두를 이끌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응답해주시고, 더욱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우리로 빚어가 주시는 것이지요. 일천 마리의 희생을 드리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솔로몬으로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드린 것, 오병이어 같이 받으시고 열두 광주리로 갚으시는 하나님, 비할 수 없이 훨씬 많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저와 여러분은 ‘다라쉬’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찾아대시길 축복합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아대듯, 하나님의 성전을 자주 드나들며 찾고 구하고 문의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편도 8.6키로 3-4시간 길을 왕복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한 전도컨퍼런스에서, 대전에 있는 교회를 40분에서 1시간 걸려, 매주 예배당을 찾아오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다는 말씀을 들으며 참 귀한 분들이다라고 했는데, 솔로몬이 복을 받은 이유가, 그 성도님들이 복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요.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면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주의 성전을 찾아,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거리가 문제인 분들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이 문제인 것이지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우리 마음이 다윗과 같고 솔로몬과 같기를, 우리 믿음이 다윗과 같고 솔로몬과 같기를, 우리의 소망과 사랑이 다윗과 같고 솔로몬과 같기를,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모습도 “다라쉬 다윗”, “다라쉬 솔로몬”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의 삶, 원수에게도 기꺼이 그 요구를 들어주는 삶일진대,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요청하시는 시간과 장소에, 5리를 가자하면 50리를 가주시고, 이것을 달라시면 저것도 드리시는 분들, 그리하여 오늘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강성하고 강대하게 그리고 형통하게 평강하게 부요하게 하시는 은혜와 사랑 속에 더욱 열방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 세워지시는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다들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수요일에는 너무나도 잘 아시는 이러한 ‘다라쉬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과 선물들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