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 상표에 등장하는 역사인물-＜백주저널＞제3호. 2016. 5

[최제강]

중국 백주 상표에 등장하는 역사인물

머리말

자료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 전역에서 제조 판매되는 백주 상품만 해도 3만 개가 넘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기억에 남길 술 이름 하나 짓기도 쉬운 일이 아닐 성싶다. 그래서 한자어 중에서 뜻이 괜찮이 글자는 죄 술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지역적 역사적 연고에 따른 작명이 생기고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 또한 술의 상표에 오르는 일도 빈번하다.

오래 전 일이 아닌데, 우리네 술 시장에서도 ‘황진이’ ‘김삿갓’ 같은 역사 인물이 술 이름으로 등장한 일이 있었지만 술꾼들의 호응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듯 곧 사라지고 말았다. 황진이 김삿갓이 이 지경인데 하물며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에서 ‘이순신주’를 만들고 강릉에서 ‘사임당주’를 내놓는다고 해서 장사가 될 턱이 없다. 그런데 중국의 백주 업계에서는 형편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고대의 황제에서부터 오늘의 인기 영화배우까지 웬만큼 유명하다 싶은 인사들은 모두 어김없이 술병 딱지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이러한 현상 차이는 어쩌면 술과 문화에 대한 두 나라 사람들의 인식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공자주’ ‘맹자주’를 만드는 중국과 달리 우리는 술 이름으로 ‘퇴계’와 ‘율곡’을 올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백주 상품에서 ‘참이슬’ ‘처음처럼’ 식의 감각적이며 추상적인 명칭을 찾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백주의 상표에 유독 역사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중국이 가지는 한 문화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는 백주의 상표로 쓰이는 역사 인물을 통시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지는 역사의식 및 취향의 일단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기원 전 인물들에 거는 자긍심. 

한국인들이 단군을 민족 역사의 시조로 일컫는 것처럼 중국인들은 5제(五帝)의 우두머리인 헌원(軒轅)) 황제(黃帝)를 시조로 받든다. 황제의 탄생지로 알려진 허난성(河南省) 신정시(新鄭市)에는 거대한 사묘(祠廟)가 조성돼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3일에는 중앙 정부와 중국국영텔레비전이 주관하는 배조대전(拜祖大典)이 열린다. 이 국가적 제례에 쓰이는 술이 <황제주(黃帝酒)>인데 2012년 쓰촨의 거대 백주기업 타패주(沱牌酒)그룹 산하의 <사득주(舍得酒)> 회사에서 만든 기념주 <사득 황제주>가 특히 유명하다. 사득 회사의 가장 질 좋은 술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 최고의 도자 전문가 리위멍(李余孟)이 술병을 만들었으며 2697병만 한정 제조하였기 때문이다. 병의 개수는 황제가 기원 전 2697년에 태어났다는 설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 ‘헌원주업(軒轅酒業)’이라는 작은 술 회사에서 만든 ‘황제주’ ‘헌원주’ 등이 있다.

기록상, 중국에서 최초로 술을 만든 이가 누군가 할 때 흔히 세 사람이 언급된다. 그 첫 번째가 황제(黃帝)이며 그 다음이 의적(儀狄과 두강(杜康)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 하우(夏禹)시대의 궁중 조주관(造酒官)으로 알려진 의적은 중국의 디오니소스로 일컬어진다. 허난성의 대표기업 보풍주(宝豊酒) 술 회사 현관 앞에는 거대한 그의 동상이 서 있는데 정작 <의적주(儀狄酒)>라는 술은 타이항산(太行山)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술 회사 ‘의적주업(仪狄酒业)’에서 생산된다. 이곳이 바로 의적의 고향이다. 근래에는 의적을 궁중에서 술을 담당하던 궁녀로 보는 경향도 있다.

의적과 함께 중국 술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두강(杜康) 또한 기원 전 하(夏) 왕조 때의 인물로 추증된다. 두강이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따라서 그의 출생지를 두고 산시성(陝西省)과 허난성이 서로 자기네 쪽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두강주(杜康酒)> 또한 두 지역 세 군데 술 회사에서 생산되고 있다. 산시성(陝西省) 바이수이현(白水縣)의 두강주와 허난성 이촨(伊川)과 루양(汝陽)에서 만들어지는 두강주가 오랜 기간 자존심을 건 상표권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법원은 세 군데 술 회사의 손을 모두 들어주었다. 이 법적 싸움을 위해 이촨과 루양의 두 회사는 전략적 통합을 하여 ‘낙양두강주업(洛陽杜康酒業)’이란 회사를 만들었다.

굴원(屈原)은 기원 전 340년 무렵 태어난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정치가이다. 굴원은 일생 중 허다한 애국시편들을 썼으며 초 왕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는 되레 왕과 귀족들에게 배척당해 지금의 후난 지역으로 귀양을 갔다. 결국 조국이 적에게 점령당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굴원은 창사(長沙) 부근의 멱라강에서 돌을 껴안고 자살했다. 단오절의 기원이 그의 기일에 근거한다. 그가 최후를 맞이한 강가 도시 미뤄시(汨罗市)에는 굴자사(屈子祠)、굴원묘(屈原墓) 등의 고적들이 있으며 이곳의 ‘굴원주업(屈原酒業)’에서 <굴원주>을 생산한다.

술 시장에 나선 제자백가(諸子百家)들

<공자주(孔子酒)> - 예전 우리네 선비들은 공자에 대한 예의로 차마 ‘공(孔)’자마저 입에 올리지 못하고 ‘모왈(某曰)’ 하기 일쑤였는데 오늘날 공자의 고향땅에선 수 백 개 술 공장의 간판이 되어서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힌다. 여러 해전부터 산둥 지역을 여행한 한국의 남정네들이 저마다 손에 들고 오는 술이 <공부가주(孔府家酒)>이다 보니 현지에서는 서로가 내가 원조다 하면서 공 씨 집안 술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산둥 지역에서는 <공부가...> 운운의 술만 해도 어림잡아 70여 개가 유통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중에서는 마셔서 안 될 술마저 끼어드는 수가 없지 않다. ‘공부가’는 그렇다 치고 ‘공자’를 상표 전면에 내세운 술 회사만도 10여 개 된다. 산둥 지닝시(濟寧市)에서 나오는 <유가공자주(儒家孔子酒)>, 산둥 허즈시(河澤市)에서 생산되는 <만사공자주(萬事孔子酒)> <공자논어주(孔子論語酒)> 그리고 취푸(曲阜)의 <공자가주(孔子家酒)> 등이 그 대표다.

<노자주(老子酒)> - 믿기 힘든 구석도 있지만, 살아생전 공자는 두 번이나 노자를 찾아가 그와 함께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중국 문화사에서는 이백과 두보의 만남과 함께 ‘역사상 가장 성대한 만남’으로 칭한다. 공자가 찾아갔다는 노자의 고향, 그곳이 어딘가에 대해서도 오늘날 하난성의 루이(鹿邑)와 안후이성의 궈양(涡阳)이 서로 다투고 있다. 루이는 안후이 최북단 도시 보저우(亳州)에서 서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며 궈양 또한 동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다. 공자의 마을 산둥 취푸에서도 차로 3시간 정도, 멀지 않은 거리다. 해마다 세계노자대전이 열리는 루이에는 한 때 ‘중국명주’의 반열에 올랐던 <송하양액(宋河粮液)> 술 회사가 있으며 여기서 나오는 저가의 백주들이 대개 ‘노자’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궈양에도 ‘노자주업(老子酒業)’이 있어서 ‘노자’ 술을 내며 이밖에 허난성 성도(省都) 정저우(鄭州)에는 ‘하남노자주업’이, 안후이 보저우에는 ‘노자주업그룹’이 있어서 노자 계열의 술들을 시중에 내놓고 있다. 산둥성에 있는 <문등학주(文登學酒)>에도 노자 술이 있다.

<맹자주(孟子酒)> - 맹자는 기원 전 372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탄생지는 오늘날 산둥성 조우청시(邹城市)다. 공자의 태생지 취부에서 남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 술 이름으로 썩 어울리지 않을 듯한 그의 이름이 든 술은 허베이성(河北省) 랑팡시(廊坊市)에서 나온다. 이곳에 ‘유맹주업공사(儒孟酒业公司)’란 작은 술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를 만든 이가 맹자의 76대 적손(嫡孫)이라고 한다. 이 양조회사의 브랜드가 <성공맹자(聖公孟子)>다.

<장자주(莊子酒)> - “잠을 자다가 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꿨다네... 깨어난 후에 다시 생각해 보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내가 본시 나비인데 지금 사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취흥(醉興)이 가지는 본원적인 자연주의, 허무주의를 생각하면 제자백가 중에서도 술 이름으로 그럴싸한 이름은 장자 밖에 다시 없다. 이를 반영하듯이 오늘날 중국의 10여 군데 넘는 양조 회사에서 다투어 ‘장자주’를 내놓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안후이성 멍청현(蒙城縣)에서 나오는 <장자주>와 보저우에서 생산되는 <장자몽접주(庄子梦蝶酒)> 그리고 산둥성 둥밍현(東明縣)의 <장자주>가 꽤 세간에 알려져 있다.

맹자와 달리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순자(荀子)는 기원 전 313년에 태어났다. 태생지는 오늘날 산둥성 린펀시(临汾市)로 알려져 있다. 그의 고향땅에서 <순자주(荀子酒)>가 나오는데 지역 시장에서만 거래되는 실정이다.

산둥 지난시(濟南市) 동북쪽의 작은 도시 빈저우(滨州)에는 ‘손자병법주업(孫子兵法酒業)’이란 술 회사가 있고 여기서 <손자주(孫子酒)>가 생산된다. 손자의 본 이름을 딴 <손무주(孫武酒)>는 지난시 ‘손무주창(孫武酒廠)’에서 나오며 같은 산둥의 둥잉시(東营市)에는 ‘손무주업(孫武酒業)’이라는 술 회사가 있어서 ‘손무’ 계열의 백주를 생산한다.

묵자(墨子)는 기원 전 476년에 태어난 중국역사상 유일한 농민 출신의 사상가다. 그를 추종하는 묵가학파는 엄정한 기율단체로서 베옷을 입고 노동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름 높다. 허난성 핑딩산시(平頂山市)에서 <묵자주(墨子酒)>가 생산되고 있다.

<주자주(朱子酒)> - 주자학이라고 하면 근엄한 도덕군자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사실 주자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그는 ‘전신에서 봄바람이 풍기는’ 인격체로 여겨진다. 당시 변방과 다를 바 없는 곳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그의 학문은 중원을 넘어 우리나라며 일본까지 깊이 영향 미쳤다. 그의 고향은 오늘날 푸젠성(福建省) 유시현(尤溪縣)이다. 푸젠의 성도 푸저우(福州市)에 있는 ‘주자주업(朱子酒業)’에서 <주자주(朱子酒)>를 만들고 있지만 시중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술 이름이 된 황제들

중국을 통일하고 최초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진시황(秦始皇), 아방궁을 꾸미고 불로장생을 꿈꾼 그의 생애만 떠올려도 절로 독한 술 한 잔쯤 마시고픈 마음이 있는데 이외로 그의 이름을 빌린 술이 몇 되질 않는다. 칭다오(靑島)에서 나오는 백주 <진시황주(秦始皇酒)> <시황주(始皇酒)>며 보건주(약주)에 속하는 <진시황양생주(秦始皇養生酒)>등이 고작인 것이다. 칭다오에는 낭야대라고 하는 승지가 있는데 진시황은 제위 중 다섯 번에 걸쳐 천하 순유(巡遊)를 하면서 세 번이나 이곳을 찾았다. 불로장생약을 구해 오라고 방사(方士) 서복(徐福)을 떠나보낸 곳도 바로 여기다. 따라서 <낭야대 시황주>가 칭다오에서 빚어지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漢)의 무제(武帝)는 중국 역사에서 걸출한 군주, 전략가, 시인으로 평가되는 황제다. 사마천이 그로부터 궁형(宮刑)을 당하고 ‘사기(史記)’를 썼으며, 한사군(漢四郡)의 설치로 우리 역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한무제주(漢武帝酒)>가 안후이성 보저우시(亳州市)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황제의 이름이 비해 술 회사의 규모며 시장은 너무 초라하다. 구이저우에서 생산되는 <한무대제주(漢武大帝酒)> 역시 저급한 백주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당 왕조(唐王朝)의 무측천(武則天)이다. 14세에 입궁하여 당태종의 재인(才人)이 되었으며 태종이 죽은 뒤에는 그 아들 이치(고종)를 유혹하여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 남다른 권력욕으로 두 아들까지 죽인 비정한 모정의 여인이었지만 황제가 된 후에 내정과 외치를 잘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역사상 가장 늦은 나이인 67세에 황제에 즉위하였으며 82세에 죽었다. <무측천주(武則天酒)>는 구이저우성(貴州省) ‘천온주업(天蘊酒業)’의 브랜드다. 당태종은 일찍이 그녀에게 ‘무미(武媚)’란 호를 내렸는데 이를 딴 <무미랑주(武媚娘酒)>가 쓰촨성 광옌시(廣元市)에서 제조된다. 이곳은 무측천의 아버지 무사확(武士彠)이 도독으로 부임했던 곳이며 무측천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송태조주(宋太祖酒)>는 허베이의 ‘송주주업(宋祖酒業)’이 출시한 술이다. 후주(後周) 세종(世宗)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조광윤(赵匡胤)이 군사들의 옹립으로 스스로 왕업을 열었으니 그가 송태조다.

텐진(天津)의 한 술 회사[진주주업(津酒酒業)]는 아예 진시황, 한 무제, 당 태종, 송 태조 등 네 황제의 이름을 각각 붙인 네 병의 술을 한 세트로 묶은 <제왕풍범(帝王風范)>이란 백주를 출시하여 재미를 보고 있기도 하다.

<진기스칸주(成吉思汗酒)> - 내몽고자치구 수도 후후호트시(Hohhot市, 중국명 呼和浩特)는 내몽고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이곳의 ‘진기스칸 주업(成吉思汗酒業)’의 대표 브랜드가 ‘진기스칸’이다. 다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은 몽고인인 진기스칸 또한 자기네 중화민족의 영웅이라고 크게 떠받들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내몽고의 한 술 회사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진기스칸을 선전하는 것도 이상스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소수민족을 껴안으려는 정치적 계산도 다분히 포함돼 있다.

명나라를 일으킨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알려진 바처럼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10세 중이 되고 이후 전쟁터를 떠돌다가 권력을 장악,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다. 스스로 학문을 닦은 바 없기에 군막(軍幕)에 있으면서도 학자들을 초치, 배움을 청하면서 왕업을 닦았다. 황제가 된 뒤에도 매월 세 차례 이 같은 자리를 가졌는데 이것이 ‘경연(經筵)’의 시작이었다. 안후이성 ‘봉양(鳳陽)주창’에서 내놓은 <명태조경연주(明太祖經筵酒)>의 유래도 여기에 있다. 명나라의 첫 도읍지로 정했던 금릉(金陵)이 오늘날 난징(南京)인데 남경에서는 <주원장주>를 만드는 술 회사가 있다. 이 주원장주 회사에서는 따로 <유백온주(劉伯溫酒)>도 생산한다. 유백온의 본명은 유기(劉基)로서 주원장의 제갈량 같은 학자 겸 행정가였다. 유기의 고향이 오늘날 저장성(浙江省) 원저우시(温州市)인데 이곳의 한 술 회사는 <백온주(伯溫酒)>를 대표 브랜드로 하면서 회사 이름까지 ‘백온주업’이라고 한다.

<강희주(康熙酒)>-청조(淸朝)의 제4대 황제로서 삼번의 난을 진압하는 등 국권을 가장 강력하게 만들었다. 61년간 황제의 자리를 지켰는데 재위 기간만 따지면 중국 역사상 가장 길다. <강희주>는 허베이성 ‘승덕(承德)강희주업’의 대표 브랜드다. 청더시에는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다.

<건륭주(乾隆酒)>-청(淸)의 제6대 황제인데 26세에 즉위하여 60년간 황위에 있었다. 퇴위 후 3년을 태상황으로 있었으니 실제론 63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다. 89세에 사망함으로서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살고 오래 권좌에 앉은 황제로 기록된다. 90이 가까이 천수를 누린 황제가 마시던 술이라고 하면 술꾼이라면 눈귀가 번쩍 뜨일 터, 그래서 <건륭어주(乾隆御酒)>라고 이름 붙인 술을 만드는 술 공장이 중국에서 스무 군데도 넘는다. 산둥성 창이시(昌邑市)의 한 술 회사에서는 <건륭배(乾隆杯)>라는 술을 내놓고 있는데 그들은 건륭황제의 어의(御醫)가 곧 창이 출신이며 그가 황제의 어주를 직접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도광주(道光酒)>-도광은 청(淸) 8대 황제 선종(宣宗)이다. 제위 기간에 아편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1996년 6월, 랴오닝성 진저우(錦州)의 한 술 회사 공사장에서 지하에 묻힌 술 곽이 발견됐다. 알고 보니 4톤가량의 이 술은 도광 25년(1845년)에 만들어진 공주(貢酒)였다. 이 희귀한 발견에 힘입어 술 회사는 아예 <도광25년>을 자체 브랜드로 삼았다. 150년 만에 햇빛을 본 이 술의 일부(50kg)는 우리 돈 6억 원에 팔려나가고 나머지는 박물관으로 갔다.

백주의 이미지를 바꾸는 삼국지의 인물들

<현덕주(玄德酒)>는 유비 현덕과 전혀 연고가 없는 중국 동남부 푸젠성(福建省)의 한 작은 도시 롱옌시(龍岩市)의 ‘현덕주업(玄德酒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유비주>가 있는데 <조조주(曹操酒)>가 없을 리 없다. 조조의 고향은 오늘날 안후이성 보저우시(亳州市)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전설적인 명의 화타(華佗)의 고향이기도 하다. 조조가 황제에게 제 고향 술의 제조법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조주>를 만드는‘조조공주공사(曹操贡酒公司)’는 안후이성 10대 민영기업의 하나인 정중(井中)그룹 산하의 양조 회사로 꽤 규모가 있다. 조조 고향의 술 회사가 <조조주>를 만들어 선전하니 지하의 조조로서도 민망하지만은 않을 듯싶다. 화타의 이름을 딴 술도 있긴 한데 이는 백주가 아니고 보건주(약주)다. <화타십전주(華陀十全酒)>라고 하는데 인명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꽤 그럴싸하다. 그런데 술 회사는 엉뚱하게 상하이에 있다. 보저우에 있는 백주 대기업‘고정공주(古井貢酒)’에서도 조조의 이름 든 술을 내놓은 바 있다. 

<관우주(關羽酒)>는 산시성(山西省) 윈청시(遠城市)에 있는‘관공주창(关公酒廠)’의 브랜드지만 널리 알려지진 못했다. 윈청이 관우의 고향이다. 중국 전역에 알려진 브랜드로는 <관공방(关公坊)>이 있다. 후베이성(湖北省) 최대 백주기업 <도화향(稻花香)>그룹의 산하기업이‘관공방주업’이다. 술 회사는 이창시(宜昌市)에 있는데 이곳 당양(当陽)에 관우의 목 잘린 육신이 묻힌 무덤이 있다. 참고로, 뤄양(洛陽)에는 머리를 묻은 관우의 묘가 있고 고향 윈청에는 의관총이 있다. <관운장주(关云長酒)>도 있는데 이는 난징에서 생산된다. 

<장비주(张飛酒)>가 없다면 장비의 혼령도 꽤나 섭섭할 법하다. 술에 취해 잠자다가 부하 장령의 칼에 목이 잘린 장비의 최후를 생각하면 <장비술>를 마실 마음이 있을까 싶지만 중국이니까 가능하다. 제갈공명에 버금간다는 방통(庞统)이 래양(耒阳)의 현령으로 있을 때 오호장군의 한 사람이던 장비가 그의 행정 능력을 조사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방통이 민간에서 빚은 좋은 술로 장비를 접대했으며 장비는 방통의 지혜와 재주를 보곤 성도에 돌아와 군사로 추천했다는 삼국지의 이야기에서 <장비주>가 유래되었다.

쓰촨 청두(成都)에는 <촉주(蜀酒)>라는 술을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상표의 ‘蜀’자 아래에 각각 유비와 관운장, 장비의 이름을 적은 세 가지 술을 내놓고 있다. 같은 쓰촨의 내이장시(內江市)에는 ‘삼국주업(三國酒業)’이란 술 회사가 있어서 <도원결의주(桃園結義酒)>를 만들면서 또 이 세 인물의 이름을 적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도원삼결의주(桃園三結義酒)>는 베이징에서 가까운 줘저우시(涿州市)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곳에선 따로 <장비가주(張飛家酒)>가 있음이 확인된다. 줘저우가 바로 장비의 태생지다.

<조자룡주(趙子龍酒)>는 후난성(湖南省) 천저우시(郴州市)의 ‘조자룡주업공사’의 대표 브랜드다. 천저우는 창사(長沙)와 광저우(廣州)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삼국지의 명장 조운(赵云) 자룡의 고향인 상산(常山)은 오늘날 허베이성 정딩현(正頂縣)에 해당한다. 스자좡(石家庄) 북쪽 교외인데 조자룡을 기리는 <상산주(常山酒)>는 스자좡 남쪽의 위안스현(元氏縣)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백주 시장의 최고 인기 브랜드 ‘제갈량’

위에서 보듯이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도 어김없이 백주 브랜드로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한 몸에 모으는 이가 바로 제갈량이다. 중국 백주 업계에 정통한 보도에 따르면,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제갈량(양)’ 상표의 술만 해도 200종이 넘는다고 한다. 10여 년 전 40여 종에 불과하던 것이 2006년경 120여 종으로 불어났으며 2010년을 기점으로 200종을 돌파했다는 관측이다.

중국 시장에서 ‘제갈량(양)’ 백주의 매출액은 1백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술의 질과 관계없이 제갈량이란 이름만 붙여도 기본은 팔린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숱한 백주 업체들이 앞 다투어 제갈량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현재는 3개의 큰 진영이 형성돼 있다. 이 중 가장 큰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기업이 브랜드 <제갈양(諸葛酿, 제갈 집안에서 빚은 술이란 뜻)>을 내놓고 있는 쓰촨의 ‘강구순제갈양(江口醇諸葛酿)’이다. 두 번째 그룹이 같은 <제갈양(諸葛酿)> 상표를 가진 후베이의 ‘양번삼구(襄樊三九)’ 그리고 루저우(泸州)의 <가관제갈양(佳冠諸葛酿)> 산둥의 <제갈량가(諸葛亮家)> 등이며 세 번째 그룹은 무수한 영세 기업들의 제갈량 백주로서 병당 가격은 35~45위안 정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표권 분쟁도 끊임없이 벌어진다. 이를 두고 중국 백주 업계에서는 ‘제갈대전(諸葛大戰)’이라고 부르는데 법정으로까지 간 이 전쟁은 벌써 10년째 접어들고 있다. 첫 번째는 산동제갈량과 사천제갈량과의 싸움이었는데 이는 산동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법원이 사천 노주천년주업(泸州千年酒業)이 등록한 ‘제갈량(諸葛亮)’ 상표를 취소시키고 술병과 포장에 ‘제갈량(諸葛亮)’ 석 자를 쓸 수 있는 권리를 ‘산동제갈량가주업공사’에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고향 땅에 있는 이 회사의 주요 브랜드는 <제갈량가(諸葛亮家)> <제갈량부(諸葛亮府)> <제갈량연(諸葛亮宴)> 등이다.

두 번째 대전은 ‘강구순’의 <제갈양>과 ‘양번삼구’의 <제갈양> 사이에 벌어졌는데 양번삼구가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이런 법적 조치가 이어져도 그 어떤 회사도 ‘제갈량(양)’ 상표의 완전한 귀속권을 가지지 못한다. 200개 회사가 ‘제갈량’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200개 회사와 하나하나 법적인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숱한 업체들을 앞에 예 든 분쟁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제갈량’ 조류에 편승하여 쉽게 돈만 벌겠다는 마음뿐이다. 아무튼 이런 현상은 현대 중국인에게도 제갈량이 가장 호감이 가는 역사 인물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주 브랜드로 사랑받는 시인묵객들

소문난 술꾼이 술 이름으로 다시 태어남은 사람과 술 모두의 영예가 될 수 있겠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술꾼으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사가 바로 유령(刘伶, 약221년-300년)이다. 위진(魏晋) 시대를 살았던 그는 죽림칠현(竹林七贤)의 한 사람으로 평생 즐겨 술을 마셨으며 그에 따른 일화를 누구보다 많이 남겼다. 어느 날 그가 친구 장화(張華)를 만나러 북쪽으로 올라오다가 서수(徐水)에 닿았다. 장화가 가양주로 그를 접대했는데 유령이 이 좋은 술을 마시곤 “취했다가 3년 만에 깨어났다.(酒醉三年方醒)”는 일화를 남겼다. 다른 얘기도 있다. 낙양 근처를 여행하던 그가 ‘석 잔 술에 취하지 아니하면 술값을 받지 않는다.’는 쪽지를 써 붙인 두강의 술집엘 들어갔다. 사흘 밤낮을 마시곤 대취한 유령이 집에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장사를 지낸 지 3년이 됐을 때 외상값을 받으러 왔던 두강이 뒤늦게 소식을 듣곤 깜짝 놀랐다. “돌아가신 게 아니외다!” 유령의 부인을 데리고 그 길로 산소로 달려가 무덤을 파헤쳤더니 유령이 “그 술 참 좋다.” 하면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이후부터 “두강의 좋은 술, 3년을 취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유령취주(劉伶醉酒)> 는 허베이성 바오딩시(保定市) 쉬수이현(徐水縣)에서 생산되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다.

누가 봐도 음풍농월의 시인묵객 이름쯤은 술 이름으로 해도 좋을 성싶다. 그런데 생전에 즐겨 술을 마셨을 뿐만 아니라 술에 관한 시도 여러 편 남기고 있는 도연명(陶淵明)의 이름을 빌린 <도연명주(陶淵明酒)>를 찾을 수 없으니 놀랍고 기이하다. 굳이 그와 관련된 술을 찾자면 <도령주(陶令酒)> 하나가 고작이다. 우리 식으로 풀자면‘도사또님 술’인데 이 도 사또가 도연명임은 분명하다. 술 회사가 장시성(江西省) 펑즈(彭泽)에 있는데 도연명의 마지막 벼슬살이가 팽택 현령이었던 것이다.

‘시선(詩仙)’‘주선(酒仙)’으로 일컬어지듯이 시와 술에 있어서 이미 신선의 반열에 든 이백(李白)이니만큼 그의 이름을 딴 백주 또한 무수히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의 본명을 그대로 빌린 <이백주(李白酒)>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대신 <태백주(太白酒)>처럼 그의 호를 빌린 ‘태백00’‘00태백’등의 술들이 숱하다. 짐작컨대 <이백주>라 하면 자칫‘이가(李家)의 백주’로 오인될 수도 있어서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태백류의 백주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안(西安) 지역 중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산시성(陝西省) 메이현(眉縣)의 ‘태백주업(太白酒業)’이 내놓은 <태백주(太白酒)>와 충칭(重慶)을 대표하는 <시선태백(詩仙太白)>이다.

사실 태백주는 이백 뿐만 아니라 인근의 태백산까지 포함하는 중의적인 명명이다. 당 현종, 양귀비, 한유、두보、소동파가 모두 태백산에서 노닐며 태백주를 마셨기에 산과 술 이름이 한층 성대해졌다. 당(唐) 천보 원년(742년)，마흔을 갓 넘긴 이백이 서촉(西蜀)에서 장안으로 오던 길에 태백산 금구진의 술 소문을 듣곤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며 실컷 술을 마셨다. 크게 취한 그는 문득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붓을 휘둘렀는데 그렇게 남긴 시가 바로 천고의 절편 ‘촉도난(蜀道难)’이었다. 장안에 도착한 뒤 이 시를 비서감 하지장(贺知章)에게 보여 주니 하지장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말했다. “그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오. 태백 금성이라 할 것이오.” 이태백(李太白)이란 호칭도 여기서 비롯됐다. 훗날 사람들이 이백을 기념하여 태백산에 태백묘(太白庙)를 세웠으며 그가 마셨던 술을 태백주(太白酒)라고 불렀다. ​오늘날 중국에는 이백의 이름과 관련된 백주를 생산하는 회사만도 10여 개가 있다. 이백의 무덤이 있는 안후이 마안산시(馬鞍山市)에서 나오는 <태백교자(太白嬌子)>도 그 중 하나다.

<두보주(杜甫酒)>는 쓰촨 몐주시(綿竹市) 소재의 ‘두보주창(杜甫酒廠)’의 대표 브랜드다. 1994년 청두(成都)의 두보초당 및 두보연구회 등의 주창에 따라 면죽주(綿竹酒) 제2공장을 두보주창으로 이름을 바꾸고 <두보>계열의 술들은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고문운동(古文運動)에 앞장섰던 당대 시인 퇴지(退之) 한유(韓愈)는 스스로 ‘군망창여(郡望昌黎)’라 했으며 세간에서는 즐겨 그를 ‘한창여(韓昌黎)’ ‘창여선생(昌黎先生)’으로 불렀다. 그 고마움을 새기듯이 허베이성(河北省) 창리현(昌黎縣)에는 그의 이름을 딴 술 회사가 세워졌으며 거기서 <한유주(韩愈酒)>를 내놓고 있지만 이 술이 지역 밖으로 팔려 나가는 일은 드물다.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柳宗元)은 환관들이 판을 치는 조정을 바로 세우고자 애썼던 혁신정치가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권신들의 미움을 받아 궁벽한 시골로 쫓겨 갔는데 그곳이 지금의 후난성 서남쪽 잉저우(永州)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뱀잡이와 탐관오리들을 연관시킨 명 산문 ‘포사자설(捕蛇者说)’이며 ‘강설(江雪)’ 같은 불후의 시를 남겼다. 오늘날 이곳에선 <이사주(異蛇酒)> 같은 뱀술이 많이 생산되는데 상표에는 어김없이 유종원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유종원주(酒)>라는 백주도 뱀술 회사에서 만든다.

<소동파주(蘇東坡酒)>는 쓰촨 메이산시(眉山市)에서 생산된다. 청두(成都)와 어메이산(峨眉山) 중간에 위치한 이 메이산시가 소동파의 고향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삼소(三蘇)’라 불리기에 소동파주를 만드는 술 회사에서는 아울러 <삼소주(三蘇酒)>도 시중에 내놓고 있다. 메이산시 우수 관광상품으로 선정된 이 술은‘동파국제문화절(東坡國際文化節)’의 지정 접대주로 뽑히기도 했다.

‘청명(淸明)’이란 시 한 편으로 ‘행화촌(杏花村)’ 논쟁을 불러일으킨 후당(後唐)의 시인 두목(杜牧)의 이름을 딴 <두목주(杜牧酒)>도 있다. 봄비가 내리는 날, 길 가던 나그네가 소를 타고 가는 목동 녀석에게 근처에 주막이 어디 있느냐 물었더니 녀석이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더란 내용의 시가 ‘청명’인데 시에 나오는 행화촌이 실제 어느 곳이냐를 두고 오늘날도 중국의 8군데 지역이 서로 자기네 동네가 그 행화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산시성(山西省) 펀양현(汾陽縣)에 있는 행화촌도 그 중 하나다. <분주(汾酒)> <죽엽청주(竹葉淸酒)>로 유명한 대기업 ‘분주주업’이 일찌감치 이곳에 터를 잡고 ‘행화촌’을 트레이드마크로 써 먹으면서도 막상 시인의 이름은 상표에 올리지 못했는데 이웃에 있는 영세 백주회사 하나가 냉큼 <두목주>란 술을 시장에 내놓았다. ‘행화촌진주창(杏花村鎭酒廠)’이다. 참고로 마오타이진(茅台鎭)나 양허진(洋河鎭) 같은 거대 백주회사가 있는 시골 소도시에는 대기업 상표를 흉내 낸 술로 운영되는 술 공장이 100여 가(家) 이상씩 있는데 펀양시 행화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설근주(曹雪芹酒)>는 허베이성(河北省) 탕산시(唐山市) 펑룬(丰润)에 있는 ‘조설근주업공사(曹雪芹酒业公司)’가 제조 판매하는 백주 상품이다. 인명 ‘조설근(曹雪芹)’은 이미 회사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였다. 탕산은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서너 시간 차를 달리면 닿는 거리에 있다. 조설근의 조상들이 살았다는 펑룬은 시 북부에 위치한다. 이 길로 계속 가면 만리장성의 바닷가 시작점인 산하이관(山海關)이 나온다. 술 회사는 온갖 매체를 통하여 유독 ‘조설근’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는데 자기네 술 공장 또한 조설근의 집안 양조장이 발전돼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회사의 주장은 대개 조설근이 지은 소설 ‘홍루몽(紅樓夢)’의 기록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소설에 자전적인 요소가 많다는 연구자들의 말을 빌려 소설의 기사에 역사성을 가미한 셈이다.

술병을 장식하는 미인들 

생각 같아서는 역사상 빼어난 미모의 여인네 이름들이 백주의 상표로 많이 쓰일 것 같은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흔히들 ‘중국의 4대 미녀’라면서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 왕소군(王昭君)을 손꼽는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시기 월왕(越王)의 명을 받아 오왕(吳王)을 유혹하러 나섰던 여인네가 서시이다. 이른바 강물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미인인데 그녀의 이름을 딴 술은 황주(黃酒)와 포도주에서만 보일 뿐 백주에는 없다. 달이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남긴 초선의 이름을 빌린 술은 아예 보이지 않고 대당 제국을 기울게 만들었던 양귀비와 관련된 술은 쓰촨에서 생산되는 <귀비주(貴妃酒)>가 고작이다. 화원의 꽃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곤 면목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고 했던가.

 흉노의 왕에게 시집가서 평생을 고향을 그리며 살았던 왕소군의 술은 내몽고 후후호트시(呼和浩特市)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왕소군주>가 그것이다. 왕소군의 고향은 오늘날 후베이성 이창시(宜昌市)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엔 그녀의 이름을 그대로 옮긴 '소군고리주업공사(昭君故里酒業公司)‘란 작은 술 회사가 있으며 <소군주(昭君酒)>를 제조 판매한다.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그녀의 미색을 보곤 날개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한다.

양귀비가 제법 통통한 몸매를 지닌 미인이었다면 제비처럼 하늘을 날 듯 마른 몸피를 가진 절색이 조비연(趙飛燕)이다. 한(漢) 성제(成帝)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그녀는 제 앞길에 방해가 될 성싶으면 황후도 후궁도 황자들도 가차 없이 죽음으로 내몰았다. 쌍둥이 자매 조합덕(趙合德)까지 황제의 품에 안겼던 그녀도 권세가 떠난 뒤에는 자결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조비연주(趙飛燕酒)>가 난징의 한 작은 술 회사에서 제조되고 있지만 아는 이조차 드물다.

다국적기업 헤네시-루이비통이 백주업까지 손을 뻗쳤다. 중국 백주를 런던의 식탁에 올리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면서 중국에 진출한 이 기업은 쓰촨의 4대 주향(酒鄕) 중 하나인 충라이(邛崍)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2007년 11월 신제품발표회를 가졌다. 여기서 발표된 고가이 백주가 바로 <문군주(文君酒)>다. 브랜드 ‘문군’은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한대(漢代)를 살았던 한 매력적인 여인 탁문군(卓文君)에서 유래된다. 오늘날 총라이 지역의 부잣집 딸이었던 탁문군은 연꽃 같은 미인이었는데 어느 날 제 집 손님으로 온 사마상여(司馬相如)를 보곤 한눈에 반해 버렸다. 사마상여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지만 집안은 끼니를 잇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제가 갖고 있던 물건들을 팔아 술집을 열었는데 술맛이 소문나면서 술청은 곧장 손님들로 가득 찼다. 이렇게 탁문군은 중국의 역사 기록상 ‘최초의 술파는 사람’이 되었으며 “문군이 술을 팔고, 상여가 그릇을 씻는다.(文君當壚，相如滌器)”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게 되었다.

백주 상표에 오른 현대 인물

쓰촨이나 구이저우(貴州)에서는 요즘도 <뇌모주(賴茅酒)> <뇌영초주(赖永初酒)>처럼 ‘賴’자 가 든 술 이름의 백주를 흔하게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는 뇌 씨 집안의 술이란 뜻이다. 오늘날 중국 최고의 백주로 치는 마오타이주가 바로 이 뇌 씨한테서 시작됐으며, 뇌 씨들의 양조장을 국영화 한 것이 마오타이주의 시작이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뇌 씨 후손들은 그동안 억울한 점이 있어도 꾹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런 규제도 다 풀린 터여서 후손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다투어 “내가 진짜 마오타이의 전신이다.”면서 ‘뇌’자 술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중에는 물론 뇌 씨가 아닌 이들도 끼어 있다. 그동안 몇 차례 문중회의까지 열면서 뇌 씨 술의 교통정리를 해보고자 했지만 모두가 수포로 돌아갔다.

중국 백주계에서는 흔히 ‘장향형(醬香型) 백주의 시조’로 뇌가영(賴嘉榮)을 꼽는다. 장향형 대곡주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모주(茅酒)’를 그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모태진(茅台鎭)의 술이 장향형 백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1935년 모택동의 홍군(紅軍)이 적수에서 마셨다는 것도 바로 이 술이었다. 뇌가영의 가업을 이은 아들 뇌영초는 ‘국주(國酒)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술의 질을 높였고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고난의 ‘장정(長征)’이 이어지던 때 모택동, 주은래 등이 이끄는 공산군 장병들이 귀주성 적수하(赤水河) 근처에서 마오타이의 술을 마시곤 상처를 치료하고 원기를 회복했다는 이야기는 마오타이에서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만큼 신 중국 수립 후 공산 지도자들이 앞장 서 마오타이주를 치켜세우고 술 회사는 술 회사대로 그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일면 인지상정인 듯이 여겨진다. 2013년 마오타이에서는 <모태인민영수(茅台人民領袖) 모택동(毛澤東) 탄신 120주년 기념주)>를 내놓았는데 이 술의 병당 가격이 무려 6,888위안에 달했다. 이듬해 탄신 121주년 기념주의 가격은 1,259위안으로 뚝 떨어졌다. 마오타이는 또 어김없이 <국주지부(國酒之父) 주은래(周恩來) 기념주>도 내놓았는데 이는 건국 후 주은래가 한 연회석에서 처음으로 마오타이주를 ‘국주(國酒)’라고 칭송한 바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이의 이름을 딴 백주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오타이주에서 낸 <성룡주(成龍酒)>다. 우리한테도 잘 알려진 영화배후 청룽(成龍)은 1954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1978년 우스위안(吴思遠) 감독의 영화 <사형습수(蛇形習手)>와 <취권(醉拳)>에 출연하여 일약 스타가 되었다. 2007년 ‘한국민이 뽑은 중국의 인물’의 첫 번째가 되었는데 마오저뚱、등샤오핑(鄧小平)이 그 아래 순위였다. 2011년 11월, 청룽은 마오타이 술 회사 창립 60주년 기념축전에 초대를 받았으며 여기서 ‘마오타이 성룡주' 출품을 위한 양해 각서에 사인을 했다. 화려하고도 고급스럽게 포장된 <성룡주(成龍酒)>는 2012년 3월 9일 베이징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응알쏘]

유령취주(劉伶醉酒) 한번 마시고파요. 그럼 저는 영원히 깨어날 일은 없겠죠?
이렇게 많은 술, 이름들을 보면서 교수님~! 정말 존경합니다.

[김종웅]

대단한 고찰입니다. 저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발췌했을지 가늠도 할수 없읍니다.
골고루 다 마셔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