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인 건축사 남종규,
그는 잘 설계된 사람이었다
글/ 사윤수/ 시인
‘고대 문명의 가장 큰 상형문자는 건축’이라는 어느 건축가의 말에 공감한다. 회화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시적 운율과 음악의 리듬, 철학적 깊이까지 건축 요소로 빼놓을 수 없다. 천재 시인 이상은 건축가였고 건축가 김중업은 시인이기도 했다. 건축물 없이, 건축 밖에서 다른 예술은 가능하기가 어렵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축은 예술의 어머니”라고 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고 했던가. 남건축가의 작업실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고, 알고 보니 예전에 내가 늘 산책하던 ‘아양문화 기찻길’ 입석동 끝에 있었다. 사무실이 있는 3층까지 벽면을 모두 무늬목으로 담백하게 처리했고 <ALT ARCHITECTS-알트 건축사무소>라는 스틸 활자가 세련된 건축가의 작업실은 입구부터 건축이고 예술적이다.
문을 열고 마중 나오는, 큰 키에 수려하고 겸양한 모습.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 분은 건축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까 그의 자체가 애초에 잘 설계된 건축가, 건축적인 사람이었다. 깔끔한 사무실도 젊은 느낌이 물씬 난다.
(여기서 살짝 짚고 넘어 갈 게 있다. 건축가와 건축사는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건축가’는 건축 제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호칭하고, ‘건축사’는 면허증을 가진, 국가공인 건축 전문가라고 한다. 그래도 우리에겐 예술가처럼 건축가라는 표현이 더 멋있어 보이고 흔히 쓰는 말이다. 어쨌든 이 글에서는 이제부터 ‘남건축사’라고 하겠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ALT(알트)’가 먼저 궁금하다. 무슨 뜻일까?
“ALT는 ‘alternative‘로 대안, 그러니까 어떤 ’안‘이라는 뜻인데 머릿속에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설계 했을 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건축 일을 하다보면 1안, 2안 여러 안을 만들게 됩니다. 저는 다양한 알트를 많이 만들어보면서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추구하는 최선의 설계를 합니다.”
그렇구나. 한 번 설계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설계도를 몇 가지나 만들어 보고 결정을 한다니 건축은 처음부터 만만찮고 어렵게 느껴진다.
-영남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셨더군요. 저도 영남대에 다녔어요.
“그러시군요. 그럼 선배님 되시네요. 저는 02학번입니다.”^^
-저는 OO 학번입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차이 나네요. ^^
“그런데 대구에 훌륭한 건축사님도 많은데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받을 만한 사람인지 조심스럽습니다. 사무실 오픈한지도 2년 정도 밖에 안 됐고요. 그 전까지는 직원으로 일하다가, 라이센스 취득하고 그랬습니다.”
-아, 모르셨군요. 이 인터뷰는 ‘대구의 젊은 예술인’이 주제입니다. 현재 활발하게 작업하고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유망 작가를 취재하는 코너예요. 그러니까 편하게 마음껏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자, 그럼 그가 어떻게 건축이라는 멋진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진학하고, 건축사가 되었는지 본격적으로 그의 말을 들어보자.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 막연하게 공간을 창조하고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죽기 전에 세상에 뭘 하나 남기고 싶은 욕망, 그게 건축물이었던 거죠.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 미술 등등 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만화도 그렸고요. 수학이나 과학도 좋아서 그걸 다 합쳐보니 절충안이 건축이더군요. 그래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아마 많은 건축가들이 비슷한 케이스일 거예요.”
그렇다. 그는 일찍부터 건축을 꿈꾸었고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그에게서 그런 포스가 오롯이 느껴진다. 유수한 건축사무소 <서린>, <삼원>에서 실력을 다졌고 여러 공공건축물 현상 설계 공모전에 입상했으며 이미 그가 설계한 대표 작품들도 많다.
여타의 장르와 달리 건축은 건축주라는 강을 맨 먼저 건너야 한다. 건축사와 건축주의 만남이 건축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건축가의 생각은 어떨까?
“저희들은 작업을 많이 하니까 아무래도 전문적인 공간 감각이 있습니다. 평면만 봐도 삼차원 공간을 예상할 수 있죠. 그런데 건축주 일반인들은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이걸 건축주의 눈높이에 맞추어 최대한 쉽게 설명해드려야 합니다. 스케치나 컴퓨터 그래픽, 또는 모형을 만들어 보여드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계가 있어서 온갖 방법으로 설명을 해도 소통과 이해를 넘어서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시공이 시작되고 건물이 조금씩 모양을 갖추면 비로소 감을 잡으시는데, 그때 만약 다른 의견을 내거나 바꾸자고 하면 정말 난감하죠. 바꾸어야 할 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라 법규 위반은 아닌지 까지 살펴야 하고 한 가지 때문에 여러 가지를 다 변경해야 하는 최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건축주가 아무 간섭 하지 않고 무한한 자본을 허락하며 모든 것을 믿고 맡길 때 건축사에겐 가장 행복한 일이죠. 그런데 그게 대부분 공사비용 문제이기 때문에 참 쉽지가 않습니다.”
무슨 일이나 일보다 사람이 더, 사람이 제일 어렵다. 오죽했으면 이 문제를 철학에서도 다루었을까. 가라타니 고진이 쓴 『은유로서의 건축』에서 몇 줄을 옮겨보자.
“건축은 탁월한 하나의 사건이다. 어떠한 건축가도 타자(의뢰인)와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디자인을 결정할 수 없다. 건축가들은 모두 알 수 없는 타자와 마주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건축은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고, 그 소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건축가는 절대적인 어떤 힘이 뒤에서 받쳐 줄 때에만 이 상대적 타자와의 만남에서 성공할 수 있다.”
건축주라는 강을 건너면 그 다음부터는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또 수없이 넘어야 할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선반에 벽돌이 놓여 있어서 무슨 용도냐고 묻자,
“재료나 샘플을 구해서 실험도 해봅니다. 시공, 감리, 계속 바뀌는 건축 법규를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관련 소방법, 에너지법, 전기, 설비까지 많은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건축사는 설계 도구로 설계도만 그리면 끝나는 줄 알았지, 벽돌 한 장까지 만져보고 두 장을 쌓아보며 혼신을 다 바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래도 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일이니 누가 말리겠는가. 그가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을 보여준다. 구미에 건축할 설계도 <마을센터 및 가로쉼터 조성공사>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완공한 개인 주택 <EDGE HOUSE> 사진이다. 아, 그런데 이것이 집인가, 거대한 조각품인가. 중후하고 역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세련되고 절제된 집, 내게 자본이 있다면 갖고 싶은 집,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집이 사진 속에 있다. 건축물은 입체 예술품이라서 실물을 보면 감동이 훨씬 더 커지는 법이다.
이쯤에서 그가 좋아하는 건축 스타일을 알아야겠다, 가장 중요하니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복잡하면서도 심플한, 그런 양면성을 추구합니다. 조금 깊이감 있는 걸 좋아하는데 벽돌을 띄워쌓기 해서 안쪽을 보이게 한다든가, 완전히 가리지 않고 반투명하게 하는 것, 단면적인 것 보다 여러 가지 레이어(켜)를 만들어서 공간에 깊이를 주는 겁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남건축사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는 <EDGE HOUSE>에 이런 요소가 다 담겨있다. 그는 남다른 감각과 건축 정신을 바탕으로 단독주택을 비롯해 근린시설, 상가주택 등을 설계한다. 작년에 ‘대구경북건축가회 2020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실력도 충분히 입증 받았다. 앞으로 지역을 대표할 건축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생각하는 지역의 건축 문화는 어떠할까.
“대구가 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디자인이 좋은 건축물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구의 건축주들은 보수성이 강해서 변화나 실험적인 건축을 꺼리죠. 좋은 건축물을 직접 가서 보고 체험해야 건축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감각도 깨어나는데, 좋은 영향을 받을 만한 건축물이 아직은 부족해보입니다. 그런데 대구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건축에 대해서는 보수적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건축을 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최저 공사비로 이윤을 많이 남기려 하고, 그러다보면 가끔 시공사도 잘못 만나서 문제가 생기죠. 건축의 변화는 그만큼 느리고 실현하기가 가장 힘든 예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준비된 건축가가 있는데 능력을 펼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진취적인 건축주가 없다면 정부나 지자체에서라도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루이스 칸, 르 꼬르뷔지에, 안도다다오 같은 세계적인 한국 건축가 탄생을 지원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히 건축은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점은 크게 없다고 한다. 건축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미 수주한 설계나 시공이 진행 중이고, 공모전도 준비해야 하니 늘 바쁘다고 한다. 설계 전문가인 건축가 자신의 미래의 설계도는 어떤지 그 청사진도 무척 궁금했다.
“제가 개신교 신자니까 교회 건물을 꼭 지어보고 싶습니다. 또 모든 건축가가 그렇듯이 언젠가 내 건물을 잘 지어 보고 싶고, 우리 지역에서 손꼽히는 건축가가 되고픈 바람도 다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남건축사의 열정과 역량은 우리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건축가가 되고도 남겠다. 해외 진출도 두려울 것이 없겠다.
어? 그런데 저쪽에 전자 기타가 있다. 웬 전자 기타냐니까, 기타 연주도 좋아해서 친구들과 ‘빅뱅’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연주회도 했단다. 그런데 요즘은 바빠서 손을 못 대고 골동품처럼 세워 두었단다. 우와~ 건축가에, 통기타도 아니고 전자기타라니, 건축계의 지미 핸드릭스인가. 나중에 그의 전자 기타 연주도 꼭 들어보고 싶다.
건축가 정만영은 ‘건축은 돌로 만든 책’이라고 했고, 한국 건축사에 큰 울림을 남긴 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건축을 온전히 읽어내려면 가슴으로 읽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온몸으로 읽어내야만 한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통해 우리가 가슴으로 읽을 수 있는 건축물을 그가 짓기를 축원한다. 저 건축물이 남종규 건축사의 작품이라며 감동스럽게 감상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니 벌써부터 내 마음이 다 설렌다.
*약력
2006 영남대학교 건축공학 졸업/ 2011 영남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졸업/ 2011~2012 (주)서린건축사사무소 근무/ 2013~2014 (주)삼원종합건축사사무소 근무/ 2014~2018 건축사사무소 신건축 근무/ 2019~현재 <알트> 건축사사무소 운영 중
*설계작품
EDGE GOUSE 단독주택/ 경북대학교 교수라운지 증축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달성지사 신축사옥 계획안/ 내당 평리권역 도서관 건립공사 계획안
*설계공모
원평동 마을센터 및 가로쉼터 조성공사 당선/ 송현여고 강당동 개축공사 입선
*수상내역
대구경북건축가회 2020 젊은건축가상 수상
*직책 및 활동
울산광역시 공공건축가/ 대구광역시건축사회 공사감리위원회 위원/ 대구경북건축가회 법제상훈위원회 부위원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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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을 가로 혹은 세로 중에 어떻게 편집하실지는 편집자님이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약력
-2006 영남대학교 건축공학 졸업
-2011 영남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졸업
-2011~2012 (주)서린건축사사무소 근무
-2013~2014 (주)삼원종합건축사사무소 근무
-2014~2018 건축사사무소 신건축 근무
-2019~현재 알트 건축사사무소 운영중
*설계작품
-EDGE GOUSE 단독주택
-경북대학교 교수라운지 증축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달성지사 신축사옥 계획안
-내당 평리권역 도서관 건립공사 계획안
*설계공모
-원평동 마을센터 및 가로쉼터 조성공사 당선
-송현여고 강당동 개축공사 입선
*수상내역
-대구경북건축가회 2020 젊은건축가상 수상
*직책 및 활동
-울산광역시 공공건축가
-대구광역시건축사회 공사감리위원회 위원
-대구경북건축가회 법제상훈위원회 부위원장
, 그는 잘 설계된 사람이었다 글/ 사윤수/ 시인
‘고대 문명의 가장 큰 상형문자는 건축’이라는 어느 건축가의 말에 공감한다. 회화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시적 운율과 음악의 리듬, 철학적 깊이까지 건축 요소로 빼놓을 수 없다. 천재 시인 이상은 건축가였고 건축가 김중업은 시인이기도 했다. 건축물 없이, 건축 밖에서 다른 예술은 가능하기가 어렵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축은 예술의 어머니”라고 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고 했던가. 남건축가의 작업실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고, 알고 보니 예전에 내가 늘 산책하던 ‘아양문화 기찻길’ 입석동 끝에 있었다. 사무실이 있는 3층까지 벽면을 모두 무늬목으로 담백하게 처리했고 <ALT ARCHITECTS-알트 건축사무소>라는 스틸 활자가 세련된 건축가의 작업실은 입구부터 건축이고 예술적이다.
문을 열고 마중 나오는, 큰 키에 수려하고 겸양한 모습.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 분은 건축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까 그의 자체가 애초에 잘 설계된 건축가, 건축적인 사람이었다. 깔끔한 사무실도 젊은 느낌이 물씬 난다.
(여기서 살짝 짚고 넘어 갈 게 있다. 건축가와 건축사는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건축가’는 건축 제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호칭하고, ‘건축사’는 면허증을 가진, 국가공인 건축 전문가라고 한다. 그래도 우리에겐 예술가처럼 건축가라는 표현이 더 멋있어 보이고 흔히 쓰는 말이다. 어쨌든 이 글에서는 이제부터 ‘남건축사’라고 하겠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ALT(알트)’가 먼저 궁금하다. 무슨 뜻일까?
“ALT는 ‘alternative‘로 대안, 그러니까 어떤 ’안‘이라는 뜻인데 머릿속에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설계 했을 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건축 일을 하다보면 1안, 2안 여러 안을 만들게 됩니다. 저는 다양한 알트를 많이 만들어보면서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추구하는 최선의 설계를 합니다.”
그렇구나. 한 번 설계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설계도를 몇 가지나 만들어 보고 결정을 한다니 건축은 처음부터 만만찮고 어렵게 느껴진다.
-영남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셨더군요. 저도 영남대에 다녔어요.
“그러시군요. 그럼 선배님 되시네요. 저는 02학번입니다.”^^
-저는 OO 학번입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차이 나네요. ^^
“그런데 대구에 훌륭한 건축사님도 많은데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받을 만한 사람인지 조심스럽습니다. 사무실 오픈한지도 2년 정도 밖에 안 됐고요. 그 전까지는 직원으로 일하다가, 라이센스 취득하고 그랬습니다.”
-아, 모르셨군요. 이 인터뷰는 ‘대구의 젊은 예술인’이 주제입니다. 현재 활발하게 작업하고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유망 작가를 취재하는 코너예요. 그러니까 편하게 마음껏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자, 그럼 그가 어떻게 건축이라는 멋진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진학하고, 건축사가 되었는지 본격적으로 그의 말을 들어보자.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 막연하게 공간을 창조하고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죽기 전에 세상에 뭘 하나 남기고 싶은 욕망, 그게 건축물이었던 거죠.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 미술 등등 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만화도 그렸고요. 수학이나 과학도 좋아서 그걸 다 합쳐보니 절충안이 건축이더군요. 그래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아마 많은 건축가들이 비슷한 케이스일 거예요.”
그렇다. 그는 일찍부터 건축을 꿈꾸었고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그에게서 그런 포스가 오롯이 느껴진다. 유수한 건축사무소 <서린>, <삼원>에서 실력을 다졌고 여러 공공건축물 현상 설계 공모전에 입상했으며 이미 그가 설계한 대표 작품들도 많다.
여타의 장르와 달리 건축은 건축주라는 강을 맨 먼저 건너야 한다. 건축사와 건축주의 만남이 건축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건축가의 생각은 어떨까?
“저희들은 작업을 많이 하니까 아무래도 전문적인 공간 감각이 있습니다. 평면만 봐도 삼차원 공간을 예상할 수 있죠. 그런데 건축주 일반인들은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이걸 건축주의 눈높이에 맞추어 최대한 쉽게 설명해드려야 합니다. 스케치나 컴퓨터 그래픽, 또는 모형을 만들어 보여드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계가 있어서 온갖 방법으로 설명을 해도 소통과 이해를 넘어서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시공이 시작되고 건물이 조금씩 모양을 갖추면 비로소 감을 잡으시는데, 그때 만약 다른 의견을 내거나 바꾸자고 하면 정말 난감하죠. 바꾸어야 할 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라 법규 위반은 아닌지 까지 살펴야 하고 한 가지 때문에 여러 가지를 다 변경해야 하는 최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건축주가 아무 간섭 하지 않고 무한한 자본을 허락하며 모든 것을 믿고 맡길 때 건축사에겐 가장 행복한 일이죠. 그런데 그게 대부분 공사비용 문제이기 때문에 참 쉽지가 않습니다.”
무슨 일이나 일보다 사람이 더, 사람이 제일 어렵다. 오죽했으면 이 문제를 철학에서도 다루었을까. 가라타니 고진이 쓴 『은유로서의 건축』에서 몇 줄을 옮겨보자.
“건축은 탁월한 하나의 사건이다. 어떠한 건축가도 타자(의뢰인)와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디자인을 결정할 수 없다. 건축가들은 모두 알 수 없는 타자와 마주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건축은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고, 그 소통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건축가는 절대적인 어떤 힘이 뒤에서 받쳐 줄 때에만 이 상대적 타자와의 만남에서 성공할 수 있다.”
건축주라는 강을 건너면 그 다음부터는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또 수없이 넘어야 할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선반에 벽돌이 놓여 있어서 무슨 용도냐고 묻자,
“재료나 샘플을 구해서 실험도 해봅니다. 시공, 감리, 계속 바뀌는 건축 법규를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관련 소방법, 에너지법, 전기, 설비까지 많은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건축사는 설계 도구로 설계도만 그리면 끝나는 줄 알았지, 벽돌 한 장까지 만져보고 두 장을 쌓아보며 혼신을 다 바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래도 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일이니 누가 말리겠는가. 그가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을 보여준다. 구미에 건축할 설계도 <마을센터 및 가로쉼터 조성공사>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완공한 개인 주택 <EDGE HOUSE> 사진이다. 아, 그런데 이것이 집인가, 거대한 조각품인가. 중후하고 역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세련되고 절제된 집, 내게 자본이 있다면 갖고 싶은 집,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집이 사진 속에 있다. 건축물은 입체 예술품이라서 실물을 보면 감동이 훨씬 더 커지는 법이다.
이쯤에서 그가 좋아하는 건축 스타일을 알아야겠다, 가장 중요하니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복잡하면서도 심플한, 그런 양면성을 추구합니다. 조금 깊이감 있는 걸 좋아하는데 벽돌을 띄워쌓기 해서 안쪽을 보이게 한다든가, 완전히 가리지 않고 반투명하게 하는 것, 단면적인 것 보다 여러 가지 레이어(켜)를 만들어서 공간에 깊이를 주는 겁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남건축사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는 <EDGE HOUSE>에 이런 요소가 다 담겨있다. 그는 남다른 감각과 건축 정신을 바탕으로 단독주택을 비롯해 근린시설, 상가주택 등을 설계한다. 작년에 ‘대구경북건축가회 2020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실력도 충분히 입증 받았다. 앞으로 지역을 대표할 건축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가 생각하는 지역의 건축 문화는 어떠할까.
“대구가 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디자인이 좋은 건축물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구의 건축주들은 보수성이 강해서 변화나 실험적인 건축을 꺼리죠. 좋은 건축물을 직접 가서 보고 체험해야 건축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감각도 깨어나는데, 좋은 영향을 받을 만한 건축물이 아직은 부족해보입니다. 그런데 대구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건축에 대해서는 보수적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건축을 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최저 공사비로 이윤을 많이 남기려 하고, 그러다보면 가끔 시공사도 잘못 만나서 문제가 생기죠. 건축의 변화는 그만큼 느리고 실현하기가 가장 힘든 예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준비된 건축가가 있는데 능력을 펼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진취적인 건축주가 없다면 정부나 지자체에서라도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루이스 칸, 르 꼬르뷔지에, 안도다다오 같은 세계적인 한국 건축가 탄생을 지원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히 건축은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점은 크게 없다고 한다. 건축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이미 수주한 설계나 시공이 진행 중이고, 공모전도 준비해야 하니 늘 바쁘다고 한다. 설계 전문가인 건축가 자신의 미래의 설계도는 어떤지 그 청사진도 무척 궁금했다.
“제가 개신교 신자니까 교회 건물을 꼭 지어보고 싶습니다. 또 모든 건축가가 그렇듯이 언젠가 내 건물을 잘 지어 보고 싶고, 우리 지역에서 손꼽히는 건축가가 되고픈 바람도 다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남건축사의 열정과 역량은 우리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건축가가 되고도 남겠다. 해외 진출도 두려울 것이 없겠다.
어? 그런데 저쪽에 전자 기타가 있다. 웬 전자 기타냐니까, 기타 연주도 좋아해서 친구들과 ‘빅뱅’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연주회도 했단다. 그런데 요즘은 바빠서 손을 못 대고 골동품처럼 세워 두었단다. 우와~ 건축가에, 통기타도 아니고 전자기타라니, 건축계의 지미 핸드릭스인가. 나중에 그의 전자 기타 연주도 꼭 들어보고 싶다.
건축가 정만영은 ‘건축은 돌로 만든 책’이라고 했고, 한국 건축사에 큰 울림을 남긴 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건축을 온전히 읽어내려면 가슴으로 읽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온몸으로 읽어내야만 한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통해 우리가 가슴으로 읽을 수 있는 건축물을 그가 짓기를 축원한다. 저 건축물이 남종규 건축사의 작품이라며 감동스럽게 감상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니 벌써부터 내 마음이 다 설렌다.
-2021. <대구예술>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