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관한 시모음 16)
3월에 내리는 눈 /인애란
한 꽃을 활짝 피우기 전에
잔기침하는 꽃나무 곁에서
하얗게 봄앓이를 한다
한 꽃을 피울 적마다
전체가 떠는 꽃나무 곁에서
하얗게 봄떨림을 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경련 같은 것이어서
세상 저 끝에서 이 끝까지
자릿하게 울려 진동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임박한 예감에 몸을 떠는 일
마음이 꽃이 되려면
눈길이 기쁨이 되려면
황홀한 향기가 되려면.
삼월이 떠나는 날 /루수 김상화
춥디추운 한겨울
당신 오면
사랑을 꽃피운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을 잉태한 당신이
소리 없이 날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당신이 와서
이 땅에 찬 공기 몰아내고
새싹 틔워 희망 주고
사랑과 기쁨이란 꽃으로
아름다운 강산 만들었을 때
우리는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오늘 아쉽게도 떠나는구나!
3월 편지 /조규옥
3월 입니다
떠나려던 겨울이
며칠째 멈칫거리더니
그예 눈인지 비인지 모를
눈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눈물속에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폭설속에 사라졌던 길들이 뚫리어
사람과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 열리면
올 봄에는
부드러운 꽃향기 가득한
작은 꽃씨 하나 담겨있는
편지 한통쯤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 꽃씨가
너무도 작고 초라하여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이름없는 들꽃씨라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부터 보내오는
까만 꽃씨 하나 들어있는
그런 편지 한통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3월 예찬 /양광모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곧 끝난다는 것 알지?
언제까지나 겨울이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 알지?
3월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말하네
아직 꽃 피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활짝 피어나리라는 것 믿지?
3월의 기도 /정연복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온 땅의 숱한 생명의
힘찬 기지개 소리를
귀담아 듣게 하소서.
나도 그 생명의 일원임을
소스라치게 느끼면서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와
너른 들판을 달려가게 하소서.
아직은 살아있는 목숨에
정열의 불꽃을 당겨
새봄에 한 송이
생명의 꽃으로 피게 하소서.
삼월 /임영조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본다.
3월 /오순택
겨울 내내
어디 있나 했는데
목련 꽃망울 속에서
토옥
튀어나오더라고요.
어느새 3월 /박종영
소리 없이 강을 건너와
외롭게 피는 꽃 이름을 외웁니다.
담 넘어 우윳빛 목련이
총상보다 날렵한 눈빛으로 젊은 연인을 불러 세웁니다.
흐르는 봄바람을 멈추게 하는
느긋한 향기가 있어 세상은 외롭지 않습니다.
햇살 미끄러지는 거리
하얀 길 가득하게 봄빛이 길을 채우고,
어느새 3월이 얼굴 곱게 다듬어
어머니처럼 하얗게 웃고 있습니다.
마냥 기다리던 초록의 세월이 빛나고 있습니다.
3월 명지바람 걸터앉아 /은파 오애숙
한파가 끝나고 나니
엉성한 가지에 앙증스런
손톱만한 노란 나팔
새 봄이 돌아왔다고
열십자로 활짝 웃는 모습에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으나
아직 심연에서는
동면이라고 다시 잠에 취해
고갤 숙이는 겨울이나
한겨울 덮었던 거적
명지바람 불어 오고있기에
허공에 날려 버리리
3월, 그 나무 /김나영
폭죽처럼 날리던 하얀 눈발이 네 머리 위에 가슴 위에
구두 위에 악세사리처럼 빛나고 있었어. 그 겨울, 너의
푸른 외투, 주머니 속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채,
오도카니 서 있던 너. 네 어깨에 쌓이는 눈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도 하얀 눈이 쌓이고. 넌 밀랍인형처럼 내
눈빛을 무심히 받아내고 있었지. 나는 <너>라는 길고 긴
겨울을 은밀하게 건너고. 내 늑골 속 그녀가 던져준
거머리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내 가슴은 염장미역
처럼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어. 현기증이 병처럼
깊어가던 어느 날, 그녀가 찾아왔어. 환상처럼 그녀가
왔던 거야. 난 그때서야 비로소 봄을 맞이할 수 있었지.
봄의 빗장을 쥐고 있던 그녀. 나의 계절은 그녀로 인해
열리고 닫히던, 아름다운 형벌의 시절이었어. 창문을
두드리던 그녀의 손목, 난 용수철처럼 튀어나갔지.
아! <너>라는 추억에 나를 가두고, 내 늑골 사이에 길을
내던, 그녀가 거기 서 있었어. 비스듬하게 서 있는
그녀의 하얀 손등에 파란 정맥이 투명하게 흐르고 있었어.
내 늑골 속으로도 맑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어.
눈이 쌓였던 그 머리와 어깨, 그리고 그 푸른 외투에
대한 기억도 그대로인데 비스듬히 몸을 튼 그녀의 옆얼굴은
뭔가 비밀스러워 보였어. 그때였어. 짓궂게 불어대던
바람 속에 봉긋 드러난 가슴, 분홍색 브레지어를 선물해
주고 싶었던 그날, 그 해 봄날은 그렇게 열리고 있었지.
창 밖, 저 동백나무.
3월 /박금숙
거친 눈발이 몰아치거나
느닷없는 천둥이 치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는 것은
참을성 없는 계절의
상투적인 난폭 운전이다
3월은
은근히 다림질한 햇살이
연둣빛 새순 보듬어주고
벚나무 젖빛 눈망울
가지를 뚫고 나와
연한 살내 풍기는
부드러움이다
꽃샘추위 시샘을 부려도
서둘러 앞지르지 않고
먼 길 돌아온
도랑물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일 줄 아는
너그러움이다
3월은
가을에 떠난 사람
다시 돌아와
추웠던 이야기 녹이며
씨앗 한 줌 나누는
포근함이다
3월에 내리는 눈 /(宵火)고은영
비애처럼 3월의 언저리를
맴도는 끈질긴 미련
중심에서 밀려나는
마지막 애증이다
떠나가다 다시 돌아보는
서러움의 연가다
마지막 시린 얼굴로
시간 위에 각인 시키고픈
아픈 상흔이다
서걱대는 바람의 등을 타고
가슴에 한으로
반짝 타오르는 촛불처럼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노라고
뇌까리는 서러운 발자국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날 잊지 말라는
서글픈 유언 같은 마지막 편지다
눈물의 덩어리다
3월의 그대에게 /박우복
어느 꽃이 먼저 필까
기다리지 말아라
꽃잎이 흔들릴 때마다
떨리는 몸과 마음
어찌 감당하려고
가슴을 적시는
봄비도 기다리지 말아라
외로움 안고 창가에 앉아
가슴에 번지는 그리움
어찌 감당하려고
3월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