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단이가 금요일(5/26) 하교 후 기아 타이거즈 야구 경기를 보러갔다. 두번째 경기관람이었다. 봄 방학 때 유단이는 한 학년 위 오빠랑 같은 반 남자친구랑 셋이서 처음으로 야구를 보러 갔는데 어찌나 신나던지 응원하면서 스트레스가 싹 다 풀리더라고 했다. 이번에는 한 학년 위 오빠가 함께 해서 넷이서 경기를 보고 왔다. 돌아와서 유단이 하는 말,
"경기장에 가서 응원도구랑 먹을 것 사러 팀스토어에 들어갔는데 줄이 길게 서있는 거야. 우리도 줄을 섰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우오빠랑 인이가 그냥 가자고 하더라고. 자리 예약한 것을 티켓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러다가는 늦겠다면서. 우오빠랑 인이가 자꾸 가자고 하니까 나중에는 현오빠도 그냥 갈까? 하더라고. 근데 내가 그랬지. 지금까지 기다렸고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 차례니까 있어 보자고."
"그래서?"
"결국 내 말대로 기다렸다 살 거 사가지고 들어갔어. 지난 번에는 손뼉쳤는데 이번에 도구를 쓰니까 확실히 더 신나던데? 근데 응원봉 정말 키친타올심으로 만든거 맞아. 현이오빠가 마구 두드리니까 픽 구겨져서 내가 써진 주의사항 들이대면서 이거 안보이냐고 했어. "
2. 열망이 강한가? 여유가 없는건가?
유단이가 토요일(5/13)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마친 후 반친구랑 영화를 보고 오겠다고 했다. 오케스트라가 끝나는 시간이 저녁 7시인데 밥 간단히 먹고 영화가 10시에 끝나면 버스를 타고 오겠다는 것. 광주에서 담양까지 돌고도는 버스로 오는 시간만 거의 1시간이 걸린다. 영화는 이미 한학년 위인 주랑 봤는데 반친구 빈이가 보고싶다고 하니 한 번 더 보고 싶단다.
고학년이 된 이후 괜찮은 영화는 친구나 언니오빠들과 보게 하고 있고, 또 낮이 아닌 밤에 버스를 타고 오는 시도를 해본다이, 마 그러라고 했다. 결국은 영화 끝나자마자 달려나왔지만 1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걸어오겠다는 두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돌아와서 유단이 하는 말. 유단이 성격(?)이 드러난다.
-엄마. 나는 영화가 시작되면 팝콘도 못먹겠어. 저번에 주언니는 내내 팝콘 집어먹으면서 영화보던데 난 영화에 집중해야 되서 손이 안가. 지난 번 야구 보러 갔을 때도 현오빠랑 인이는 치킨 먹으면서 보는데 난 안먹어져.
-오매. 그 정도냐? 그렇게까지 빠져들어 보냐? 그럼 너 학교에서 에포크랑 수업할 때도 그러겠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말이 흐려짐)
-하하하!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않은 열망이냐? 너무 여유가 없는거냐? 아! 멀티가 안되는가? ㅎㅎ
3. 한계에 도전?
레시피 양의 8배인 1.6kg의 밀가루를 써서 스콘 만들기. 금요일(5/19) 하교 후 만들기 시작해서 저녁 먹고 구우니 10시가 다 되서야 끝났다. 금요일은 여유롭다. 동생 승아와 함께 했으니 망정이지 하다가 손까지 다친 유단이 혼자서는 벅찼을 듯하다. 둘이 손발이 척척 맞는다.
유단이는 한 번 많은 양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보고 싶어한다는 사춘기 아이답게 유단이는 빵으로 슬슬 발동거는 건가?ㅎㅎ 아침에 일어나서 마늘소스 스콘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시니 참 좋았다.
언젠가 내가 웃겼던 것은 유단이는 가끔 이상한 도전을 한다는 것. 200ml 물을 8 모금에 다 마시고 싶다는 목표치를 정해놓고 최대한 꿀꺽꿀꺽 마시면서 "아! 9모금?왜 8모금에 안되지?" 아쉬워서 고개를 절래절래...ㅡㆍㅡ
4. 미니멀?
청소년이 되면서 유단이는 도시락보나 식탁매트에 수를 놔준다 하면 손사레를 친다. 그런 것들이 눈에 안들어 오는 것을 넘어 불필요한 것(과도, 오버)처럼 보이나 보다. 그럴 수 있지 싶어 놔뒀는데, 오늘(5/29) 비가 와서 산책도 못하고 뭔가 꼼지락거리고 싶은 마음에 커피를 마시며 바늘을 잡았다. 도시락보 묶는 쪽에 꽃잎 하나를 수놓으며 "에이, 구태의연한데?" 생각이 들던 차에 유단이가 심심풀이로 하다가 만 십자수 조각이 바늘통에 있는 것을 보고 꺼내 달아주었다. 유단이가 돌아와서 보고 (자기가 한 것이지만) 왜 붙여놨냐고 뭐라 할지도 모르겠다. 내 맘이야!
근데 왜 또 비뚤어지게 붙여졌다냐...ㅜ.ㅜ
유단이의 평소 색감을 보면 편하게 어울리는 조합을 쓰지는 않는 편.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고 해야하나?
유단이는 또 유독 단순한 걸 좋아한다. 복잡함이 아름다움을 깊어지게 하는 면이 있는데 아직 그것은 모르는 듯 하다. 앞으로는 달라지려나?
5. 이런 궁리는 참 잘해요
유단이는 전에 내가 썼던 핸폰을 가져다 사진찍는용으로 쓰고 있는데(남편이 쓰던걸 내가 물려받아 썼던거라 오래되서 밧데리가 진짜 금방 닳는다), 전화가 되지않는 그 공폰을 가지고 집 밖으로 놀러나갈 때 어떻게 하면 나랑 연락할 수 있는지 방법을 열심히 찾는다.
그 첫번째가 캘린더를 이용하는 것. 공폰이긴하지만 내가 썼던 폰이라 현재 내가 쓰고 있는 폰과 캘린더가 연동이 된다는 걸 유단이가 알아냈다. 캘린더에 들어가 당일 스케쥴에 연락할 내용을 쓰고 알람시간을 1분 뒤로 맞추면 서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어제는(현충일) 이메일로 연락하는 방법을 썼다. 동생 윤이랑 충장로에 놀러 나가면서 "엄마. 메일 오면 확인해!"하고 가더니, 충장로에서 놀다 지하철을 타고 유스퀘어에 가면서 메일로 연락을 해왔다. 지하철이 공짜 와이파이가 되는 것을 난 처음 알았다. 유단이는 지메일을 썼는데 나랑 거의 문자 수준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유단이는 내가 메일을 좀 늦게 확인했더니 그 다음엔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연락을 해왔다. 광주 지역번호로 시작되는 전화가 오길래 광고전화인가 싶어 안받으려다 혹시나 했더니 유단이도 내가 안받으면 어쩌나 싶었는지, "엄마. 전화받아줘서 고마워!" 했다. 그리곤 이백원 넣고 전화를 했는데 돈떨어진다고 급하게 용건을 말하고는 뚝 끊었다.ㅋㅋ (지금도 공중전화가 있기는 하구나 새로웠음)
나들이를 마친 후 유단,
-엄마. 나 앞으로 핸폰 없어도 되겠어. 이렇게 연락이 다 되잖아. 한다.
진심? ㅋㅋ
어쨌거나 궁하면 방법을 찾는 거는 맞다.
6. 장난기
유단이가 만우절에 장난못친 것을 자기 생일 때 쳐야한다고 블루라이트 차단안경을 사들고 왔다. 자기 안경쓰게 됐다고 속이는게 무에 재미있다고 깔깔깔.
핸폰은 연락하거나 꼭 검색할 게 있을 때 유단이가 내꺼를 빌려쓰는 정도이니 블루라이트차단 안경은 엄마가 써야겠다고 했다. 그치만, 돋보기가 필요한 내겐 사실 무용지물.
유단이에게는 알이 너무 커서 안어울리는데(잠자리 눈알같음) 유단이꺼 써본 아이들은 다 잘어울리는 것을 보고, 유단이 "아..의문의 1패네..." 입맛을 다시고,
1학년 담이에게 한 번 써보라고 했더니 무서운지 손사레를 치며 뒷걸음치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며 고학년 위세를 하기도 함. 즐거웠으니 됐다. 안경은 갖고 놀다가 학교 연극 소품으로 기부하겠다고 함.
생일(4/17)에 학교에서 달달한 케익도 먹고 또띠아피자도 먹을테니 괜찮겠지 싶어 싸준 오가피순나물. 내가 그리 맛있게 먹었던 나물이 오가피가 아니면 뭐였단 말이지? 어찌나 향이 진하고 쓰던지(머위는 저리기라)! 그래도 용기를 기르기 위해선 쓴 것도 먹어봐야지 싶어 싸줬는데 역시나! 울 담임선생님만 좋아하셨다며 거의 그대로 남겨왔다. 어찌 쓴 것을 잘 먹여볼지 고민 들어감.
즐거운 것은 즐거운 거고 학교에서 나름 속상한 것이 있어서 엉엉 울기도 했지만(유단이는 '물질'보다는 '말'이 중요한듯) 언제 그랬냐 금세 밝아지는 우리 유단이는 기질이?^^
7. 계획은 세우는 것
왠일로 유단이 선생님에게 사진을 찍게 해줬나 했더니, 8년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모습 안남기는 것이 서운타 하심서 나중에 두고 볼거라며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고. 그 마음을 알아서 순순히 포즈 취해준 건가? 아니면 단지 팔 뒤틀리게 함서 뼈인간 자세 따라하는 것이 재미있었던 걸까?
생일때 장난치려고 산 안경은 결국 뼈인간에게 양보했더라는. 근데 왜 잘 어울리지? ㅋㅋ
이번 달 주기집중수업은 인체생리학.
봄방학때 해골 그림 두 개 이상 그리기 숙제가 있다며 이번 만큼은 숙제를 딱 당해서 하지 않으리라 다짐 비슷한 거 하며 계획 다 세웠다더니 다 미루고 아니 싹다 잊고 9학년 오빠랑 반 남자친구랑 셋이서 생애 첫 야구경기 보러 나가심.ㅎㅎ
방학때 숙제를 제때 해간 적이 한번도 없다 하면 보기엔 안그렇게 생겼는데? 하며 엄마들 다들 놀람. 좋게 말하면 반전의 미가 있다고 해두자.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