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야(亂世惹)
1
남궁성의 장례식은 소박하게 치러졌다. 이천여 명에 가까운 무인
들이 죽은 이때 남궁세갸의 소가주만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르는 것
은 형평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장례식은 남궁세가
의 후원에서 조용히 진행됐다.
장례식에는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지인 몇 명만이 참석했다. 그 자
리에 적무강과 용추, 철홍과 서문아가 서 있었다. 외인들의 참석을
거부한 남궁우도였지만 적무강과 그의 일행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평소 남궁성이 적무강을 얼마나 잘 따랐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나무로 만든 제단에 남궁성의 시신이 올려져 있었다. 하얀 천에
덮인 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할 만큼 처참
했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평안해서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되었다.
남궁세가의 장로들이 장례식을 주관했다. 그들은 절차에 따라 남
궁성을 저승에 보낼 준비를 했다.
"흐흑!"
"어찌 성아가..."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남자들은 입술을 꼭 다물고 울음을 참고 있었으나 남궁세가의 여
인들은 오열을 터트렸다. 그녀들은 억지로 입을 틀어막았으나 흘러
나오는 울음소리는 감추지 못했다.
평상시 남궁성은 쾌활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세가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왔다. 또한 수십 년 만에 남궁세가를 부
흥시킬 거라는 기대를 받아 왔는데 이리 허무하게 죽은 모습으로 돌
아오다니. 그들은 도저히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세가의 여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서도 유독 오연한 모
습으로 서 있는 중년 미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또랑또랑
해 보이는 소동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남궁성의 시신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 여인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우는 게냐? 너희들이 울면 성이가 편한 마음
으로 저승에 가지를 못한다. 남아로 태어나 자신 몫의 삶을 살다 간
아이다. 청승맞게 울음으로 보내지 말고 미소로 보내 주거라. 그래
야 저 아이도 마음 편히 갈 것이 아니냐!"
그녀의 호통에 여기저기서 여인들이 울음을 삼켰다. 그녀의 옆으
로 남궁우도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성이의 어머님, 이 중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 자신일 텐데 끝까지
세가의 안주인으로서의 기품과 책임을 잃지 않는구나.'
적무강은 그녀가 남궁성의 어머니인 성연휘라는 것을 알아봤다. 비
록 나이가 들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남궁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성연휘에게는 다른 여인들과 비교되는 면이 있었다. 아마
도 오랜 세월 남궁세가라는 거대한 가문의 안살림을 맡다 보니 자연
스럽게 갖춰진 기품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눈가에 맺히는 한 방울
의 눈물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적무강은 묵묵히 남궁성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
을 보았지만 그다지 슬픈 감정은 들지 않았다. 이미 그와 남궁성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걸로 족했다. 아마
남궁성도 그가 울고 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화르륵!
마침내 남궁성이 누워 있던 제단에 불이 붙여졌다. 마른 나뭇가지
는 맹렬한 불꽃을 만들어 내며 급속도로 타들어 갔다.
'잘 가라. 남궁세가는 걱정하지 말고....'
적무강이 중얼거렸다.
그때 서문아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
라보던 적무강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궁우도에게 다
가갔다.
"고맙네! 저 아이의 복수를 해 줬다 들었네."
"당연한 일입니다."
"자넨 이제 어찌할 것인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요."
적무강의 말에 남궁우도가 자시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
나 적무강의 표정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그렇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지."
"이 아이가 성이의 동생입니까?"
"그렇네! 이 아이가 성이의 동생 웅이라네. 웅이야, 인사드리거
라. 이 사람이 형의 의형이자 천하에 명성이 드높은 적무강 대협이
다."
남궁우도의 말에 남궁웅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남궁웅이라고 합니다."
남궁웅의 커다란 눈은 붉게 충혈이 돼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아이도 형의 죽음을 아는 것이다.
적무강이 무릎을 꿇고 남궁웅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눈에 맺
힌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울지 말거라. 형은 최선을 다했다. 그 나머지는 이제 너의 몫이
다."
"....."
"네가 남궁세가를 부흥시켜야 한다."
"하지만 전 너무 어려요."
"너도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온다."
"하지만 지금 남궁세가의 힘은...."
결국 남궁웅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무리 의연해도 열 살의
소년에 불과했다. 그에게 남궁세가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말은 너무
나 큰 짐이었다. 남궁웅 역시 남궁세가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스릉!
적무강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집에서 사문을 꺼내 남궁웅에게
건네주었다.
"삼 년 후에 이것을 가지고 날 찾아오거라."
"삼 년 후에요?"
"그렇다. 만약 그때도 내가 살아 있다면 너에게 힘을 주겠다. 아무
도 남궁세가를 무시하지 못할 힘을."
적무강의 말에 남궁우이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 점이 흔들림도 없는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제까지 꽤
많은 사람을 만나 왔지만 이처럼 절대 흔들리지 않는 눈을 가진 사
람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눈을 가진 남자라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 년 후에 반드시 찾아갈게요."
"기다리마."
적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남궁우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
만 그만큼 적무강의 행동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
었다.
홀로 천왕성을 막고, 십자성에 대항하는 유일한 남자였다. 당금 천
하에 그보다 강력한 무공을 가진 무인을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그만
한 위명을 가진 남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그 하나만으로도 정도
련이나 십자성에 육박하는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남자가 남궁
웅을 돌봐 주겠다고 한다.
비록 지신절기를 이어받지는 못하겠지만 남궁웅이 적무강의 제자
라는 이유만으로도 천하에서 남궁세가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남궁세가를 적으로 돌리면 적무강까지 적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가문의 기둥을 잃은 남궁세가에 이보다 더한 보호막은 없을 것이
다. 남궁우도는 새삼 적무강의 배려가 고마웠다.
"고맙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입니다."
"정말 고맙소."
남궁우도의 어깨에 잔떨림이 일어났다. 그는 아까처럼 적무강에게
하대를 하지 못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의 스승이다. 그런 사
람에게 어찌 말을 함부로 하겠는가?
"정말 잘됐어요."
성연휘가 남궁우도의 어깨를 잡아줬다.
적무강은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수습이 끝나자 정도련의 무인들 중 수뇌부가 남궁세가
의 대전에 모였다. 그러나 수뇌부라고 해 봐야 다섯 명밖에 되지 않
았다. 얼마 전의 격돌에서 반수 이상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청송진인은 한쪽 어깨가 잘려 나갔기에 운신조차 힘들었다. 종남파
의 장로인 만상지와 공동파의 장로인 관무외, 남궁우도 정도가 비교
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회의에는 적무강과 서문아, 그리고 철홍과 용추도 참가했다. 어차
피 현 전력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에 누구도 반대하는 사
람이 없었다.
청송진인이 말문을 열었다.
"정말 면목이 없네. 자네가 시간을 벌어 준 덕에 결성했던 소중한
정도련을 이렇듯 허무하게 날려 버리다니."
그의 얼굴에는 참담함만이 가득했다.
사무독과의 싸움에 져서 한쪽 팔을 잃었다는 자괴감보다 수많은
무인들을 지켜 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
다.
그에 종남삼절 만상지가 그를 위로했다.
"지금은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난
국을 수습하고 반격을 할 기회를 잡느냐를 연구해야 합니다. 진인께
서는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무량수불!"
청송진인은 눈을 감았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정도련의 참
사는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이다.
적무강은 잠시 청송진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전력은 얼마나 됩니까?"
"칠 파에 오백 명이 조금 넘습니다."
대답을 한 사람은 서소문이었다. 서소문은 바짝 굳은 얼굴로 적무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
는 자신의 매형이자 천하에게 가장 강한 고수 중 한 명인 적무강이
기 때문이다. 당연히 군기가 바싹 들 수밖에.
"왜 칠 파뿐이지?"
"나머지 두 개 문파는 십자성의 양동작전에 말려 멸문 직전까지
갔습니다. 때문에 부득이 전력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
적무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생각보다 정도련의 피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관무외가 입을 열었다.
"일단 본산에 전력을 요청해 놓는 상태라네. 하지만 증원군이 오려
면 시간이 한참 걸릴 걸세."
"나 역시 종남에 전서구를 보냈으나 이곳에서 종남까지는 수천 리
가 넘네. 제아무리 빨리 온다 하더라도 보름 이상은 걸릴 걸세. 그러
니까 그들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전력을 추스르는 것이 좋을 것 같
네."
그들의 말에 적무강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증원군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일단 여기에 있는 인원만
으로 정도련을 탈환하도록 하지요."
"그게 가능하겠는가? 자네가 제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그들 모두
를 상대할 수는 없다네."
"아마 그럴 겁니다."
적무강은 순순히 관무외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자 관무외의 얼굴
에 더욱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아니, 알면서도 간다는 말인가?"
"지금이 적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무독의 죽음으로 저들이 머뭇거
릴 때 몰아쳐야 합니다. 더 이상 공격의 시기를 늦춘다면 저들은 호
북성을 빠져나갈 겁니다."
"아니, 저들이 힘들게 점령한 정도련을 버려두고 퇴각한다는 말인
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만상지의 말에 서소문이 대답했다.
"그것은 저들이 적 대협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
피 이런 싸움은 절대 고수의 존재 유무에 따라 향방이 갈립니다. 저
희가 무력하게 정도련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사무독을 막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젠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이곳에
적 대협이 있기 때문이죠. 십자성의 문상 문수영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퇴각을 택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비약이 너무 심
하지 않은가?"
"아닙니다. 이미 저들은 소기의 목적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이미
그 정도만으로 정도련은 충분히 타격을 입었습니다. 때문에 지금 무
리수를 두기보다 전력을 더욱 보충해 부딪치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이
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상 굳
이 위험 부담을 안고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오히려 쉽게 탈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소문의 말에 적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바와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적무강이 말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십자성으로 가 볼 생각입니다.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가 보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이곳에서 전
력을 추슬러 주십시오. 신호를 보내면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도록 말
입니다."
"으음!"
적무강의 말에 장로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들의 눈에는 머뭇거
림이 역력했다. 이미 수많은 정예가 죽었는데 또다시 무인을 차출하
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적무강의 눈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단 한번의 실패가 이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구나.'
나이가 들수록 실패를 두려워하기에 위험한 길을 피하고 안전한 길
로만 가려한다. 나이가 든 후에 겪는 실패는 젊었을 때 겪는 실패와
는 다리 커다란 후유증을 남긴다. 이를테면 지금 눈앞의 장로들처럼
말이다. 참담한 패배를 경험한 그들은 또다시 같은 패배를 당할까
봐 움츠리고 있었다.
적무강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장로들은 궁금한 듯 그의 얼
굴을 바라봤다. 그러나 적무강은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보시게."
"왜 그러는가?"
장로들이 적무강을 불렀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밖으로 사라
졌다.
"아니, 도대체 왜....?"
"이게 무슨 짓인지...."
장로들이 웅성거렸다.
쾅!
그때 남아 있던 용추가 탁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소리
가 어찌나 크던지 남아 있던 사람들은 귀가 웅웅 울리는 것을 느꼈
다.
용추가 한심하다는 듯이 장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한심하구려. 겨우 이런 모습을 보이려고 우리 주군을 이 자
리에 모신 것이오? 우리 주군은 혼자서 천왕성의 진격을 막은 분이
오. 두려울 게 무에 있단 말이오? 에잉~! 관두시오. 주군과 나, 둘
만 있어도 충분하닊!"
용추가 흥분해 소리쳤다.
다혈질의 용추는 얼굴까지 벌게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무강
의 천왕성 장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
렇기에 적무강이 어떤 희생을 치르며 천왕성의 중원 진격을 막았는
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외로운 싸
움을 벌였는데, 이곳에 있던 자들은 한 번의 패배를 가지고 마치 세
상이 모두 끝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까지 거칠게 세상
을 살아온 용추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철홍과 서문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문아가 말했다.
"정도련은 저희들끼리만 가겠습니다. 여러 장로님들은 여기에서
휘하의 제자들을 수습해 주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따라오십시
오."
"서 소저?"
"여러분의 입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
서문아는 장로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
녀의 뒤를 용추와 철홍이 따르고 있었다.
남아있는 장로들의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떠올랐다.
"무량수불!"
"허어!"
탄식이 장내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