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넷째주 대림 제4주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6-38)
산타 때문에 멱살잡이 (류지인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어린 시절 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방문을 굳게 믿었다. 착한 아이에게 주는 선물을 사춘기 무렵까지도 기다렸다. 그러면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본다. 그리 순진무구했던 아이가 어떻게 오늘의 두꺼운 얼굴에 이르렀냐는 타박의 눈빛인지. 산타의 부재를 입증할 차고 넘치는 단서들을 불식시킨 굳은 미음에 대한 궁금증의 눈빛인지는 모르겠다.
한 번은 친구와 산타의 존재에 대해 설왕설래 끝에 멱살잡이까지 한 일도 있었다. 아래로 동생을 줄줄이 둔 친구로서는 위로 누님들을 둔 막둥이 친구의 철없는 믿음이 여간 어리석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쁜 생각을 하니까 네가 선물을 못 받은 거야! 나름의 완벽한 논리로 핀잔을 주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와서는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영웅담을 가족들 앞에 늘어놓았다.
마땅히 옳지! 그렇고말고. 해주기를 기대했거만 식구들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도 그 해가 머리맡에 놓인 성탄 선물을 만난 마지막해였던 것 같다. 따뜻한 동화 같은 세상은 비록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가슴 속에는 어린 시절 배워 익힌 인내하는 기쁨이 여태껏 살아 활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다려 본 경험이 있다. 그 기다림의 끝엔 삶의 궤적으로 이어지는 많은 실마리가 있다. 그 다양한 갈래 중 우리 손이 선택하는 끈의 이름은 `희망`이었으면 싶다. 복잡하고 지난한 인생의 실타래는 풀어 헤쳐도 끝이 없고. 어떻게 풀려가는지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다. `편리`와 `행운`을 잡고 싶은 유혹을 과감하게 물리치고 `희망` 그 한 가닥을 찾아 힘 있게 붙들 수만있다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으로 빛날것이다.
이것을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주었다. 혼인 전 아이를 잉태할 때 쏟아질 지탄과 목숨까지 위협하는 위험 속에서도 두려움없이 기뻐하라고 외치는 가브리엘 천사의 목소리는 희망을 부여잡고 기다림을 묵묵히 견뎌낼 줄 아는 이들에게만 커다란 울림으로 들려온다.
성탄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날이 밝으면 단잠에서 깬 아이들이 산타의 선물을 들고 행복해하는 그림을 떠올려 본다. 이 아이들이 부디 어두운 세상과 타협하거나 암울함에 질식하지 않고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 먼 걸음도 마다하지 않는 동방박사 같은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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