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가 진주혁신도시 LH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 모집 면접장에서 구직하려는 사람과 만나 들은 얘기다. 평생을 경찰직으로 근무하다가 파출소 소장으로 정년퇴직했다는 사람이다. 어렵게 소규모의 아파트경비원으로 근무하다가 사소한 일로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았지만, 영구처럼 번번이 구직에 실패했다고 했다. 영구처럼 고용센터 워크넷도 수시로 방문하고 경비원모집장소에 수없이 이력서를 냈지만 실패하고 나서 아파트경비원으로 취업하는 것도 인맥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아파트경비원들은 학력도 경력도 무시한다는 것만 알고 자기는 공무원으로 퇴직했거니와 학력도 명색이 대학을 나왔기에 처음 면접에 임할 때는 백퍼센트 합격을 할 줄로 알았다가 계속해서 구직에 실패하고 나서야 아파트경비원도 아는 사람이 있다거나 인맥이 없으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영구가 전직 파출소 소장에게 질문했다. “3~40년 경찰직으로 근무하다가 퇴직을 했으면 연금이 매달 나올 것인데 무엇 때문에 어려운 아파트경비원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일시불로 받아서 자식들에게 주어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욕을 보고 있습니다.” 전직 경찰로 퇴직했던 사람은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 자식들에게 제공했던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힘든 노후 생활을 하면서 필요할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전직 파출소장이나 영구는 아파트경비원을 했던 경력이 몇 달뿐이라 경비원들의 현황과 정보를 몰라 일자리를 얻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아파트경비원들도 관리소장들을 많이 알고 인맥이 있어야 경비원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구가 처음 이력서를 냈던 아파트에는 진주에서 유통업을 할 때 거래관계로 알게 되어 형님 동생하며 지내던 사람이 1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가 같이 근무를 하고 있던 H아파트라서 처음 이력서를 낼 때만 해도 취업에 성공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결국은 H아파트에 관리소장의 지인이 새로 오게 되었다고 들었다. 30년 지기 친구의 예도 있다. 이 친구는 진주시내 번화가에서 금은방을 하던 영구와 친한 친구였다. IMF 여파로 가게를 접고 나서 아파트경비원을 10년 가까이하는 친구다. 이 친구와는 매월 친목모임이 있어 만난다. 친구와 아파트경비원에 대한 얘기를 전에는 아파트경비원에 관한 관심이 없어 별로 나누지 않다가, 요새는 관심을 갖고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 아파트에 경비원은 대부분 관리소장이 인사권이 있다고 했다. 관리소장들의 인맥이 없는 사람들은 취직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비원 자리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술자리를 한번하고 나면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했지만, 요즘은 프리미엄이 대폭 올랐다 한다. 1개월 치 월급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이 친구는 10년 경력자지만 월 급여가 많은 고급 아파트로 일자리를 알아봤더니 한 달 치 월급을 요구하기에 그만두었다고 얘기했다. 정말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까. 영구는 그동안에 여기저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른다. 고용노동부 워크넷 구직광고만 보고 많이도 뛰어다녔었다. 말하자면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뛰어들었다. 아무리 이력서를 내고 또 창원까지 다니면서 4일 동안 경비원신임교육을 받고, 경비원자격증이라고 하는 경비원신임 교육 이수증을 제출했지만 헛수고만 했다. 이미 그 아파트에 경비원이 정해져 있는 형편인데. 용을 쓰고 뛰어다녔으니 말이다. 영구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이수한 아파트경비원 교육 이수 증은 아무 쓸모도 없는 종잇조각이었다. 경비원이 해야 하는 일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비용도 발생했다. 이를 시행하는 고용노동부라 할까. 나랏일을 하는 윗선에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었다 구직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아파트관리사무소에 이력서를 작성하고 아파트경비원 자격증인 신임 교육이수 증을 첨부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경비원교육이수증을 요구하는 아파트관리사무소는 한 군데도 없었다. 대부분의 관리사무소에서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뜻으로 비쳤다. 경비원교육이수증은 반려를 하고 이력서만 받아서 들여다보는 모습을 볼 때, 영구 자신이 겸연쩍은 모습이었다. 영구 맘 한구석에는 경비원 교육 이수 증을 함께 제출하면 우선 채용이라도 되는 줄 알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요즘은 백세세상이다. 이에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한다. 또 인생을 사계절로 나눠 60~70대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단풍나무 인생이 사계절 중 절정기인 가을로 접어들었다. 지금 60대를 맞은 베이비붐 세대들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이란 시기로 접어들었다. 100세까지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젊은 시절 꿈꾸었던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꿈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영구가 요즘은 초저녁잠을 즐기고 있다. 프로야구중계방송을 보다가 9회 승부가 결정 나자마자 꿈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불면증에서는 해방되었지만 경비원 근무할 때의 꿈을 가끔씩 꾸기도 하지만 매일 밤 꾸고 있는 꿈이 인생은 60부터란 꿈이다. 옛날에 누군가 말했던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영구에게 꼭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부터 문학 소년이었다. 책읽기를 좋아했고 시인이 되며 소설가가 되는 꿈을 가졌었다. 경비원 취업하기가 어려움을 깨닫고 아예 포기를 한 상태다. 지금까지 삶에 쫓겨 깜박했던 문학인이 되려는 꿈을 이어 나가는 데는 아직 늦지 않음을 깨달았다. 좋은 환경에 태어나지 못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질 좋은 교육기관인 좋은 학교도 가지 못해 좋은 직장을 다니지 못해 국민연금도 없다. 비정규직이나 막노동판에 종사를 하고 자영업을 하며 농사일을 하다가 황혼인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요즘은 100세 세상이라 하니 영구에게는 꿈과 소망이 있다. 영구가 청소년 시절에 들어 왔던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는 60까지 살 수도 없었으며 살아 있다 해도 자기 몸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도록 늙어버린다. 이런 사람에게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말이 가당치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100세 세상을 현실로 맞고 보니 인생은 60부터란 말을 새롭게 꽃 피울 수가 있지 않겠는가. 지금은 비록 경비원을 하고 있고 혹은 일자리를 찾고 있다 할지라도 꿈과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 등산을 한다든지 여행을 한다든지 아니면 그림이나 서예를 하든지 꿈을 만들고 이어나가야 한다. 영구처럼 문학을 한다든지 어떤 분야든지 취미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멋지게 설계를 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초저녁잠이 많은 영구가 꿈속에서 대한민국 경비원들에게 외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잠꼬대를 되풀이 하고 있다. -끝- 맺는말 우리 모두 농부의 손에서 뿌려진 씨앗이라고 소설 속에 썼다. 간혹 밭둑에 뿌려져서 싹도 틔워 보지 못하고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되어버린 씨앗이 있는가 하면 가시밭 잡초들 속에 뿌려진 씨앗들도 있다. 밭고랑에 뿌려진 씨앗들은 농부가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잘 가꾸어 주지만, 잡초 밭에 뿌려진 씨앗들은 이들의 세력이 너무 강해 농부는 풀매기를 포기해버린다. 이런 장애물들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고 결국은 가을이 되어 수확기에 이른다. 하지만 옥토 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을 추수 때는 농부의 손에 잡초들의 씨앗들과 같이 거두어진다. 알곡만 추려지고 옥토 밭에서 자란씨앗들과 같은 곳간에 같은 그릇 안에 담긴다. 농부에게는 옥토 밭에서 수확한 씨앗이나 잡초 밭에서 수확한 씨앗들도 같은 곳간 같은 그릇에 안에 저장하는 것들이라 다 같은 씨앗으로 취급을 받는다. 농부의 손에 수확된 씨앗들은 모두 높고 낮음이 없으며 귀하고 천하다는 개념이 없다. 모두 다 같은 그릇 안에 똑같은 씨앗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잘 자란 갑의 위치에서 자랐던 씨앗이라 해서 으스대거나 높아지려 해봤자, 가시밭 잡초 속에서 수확된 씨앗과 같은 그릇 안에 들어있는 씨앗이다. 농부가 보기에는 모두 다 똑같은 씨앗이라 볼 수밖에 없듯 우주만물 창조주가 볼 때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집안환경이 좋아 죽을 때까지 갑의 위치로 살다 죽게 되면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는 따로 선별해서 취급하지 않으신다. 똑같이 한 그릇 안에 씨앗취급을 한다는 말이다. 아파트경비원이나 청소부를 한다거나 단속적 감시근로자를 하며 인력소개소의 새벽시장에 팔려 공사판에 막노동을 한다든지 3D업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할지언정 인간을 창조한 이는 다 같은 사람 취급을 하니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폄하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또 지금은 비록 내가 을의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뿌리신 이가 거두실 때는 같은 그릇안에 담기는 씨앗이 되는 것이니 꿈과 소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본다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풀을 베어야 했다. 풀을 베다 보면 어쩌다가 잘못해서 불개미집을 건드릴 때가 있었다. 수 천 수만 불개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우성이었다. 불개미들보다 수천 배나 몸집이 큰 사마귀나 개구리라 할지라도 이 들에게 걸려들었다 하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개미집단에는 자기들 나름대로 맡겨진 직책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불개미는 병정개미로 침투하는 적을 막아내는 일을 할 것이며 또, 어떤 불개미들은 식량을 모으며 쓰레기들을 치우는 업무를 맡은 개미들이 있을 것이고, 혹은 새끼들을 양육하는 불개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볼 때에는 수 천 수만 불개미들이 다 똑같은 불개미들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젊고 늙음도 알 수 없고 암과 수도 구별하지 못할 것이며, 그리고 이들의 직책을 알 수도 없다. 이들 불개미들이 제아무리 아우성을 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사람들이 바라볼 때는 그저 다 같은 불개미들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구촌에 인간들이 각자가 그 나라에 대통령이 있으며, 국무총리 국회의원 벼슬아치가 있을 것이다. 남녀노소 건강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부자, 가 있으며 소설 속에 주인공 영구처럼 아파트경비원도 있을 것이다. 지위가 높고 낮음이 구별되어 있더라도 이 세상 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주가 바라볼 때는 모두 다 똑같은 인간으로만 보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혹은 지위가 낮은 가난한 사람으로, 인간세계에서 업신여김을 당하고 살았던 사람이나, 권력을 휘두르고 살았다 할지라도 높낮이가 다르게 보지 않고, 그저 다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볼 때는 수많은 불개미를 전부 같은 불개미로 보이듯, 농부가 수확해 그릇 안에 담은 씨앗을 모두 같은 씨앗으로 보이는 이치이다. 우리는 모두 봄에 뿌려졌다가, 가을에 농부에게 수확되어 한 그릇 안에 들어있는 씨앗들이다. 모두 다 똑같은 한 톨의 씨앗일 뿐이지, 제아무리 자기는 지위가 높은 대통령이다. 수백억을 가진 부자였다. 힘이 센 장사였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앞에 가면 자기의 내력을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듬해에 밭에 다시 씨앗을 뿌릴 때는 좋은 옥토 밭을 골라서 뿌려 준다는 것이다. 겸손하지 못하며 교만하고 배려와 사랑을 주고받는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씨앗들은 선택을 받지 못하고 씨앗으로서 생명이 끝난다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13장의 성경원리이다. 이에, 우리 인간은 더 크다고 주장할 수 없는 똑같은 인간이란 타이틀을 갖고 태어났기에 동일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부자라고, 많이 배웠다고, 건강하다고, 해서 가난한 자와 많이 배우지 못한 힘이 약한 아파트경비원 일을 하는 노인들과 청소근로자들과 3D업종의 일을 하는 사람이나 그리고 몸이 약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인격을 무시하며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인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눈이 나빠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안경을 써야 했다. 안경을 맞춰 쓰기 위해 안경점을 찾으면 비로소 사람대접을 받는 것 같다. 내가 다니는 안경점에서는 시력검사를 할 때가 되었다느니, 나의 생일날은 축하한다는 문자가 들어오기도 한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약국에서도 드링크를 따서 주기도 하고 친절한 모습을 볼 때, 아! 나도 이런 데를 오니 사람대접을 받는구나, 느끼기도 했다. 음식점에를 가도 그리고 구멍가게에 음료수를 사 먹으러 갔을 때도 주인은 친절하게 맞이한다. 그러고 보니 안경점이나 약국과 음식점에는 내가 그들에게 이익을 창출해 주는 고객인 것이다. 이들이 나의 나쁜 눈을 본체만체한다거나, 약국에서 나에게 약을 팔기를 거부하며 배고픈 나에게 식당에서 밥을 팔지 않는다면 나는 바로 낭패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서로 더불어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다. 음식점에서는 배고픈 나에게 시장기를 면해주는 고마운 분들이며, 내가 음식점에 지불한 음식값이 이들에게는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 주었으니 내가 고마웠을 것이다. 안경점 주인은 나에게 시력을 맞춰주고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고마워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안경점 주인은 내가 값을 치러준 돈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갈 것이다. 만약에 물건이 필요한데 파는 사람이 없다거나 물건을 팔려고 하는데 사는 사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경비원을 부리고 있는 아파트나 시설관리소에서는 경비원을 급여를 주고 당연하게 부리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들이 할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더 나아가 더불어 산다는 개념을 갖는다면 즐겁고 행복한 꿈의 동산이 될 것이다. 만약에 어느 아파트에 경비원이나 청소부가 그 아파트에서 일하기를 거부를 한다거나, 전기를 공급해주는 업체에서 전기 공급을 거부 한다면 그 아파트공동체 주민들 모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파트경내를 경비를 서주고 청소를 해주며 주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전기를 공급해 주는 업체에 감사해야 한다. 업무를 대신해주는 관리소직원들과 경비원들은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대신 주민들이 주는 보수로 먹고 살아가니 서로가 상부상조하는 입장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동등한 입장인 것이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의 저울추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동등한 것이 아니다. 경비원이나 청소부들에게 급여를 준다고만 하는 의식을 갖지 말고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이니 말이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갑을 넘겨 살기가 어려웠다. 옛날에는 회갑까지 사는 사람을 축하해주기 위해 회갑잔치를 자녀들이 성대하게 열어 주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회갑잔치가 사라졌다. 나도 회갑 지난 지가 몇 년 되었지만 평소 생일 쇠듯 그냥 넘기고 말았다. 자녀들이 아무런 언질도 없었고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아무란 얘기도 없이 회갑을 넘겨버린 것이다. 70이 되어 고희연을 열어 줄는지는 아직 모른다. 모두들 지금은 수명이 늘어나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세상이라서 60이 넘은 사람들도 힘이 넘쳐나는 건강을 유지 하고 있으니 각자의 처해진 형편에 따라서 자기의 체력에 맞춰서 일을 하는 것은 신선한 일이다. 정년퇴직하기 전에는 연봉이 5~6천이 혹은 억대연봉이었다 할지라도, 아파트경비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직의 지위가 높고 낮든 간에 우리는 다 같은 인격체를 갖추고 있다. 서로 상부상조 하는 사람이 다고 인정해야 한다. 아파트 입구에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늙은이를 주민들이 보수를 주고 채용했다는 개념을 버리고 서로 도우며 주고받는 더불어 사는 관계임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명랑사회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와 같이 농부가 뿌린 씨앗과 산에 불개미를 예를 들어서 표현했다. 그리고 물건을 파는 자와 사는 자의 예를 들어 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남자와 여자가 살고 있고 지위가 높고 낮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다. 나이가 많고 적은 사람, 건강한 자와 병든 자 학력이 높고 낮은 사람이 있어 갖고 있는 직업과 높낮이가 다르지만 창조주가 볼 때는 다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는 일이 각각 다르지만 그 사람의 직업을 서로 존중해 주어야 좋은 사회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권을 똑같이 부여받았다. 모두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 위에 살면서 같은 자연 속에서 같은 공기로 호흡을 하고 있는 인간이란 타이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각자가 주고받는 관계이다. 주는 것은 남에게 파는 것이 되고, 받는 것은 남에게 사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고받는 것은 곧, 인격체를 갖춘 자들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방적으로 사랑을 팔기만 하고 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대로 사기만 하고 팔지를 못한다면 우리가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앞서 설명했다. 지구촌에 사람들이 주고받는 저울추가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치우친다면 세상은 멸망하리라 본다. 우리 모두 평형을 맞춰 동등하게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농부가 거둬들인 씨앗이 모두 같은 씨앗으로 보이듯,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 분이 바라볼 때는, 모두 다 똑같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모두 공수래공수거라는 창조주의 공평한 법칙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카페--씨엔디자인 |
첫댓글 한세상 산다는게 참 힘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