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 동기부부들은 합천군 황매산에 철쭉제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행사에 문화기행이란 우아한 제목을 붙였을지라도 문화라기엔 좀 평범하고 기행이라기엔 소박해서 그냥 동기 부부끼리 소풍 다녀온 셈이지요. 자갈치아지매들 표현을 빌자면 마~ 버스타고 우~ 가서 철쭉 구경하고 한우 먹곤 다시 버스타고 우~ 부산 온겁니다
소풍이라니 어릴적 코흘리개 시절의 그 소풍만 생각하겠지만 어느 스님의 말처럼 인생길 자체가 소풍인데 나이 먹었다고 소풍길이 소풍길 아닐 수 없어서입니다. 소풍이 원래 그렇지만 시끌벅적하고 잘 먹는데다 막힌 것도 없어 자유롭지요. 이처럼 소풍은 즐거운지라 보통 전날 밤부터 잠을 설치게 되는데 나이완 상관없이 역시 잠을 설쳤답니다
이제 올해 3월 이후론 우리 동기들 가운데 7순고개 넘지 않은 친구는 없습니다. 하여 늙다리란 표현이 과하진 않을 텐데 그럼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장수에 관한 신개념 실천에 몰두중인 친구들껜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늘상 보던 친구, 뜸했던 친구, 원정지원차 온 서울친구들에다 여전한 미모의 사모님들 포함해서 최종 75명이 랄랄라 소풍을 떠났습니다. 몇 친구가 처음 참가신청하였다가 빠졌다 다시 들었다하는 바람에 진행과 회계를 맡은 사무총장님의 주판알이 좀 바쁘셨답니다
출발 당시 우리의 버스가 늦게 도착하였다거나, 아침밥 대신 준비한 약밥이 참 좋았다거나, 날씨도 그렁저렁 받쳐주었다거나, 우리 버스 기사가 남해출신의 우리 또래란 점 이라던가, 황매산에 등산이 아니고 꽃구경 온 거라면 철쭉군락지인 정상부근까지 택시합승이 답이라는 정보라던가, 원정온 서울동기의 노래는 여전히 출중하였다 등의 얘기는 오늘 주제를 위한 아름다운 장식 파트라 대충 줄이겠습니다
황매산의 철쭉은 합천군의 자랑이듯 대단히 넓은 군락지를 이루고 있고 만개시 그 화려함은 사진으로 다 담기도 불가능하다는데 우리가 택한 날짜는 아쉽게도 시기가 약간 늦어 약 절반의 꽃군락만 보았습니다만 여전히 우리의 심신을 분홍으로 물들일 만 하였습니다. 현장가서 놀랐던 건 평일임에도 수많은 차량과 인파로 넘쳐나 우리나라에 철쭉을 사랑하는 인구가 이다지도 많았던가 하는 점입니다
어쨌거나 물밀리듯 올라갔다가 물쓸리듯 내려오는 짬짬이 포토존을 잡아 부부끼리 또는 합동으로 열심히 아름다운 시간들을 사진으로 많이 많이 잡아두었습니다. 사진보고 찍사 탓을 하면 사진속 인물만 빼면 명품사진이란 말로 응수하는 개그고수의 일품개그를 산어림에 남겨두고 황매산의 철쭉제 기행은 온통 분홍색칠로 알록달록 마무리졌습니다
버스를 두 대나 대절할 정도로 많은 동기가 참여한 케이스도 특별하였지만 이런 동기회 모임에 오랜만에 함께한 집사람의 한마디 촌평이 가장 머리를 스칩니다. 다들 참 둥글어졌어요~!
그 말 듣고보니 인사와 대화를 나눈 친구들의 여러 모습과 표정 그리고 근황 등이 새삼 어우러져 이 말이 참 들어맞다는 생각이 강렬해집니다. 허나 누가 어떤 말을 하였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다거나 누구의 근황은 어떻고 누구는 여전히 경제력이 좋거나 힘들다 등의 얘기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으리란 생각입니다. 다만 10년전만 해도 어딘가 모나 보였던 친구는 얼굴에서 이미 그 결기가 사라졌고 알게 모르게 몇가지 아픔을 간직하였던 친구는 또 많이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병마와 싸워 이젠 건강이 얼추 회복된 친구의 밝은 표정하며 많은 인생경험을 통해 반쯤 도인이 된 친구에 이르기까지 이리저리 깎이고 깎인 둥글둥글한 모습들이 남해안 몽돌해변의 그 아늑한 편안함을 마냥 던져주고 있었지요. 누가 잘났고 누가 아팠고 누가 풍부하였고 누가 힘들었던가의 기준은 이제 쓸데없는 키재기에 불과할 뿐 오로지 만나면 무조건 반갑고 이뿌고 더 보고파지는 깊은 우애의 자리였습니다
칠십이란 나이는 참 여러모로 언급되는 나이이기도 하는데요. 인생칠십고래희란 싯귀절을 회자시킨 두보에 이어 공자께서도 칠십이면 從心所慾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란 잠언을 남기셨지요. 지금은 칠십이 그리 귀해진 나이가 아님을 보건대 두보의 싯구절은 바뀌어야 마땅하나 마음내키는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란 聖人의 말씀은 여전히 뚜렷하게 밝습니다
둥글둥글한 친구들의 아름다운 꽃소풍이었습니다
* 관련 사진은 작가동기인 재섭공이 올려줄 걸로 기대합니다
* 관련 기행문으로 안정규 동기가 카카오스토리로 세세한 일정과
사진 그리고 황매산의 지명유래 등을 잘 올렸습니다. 링크되는 분들은
보시길 추천합니다
첫댓글
소풍간 친구들 일일이 언급하기는 생략하였지만
서울에서 합류해 부산동기들의 소풍길을 빛내준
서울친구들은 밝혀야 되겠습니다
다들 하루 전날 부산와 일박하곤 참여하였는데
추재희는 한우식사자리에서 네순 도르마와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
무려 5곡을 불러줘 우리 자리의 품격을 한껏 높여 주었습니다
다 알듯이 그의 노래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맑은 고음으로
서빙하던 한우집 도우미들도 힐끔힐끔 곁눈질하느라
고기굽는 거 거들다가 타는줄 몰랐단 후문이 돕니다
또 타고난 산악인 안정규도 황매산 정상까지
도보로만 시간을 맞춰 노익장의 본태를 보여 주었고
하회탈 이홍걸이도 참여해서 우정의 깊이를
새삼 확인해주고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당일날 안정규는 황매산에 정작 매화가 보이지 않는다며
매우 궁금해 했는데 귀가후 카카오스토리에 세세한 여정을 비롯
황매산의 지명유래까지 상세히 밝혀 산악인으로서의
산에 대한 애정을 여실히 드러내었습니다
풍수지리적 근거 등 여러 자료들을 잘 취합하여 기행문을
짜임새있게 잘 썼더군요
서울친구들,
글 올린 김에 집행부를 대신해 감사인사 올립니다~!
소풍도 둥글둥글하고 일흔 고개 넘긴 동기들도 둥글둥글, 그리고 이를 전해 주는 일수 선사의 글마저도 둥글둥글하네요.
종습네다! 그리고 또 봄철 하나 자나가나 봅네다.
보름달처럼 둥글둥글한
월명법사께서 圓融의
댓글 멋지게 달아주시는군요
그래도 이번봄 한철은 황매산의 분홍빛이라
식었던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
둥글둥글한 분위기를..그에 걸맞는 둥글한 분위기의 글로 스무드하게 적어내니..
역시 일수는 뛰어난 글쟁이가 분명하다 봅니다.
쳐낼 부분들을 과감히 쳐내었음에도..전체 내용이 둔탁치 않고 매끄러이 둥글하니
더우기나 그렇게 여겨지는군요.
영화에서도..그 장면의 분위기에 걸맞는 연출을 해내는 감독에게 큰 상을 내리게 되지요.
일수의 글을 보자니..이런 분위기에 함께 동참하지 못하고.. 주어진 귀한 세월을 계속
까묵어 가고 있는 서토의 처지가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지다 못해 ..
빠삐용처럼, 인생을 낭비한 죄의 언도를 받고.. 머나먼 섬에 갇혀 있다는 착각마저 드는군요.^^
부부합쳐 70여명이면..약 40명의 동기가 함께 한 셈인 바..
이 숫자가 더 줄어들기 전에.. 기어이 함께 하는 기회를 잡아봐야 댈낀데 ..참..
서토의 과분한 칭찬에 괜히 면구스러워집니다
처음엔 생각도 않았으나 동참한 집사람의 한마디 소감에
친구들의 둥글둥글한 모습이 다시 떠올라 이를 놓칠새라
떠밀리듯 자판앞에 앉게 되었지요
이 감정도 출발 당시엔 조금 스물거릴 정도였지만
귀향시점이 되니 웬지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답니다
부산으로 출발직전 나도모르게 벌떡 일어나
2호차로 달려가선 차에 올라 한 친구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부산가서 다시 보자 외치곤 내 차로 돌아왔지요
정말 오랜만에 중학교 때 짝지였던 갑성이를 만났는데
그 순간 애들마냥 목에 초크를 걸어 켁켁거릴 장난을 쳤으니
내 나이가 7순이 맞나 어리둥절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선이 내게만 온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날 친구들의 표정은 확실히 예전과는 뭔가 달라 보였죠
홀로핀 꽃이 없듯 사람도 마찬가지라 남가주라 해서
빠삐용의 섬이 될 수 없다 여겨집니다
물론 이곳보단 인원수가 적겠지만 오히려 그 오가는 정이
더 두텁고 훈훈하리란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모난 데 없는 서토인데 이 칠순엔 얼마나
더 둥글어졌을까 상상만으로도 따스한 미소가 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