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등신불’과 교각스님
지난 2003년 11월23일. 성덕왕 19년(720) 중국으로 구법만리길을 떠난 김교각(696~794)스님이 ‘아시아나항공편’으로 서울 강남 봉은사로 귀향, 1200년만에 조국땅을 밟았다.
한중(韓中) 대표로 구성된 이운단 177명은 중국 구화산 현지에서 인천공항까지 전세기를 통해 이운했다. 한중불교연합회의 주관으로 한국으로 귀향한 김교각스님의 입상은 중국 현지에서 새롭게 조성한 높이 2.5m 규모 목조상으로 열반직전까지 75년간 면벽수행을 하면서 중생교화에 앞장선 스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지금은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봉안돼 있다.
김동리 소설 ‘등신불’
김교각스님 모티프
소신공양으로 형상화
성덕왕의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승이 되어 스무살 나던 해 본래면목을 찾아 중국으로 만행을 갔던 김교각스님. 스님은 우리나라 나이로 아흔아홉살, 안휘성 구화산에 들어온지 75년만에 법상 위에서 입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법체가 썩지 않자 문도들은 탑을 세워 그곳에 육신불을 안장했고, 그 탑의 이름을 육신보전(肉身寶塔)이라 했다. 이 곳의 교각스님은 고된 수행을 하는 형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신체는 아주 크지만, 뼈가 드러나 마치 마른 땔나무와 같다.
중국 안휘성 구화산 육신보전 내 지장보살탑. 사진 왼쪽 김교각 스님.
십전염라왕이 양쪽 곁에 있는데 모두 왕의 옷을 입고 있고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책상 앞에는 여러 형식의 빚어서 만든 작은 상들이 있는데 각종 형태의 지옥과 생사윤회를 표현하고 있다. 구화산은 중국 4대 불교성지의 하나가 됐고, 현재 99개의 사찰이 들어서 있으며 높이 99m에 달하는 구리 지장보살 대동상도 세워져 있다.
김교각스님의 이야기는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의 모티프이기도 하다. 1961년 11월 <사상계> 101호에 발표된 단편소설 <등신불>은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만적의 소신공양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작품. 소설은 불교사상이 보여주는 삶의 번뇌와 한계상황, 그리고 인간의지를 통한 초극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인간적 아픔과 슬픔을 성불의 경지로 승화시킨 만적의 대승적 의지를 통해 살신성불의 비장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김동리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과 번뇌, 이에 대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는 작가다.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에서도 유사한 상징성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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