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eau Lodge (고원별장) in Hoover Lake, B.C.
밴쿠버에서 4시간여 코퀴할라 하이웨이( Coquihalla Highway )를 달리면 독특한 사막 지형인 캠룹스( Kamloops )에 도착한다.
그 소도시의 Jamieson Creek turnoff (Jameson Creek Forest Service Road)에서 시작되는 흙먼지가 안개처럼 앞을 뒤덮는 비포장도로로 한 시간여 가면 차를 주차할 수 있는 넓다란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 주차한 후, 백팩을 짊어지고 트레일 코스로 20여 분 내려가서 호수의 언저리 가운데서 배를 타고 또다시 20여 분 노를 저어야 도착하는 곳.
그곳은 덩그러니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후버 호수만이 감싸고 있는 Plateau Lodge (고원별장)이다. 온전히 태양열 (Solar Power System)로 전력을 대체하고 프로판 가스를 사용하는 곳으로 2009 년에 재건축을 했다.
10여 년 이웃인 친절하고 다정한 옆집 변호사 아저씨, 브라이언. 그의 배려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제일 좋은 방에서 우리 부부는 2박 3일간의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첫날은 여정의 피곤함에 지치기도 하고 무더워서 늦은 오후에 호수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도크 (Dock) 바로 앞의 물이 어찌나 맑은지 엄청난 수의 작은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있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새끼 무지개송어 떼와 함께 수영하다니 참 행운이다.
우리보다 먼저 온 게스트들을 호수 반대편 언저리까지 작은 배로 노를 저어 태우고 주차 장소까지 트래일을 안내하고 다시 돌아온 브라이언 아저씨. 오는 길에 산불에 망가진 트레일이 위험하지 않도록 발에 걸리는 돌을 치우고 가지를 쳐내며 손보고 고령에도 지친 기색이 없는 그의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숯검정 묻은 손과 옷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
아저씨를 위해 준비해서 짊어지고 온 양념갈비를 바베큐 그릴에 구워 조촐하지만 정성스러운 식사를 준비했다. 아저씨의 조카 코리 (Cory)도 함께 다들 연방 맛있다며 잘 드시는 모습이 흡족했다.
캐빈으로 오는 길에 마주한 트레일은 작년의 전례 없는 초대형 산불로 새까맣게 숯처럼 변해버린 참담한 모습이 사뭇 충격적이었다. 1년 여 만에 산불의 화마가 스치고 간 그 자리에 숲은 자연의 놀라운 치유력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바닥을 온통 연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듯 회복하고 있었다. 신비로운 자연의 힘 앞에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저씨도 코로나와 산불로 지난 2년 동안 이곳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최근 7월 중순, 호주에서 매년 여름 방문하는 딸과 사위, 손녀와 손자 그리고 다른 세 딸과 아들 가족을 포함한 대가족이 오랜만에 일주일간의 오붓한 휴가를 즐겼다 한다.
아저씨의 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프랑스인 혈통이다. 어릴 적 11살까지 유콘 준주 (Yukon)의 군영 (Military camp)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1942년 알라스카 하이웨이 건설에 한몫을 담당했다. 1942년 3월에 공사를 시작해 그해 11월에 완공해서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는데 총길이 2,232km의 2차선 도로를 그렇게 단기간에 건설했다는 것이 지금도 놀랍고 믿기지 않는다.
그 이후 아저씨네 가족은 밴쿠버로 이주해 왔고, 아버지가 광산 사업을 하셨다고 한다. 옆집 변호사 아저씨는 세계적으로 크고 유명한 법률 회사의 파트너 변호사로 지금도 현역으로 열심히 세계를 누비며 일하신다.
우리가 처음 작은 일식당을 인수했을 때 임대계약을 꼼꼼히 훑어봐 주셨다.
얼마 전 작년의 물난리로 인한 보험 건에도 아낌없는 조언과 직접 보험 회사 담당자와 여러 차례 연락하시고 우리에게 불이익은 없는지 하나하나 살펴주시고, 필요한 조처를 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가까운 옆집 이웃을 가족처럼 무료 봉사해 주시는 그런 따뜻한 분이시다.
특히나 호주에서 매년 방문하는 딸네 가족이 우리 스시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몇 차례씩 가족이 함께 오셔서 식사를 즐기곤 한다. 올 때마다 가족이 늘어나 있고, 아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예쁘게 성장하는지 그걸 지켜볼 수 있는 것도 큰 기쁨이다.
옆집 브라이언 아저씨가 2009년에 새로 지은 본관은 3000 sqft가 넘는 2층 건물이다. 작은 오두막까지 합치면 3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숙식할 수 있는 시설이다. 건물 자재와 식료품 등 필요한 것들은 모두 헬기로 운송한다. 아저씨가 별장 구석구석, 캐빈 하나하나 안내해줬다. 호수의 물을 파이프로 끌어와 채워놓는 커다란 물탱크며, 오수 시설 등등…
건물 안에는 친구들과 손님들이 남긴 의미 있는 기념품으로 넘쳐난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사진 찍고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둘째 날 아침나절, 낚시를 했다. 후버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처음 경험하는 낚시에 흥분되고 설렜다. 생전 처음 낚싯대를 잡은 엉성한 손놀림을 물고기들이 알기라도 하듯이 두어 번 입질을 하고는 달아났다. 처음부터 무얼 낚겠다는 기대를 안해서인지 서운하지 않았다.
마냥 좋았다. 아담한 후버 호수의 일렁이는 물빛의 변화에 마음을 온전히 빼았겼다. 호수의 물색이 원래는 투명한데 빛과 주변 장소의 모습이 비쳐서 물의 색이 달라보인다고 했다.
숲의 나무들이 반영된 초록색 호수,
하늘빛이 반사된 파란색 호수,
낙조의 오렌지빛으로 물든 노을 색 호수
후버호의 물색이 좋아서 떠나기가 싫어라…
이곳에 있는 동안은 온통 소리에 민감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마음과 귀를 열어 온전히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날개를 펼쳐 날아오를 때 붉은 깃털이 너무도 예쁜 붉은 날개 검은 새 (Red- winged blackbird)
하루에도 몇 번씩 방문하여 작은 배를 채우며 먹는 거에 진심인 귀여운 다람쥐 (Squarrel)
네 마리가 날아와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한 마리씩 차례로 먹고 날아가는 질서정연한 회색어치 (Canada Jay / Gray Jay / Whisky Jack)
터키 옥색의 가느다랗고 예쁜 실잠자리 (Damsel fly)
밤에 들리던 늑대 울음소리 (Wolf howling)
목청껏 아침을 깨우는 고함소리의 주인공, 아비 새 (Loons)
쏟아질 듯 수많은 눈부시게 빛나던 별들 (Milkyway galaxy night sky)
둘째 날 오후, 브라이언 아저씨와 코리는 밴쿠버로 돌아갔다.
어릴 적 네다섯 살 때부터 이곳 캐빈을 찾았다는 Travis가 부인 Tiffany와 딸, 아들 그리고 사냥개 Boon까지 데리고 저녁 무렵 도착했다. 브라이언 아저씨의 캐빈에는 냉장고, 냉동고 그리고 일 년 이상은 너끈히 먹을 온갖 종류의 마른 식자재가 캐비넷마다 그득했다. 매해 헬기로 이송해온 식료품들이다.
어차피 우리가 먹을 저녁을 준비해야 하기에 새로운 방문객을 위해 넉넉하게 파스타와 치킨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브라이언의 벙커에 차곡차곡 쌓인 맥주와 팝 와인도 곁들여졌다. 사냥과 보안요원의 사격 훈련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Travis는 장신의 체격과는 다르게 소식하는 가족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자연스레 아들과 딸이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아이들과 부인도 참 순하고 수더분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8개월가량 된 Boon은 이름도 못 들어 본 귀한 사냥개 품종으로 미국에서 입양해 왔다 한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 주로 생고기를 먹이는데 이번 여행에는 물에 타먹이는 고기 사료 큰 백을 챙겨왔다. 가족은 먹는 거에 건성인 반면 Boon은 세끼를 정성으로 챙겨 먹이는 게 신기했다. 녀석은 아직 천방지축 날뛰는 강아지라 아침 인사로 나에게 키스 폭탄을 퍼부었다. 녀석에게 정이 갔다.
셋째 날, 노 젓기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이 없었기에 함께 낚시를 가고 싶었지만 그런 나의 욕심을 내려놓았다. 이들 가족도 2년 만이라는데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으리라. 사실 하룻밤 더 자고 싶었다. 후버호에서 느긋하게 수영도 즐기며….
브라이언 아저씨의 방명록에 한 페이지를 꽉 채우는 글을 쓰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덱 (Deck)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다람쥐와 회색어치, 새들의 온갖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2시경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했다.
Travis와 그의 아들, Fin이 함께 가줬다. 노를 저어 호수 반대편 언저리 가운데쯤 배를 묶어두었다. 남편과 나는 오렌지색과 파란색의 리본을 찾아 트레일을 오르려 했는데 고맙게도 우리 짐을 나눠서 지고 파킹장까지 앞장서 동행해줬다. 가는 도중에 곳곳에 멈춰 서며 이 회색 배설물은 늑대나 코요테의 것이고, 저 발자국은 사슴이 이쪽으로 지나간 것이고, 저쪽 풀들이 이렇게 눕혀져 있는 건 짐승이 남긴 흔적이라고….
참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그 속의 야생동물과 온갖 새들과도 교류하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가르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잠깐 나눈 대화를 통해 아들 Fin은 11살인데 벌써 경비행기 레슨을 받고 있고 커서 여객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캐빈에서도 드론을 날리며 가족들의 즐거운 한때를 동영상에 담고 있었다. 아들과 딸 둘이서 노를 저어 호수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모습이 내심 부러웠다. 이들은 참 행운아들이다. 자연 가운데에서 자연과 더불어 한 몸처럼 숨 쉬며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걸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며 자랄 수 있기에…
돌아오는 길에 야생 소떼들을 보았다. 천천히 뒤따라가는 우리 차를 의식해서인지 빨리 길을 내주려 뛰어가며 우리를 배려해주는 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2박 3일의 짧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을 선사해 준 다정하고 친절한 옆집 아저씨 브라이언 (B.E.A.)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첫댓글 멋진 별장도 추억거리지만
아름다운 마음씨의 이웃은
감동입니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착한 이들 곁에는 착한 이들이...
부럽고, 저도 감사하네요.
아름다운 이웃들에게
늘 건강하시고 어울어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옆집 아저씨 브라이언은 매번 저희 식당에서 식사 후 음식값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꼭 현금으로 주십니다. 처음에는 엄청 부담이 됐었는데, 지금은 그만큼 우리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좋아하신다는 성의표시로 받아들입니다.
밴쿠버 갈 때마다 하룻밤 자는 곳이었는데
사막 지대라
트레일이 있는 줄 몰랐네요.
좋은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으셨네요.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트레일 좋아하시죠?
좋은 공기 마시며 무리가지 않게 걷는 운동이 최고인 것 같아요.
건강 잘 챙기십시다!
혜진씨는 무슨 복을 지었을꼬. 그렇게 좋은 이웃을 만났으니 ...
짧지만 이렇게 멋진 trip 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 도시가 몇이나 되겠냐구요??
여름의 낭만을 한 조각 품었으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림 같은 추억이 일상에 활력소가 되길 ...
참, 눈은 좀 어때요??
제가 무슨 복을 지었다기보다는 아마도 남편이 너무 착하게 살아서 받는 축복인 것 같아요. ㅎㅎ
이번 휴가에서 얻은 활력으로 또 버티고 열심히 일해야지요.
우리 음식을 먹는 손님들이 행복해 하는 게 더할나위없이 보람되고 힘이 되지요...
우리 식당에는 정말로 좋은 단골들이 많답니다. ^^
감사합니다. 🙏
짧은 여행이었지만 많은 것을 담아 오셨네요.
자연 속에 감추인 또다른 자연을 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이웃과의 만남도 축복이지요.
남은 여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선배님, 더운데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좀 아쉽지요. 갑자기 잡힌 휴가일정이고, 휴가철 성수기라 더 머물진 못했네요...
아쉬움이 남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ㅎㅎ
건강하시고 날마다 행복하세요! ^^
다음 주(8/19)조선일보에 게재합니다.
2회에 나눠서 ...
감사합니다, 소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