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은 서커스에서 유명한 외발자전거 곡예사였다. 1941년, 독일의 침공으로 전쟁이 터지자 그는 조국을 위해 입대하기로 했다. 그때 우연히 보인 게 자전거 부대 포스터였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 유격전을 수행하는 부대. 외발자전거의 명수인 그에게 이 이상 적합한 보직도 없으리라. 그는 망설임 없이 근처의 모병관에게 달려가 말했다. "자전거 부대에 입대하겠습니다."
이반은 그의 경력을 인정받아 정말로 자전거 부대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부대에서 그를 반겨준 자전거는 접이식 두발자전거였다. "앞으론 이걸 타도록 하게." 소대장이 가리킨 국방색 자전거는 크고 단단해 보였다. 이반은 작고 가벼운 외발이 좋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실망으로 굳은 입술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후 1년간, 이반은 두발자전거만 타고 다녔다. 여러 전장을 지나고 해를 넘겨도 그의 엉덩이 아래 깔린 안장은 두발자전거의 것이었다. 편리했지만 이반은 적당한 긴장감과 무대의 향수가 전해지는 외발자전거가 그리웠다.
그해 8월, 기회가 찾아왔다. 독일군에게 포위된 스탈린그라드를 구하기 위해, 이반의 자전거 부대에 적의 보급기지를 폭파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민간인으로 위장해 독일군 점령지 안으로 침투해야 하는데 자전거를 타는 이는 들여보내 주지 않는단다. "걸어서 가기엔 시간이 안 맞는데... 의견 없나?"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독일군 점령지 외곽에서 보급기지까지 자전거 없이 갈 방법을 누가 생각해낼까. 그때 이반이 손을 들었다. "외발자전거를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이반에게 집중되었다. 소대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말했다. "그건 무슨 모스크바에서 북극곰 잡는 소리인가 동무?" 이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양 뺨이 토마토라도 터진 듯 빨개졌으나 이내 천천히 계획을 설명했다. "곡예사로 위장해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거기에 달랑 외발자전거 하나만 들고 가면 뭐라 의심도 못할 겁니다." 소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한, 나치의 군대라도 곡예사가 없진 않을 테니 일리가 없진 않았다. 결국 작전은 이반 혼자 외발자전거를 타고 침투하는 거로 결정되었다.
외발자전거를 등 뒤 가방에 멘 이반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독일군 검문소 앞으로 갔다. 그의 외발자전거는 눈길을 끌었지만, 독일군은 순순히 그를 들여보내 줬다. "곡예사들 모이는 데는 저기 사단본부요. 늦으면 안 좋은 꼴 보니까 빨리 뛰어가쇼." 이반은 연신 허리를 숙이며 검문소를 지나갔다. 몰래 한숨을 내쉰 이반은 지평선 너머로 검문소 군인들이 사라지자 냅다 외발자전거를 타곤 머릿속에 기억된 장소로 달렸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안장이 부모님 품처럼 그의 하반신을 껴안았다. 근육을 타고 전신을 휘감는 특유의 긴장감. 머릿속으로 재생되는 관객들의 환호. 오랫동안 즐거움을 잊었던 심장이 물 만난 듯 신나게 두근거렸다. 어두워질 무렵. 멀리서 철십자 깃발이 걸린 단층 건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목표였다. 이반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외발자전거. 정확히는 안장 밑에 숨겨진 조그만 수류탄. 이걸 창고 입구에 정확히 꼬라박아 탄약을 유폭시키는게 작전의 핵심이었다. 한 치라도 어긋나선 안 되는 일이지만 이반은 자신 있었다. 그는 페달을 더욱 밟아 속도를 높였다. 거리가 가까워져 경계를 서던 독일군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 곧 외발자전거와 헤어질 시간. 이반은 이대로 사랑의 도피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의 양심은 조국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난데없이 달려오는 외발자전거에 경비병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이반은 창고 입구를 향하도록 방향을 수정했다. 그리고 외발자전거에서 뛰어내렸다. 공중제비를 돌면서. "잘 가, 내 친구." 다음 생엔 꼭 전쟁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길. 주인 없이 홀로 달려가는 외발자전거를 보며 이반은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독일군이 총탄을 갈겨댔으나 이미 늦었다. 정확하게 창고 입구를 향해 달려간 자전거는 탄약을 옮기던 병사 옆을 스치고 안으로 들어가 탄약 상자에 꼬라박았다. 그리고 이안의 귓속에 굉음이 터졌다. 땅바닥에 엎드린 이반이 본 것은 불덩이가 된 창고였다.
이반은 영웅이 되었다. 기습의 효과는 엄청나서 당시 창고 옆에 주차되어 있던 전차 4대까지 한꺼번에 날려버렸다고 한다. 훈장을 받고 특진까지 한 이반은 그 후로도 자전거를 타고 많은 활약을 펼쳤다. 전쟁 이후, 독일군 창고가 있던 지점엔 '이반'이라는 자전거 전문점이 생겨났다. 독소전쟁의 전직 군인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이 가게에선 지금까지도 외발자전거만 취급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