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엄숙하고도 거룩한 삶의 방배가 쌩쌩 오토바이 소리가 아주 간간히 들리는 시방 벌치가 사는 사우동 집으로 삐꺽 삐꺽 노 젓는 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있다.
오전 한시 십육 분. 이 시간을 떠나면 아빠 벌치는 삶을 잘 못 살았다고 후회할까싶어 한 모금 커피를 마시며 마치 눈썰매장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귀염둥이 어린 딸 우리 0유를 꼭 붙들어 안고 좋아했던 것처럼 지금이라는 이 시간의 귀한 배를 꼭 끌어안고 미소를 함박 지어보면서 좋아라 한다. 그리고 시간의 거룩한 배가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의 미래로 노 저어 더 나가기 전에 오늘 막 기분 좋게 떠오른 벌치 아빠의 그 보석보다 상구 찬란한 추억의 꽃 한 가지를 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안겨주고 싶어 이렇게 벌치 아빠의 책상에 썩 잘 생기지 않은 똥대를 살그머니 들이밀어 보게 되었다. 이제 눈을 뜨는 딸 귀염둥이의 아침이 벌치아빠의 선물로 이냥 즐거웠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벌치아빠의 바람으로 삐거덕 삐거덕 소리 나는 노를 저어 아빠가 살았던 가랑구지 너의 증조할아버지가 너의 할아버지한테 재금 내준 그 멋진 집으로 한번 방배를 타고 가보자꾸나. 마당은 동네 아이들이 찾아와 뛰놀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었고 마당가 언저리로는 너의 할아버지를 은밀히 사모했던 아빠 친구 0봉이 엄마 말로 화단이 부러움에 시샘하리만치 예쁘게 꾸며져 있었단다. 거기에는 아빠는 아주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뿐 꽃나무가 한 두 나무도 아니고 여러 개가 자라나면서 꽃을 화려하게 피우고 있었단다. 0봉이 엄마가 들려준 말로 백합이 그렇게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워 그 곳을 지나칠 적마다 꽃 한 송이를 톡 따가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끼곤 했단다. 그리고 또 집 본채를 두고 오른 쪽으로는 떡방아를 찧는 절구통, 아빠가 썼던 말로 도구통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곁에는 아름드리 감나무가 한 그루 있어 가을이면 거기에 홍시감이 붉게 노을처럼 매달려 있는 것을 아빠도 보곤 했었지. 어때 딸 아빠가 말하니까 아빠가 태어난 집 너무 근사하지 않니? 그리고 그 새집 본채를 보고 왼편으로 뒷간이 딸린 제법 큰 작은 채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닭을 치는 닭 집도 있었단다. 꼬꾸댁 하는 벼슬이 붉은 것이 아주 이뿐 닭 말이다. 그 집에서 아빠가 몇 살까지 살았느냐하면 태어나서 다섯 살 먹을 때까지 그 집의 닭들과 함께 살았단다. 아빠 세 살 무렵인가 네 살 무렵인가 할 때였단다. 벼슬 예뿐 닭, 이놈의 닭을 사람들은 달구새끼라고 불렀지. 그래 그 달구새끼들이 몇 마리 제 집에서 나와 어정어정 마당을 바장거리며 모이를 찾아먹고 있을 때 어린 벌치아빠는 그 닭들이 이뻐 특히 벼슬이 예뻐 그것을 꼭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단다. 그래서 그날 햇살이 마당에 아이 놀기 좋을 만큼 따시게 퍼져 있을 때에 그놈들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갈 작정을 한 것이란다.
그때 아빠는 손을 씻고 세안을 하는 수돗가에서 빨래하시는 엄마 꽁무니 뒤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놈의 달구새끼 중 한 마리가 우리들 곁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이런 겁 대가리 상실한 놈을 보았나! 하고는 그 놈 곁으로 한 걸음 발을 사뿐 내밀게 되었지. 그래도 이 겁 따구 상실한 녀석이 도망을 가지 않고 오히려 아빠 총명한 눈을 빤히 쳐다보며 껌뻑껌뻑 한 번 만져보고 싶으면 만져 봐라 하는 눈망울을 지었단다. 하, 이 녀석 어린 내가 저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속셈이 들어서 이제 벼슬을 만져도 되겠구나 하고 어린 벌치의 두 팔을 뻗어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덥석 벼슬을 쥐었는데, 정말 그랬는데,
하나님 맙소사, 아이고 깜짝이야!
이 녀석이 저를 잡아먹으려는 줄 알고 대번에 이 벌치 아빠의 머리를 사정없이 쪼아버리고는 그러고는 홱 날아 저만치 마당가 화단 곁으로 도망을 가버렸단다. 저를 해코지 할까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골이 머리끝까지 난 이 아빠가 그 골을 못 참고 바로 아빠의 아빠가 세워 둔 지게 작대기, 그러니까 남해 말로 바작대기를 풀어 그놈을 쫓아가려고 했는데 어쩐 일이 일어난 줄 아니? 지게에 받친 지게작대기를 푼 순간 지게에 도사려져 있는 바지게에서 한아름 쏟아져 나온 것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아니? 바로 아궁이에 나무를 태우고 나면 남는 재란다. 그 당시에는 그 재를 아침이면 꼭 아궁이에서 당그래로 그러내 헛간에 갖다 버렸단다. 그러면 그것이 차곡차곡 헛간에 쌓였단다. 그 쌓아놓은 재를 밭에다 두엄으로 갖다 쓰려고 너의 할아버지가 이른 아침에 바지게에 재어놓았는데 이 아빠는 그것을 모르고, 그 바지게에 아무 것도 안 들은 줄 알고 그러니까 빈 바지게인줄 알고 냅떠 지게작대기를 풀어버렸단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 벌치 내가 그 두엄을 둘러쓴 바지게에 맥없이 깔려버리게 되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겠니? 지겟다리가 넘어지면서 그 바지게 안에 있던 두엄, 구름 색 회색 재가 아빠의 머리를 휘젓고 상체를 휘젓고 아래 다리까지 뻗쳤단다. 잠깐 아빠가 이성을 잃고 그 바지게를 꿴 지겟다리 안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금방 뛰어온 엄마의 도움을 받아 보도시 보도시 발버둥을 치면서 일어났단다. 일어나고 보니 새삼 골이 더 났단다. 아이 내게서 멀리 달아난 달구새끼는 저쪽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꼬꾸댁 하면서 다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더라. 잠깐 하늘을 보고 정신을 수습한 너의 아빠가 우선 손을 털고 옷에 묻은 재를 대충 털어내고 그 달구새끼를 다시 보니 더욱 골이 나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단다. 순간 저놈의 달구새끼 오늘 밤 아빠 몸보신용으로 털을 꼬실라삘까보다 하고 다시 자빠져 있는 바작대기를 찾아들고 살금살금 그 자리를 바장거리고 있는 그 달구새끼한테로 걸어갔었지. 그리고 그 녀석과의 떨어진 거리 한 일 미터 정도 되었을까. 녀석의 대가리를 정조준하고 아주 기운차게 아빠가 들고 있는 바작대기를 내리쳤단다. 짜장 어떻게 되었을까?
벌치의 귀여운 딸아.
꼬꾸대애액 꼭꼭. 꼬꾸대액 꼭꼭. 그리고 조금 있다가 꼬꾸대애액 꼭꼭. 꼬꾸대애액 꼭꼭. 어린 아이의 팔놀림에 녀석이 간신이 내리치는 바작대기를 피해 작은 채 지붕으로 홱 날아올랐단다.
아니, 저 녀석이 날기도 저렇게 잘 날았나? 그의 비행에 감탄한 나머지 아이 벌치 내가 맹한 눈을 떠 한참동안 그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단다.
꽁무니를 아이 내 쪽으로 주고 시선은 내가 아닌 엄한 데로 두고 이것이 살금살금 내 눈치를 보며 언제 지붕에서 내려올지 가늠을 보는 것 같았지.
저 녀석을 어떻게 때려잡아삘까?
한참을 고민하다 아이 나 그 녀석의 폴짝 뛰어 날아가는 그 비행이 너무나도 멋있어서 그 모습을 한 번 더 구경하고 싶어 오늘 그만 때려잡기를 포기했단다.
그러고는 손에 쥐고 있는 지게작대기를 마당 한 가운데에 들내삐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단다. 이 광경을 저만치 떨어진 해 잘 드는 축담에 앉아 새끼를 꼬며 흐뭇한 모습으로 아주 젊은 아빠의 아빠가 쳐다보고 있었단다.
첫댓글 어린시절 고향생각, 아버지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따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ㅎㅎ
정감있는 남해사투리와 그시절 고향 집집마다 있던 닭들과 지금은 안계시지만 함께했던 가족들과의 추억이 생각나 가슴 한구석이 아리면서도 미소짓게 합니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가족모두 행복하세요~~
저희 딸이 저한테 막 이렇게 속살거리는 것 같네요. 아빠! 이런 댓글을 보면 가만 있지 말고 바로 큰 절을 넓죽 올려야 돼요.
그래야. 아빠가 나중 원하는 그 어린 날의 꿈을, 작가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아빠 아시죠? 가슴 속 진실한 응원은 울던 아이도 그치게 한다는 사실을요.
감사합니다.
이 말 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그래서 제가 벌치에요.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갑니다.
벌치 작가님 안녕하세요
참으로 정겹게 쓰신
좋은글 즐독했습니다
깊어가는밤
따뜻하게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