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6일 (화) 촬영.
전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려 옛 화신백화점 터에 지은 종로타워로 나왔다. 종로타워에 있는 스타벅스.
종로타워 1층에는 고객들을 위한 갤러리가 있다.
종로타워 x 퍼블릭 갤러리 - 일상 공간이 갤러리가 되다. 이제, 종로타워에서 쉽게 미술 작품을 즐기고 관람해 보세요.
종로타워 - 퍼블릭 갤러리展은 다양한 분야에 실력 있는 작가를 발굴하여 종로타워 1층 갤러리 공간에 주기적으로 전시를 진행하고,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입니다.
아티스트는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에 전시하여 대중들에게 작품을 알리고 소통하며,
공간은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예술 작품의 수준 높은 볼거리를 제공하여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합니다.
김기섭 / Internal Reflection Series 19,130.3cm x 89.4cm, 캔버스에 아크릴, 2022, KRW 4,200,000.
김기섭 / Internal L, Universe- Pendulum Series 190, 116.8cm x 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KRW 3,500,000.
김기섭 / Internal L, Universe- Pendulum Series 191, 116.8cm x 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KRW 3,500,000.
이름 행코, 직책 SK 에너지 엠버서더,
종로타워를 나와,
조계종 앞 길과 인사동 길 사이로 걸었다.
충정공 민영환 선생이 자결했다는 집터에 있는 기념비.
바로 옆에는 3.1독립 선언을 했던 태화관이 있던 자리에 세운 태화빌딩이 있다.
태화빌딩.
태화빌딩 1층 끝에 있는 커피숍에는 민족대표 삼일독립선언도가 걸려 있다.
민족대표 삼일독립선언도,
기미년(1919년) 3월 1일, 이곳(당시 명월관)에서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 선언식을 통해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였다. 2년 후인 1921년, 감리교 여성 선교사는 이곳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선도적인 복지 사업을 펼치며
하나님의 큰 평화를 실현하고자 '태화여자관'의 문을 열었다.
태화복지 재단은 이처럼 유서 깊은 장소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독립 선언 장면을 기록화로 제작하였다. - 현지 설명문 -
기미 독립 선언문.
인사동 안내소 앞에 있는 쉼터.
조계사 앞 큰 도로로 나왔다.
바로 옆에는 갑신정변이 발생한 우정국 건물이 있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갑신년) 12월 4일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혁파가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난을 일으켰다.
고종을 속이고 새 내각을 구성해 정강 14조 등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청군이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고 민중들이
일본공사관을 공격하자 퇴각하는 일본군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하여 삼일천하로 끝났다.
이 정변에서 급진 개혁파는 여러 온건 개혁파들을 살해한다. 윤태준, 한규직, 이조연, 등 영선사 출신이나 민씨 척족 중에서 개화에
적극적이었던 민영목, 민태호, 그리고 조영하 등 여러 온건 개화파들이 살해당했다.
고종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으로,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 모두 상당수의 인재들이 사라져 향후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는 등 큰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혁파들은 박영호,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서재창, 이규완, 유혁로, 정난교, 신응희, 박영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서구 사회에 관한 문명 서적을 통해서 실학사상의 긍정적 요소와 세계정세의 흐름 및 자본주의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조선 사회의 개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평균 나이 25도 안 되는 그야말로 엘리트 열혈 청년들이었다. 김옥균이 유일하게 30대였으며, 서재필은 19세,
이들은 자신들을 개화당으로,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세력을 수구당이라고 불렀다.
유사한 표현으로 급진 개화파는 독립당, 일본당, 김씨당 등의 표현이 있고,
온건 개화파는 사대당, 청국당, 혹은 민씨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역시 상대에 대한 비칭이다. - 출처, 나무위키 -
인사동 입구에서 본 안국 별궁 터이다. 풍문여고를 거쳐 지금은 공예 박물관이 자리 잡았지만,
갑신정변 때에는 이곳 앞에 있는 초가에 불을 지르면서 정변이 시작되었다.
감고당 길.
감고당(感古堂)은 숙종의 비 인현왕후가 친정을 위해 지어준 집이다. 인현왕후가 폐서인 되어 5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훗날 명성황후 민씨도 8살의 나이에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후 이 집에서 살다가 고종황제의 비로 책봉되었다.
감고당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영조가 어머니인 인현왕후를 기려 1761년 감고당이라는 편액을 하사한 후부터다.
感古란 옛날을 생각하란 뜻이다. 감고당은 2006년 명성황후의 고향인 여주시로 이전되었다.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북촌 주꾸미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조선어학회 터 였다는 표석이 나온다. 조선어학회 길 건너편에 앞은 우리나라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대통령의 집이 있다.
조선어학회 터.
주시경(1876~1914)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1908년 국어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한 국어연구 학회의 맥을 이은 조선어학회가 있던 곳.
조선어학회 터 앞에서 본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의 고택(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38호로 지정됨).
솟을 대문.
대문 앞에는 노둣돌도 있다(말을 타고 내릴 때에 발돋움으로 쓰기 위해 대문 앞에 놓은 큰 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등록문화유산
한국내셔널트러스트(The National Trust of Korea)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기부금과 증여를 통해 보존 대상지를 매입하거나 확보해 보존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국민신탁운동(國民信託運動, National Trust)은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국민 신탁에서 관리하는 유산으로는 최순우 옛집, 권진규 아틀리에 등이 있다.
안동교회(1909년 북촌에 거주하는 양반 출신의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장로교회)
윤보선 고택과 이웃하고 있는 '서울우수 한옥'.
대문 좌측 담에 '서울우수 한옥'이라고 새겨 있는 동판이 붙어 있다.
담 갤러리 카페.
담 갤러리를 돌아서 좌측으로 오르면,
송현 고개에 있는 정독도서관이 나온다.
정독도서관에 있는 서울교육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돌아 도서관 마당으로....
인왕산이 보이는 마당에는 조선 시대 화가 정선의 인왕제색도 기념비가 있다.
정독도서관 / 국가등록문화재
정독도서관은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 선생을 위시해 김옥균, 서재필 등의 급진 개혁파, 그리고 매국노인 박제순의 집이 있던 곳이며,
조선 시대 관청인 장원서가 자리하기도 했고,
중등교육의 발원지로 1900년 고종 황제의 칙령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중등학교로 건립된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정독도서관에 있는 표석들.
김옥균 집터.
中等敎育發祥地
대한 광무 4년 서기 1900년 10월 3일 나라에서 본교를 이 자리에 창설하였으니 실로 우리 중등교육의 획기적인 사실이며
관립으로 처음 되는 일이다. 일국의 영재 여기 모여 배운지 60여 년
배출된 뚜렷한 인재 그 수 만을 넘어 헤아리기 어려우나 빛나는 전통 가히 국내에 제일로 꼽겠다.
이제 개교 63주년을 맞아 본교가 중등교육의 발상지임을 기념하고자 동창회장 김성진씨 발의하여 동문 전신용씨의 성력으로
이 비를 세우니 이는 다만 본교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그칠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에 뜻있는 일로 배우는 후배들의 자각을 촉구하며
앞으로 본교의 무궁한 발전과 나아가 우리 중등교육의 참다운 육성을 바란다.
1963년 10월 3일 경기 중고등학교장 원흥균.
이 자리는 1900년 고종 황제께서 최초의 관립 중등학교로 세우신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나라의 으뜸가는 인재들을 76년간 길러 내던 중 학교는 더 큰 교육의 사명을 위해
1976년 2월 20일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겨 갔기에 이 배움의 터전을 길이 기념하려고 한다.
1978년 8월 일 경기고등학교장 서장석. 경기고등학교 동창회장 권성기.
정독도서관의 식당인 소담정이다.
정독도서관의 내부 계단.
소담정 옆 화단에서는 백인제 가옥이 보인다.
백인제 가옥은 본래 이완용의 외종질로 역시 매국노인 한상룡이 짓고 살았던 집이다.
정독도서관을 한 바퀴 돌아,
교육 박물관 앞으로 나왔다.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날, 그 시간 책을 읽고 있던 네 옆 자리에 앉았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걸.
그날, 그 시간 나의 옆 빈자리에 네가 앉았을 때부터 몸이 굳어 꼼짝할 수 없었다는걸.
감고당 길을 바라보며
국립민속박물관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 길엔 카페도 많고,
갤러리도 많았다.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길.
보이긴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도 있고,
까칠한 그림들도 있다.
창밖으론 현대미술관이 보였다.
이제 횡단보도만 건너면 민속박물관이다.
첫댓글 서울 도심에
볼거리 넘 알차네요.선배님
덕분에 눈
호강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