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2) - 계룡산(장군봉,신선봉,삼불봉)
1. 계룡산 천황봉, 그 오른쪽은 쌀개봉
십 년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이 명산을
오늘 와서 부여잡고 한 발 한 발 올라가네
봄이 다하니 진 꽃잎이 개울 입구에 걸려 있고
절이 돌아들어 종소리는 두 봉우리 사이에서 끊어지네
十年遙望此名山
一日能來取次攀
春盡花塡諸澗口
寺回鐘斷兩峰間
ⓒ 한국고전번역원 | 박헌순 (역) | 2010
――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계룡산에 들어가 백암동 입구에서 묵다(入雞龍山宿白巖洞口)」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5월 19일(일), 맑음, 무척 더운 날
▶ 산행인원 : 8명(킬문, 광인, 수영, 덩달이, 칼바위, 문필봉, 곰발톱, 악수)
▶ 산행코스 : 박정자삼거리,병사골탐방지원센터,285m봉,장군봉,신선봉,남매탑,삼불봉,남매탑,심우정사,동학사,
동학사 버스종점
▶ 산행거리 : 도상 9.8km
▶ 산행시간 : 7시간 45분(09 : 10 ~ 16 : 55)
▶ 갈 때 : 서울역에서 KTX 열차 타고, 서대전역으로 가서, 전철 타고 현충원역으로 가서,
107번 버스 타고 박정자삼거리로 감
▶ 올 때 : 동학사 버스종점에서 107번 버스 타고 현충원역으로 가서, 전철 타고 대전역으로 가서 (뒤풀이) 저녁
먹고, ITX(새마을호) 열차 타고 서울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45 – 서울역
08 : 03 – 서대전역
09 : 10 – 박정자삼거리, 산행시작
09 : 21 – 병사골탐방지원센터
09 : 40 – 285m봉, 휴식( ~ 09 : 50), 이정표(장군봉 0.5km, 병사골탐방지원센터 0.5km)
10 : 15 – 장군봉(512m), 휴식( ~ 10 : 30)
10 : 58 – 464m봉, 점심( ~ 12 : 45)
13 : 02 – 갓바위삼거리
13 : 25 – 600m봉, 이정표(남매탑 1.5km, 장군봉 2.4km)
13 : 50 – 신선봉(649m)
14 : 00 – 큰배재, 이정표(남매탑 0.5km, 동학사 주차장 2.7km)
14 : 14 – 남매탑, 이정표(삼불봉 0.5km, 동학사 1.7km)
14 : 25 – 남매탑고개, 이정표(삼불봉 0.2km, 관음봉 1.8km)
14 : 34 – 삼불봉(三佛峰, 775m)
15 : 00 – 남매탑, 상원암(上元庵)
15 : 40 – 심우정사(尋牛精舍)
16 : 18 – 동학사(東鶴寺)
16 : 55 – 동학사 버스종점, 산행종료
19 : 19 – 대전역
21 : 06 - 서울역
2. 가운데 대각선 긴 능선의 끄트머리 암봉이 장군봉이다
“지난해 12월, 예봉산 송년 산행 후 선배님들과 약속했던 계룡산 산행을 진행하려 합니다. 계룡산 초입에서 장군봉
으로 올라 계룡산의 기가 모였다는 삼불봉을 찍고 천장이골로 하산하는 계획입니다. 봄맞이 산행이 좀 늦었지만
선배님들 뵙고 싶습니다.”
대전의 문필봉 님이 지난 4월초에 홀로산방에 올린 글이다. 산행일자는 5월 19일(일)로 정했다. 이날이 오기를 손꼽
아 기다렸다. 그간 적조했던 악우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내 아직 가보지 않은 장군봉 능선이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멀리 서산에서 오신다는 덩달이 님은 장군봉을 향하여 앞서 출발했고, 곰발톱 님과 문필봉 님은 서대역으
로 마중 나왔다. 전철로 환승하고 버스로 환승하여 장군봉 들머리인 박정자삼거리로 간다.
서대전역에서 전철을 탈 때다. 무턱대고 개찰구에 서울에서나 통용되는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를 댔더니 문
이 열리지 않는다. 신용카드를 꺼내려고 머뭇거리자 역무원이 다가와서 경로우대로 무임승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별도의 기기에 가서 신분증을 대면 오백원짜리 동전보다 훨씬 더 큰 코인이 나온다. 이 코인을 대면 전철 개찰구가
열리고 나갈 때는 코인을 넣으면 문이 열린다고 한다. 현충원역에서 버스로 환승해야 하니 절약된 교통요금은 100
원에 불과하지만 역무원의 친절한 마음이 그보다 몇 백 배나 더 크다.
‘박정자삼거리’라는 명칭에서 박정자가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여자일까 궁금했는데,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밀양
박씨들이 심은 많은 정자나무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정자나무는 느티나무를 말하는 것이리라. 박정자삼거리
버스승강장에 내려 10분 남짓 걸어가면 병사골탐방지원센터가 나오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첫 몇 걸음은
의기양양하게 걸었으나 무덤 지나고 솔숲 지나자 가파른 바윗길 오르막이 이어진다.
나는 잘난 데크계단을 마다 하고 옛길이라는 왼쪽 바윗길을 오르면 별다른 전망이 트일 거라 생각하고 사족보행으
로 달달 기었는데 괜한 수고였다. 데크 계단참마다 뒤돌면 동쪽으로 전망이 훤히 트이는 경점이다. 건너편의 우산봉
(雨傘峰, 574m), 갑하산(甲下山, 469m), 옥녀봉(441m), 도덕봉(534m) 등이 바로 눈 아래다.
더운 날이다.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곧추선 바윗길 오름이라 걸음걸음 헉헉댄다.
암봉인 285m봉이 준봉이다. 오늘 산행의 예행연습이라지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바람도 없다. 그늘에 들어 배낭
벗어놓고 휴식한다. 285m봉을 벗어나면 잠시 잠잠했다가 사면을 길게 돌아 안부에 올라선다. 오른쪽(북쪽) 하신리
쪽 능선은 막았다. 장군봉 오르는 길도 만만하지 않다. 등로 벗어나면 낭떠러지다. 아무튼 조신하게 오른다. 전망
트이는 데는 꼬박 들른다. 배산임수로 꼬챙이골, 뒷골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더없는 명당으로 보인다.
비지땀 한바탕 쏟아 장군봉이다. 전망 좋은 너른 암반이다. 먼저 주변의 계룡산 연봉을 일람하고 일일이 안내도와
대조한다. 금수봉, 백운봉, 관암산, 치개봉, 황적봉,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 등이다. 안내도에는 산 이름의
유래도 써놓았다. 관암산은 갓(冠)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고, 치개봉은 ‘무엇을 팍 쳤다’는 의미에서 온 ‘치개’는
경사가 심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금수봉은 산을 수놓은 듯 아름답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3. 아래 도로가 박정자삼거리다. 멀리 가운데는 옥녀봉, 그 앞 오른쪽은 도덕봉
4. 왼쪽은 갑하산, 그 뒤는 금수봉, 백운봉, 관암산
5. 뒷골
6. 꼬챙이골
7. 멀리는 천황봉, 맨 오른쪽은 삼불봉
8. 천황봉
9. 치개봉
그늘에 들어 휴식한다. 덩달이 님은 진작 올라와서 우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점심자리 물색한다. 오늘 산행의
주요 이벤트의 하나가 점심이다. 장군봉 능선이 암봉을 연속해서 오르내리는 암릉이라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장군봉 오르내리는 길이 철계단을 설치하기 전에는 퍽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밧줄 내리고, 철계단
오르고, 철계단 내리고, 밧줄 오르고, 철계단 내리고, 그냥 오른 4번째 464m봉에서 등로를 왼쪽으로 약간 비킨 절벽
위 숲속 공터를 찾아낸다.
고기는 덩달이 님이 이베리코 황제살을 가져왔다. 곰발톱 님이 압력밥솥을 가져와 밥을 짓고 팬에 고기를 굽는다.
어제 설악산을 다녀온 킬문 님은 그곳 곰취를 가져왔다. 술은 수영 님이 누보(담근 지 얼마 되지 않은) 모과주를
가져오고, 곰발톱 님은 증약막걸리가 아닌 대전 원막걸리 큰 한 병을 가져왔다. 광인 님은 자기만 마실 것으로 서울
막걸리 2병을 가져 왔는데 온전할 리 없다. 산상성찬이다. 다만, 술이 부족하다. 어쩌면 잘된 일인 줄도 모른다. 암릉
을 부단히 오르내려야 하니 말이다.
점심자리 정담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떠들고 웃다가 다시 떠들고.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는지
당초 계획한 삼불봉을 찍는 데 시큰둥한 기색들이다. 기껏해야 남매탑까지 갈 것 같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광인 님
은 아예 관음봉까지 가려고 했는데 차질이 생겼다며 서운해 한다. 나는 삼불봉을 가자 하고 앞서간다. 잰걸음 한다.
조망 좋은 데 나오면 사진 찍느라 걸음 멈추고 잠시 가쁜 숨을 돌리곤 한다.
갓바위삼거리 지나고 갓바위(곰발톱 님은 실제로 ‘갓바위’가 어디를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로 여겨지
는 암봉을 등로 따라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는다. 신선봉이 장군봉 능선의 정점이다. 첨봉인 삼불봉이 한층
가깝게 보인다. 신선봉에서 그 서봉 왼쪽 사면을 돌고 데크로드를 길게 내리면 바닥 친 안부로 큰배재다. 남매탑
0.5km. 내쳐간다. 여태 한적한 등로였는데 이제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등로다. 12분 걸려 남매탑이다. 거의
삼십년 전에 와서 본 남매탑이다.
삼불봉 0.5km. 이중 0.35km는 가파른 돌길이고, 나머지 0.15km는 철계단이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한 발 한 발 또박또박 오른다. 거친 숨과 박자 맞춘다. 철계단은 난간을 붙드니 오르기 한결 수월하다. 삼불봉. 암봉
이다. 정상 표지석 뒤쪽에 낡은 삼각점이 있다. 경점이다. 난간 넘어 절벽 위에 바짝 다가가면 거침없는 전경을 볼
수 있다.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이 가깝다. 자연성릉은 녹음이 우거져 알아보기 어렵다.
그러면 그렇지, 삼불봉을 뒤돌아 내리는 도중에 킬문 님과 광인 님을 만난다. 남매탑에서 남은 자들이 모인다. 충분
한 휴식을 마치고 심우정사를 들르기로 한다. 상원암 마당을 지나 해우소 뒤쪽을 헤집는다. 출입금지 표시가 없는데
도 옛적 길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자갈 사면을 바글거리며 지나고 희미한 인적을 쫓는다. 낙엽 수북한 사면을
돌고 돈다. 지능선 4개를 넘는다. 가파른 사면을 돌 때는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붙들 잡목도 없고 그야말로 저
아래 골로 굴러갈 것만 같아 오금이 저린다.
가까스로 제법 통통한 지능선을 붙들고 주춤주춤 내리다 암릉과 맞닥뜨린다. 희미한 인적 따라 오른쪽 사면을 돌아
내리고 이어 슬랩을 트래버스 하는 녹슨 철난간에 기대어 내린다. 지능선에 다시 오르고 자갈 사면을 길게 돌아내리
면 심우정사다. 여승 한 분이 맞이한다. 내 옛날 심우정사에 대한 추억이다. 목초 스님이 여기에 계셨다. 그때 심우
정사는 삼불봉을 오르내리는 중턱에 위치하여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들의 쉼터였다.
10. 앞 오른쪽은 도덕봉, 그 왼쪽 뒤는 옥녀봉
11. 삼불봉
13. 황적봉
15. 왼쪽이 황적봉 슬랩 오르막
16. 치개봉
17. 앞 오른쪽이 삼불봉
그때는 등산객들은 양지 바른 심우정사 마당의 장의자 놓인 탁자에 둘러앉아 탁주로 목을 축이곤 했다. 나도 그랬
다. 목초 스님도 등산객들과 어울려 등산객들이 권하는 탁주를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허구한 날 그랬다. 어느 날
그런 목초 스님의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등산객이 있었다. 그는 조계종 총무원에 투서를 했다. 스님이 등산객들과
함께 늘 술을 마신다고. 조계종 총무원에서 심우정사에 감찰을 나왔다. 감찰반은 목초 스님에게 등산객들로부터
부디 자중하시라는 투서가 있으니 조금만 조심하시면 좋겠다 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목초 스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 대전에 사는 지인은 목초 스님이 입적하셨다는 부고를 대전일보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계룡산이 가기 싫어졌다. 여승에게 여기에 목초 스님이 계실 때 왔었다고 얘기하자, 삼십년 전의 일이네요 한다.
곰발톱 님이 이 여승은 목초 스님의 따님이라고 한다. 올 이도 갈 이도 없을 것 같은 고적한 정사다. 스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였다는 따스한 차 한 잔씩 대접 받고 정사를 나선다.
산허리 돌아 능선에 이르고 쭉쭉 내려 은선폭포(0.8km)를 오가는 너른 등로고 곧 동학사다. 동학사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속이 아니라 속세다. 그래도 길상암(吉祥庵)의 주련은 들여다본다.
山堂靜夜坐無言 산사의 조용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 고요하고 고요해서 본래 이러한 것을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은 숲을 흔드는가
一聲寒雁淚長天 찬 기러기 외마디 울음 먼 하늘에서 들리네
버스 타고 전철로 환승하여 대전역에 내리고 곰발톱 님이 예약한 음식점에 들른다. 말이 김치찌개이지 갈비를 듬뿍
넣었고, 사이드 반찬 또한 푸짐하다. 가지구이, 튀김, 버섯전, 조개젓, 갈치속젓, 밴댕이젓, 열무김치 등. 얼근하여
대전역에 간다. 입석표만 남았다. 차라리 잘되었다. 땀에 전 옷에다 술 냄새까지 풀풀 풍기고서 어찌 좌석에 앉겠는
가. 우리들만 객실 바깥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기대어 졸며 졸며 간다.
* * *
이 산행기를 쓰고 있는 중에 신경림 시인의 부음을 들었다. 갑자기 하늘 한 쪽이 빛을 잃고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를 읊으며, 시인의 명복을 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갠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허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天痴)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18. 가운데 뒤쪽부터 연천봉, 문필봉, 관음봉
19. 앞 오른쪽이 자연성릉
20. 천황봉, 앞은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21. 삼불봉에서 조망
22. 심우정사
23. 동학사 오가는 길
24. 동학사 주차장 뒤쪽 286m봉
첫댓글 색깔이 아주 좋아요. 박정자가 흔한 사람 이름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ㅋㅋ
저도 독립운동이라도 한 여걸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신경림 시인께서 하늘로 돌아가셨군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신경림 시인이 가고 나니 그분의 시가 더욱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아니, 연달아 3일을 산행을 하셨네요...모처럼 여러분을 만나셨는데, 사진도 한번 올리시지ㅠㅠ...고생이 많으십니다^^
단체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ㅠㅠ
연일 고생이 많으셨네요~ 인연도 만나시고 ㅎ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확연히 느낍니다.
저도 계룡산을 오랜만에 다녀왔습니다. 동학사에 얽힌 과거사도 생각나고요...
잔매에 녹아난 격이었습니다.
덕분에 설악산 곰취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