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에 관한 교리들
(1) 자연주의적 영감론 (Naturalistic Theory)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은 단지 신화들을 모아 놓은 책이며 부분적으로만 정확한 이스라엘의 역사와 과거의 현인들이 얘기한 잠언을 모은 책일 뿐이다. 구원받지 못한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고등교육 기관"에서 교육받은 구원받지 못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이다.
(2) 신정통주의 영감론 (Neo-Orthodox)
하나님께서 성경에 영감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창조자에게로 인도하는 일보다 세계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교회들에서 받아들이는 이론이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성경을 이용할 뿐이다.
(3) 부분 영감론 (Partial Inspiration Theory)
성경의 일부분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과학이나 역사 나 지리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세가 가상의 인물이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4) 개념 영감론 (Concept Theory)
성경이 하나님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담겨있기 원하시는 내용을 인간이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Good News For Modern Man>, <NIV>, <Living Bible>의 번역자들이 따르는 것이다. 이들은 "내용 일치 번역 기법"이라는 그럴 싸한 명칭으로 독자를 속이는데 이는 번역자들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을 마음대로 뜯어 고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흠정역 마제스티)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kjb)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개역개정)
And the words of the LORD are flawless,
like silver purified in a crucible, like gold refined seven times. You, LORD, will keep the needy safe and will protect us forever from the wicked, (niv)
시편 12장 6-7절
하나님께서 성경의 영감과 보존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셨음을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구절이다.
7절에서 "그것들"은 히브리어로 3인칭 복수로 되어있다. 따라서 7절의 "그것들"은 6절의 "말씀들"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NIV> 의 번역자들은 이것을 1인칭 복수인 "우리"로 번역했다. 7절의 "그것들"을 "우리"라고 번역할 근거가 되는 히브리 원문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NIV>의 번역자들은 성경의 보존에 관한 말씀을 6절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들이 아닌 5절에 나온 사람들의 보존에 관한 약속으로 바꿔버림으로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 이들은 영어 성경으로 히브리어 원문을 수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기계적 영감론 (Mechanical Dictation Theory)
이 이론은 비서가 사장의 편지를 대신 타이핑하듯 성경 기록자들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게 하셨고 기록자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는 것이다.
(6) 축자 영감론 (Verbal Plenary Inspiration Theory)
성경에 나온 모든 단어를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는 인간의 글이나 말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을 포함한다.
"영감”이라는 말을 쉽게 정의할 수 없지만 앞서 설명한 이론들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성경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 사람들이 하는 일상적인 말
이 점에서,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그 말이 참되도다.
요한복음 4장 37절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시기 오래 전부터 구전되는 표현을 인용하심으로 이 문장이 성경에 기록되도록 하셨다. 결과적으로 이 문장은 성경에 인용됨으로 하나님의 영감 받은 말씀에 포함되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언제 영감 받았다고 봐야 하는가?
(2) 사도 바울이 인용한 구원받지 못한 시인의 말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너희의 시인들 중 어떤 사람들도 이르되, 우리 또한 그분의 후손이라, 하였나니
사도행전 17장 28절
그들 중의 한 사람 곧 그들의 대언자도 이르기를, 크레타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게으른 탐식가라, 하였는데
디도서 1장 12절
이러한 말들은 성경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언제 하나님의 영감 받은 말씀이 되었는가?
(3) 일반적인 속담을 성경이 인용한 경우
옛사람들의 속담이 말하기를, 사악함은 사악한 자들에게서 난다, 하지만 나는 내 손을 왕 위에 두지 아니하리이다.
사무엘상 24장 13절
영감에 관해서 앞의 경우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장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영감 받은 말씀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매우 어려운 몇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다윗과 바울의 말은 모두 하나님의 영감 받은 말씀인가? 일반인들이 이 말을 인용했을 때에는 영감 받은 말씀이 아니었다가 왕과 사도가 인용하자 영감 받은 말씀이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는 말이 성경에 기록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하는 사람의 말도 성경에 기록하게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경에 기록된 파라오와 모세의 모든 대화나 구원받지 못한 시리아나 바빌론 왕의 말들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요한복음 11장 48-51절의 가야바의 발언이다. 여기서 가야바는 자신이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이스라엘과 온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다.
바울의 기록에는 이보다 더한 예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주가 아니라 내가 말하노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그녀가 그와 함께 살기를 기뻐하거든 그는 그녀를 버리지 말며
고린도전서 7장 12절
바울은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은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말이라고 주장하는 부분, 즉 영감 받지 않은 말이라고 하는 부분까지도 영감 받은 말씀이라고 받아들인다.
성경에는 이보다 더 복잡한 문제도 나온다. 하나님께서 기록하라고 하시며 영감 받은 말씀을 주셨는데 이것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경우는 예레미야서 45-51장에 나온다. 예레미야서 36장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라는 사명을 주시지만 4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말씀을 기록하지 않는다. 말씀을 기록한 자는 바룩이었다. 17,18절에서 바룩은 이러한 사실을 증언한다. 따라서 영감 받은 말씀들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는데 예레미야는 같은 말씀을 다시 바룩에게 말하였고 결국 바룩이 그것을 기록했다. 이러한 경우는 앞선 영감에 관한 6개의 이론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레미야서 45-51장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감 받은 말씀이다.
우리는 솔로몬의 글도 영감 받은 말씀임을 인정해야 한다. 잠언 4장 3,4절에서 솔로몬은 자신이 기록하는 잠언들이 아버지 다윗의 말이라고 증언한다. 즉, 솔로몬의 잠언은 다윗이 말한 것을 나중에 솔로몬이 글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잠언 31장의 경우, 솔로몬은 자신의 어머니인 밧세바의 말이라고 증언한다. 그렇다면 잠언 31장은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말할 때 영감 받은 것인가, 아니면 솔로몬이 기록할 때 영감 받은 것인가? 로마서 16장 22절도 로마서의 내용을 구술한 바울이 영감 받은 것인가, 아니면 글로 기록한 더디오가 영감 받은 것인가?
앞서 소개한 영감에 관한 이론 중 이러한 예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방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신다. 주님께서는 영감으로 성경을 주셨고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영감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 주신 성경이 완벽하다고 믿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믿는 믿음이다. 만일 이해하는 것만을 믿고자 한다면, 그것은 보는 것으로 걷는 것이지 믿음으로 걷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기계적으로 기록했지만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영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성경의 영감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람 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인간에게 주시고 직접 그 과정을 진행하신 것이다. 기록자의 개성을 무시하지 않고 투영하시면서도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처럼 그렇게 기록되도록 인도하셨다. (릭 소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