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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낮하고는 달리 사람도 거의 없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큰소리를 쳤지만 혼자 밤늦게 배낭을 산같이 매고 가트를 걷는건 무섭다. 일년에 몇명씩 여행자들이
행방불명 된다던데...
안그래도 좀비같은 개들인데 밤에보니 진짜 괴물같다...
...
어찌어찌해서 메인가트까지 걸어갔다. 언른 역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에 릭샤왈라가 부르는 80루피를
깍지도 않고 바로 잡아탔다. 골목골목 지나가는 와중에도 불안했다. 어디 이상한데로 델꼬 가면 어쩌지...
(여행 온지 조금 지났으면 이런 걱정이 없었을텐데 초반이라 더 그랬나봐요...)
배낭을 꽉 끌어안고 문가쪽에 붙어서 언제든지 뛰어내릴 수 있게 자세를 취하고 릭샤가 가는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행히 눈에익은 건물이 보인다. 바라나시 정선역이다.
무엇때문에 그리 불안해 했을까...릭샤왈라한테 돈을 주고 배낭을 메고 역안으로 들어갔다.
역에 들어가니 진짜 말도못할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역안을 가득메운 사람들...
조금 진정하고 찍은 사진
인도 사람들...
외국인은 한명도 없었다.
플렛폼을 확인하려고 전광판앞으로 걸어가는데 그 역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친밀감도 아니고...그렇다고 적의도 아니고...단순한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는 수백쌍의 눈들...
솔직히 섬뜩했다.
그당시에는 정말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에서 기차를 기다릴까 고민하며 이리저리 헤메다가 1번 플렛폼에 기차가 들어 온다길레 플렛폼에
내려가 있기로 했다.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사람투성이인 계단을 비집고 겨우 플렛폼으로 내려갔다.
혼자가 아니었다. 외국인이 네명이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려고 다가갔는데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헬로~혼자다녀? 어디가?"
"나 고락뿌르까지가, 어디가는데 다들?"
다들 고락뿌르까지 간단다.
도합 6명이 거기 있었다. 두명은 독일인 커플, 두명은 프랑스인 커플, 한명은 혼자 뭄바이로 간다는
인도인 여자애, 한명은 8개월째 여행중이라는 파파뉴기니에서 왔다는 아저씨(!).
파파뉴기니에서 왔다는 아저씨는 외관으로는 인도인과 구별이 가지 않았다.
다 같은 기차가 아니었다. 내 기차는 밤11시15분에 출발해서 고락뿌르에 7시 40분에
도착하는 거였고, 다른 기차는 새벽1시쯤에 출발해서 고락뿌르에 6시에 도착하는 특급열차였다.
프랑스인 두명(남자이름은 쟝, 여자 이름은 로즈란다.)은 나랑 같은 기차고
독일인 두명하고 파파뉴기니인은 다른 기차란다.
그제서야 나는 긴장을 풀고 배낭을 내려놓은뒤 주위를 둘러봤다.
................
어떤 상황이었나 하면, 우리 일곱명이 가방을 동그랗게 모아서 놔두고 그 주위를 빙 둘러서 있는데, 다시 그 주위를
백여명의 인도인이 빙 둘러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동물원에 원숭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기분 나빴다. 내가 로즈한테 저렇게 사람들이 쳐다보는거 기분 나쁘지 않냐고 물었는데 기다렸다는듯이
하소현을 하기 시작했다.
"크레이지~이나라 사람들은 정말 크레이지야! 왜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거야? 진짜 네팔로 떠나게
되서 기뻐"
3개월째 남친(남편?)이랑 인도를 다니고 네팔에 또 3개월 있을 예정이란다.
기차가 또 연착을 했다.
쟝과 로즈는 11시15분기차를 8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파파뉴기니인과도 친구를 먹었단다.(쟝만...로즈는
못마땅해 했다.)
난 솔직히 그때 파파뉴기니인과 친해질 마음이 안들었다. 머랄까...특유의 인도스타일 사기꾼 냄새가 솔솔~났다.
쟝이 친하길레 그냥 몇마디 말 정도는 나눴다.
1시쯔음해서 낭창하게 기차가 들어왔다. 저노무 기차! 시간을 좀 지키라구.
기차를 타니 남아있던 긴장마저 확 풀렸다. 그리곤 쌓였던 피로가 밀려왔다.
침낭을 펴자마자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끌시끌...
아침인가보다.
옆칸에 쟝이랑 로즈가 있기에 알람도 안맞춰놓고 걍 잤었다.
일어나니 어느새 밖은 밝았고 아래위의 인도인들은 밑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내려가 가방에 있던 과자 하나 꺼내먹고 지나가던 짜이를 하나 시켰다.
엥? 왠 플라스틱잔? 짜이란 자고로 도자기 그릇이나 종이컵에 먹어야 제맛인디...
솔직히 맛없었다...
옆에 앉았던 아저씨는 나와 몇마디 말을 하다가 어느새 숫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엑~또~띤~"
내가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모여든 인도인이 좋아 죽겠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어제하곤 분위기가
많이 다르군... 기분이 좋았다.
9시가 넘어서야 기차가 고락뿌르역에 도착했다. 포카라에 저녁에 도착할려면 1시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러
국경까지 가야된다. 시간은 괜찮군...
쟝을 날보더니 하소연을 시작한다. 기차가 바라나시 역을 출발하고 10분있다가 어느 역에서 1시간 넘게 정차했단다.
쟝은 그때 기관사한테 막 따지고 그랬다는데...나는 정신없이 자느라 암껐도 몰랐다.
국경가지는 합승 지프를 잡아 가야된다. 지프를 잡으러 역을 나오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파파뉴기니인이다.
멀까? 전혀 반갑지가 않다. 나름 여행으로 진화한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한다. 사기꾼이다!
우릴 보더니 그가 다가왓다.
"매우 나쁜일이 일어났어"
"왜 무슨일인데? 기차는 잘 탔어?"-쟝의 대답
"밤중에 누가 내 가방을 찢고 여권이랑 돈을 훔쳐갔어 진짜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가방의 찟긴 자리를 우리한테 보여줬다. 찢기고 꿰메진 자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꿰멘지 쫌 되보였다.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서 찾아가서 폴리스레포트쓰고 가방 수리하고 어찌할지를 몰라서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델리에 대사관이 있어서 글로 가야돼"
"어떻하냐...내가 돈 빌려줄께..."-역시 장의 대답
나는 그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쟝과 같이 네팔로 가기로 하지 않았으면 벌써 자리를 떴을텐데...
둘은 친해보이는데 내가 얘 사기꾼 같다고 말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닐수도 있으니.
폴리스레포트도 꼬깃꼬깃한게 낡아 보였다.
"그래줄래? 내가 월요일까지는 반드시 갚을께..."
"오케이 잠시만... 지금 현금이 없어서 뽑아서 빌려줄께~"
그리고는 쟝은 근처 ATM으로 뛰어갔다.
그사이 파파뉴기니인이 옆에있던 꼬마애를 소개시켜줬다. 근처에서 여행사를 하는 앤데 믿을만한거
같다고...네팔 넘어갈때 니네들이 필요할꺼 같아서 얘기해뒀다고...
아이구 오지랖도 넓으셔라. 도둑맞은 마당에 그런거까지 신경쓰셨어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참았다.
쟝이 뛰어온다. 그리고는 현금을 건네주고 파파뉴기니인의 메일주소를 받는다.
나도 분위기에 편승해서 500루피를 줬다.
얼마안되니까 안갚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받을 수 있을꺼 같지도 않았다.
쟝이 꼬마와 같이 교통편을 알아보란다. 아젠장 싫은데...
쟝이 짐을 봐줄테니 로즈랑 갔다오란다. 솔직히 불안했다. 장을 못믿는게 아니라 그 파파뉴기니인한테
있는거 다 털릴까봐...
꼬마애가 역안으로 들어갔다. 역안에 있는 여행산가? 믿을만한데그럼?
아니다. 다시 역에서 나왔다. 책상 하나만 있는 허접한 여행사다. 로즈도 불안해하는 눈치였으나 어쩌랴.
좋은 지프에다가 투어리스트 버스라는 말을 믿고 일인당 550루피라는 거금에 고락뿌르-소나울리지프와
바이러와-포카라 버스표를 끊었다. 반은 지금 반은 바이러와에서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다시 모여서 파파뉴기니인 보내고 기다리고 있는데 왠 거지같은 지프가 와서 섰다.
뒤에 타란다. 뒷자석이 아니다. 뒤 짐실는데 타란다. 피곤한 몸에 욕이 절로 나왔다.
여길 어떻게 타냐고!!!
요기에 네명탔다. 인도인 한명 추가
그럼 뒷자석에 탈래?여기7명 타는데?
걍 짐칸에 탔다.
뒤창으로 도로 구경하다 잠이 들었다.
뒤로 보이는 것들
중간에 섰다. 먹을꺼 사먹으란다. 라면이 먹고싶다.
가방에서 라면을 하나 꺼내 요리하는 사람한테 갔다.
저기 생수 얼마야? 12루피.그러면 내가 30루피 줄테니가 생수에 냄비하나 그리고 불좀 빌리자. 그래.
냄비라고 하기 민망한 그릇을 하나 빌려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사람들이 역시 다 쳐다본다. 라면 맛있다. 맛있다. 맛있다.
라면
그렇게 다시 차는 출발하고 우여곡절끝에 국경도시인 소나울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내려 걸어서 국경을 넘으면
바이러와다.
진짜 이런 국경은 처음이다. 태국-캄보디아 국경 넘을때도 이런 데가 있나며 황당했는데 여긴 더하다.
줄줄이 네팔로 넘어가는 트럭들 릭샤들 사람들....
사진이 한산하게 나왔다. 진짜 복잡한 동넨데...
지프에서 내려서 사이클릭샤를 타고 출입국 사무소로 이동했다.
내 사이클릭샤왈라...빵꾸난 난닝구
출입국 사무소도 별거 없다. 길가에 길다란 책상 두개가 붙어있을뿐이다.
1달 비자40불, 3달비자100불이었다. 장이 새파래진다. 돈을 그만큼 안뽑아놨단다. 아놔 진짜 이인간....
네팔4번째라면서...
(장가지고 투덜투덜 거리지만 정말 착한애다. 그러나 여행하기에는 '너무' 착한애라...)
돈 뽑아온다면서 어디로 사라졌다. 로즈하고 나는 또 하염없이 기다렷다.
그동안 작은 샴푸사고, 집이랑 친구한테 전화하고...그래도 안온다.
세시간만에 왔다. 비자 안받고 그냥 네팔로 들어가서 뽑아서 다시 왔단다. 밀입국.
여튼 그렇게 우리는 3시가 넘어서야 인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앞에 가는게 장이랑 로즈다.
인도측 국경
[뒷이야기 미리-파파뉴기니인은 결국 사기꾼으로 밝혀집니다..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두둥!!!]
[다음에는 (네팔)편이네요^^허접해도 읽어주셔서 감사]
바라나시-고락뿌르-소나울리로 이동
p.s어제 뉴스보고 충격먹고 아까전까지 아무것도 못했네요. 자다깨다자다깨다.
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행기 하나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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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결국 사기꾼으로 밝혀진다-고 하니 흥미진진한데요 ㅎㅎ
딱보니까 사깃꾼인데... 요즈음 소나울리는 인도정부에서도 손을 들었다합니다. 깡패하고 경찰하고 손잡고 거의 무정부 상태라 하던데... 고락푸르는... 난 살다 그렇게 깡패스런데는 첨이었습니다. 잘봤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 사기가 왠지 귀엽단 생각이 듭니다.. 제가 너무 고생 덜하고 인도여행을 해서 그런가봐요... 친절한 향수가게 아저씨의 걱정스런 저의 여행과 거지에게조차 짜이를 얻어마셔본 소감으로,, ㅎㅎ 인도 다시 가고싶습니다 ^^
ㅋㅋ 모르셨죠? 인도 사람들은 자기보다 카스트가 높은 사람 음식만 받아먹는다고... 저도 거지한테 뭘 얻어먹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자기보다 카스트가 낮은 사람에게 음식을 준다하더군요~~ 그 거지도 자기 카스트가 더 높다고 생각하고 준겁니다.
글게요^^ 첸나이 센트럴 역에서 거지가 구걸하길레 베지터블 햄버거 줬더니 화내면서 안먹고 가더라구요~
ㅋㅋ 저도 처음 인도 여행에서... 하도 따라다니길래 지 먹는거 달라니까 주더군요. 그걸 뺏어 먹으면서 맘이 짠~~하고 그때 인도에 맘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지보다 카스트가 낮다고 준거라는 말을 듣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정말 잼나게 읽고 있어요~ 다음이야기 넘 궁금해요~~
그런데 아무리 분위기때문이라해도 사기꾼임을 짐작하셨으면서도 왜 500루피를 주셨어요?
혹시나 싶었죠. 진짜 짐 도둑맞은 여행자였을수도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