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삼각산) 동쪽 자락 냉골에 둥지를 튼 본원정사는 화계사(華溪寺)와 4.19국립묘지 중간에 자리해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그저 조그만 절인줄 알았는데, 정작 와보니 제법 규모가 있는 절이었다. 속인(俗人)들의 주거지와 북한산의 푸른 숲이 팽팽히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자리해 있 지만 숲이 절의 상당수를 둘러싸고 있어 산사(山寺)의 멋은 그런데로 우려내고 있다.
이 절은 왜정(倭政) 초기에 손덕선(孫德善)이 창건했다. 그는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들어가 청암(淸庵)을 스승으로 받들며 수행을 했다고 하며, 1920년대에 서울로 올라와 지금의 절을 지 었다. 처음 이름은 도성암(道成庵)이었는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조선 말부터 도성암이란 암 자가 있었다고 하며, 왕년에는 도선사보다 신도가 더 많았다고 전한다. 그 말이 맞다면 조선 후 기에 지어진 도성암을 손덕선이 중창을 한 셈이 되는데, 이를 입증할 기록이나 유물이 전혀 없 어 확인은 어렵다. 아마도 100년도 안되는 짧은 법등(法燈)을 좀 만회하고자 지어낸 것이 아닐 까 싶다.
손덕선은 여기서 50여 년을 머물다가 1973년에 입적했다. 6.25전쟁으로 북한산성(北漢山城) 안 에 있던 태고사(太古寺)가 잿더미가 되자 그곳의 지장보살상(목보살좌상)을 업어와 중심 불상으 로 삼고 열심히 절을 꾸렸다. 허나 인근의 도선사와 화계사 등 쟁쟁한 절에 밀려 상황은 좋지 못했으며, 그가 간 이후에는 거의 문닫기 직전까지 흐르다가 1980년대 초반 원성이 주지가 되면 서 절은 180도 달라진다. 그는 법당에 봉안된 지장보살의 본원(本願)을 따르고자 본원정사로 절의 이름을 갈아 이미지 변 신을 시도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과 명부전, 나한전을 건립했는데, 그만 1996년 5월 22일 불의의 방화사건으로 애써 지은 대웅전과 나한전이 그만 전소되고 말았다. 이 때 가까운 삼성암(三聖庵)과 화계사에도 연쇄방화사건이 터져 나란히 피해를 입었는데, 이곳에 모두 불을 지른 한심한 자는 기독교 광신도였다. 이후 1999년 대웅전과 나한전 자리에 2층 규모의 대적광전을 세워 법당(法堂)으로 삼았고, 약사 전과 나한전, 삼성각을 지어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적당한 크기의 경내에는 대적광전을 비롯해 명부전과 삼성각, 약사전, 나한전 등 7~8동의 건물 이 있으며, 대적광전 1층은 종무소와 공양간으로 쓰인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목보살좌상이 있 는데, 이곳에 유일한 보물이다. 비록 본원정사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곳의 든든한 후광(後 光)이자 밥줄로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본원정사도 없었을 것이요. 내가 굳이 이곳에 오지도 않 았을 것이다. 그런 목보살좌상 외에는 딱히 두드러지는 것이 없는 현대 사찰이지만 속세와 자연의 경계에 자 리한 산사로 시내와도 가까워 적은 발품으로도 언제든 편히 찾을 수 있다. 또한 북한산 둘레길 의 동쪽 구간이 부근을 지나므로 둘레길 탐방 때 잠시 다리를 쉬어갈 만 하다.
※ 본원정사 찾아가기 (2013년 5월 기준) * 지하철 4호선 수유역(3번 출구)에서 강북구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본원정사 종점 하차, 종점 에서 2분만 걸으면 바로 본원정사이다. * 지하철 4호선 미아역(4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이나 미아3거리역(3/5번 출구)에서 151번 시 내버스를 타고 국립재활원(서울영어마을수유캠프)입구에서 하차 삼각산로를 따라 도보 12분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인수동) 산125 (☎ 02-902-7337) |
본원정사에 들어서니 생각 밖으로 사람들이 무지 많아 내심 놀라고 말았다. 그에 비해 이곳 후 속으로 간 고려 후기 고찰, 경국사는 한산해 크게 대조를 보였지. 사람들은 대적광전과 명부전에 집중적으로 몰려있었는데, 그 혼잡함을 피하고자 제일 윗쪽부터 둘러보기로 하고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삼성각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경내 변두리라 인적은 별로 없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99년 이후에 지어졌다. 이 건물은 토속신으 로 불교의 일원이 된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聖)의 보금자리로 예전에는 창건주인 손 덕선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에 가 있다. |
5층석탑은 1980년대에 만든 것으로 이곳의 유일한 석탑이다. 법당인 대적광전 앞이 아닌 약사전 앞에 바닥돌도 없이 둔 것이 이상한데, 아마도 기존의 대웅전과 나한전이 몰지각한 자에 의해 불에 타면서 임시로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여겨진다. 석탑 옆에는 하얀 피부의 문수동자상이 물병을 쥐어들고 조그만 석조(石槽)에 물을 붓고 있는데, 물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그 작은 병에 도대체 얼마큼의 물이 들어있는 것일까.. 그렇다 고 물을 더 나오게 하려고 물병을 쑤시거나 부시진 말자, 그러면 물은 안나온다. 마치 이 땅의 흔한 쌀바위의 전설처럼 말이다. |
첫댓글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이웃의 종교도 배려할줄 알아야 그게 진정한 사랑일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글보셨으면 손가락 뷰온좀 눌러주시길.
절집의 모습을 이렇게 꼼꼼히 둘러보시고 자세한 설명 곁들여 소개하셔서 다녀온 듯 보고 갑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우회원돕기 차원에서 손가락 뷰온좀 눌러주시길.
잘 보고 갑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손가락 뷰온좀 강하게 눌러주시길...
마치 본원정사를 다녀온듯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 글입니다. 손가락 뷰온좀 눌러주시길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