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세검정성당 (서울시 종로구 세검정로6길 38, 신영동 165)
세검정성당은 건축가 김원(안드레아)의 작품이다
경사지 높이가 30m나 차이 나는 산자락 경사면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세워졌다
보통 이런 경우 산을 모두 깎아 축대벽을 세우고 대지를 확보한 후 성당을 짓거나 도로변에 축대벽을 세워 그 안에 흙을 채우고 다진 다음 집을 짓지만, 세검정성당은 경사지 높이에 따라 양쪽에 기둥 역할을 하는 샤프트를 여러 개 박아 지하 1층 지상 5층 높이의 경사형 성당을 세웠다
그래서 공사 당시 건축가들은 세검정성당을 ‘테라스 성당’이라는 새 용어를 만들어 불렀다
경사각이 20도나 차이 나는 지형의 특성을 살린 세검정성당은 ‘기도손’(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형상) 형태를 하고 있다
성당은 중정(中庭)을 기준으로 전례 공간인 성전과 교육ㆍ문화ㆍ주거 공간인 교리실과 회합실, 사제관, 수녀원 등으로 구획돼 있다
성전은 교회의 전통 양식인 삼랑식(중앙 신자석과 양쪽 통로가 구분돼 있는 형식)으로 지어졌지만 양 측면 통로에 기둥을 세워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제단에는 천개(天蓋, 닫집) 형태의 발다치노 (Bladacchino)를 설치해 회중석과 구분하고 있다
제단에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제대와 독서대, 주례자석, 감실 등이 모두 회중석에서 잘 드러나도 록 정돈돼 있다
세검정성당의 백미는 30m 경사면에 따라 조성된 십자가의 길이다
도로변에 접한 성모상을 끼고 성당 좌측 벽면을 따라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 14처 를 기도하다 보면 정상까지 올라가 성당 외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세검정성당을 짓게 된 계기는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실 때 어린아이가 갖고 있던 빵 두개, 물고기 다섯마리가 마중물이 되었듯이 한 초등학생 복사가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돌 반지와 세뱃돈 등을 모은 통장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자 한 교우 할머니가 성당 부지 를 내놓는 등 신자들의 자발적인 봉헌이 이뤄졌다
이처럼 세검정성당은 신자들의 희생과 봉헌으로 지어졌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때마침 IMF 외환 위기가 터지자 우리나라 음향시설의 최고 권위자이던 이문환 (아우구스티노)씨가 성당 음향과 조명 설비 전부를 무상으로 맡아 설치했다
또 외부 십자가의 길 14처와 성모상, 성가정상, 성당 로고 등 모두 신자들이 직접 제작해 봉헌했다
인간의 손으로 빚은 하느님의 집은 자기 봉헌과 희생을 기초로 해 더욱 아름답다
♤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뒷쪽에 세고사라는 작은 절집이 있다
자하슈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42길 57, 신영동 158-5)
슈퍼앞 평상은 동네 사랑방이다
아이들은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어른들은 평상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그래서 슈퍼 아줌마는 누가 이사오고, 어디에 누가 사는지를 잘 안다
이곳은 동네 사람뿐 아니라 방송국 사람들도 좋아한다
하도 드라마를 많이 찍어서(왔다 장보리, 내조의 여왕, 응답하라 1994 등) 아줌마는 슈퍼해서 버는 돈보다 장소협천비가 훨씬 많을거라고 말들 한다
그런데 이 자하슈퍼도 이 동네가 곧 재개발 되어 없어질 예정이다
현통사 (서울시 종로구 세검정로6나길 53, 신영동 84)
서울에서 유일한 자연 폭포인 ‘동령폭포’를 끼고 있다
거대한 백색 암반을 어루만지며 2단으로 타고 넘는 계류가 멋스럽다
절이 처음 세워진 건 고려 때이며 현재의 건물은 전란으로 소실됐다가 197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창건 때에는 장의사의 암자였으나 현재는 일붕 선교종단 소속 절이다)
대웅보전, 산신각, 칠성각, 제월당, 독성각, 범종각이 전부인 소박한 절집이 백악자락에 아늑하게 안겨 있다
‘삼각산현통사’라고 적힌 일주문으로 들어서자 딴 세상이다
마을에서 50m 남짓 떨어졌을 뿐인데, 무릉도원이 연상될 만큼 고즈넉하여 세속에 찌든 범부의 마음이 이내 연꽃처럼 맑아진다
동국대 교수가 썼다는 ‘제월당’ 현판의 서체가 독특 하다
백사실계곡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115)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계곡으로,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문화사적(백석동천, 명승 제36호)과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우수한 자연생태지역으로 서 도롱뇽,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다양한 생물체들 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1급수 지표종인 '도롱뇽'은 서울시자연환경 보전조례에 의한 서울시 보호야생동물로서 백사실 계곡에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어 그 보존가치가 매우 높아 2009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백사실이라는 명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오성대감으로 유명한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터 가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한 고증 은 없다
깊은 숲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과 걸음을 막아서는 크고 작은 계곡의 정취는 이곳이 과연 서울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솟대왕
소나무
백석동천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산 115)
북악산 북사면의 백사실계곡에 위치한 조선시대 별서(別墅 : 별서는 본인의 집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수양과 휴식을 겸한 별장을 말한다)로, 1800년대 도성 가까이에 조성되었던 별서 관련 유적으로 별서정원의 유구와 바위에 암각된 각자, 동천 경역 내의 지형과 산림이 잘 보존 되어있는 명승이다
2005년에 사적 제46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에 명승 제36호로 재분류되었다
♤ 동천(洞天) :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별서는 1830년대에 지어진(중건?) 600여평의 별장이었으나 1970년경 허물어 졌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실정이나 월암 이광여 (1720~ 1783)의 이참봉집에 '세검정과 탕춘대 계류 고간 세폭 위에 동천이 조성되어 있고, 그 곳에 허씨의 모정이 있었으며 모정의 이름은 간정료였다' 는 내용이 있어 현재의 별서 이전(17~ 18세기)부터 조그만 집(초막?)이 둥지를 트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별서 자리는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랑채 기둥을 받치던 주춧돌이 남아있고
바로 옆 연못가에는 육각정 정자의 초석(礎石)이 남아있어 당시의 집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건물지 위쪽 바위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 월암(月巖) 등이 잘 남아 있고 마을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 있는 등 별서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춘 격조 높은 조원(造園)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명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오성대감으로 유명한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터가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한 고증은 없으며, 이항복은 이곳에 머무른 적이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2년 11월 조선후기 서예가인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이 터를 사들여 새롭게 별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옛 문헌(완당전집 권9)에서 찾아낸 바 있다
첫댓글 백사실계곡 예전에 참 많이 찾아가고 했는데 오랜만에 추억거리를 뒤돌아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