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오는 바람을 움켜잡고 흘러가는 물을 멈추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을 산다고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 한 달이 되고, 한달 두달이 쌓여서 1년이 되며, 1년씩 흘려보내다 보면 문득 한 세상이 막을 내립니다.
한 번 손 끝으로 헤아려 보십시오. ‘나’의 나이가 얼마인지를? 그리고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하지만 지금, 어느 누구도 이것을 문제로 삼는 이는 드뭅니다. 과연 우리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나이 일까요? 아닙니다. 부처님일까요? 아닙니다. 진리일까요? 아닙니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바로 이 생각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고생 덜하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들딸 좋은 학교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 시킬 것인가? 관심은 오로지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으로 모아집니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한정이 없습니다. 높고 크기로는 한라산이나 지리산 보다 더 크고, 넓기로는 동해바다보다 더 넓습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해지고 내 가족이 잘 되려면 ‘나’가 무엇인지. 어느 자리에 와 있는지부터 잘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가만히 돌이켜 보십시오. 내가 지금 어떠한 지점에 와 있는지?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지? 지금의 내가 어떠한 나인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지? 얕은 욕심을 부리며 사는 사람인지? 깊이 있게 행복을 구하는 사람인지? 등을 곰곰이 돌아보십시오.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아는 이는 참으로 드뭅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나’에 대해 말해 주는 이는 극히 드뭅니다. 그럼 나는 ‘나’를 알까요? 모두가 나를 위해 살고, 잔뜩 힘을 주어 “나, 나”하면서 큰소리를 치고는 있지만, ‘진짜 나에 대해 말해 보라’고 하면 입을 꽉 다문 채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이는 말할 것입니다. “나요? 내가 왜 나를 몰라요? 잘 알지요.” 그러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며 생년월일 등, 외형적인 사항들만 열심히 늘어놓을 뿐, 진짜 나에 대한 설명은 잘하지를 못합니다.
이렇듯 나도 잘 모르고 내가 있는 자리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나의 행복’을 가꾸고 그 행복을 이루어 낼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지금의 ‘나’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잘 점검할 줄 모르면 참된 행복은 나에게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야망이 있다한들, 그 야망은 나를 힘들게만 만들 뿐입니다.
청도용산초등학교총동창 선후배그리고 16회친구님
더위하고 코로나하고 조심하시고 아푸지않고 건강챙기며 행복하세요
부산한마음오랜만에인사올림다